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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세 번에 담긴 관용[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42>가장 목가적인 10㎞ 구간

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두 바퀴가 달려 만나게 되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왔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 필자는 뉴올리언스에서 키웨스트까지 1800㎞를 여행하며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 하는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리곤데 구간을 달리는 아들.

곤사르를 지나 오스피탈 다 크루즈(Hospital da Cruz)를 지나면 도로 환경이 확 달라진다. 지금껏 동고동락했던 LU-633 도로가 오스피탈 다 크루즈에서 N-540 도로와 교차하면서 소멸하고 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왕복 1차선으로 좁아진다.

리곤데(Ligonde)를 지나 팔라스 데 레이(Palas de Rey) 직전까지 10㎞ 구간은 우리나라의 잘 포장된 농로와 비슷하다. 이 구간은 도보순례자와 자전거가 길을 공유하며 전진한다. 가끔 길가에 주차된 현지 주민의 자동차가 보이지만 운행하는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다. 도로 폭이 워낙 좁아 순례자들에게 위협을 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구간은 마지막 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코스 가운데 가장 목가적인 분위기를 품었다. 넉넉한 나무그늘 아래 마을 안길을 따라 심심찮게 나타나는 민가와 알베르게, 카페 등을 눈요기하며 편안하게 달릴 수 있는 구간이다.

오스피탈 다 크루즈를 업힐해 벤다스 데 나론(Vendas de Narón, 해발 766m)을 지나면 이후부터는 내리막이 시작되니 그야말로 꽃놀이 관광라이딩이다. 짙은 나무그늘 사잇길을 시원하게 달리다 보면 숲속의 쉼터와 같은 리곤데 마을이 나타난다.

리곤데 마을 야영장에서 출발준비에 앞서 예배를 올리는 순례자들.

곳곳에 음수대와 벤치 등 순례자를 위한 편의시설을 갖추어놓았다. 너른 마당에선 순례자들이 단체로 야영을 했는지 출발에 앞서 손에 손을 잡고 예배를 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기록을 보면 이곳에는 순례자를 대상으로 한 매춘이 성행했다고 한다. 당연히 강도‧사기 등 각종 범죄 우려가 커 순례자를 보호하기 위한 기사단도 결성됐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는 아랍의 속담을 빌어 ‘한 번 일어난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두 번 일어난 일은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는 구절이 나온다.

연금술사가 금을 나눠주고 예비로 하나를 따로 보관해두자 산티아고가 “어째서 금을 예비로 남겨둬야 하는 거죠?”라고 물었다. 연금술사는 “그대가 이미 돈을 두 번씩이나 잃었기 때문”이라고 답하면서 속담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 속담에는 오랜 인간관계 속에서 터득한 아랍인들의 삶의 지혜가 묻어난다. 강도나 도둑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발생하는 사건이지만 ‘개 버릇 남 못 주는’ 중독성 범죄에 딱 들어맞는 속담이다. 우리나라도 ‘삼진아웃제’라는 맥을 같이 하는 제도가 있다.

산티아고방면을 가리키는 N-547 도로 표지판.
산티아고까지 58㎞가 남았음을 알려주는 도로표지판.

전통적으로 동양에선 ‘삼세번’이나 ‘삼세판’이 널리 통용됐다. 실수를 다시 범하면 안 된다는 ‘압박’이나 ‘경고’의 의미이지만 그만큼 만회할 기회를 부여하는 ‘관용’도 내포한다. 우리 선조들은 양의 기운이 도는 홀수를 선호했다. 그 가운데 3은 가장 단출하고 짧은 시간 안에 승부를 가리는 숫자다.

‘3’은 작은 숫자일 수 있지만, 동양에선 많다는 의미로 쓰였다. ‘만세삼창’, ‘참을 인(忍)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간다’ 삼천리 금수강산 등등. 백제멸망 당시 등장하는 ‘삼천궁녀’는 실제 삼천 명이 아니라 의자왕의 방탕한 사생활을 강조하기 위해 많은 궁녀를 거느렸다는 승자의 논리로 해석된다. ‘삼고초려’는 최고의 정성과 노력을 기울였다는 뜻으로 쓰인다.

목표지점이 얼마 남지 않아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길가에서 삶은 계란으로 배를 채웠다.

담장 없는 비단길 같은 순례길은 10㎞ 만에 끝나고 왕복 2차선의 N-547 도로로 흡수된다. 이 도로는 우리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초입까지 인도할 것이다.

N-547 도로에서 첫 번째 만난 중소도시가 팔라스 데 레이(Palas de Rey)다. ‘왕의 궁전’이라는 뜻이다. 서고트의 왕이 살던 궁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김형규  tjkh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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