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순풍, 누군가에겐 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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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순풍, 누군가에겐 역풍
  • 김형규
  • 승인 2018.01.16 13:14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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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6>팜플로나에 도착하다

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두 바퀴가 달려 만나게 되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왔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 필자는 뉴올리언스에서 키웨스트까지 1800㎞를 여행하며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 하는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론세스바예스에서 순례자들이 산티아고 도보순례코스를 살펴보고 있다.

론세스바예스에서 점심을 먹을 예정이었으나 식당이 한 군데밖에 없고 손님이 많아 고민했다.
아들과 고즈넉한 수도원을 둘러보고 식당을 기웃거리는데 업힐 중간에 마주쳤던 네덜란드 친구와 다시 만났다. 이미 식사를 마친 상태였다. “밥을 벌써 먹었냐”고 했더니 “나는 빠르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곧장 팜플로나로 달려가기로 했다. 피레네 정상에서 먹은 간식 덕에 그다지 허기지지도 않고 남은 50㎞는 완만한 내리막이라 두어 시간 달리면 목적지에 도착할 터였다. 팜플로나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빨리 도착해 빨래와 식사를 하고 내일을 위한 휴식을 취하는 게 최선인 듯했다. 마침 도착한 멋진남님도 동의했다.

멋진남님은 무릎의 통증을 호소했지만 스스로 피레네산맥을 넘은 것에 자긍심을 숨기지 못했다. “난 더 이상 안 될 것 같다”면서도 얼굴엔 희열이 넘쳤다. 탄수화물 겔을 한 포 주면서 남은 거리는 내리막이니 걱정할 것 없다고 응원했다.

론세스바예스에서 팜플로나까지 여정은 해발 500-800m에 형성돼 라이딩하기에 쾌적하다.

론세스바예스에서 팜플로나 코스는 자전거 타기에 최적이다. 평균 해발 500m에서 형성된 기후나 자연환경이 활력을 불어넣어줬다. 몇몇 산티아고 순례길 중 프랑스길을 최고로 꼽는 이유다.

도로 맞은편에서 로드바이크(사이클)를 타는 라이더들이 눈에 띄었다. 같은 순례라이더려니 했는데 현지 아마추어 자전거족이다. 멀리서 다가올 땐 젊은이처럼 보이더니 가까이오니 최소 60대 이상이다. 우리에겐 완만한 내리막이지만 저들에겐 아주 긴 오르막이다. ‘피레네 능선까지 올라갈까’ 궁금했다.

뒷바람의 진실을 알까

한 도보순례자가 차도를 가로질러 도보코스로 진입하고 있다.

스페인의 고풍스런 농촌마을을 눈요기 삼아 페달링하는 재미가 근육의 피로감을 누그러뜨렸다. 달리는 길이 안락하기 때문이다. 피레네 이후 또 다른 고개가 기다리고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겠지만.

스페인은 로드바이크의 강국이다. 사이클 선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알베르토 콘타도르(35)가 스페인 출신이다. ‘산악왕’으로 유명한 그가 악명 높은 알프스•피레네 산맥을 엉덩이를 곧추세우고 리드미컬하게 올라가는 ‘댄싱’ 페달링 장면을 보면 심장 속에 내연기관이 숨겨진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길 건너편에서 스페인 자전거동호인이 라이딩을 즐기고 있다. 스페인에는 선수급 아마추어가 많다. 특히 노년층 라이더 실력이 수준급이다.

콘타도르를 비롯한 정상급 선수는 업힐이건 다운힐이건 그다지 표정변화가 없다. 심장이 터질듯한 구간에서도 발레 같은 댄싱능력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냉정한 선수와 달리 열광하는 건 길옆에 늘어선 관객들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선수가 나타날 때마다 자전거를 뒤따라가며 온몸으로 에너지를 옮겨주고 싶어 안달이다.

자전거 9단과 달리 아마추어는 업힐과 다운힐에서 얼굴표정이 들쭉날쭉 바뀐다. 누군가의 호응을 강요하는 메시지이지만 9단의 자연스럽고 지속적인 지지를 받지는 못한다.

U턴 하는 순간 깨닫는 요망함

드디어 팜플로나에 도착했다. 시내에 자전거도로가 잘 깔려있다.
팜플로나에서 하루 묵을 민박집.

자전거를 탈 때 노면 경사 못지않게 영향을 받는 요인이 공기의 저항이다. 자전거에 올라앉은 사람 자체가 천덕꾸러기가 되는 셈이다. 약간 센 바람이 뒤에서 밀어줘 시속 30㎞로 달렸다면 반대편에서 오는 라이더는 시속 20㎞를 내기 힘들다. 걷는 사람 기준으로 시속 10㎞ 차이면 엄청나다.

사람이란 게 간사하다. 뒷바람이 밀어줄 땐 풍력의 고마움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모두들 ‘내가 이렇게 잘 타는 줄 몰랐네. 타고 났다봐’하며 예정된 거리보다 한참 더 달린다.

집에 돌아가기 위해 자전거를 되돌리는 순간 바람의 세기를 제일 먼저 감지하는 건 민낯이다. 처음엔 ‘아 봄바람이네. 이 정도쯤이야’하고 달리다 ‘자전거가 왜 이렇게 안 나가지?’하며 헉헉 거린다. 엉덩이와 허벅지의 뻐근함이 몰려오고 나서야 ‘이럴 줄 알았으면 너무 멀리 오는 게 아닌데’하고 후회한다. 그나마 알면 다행이다.

답을 찾기 앞서 문제를 알아야       

팜플로나는 투우로 유명하다. 중심가에는 산 페르민 축제 기간 중 가장 유명한 소몰이 장면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세워져있다.

언급했던 영화 ‘나의 산티아고’는 하페 케르켈링의 원작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Ich bin dann mal weg)’를 영화화한 것이다. 독일에서 국민 코미디언으로 인기를 한 몸에 받은 하페는 과로로 쓰러져 무조건 쉬라는 의사의 엄명을 받고 돌연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른다. 여러 난관에 부딪히는 와중에 몇몇 순례자와 동고동락하면서 자연스레 과거를 되돌아본다.

어릴 적 엄마를 잃고 할머니 손에 맡겨진 하페는 코미디에 관심을 갖지만 재능이 없었다. 하품만 사는 하페의 개그를 믿어준 건 할머니뿐이다. 동네 학예회 발표에선 재미없는 멘트를 하다 실수로 이빨을 부러뜨려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전국적인 꿈나무 오디션에선 초청대상이 아니었으나 누군가의 불참 덕분에 대신 출전해 운 좋게 발탁이 된다.

이후 탄탄대로를 걸으며 자신의 재능을 과신하다가 쓰러진 것이다. 하페는 자신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섰지만 ‘답을 찾기 위해선 문제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걸 자각한다.

오랫동안 묻어뒀던 기억을 들춰내 어릴 적 품었던 신(神)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을 재차 던지고 자신을 믿어준 할머니와 결정적인 순간마다 따라붙었던 운을 떠올린다. 하페는 기억에서 질문을 찾고 현지에서 만난 순례자들과의 만남에서 자연스레 답도 구한듯하다.
‘매일 매일 신을 만났다’고. 

풍운아 헤밍웨이가 사랑한 팜플로나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시내 레스토랑을 찾았다. 이른 저녁시간이라 노년층 손님들이 많다.
첫날 라이딩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자축하기 위해 스페인 코스 요리로 허기를 채웠다.

고풍스런 스페인 농촌도로를 따라 상큼하게 달리다보니 어느 덧 팜플로나 외곽에 도착했다. 도로변에 조성된 자전거도로가 우리를 반겼다.
  
미국 작가 헤밍웨이가 스페인을 사랑한 출발점은 팜플로나와 투우(鬪牛)다. (www.sj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603) 투우는 동물학살이란 국제적인 비난에 직면해 요즘 금지되는 추세지만 한때 스페인의 국기나 다름없었다.

투우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린 장본인이 헤밍웨이다. 투우사처럼 전 세계 이슈에 직접 뛰어들고 작가로서 불꽃같은 작품을 남긴 헤밍웨이는 인생의 반환점을 도는 순간 자신의 얼굴에 맞닿은 앞바람을 숙연히 받아들이고 스스로 삶을 지웠다. 유턴 시점에서 삶의 욕망을 무심하게 꺾은 현대사의 인물들이 떠오른다.

헤밍웨이가 사랑한 팜플로나 투우경기장. 지금은 동물학대 여론에 밀려 자주 열리지 않는 듯하다.

햇빛에 빨래 말리는 환경 부러워

팜플로나의 숙소에 여장을 풀고 땀에 젖은 옷을 세탁해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뒷마당 빨랫줄에 널었다. 오래전 우리집 앞마당에 가로걸린 빨랫줄과 이빨 빠진 빨래집게가 떠올랐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선 빨래집게가 필요하다. 스페인에선 발코니나 창밖에 이불이나 빨래를 내거는 게 자연스럽다.

일찌감치 빨래를 해서 뒤뜰 빨랫줄에 널었다.
팜플로나 민박 내부. 럭셔리하지 않지만 순례여행자들에겐 차고 넘치는 안식처다.

우리나라는 아파트 품위 손상이란 이유로 빨래를 밖으로 내보이는 게 오래 전 금기시됐다. 아파트는 늘어나는데 언제까지 매번 빨아도 똥내 나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쉰내 나는 옷을 입어야 하는지. 악취를 가리기 위해 섬유유연제는 얼마나 떠 써야하는지. 품위가 중요하다면 옥상이라도 개방하는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닌가.

팜플로나 시내 풍물을 구경하고 텅 빈 위장에 푸짐한 음식을 보충했다. 아들은 첫날의 난관을 무난히 극복한 덕에 자신감이 붙은 듯했다. 젊음은 세상에서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강력한 에너지였다. 오늘만큼은 내일이 궁금하지 않은 하루였다. <계속>

숙소 뒤뜰에 자전거를 보관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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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WS 2018-03-01 15:41:42
여행객들에게 게스트하우스는 정말 중요하죠...
잘먹고 잘자야
내일을 준비할수있으니... ㅡㅡb

Ju 2018-01-22 09:26:09
아버지와 함께하는 자전거 순례 평생 잊지못할 추억인걸요~멋져요~~~

yun 2018-01-16 18:34:18
엄마께 빨래줄 얘기했더니 맞다고...하시네요^^
숙소가 엄청 깔끔해요~

Jin 2018-01-16 16:32:16
나의 산티아고... 좋은 영화죠. 글을 읽을 때마다 오버랩됩니다. 주말에 다시 한번 봐야겠어요

KusenB 2018-01-16 15:30:03
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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