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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역사, 운인가 운명인가[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32>템플기사단의 엇갈린 운명

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두 바퀴가 달려 만나게 되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왔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 필자는 뉴올리언스에서 키웨스트까지 1800㎞를 여행하며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 하는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템플기사단 복장을 한 주민과 성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폰페라다의 지형은 흥미롭다. 해발 540m의 고지대에 건설된 도시를 높이 1500m를 넘나드는 산지가 둘러싸고 있다. 동쪽의 1500m 고지에서 가파르게 내려와 폰페라다에 여장을 푼 뒤 다시 서쪽으로 1300m대의 산악지대를 넘어야 산티아고에 갈 수 있다. 고지대에 위치한 분지 지형인 것이다.

대개 분지에는 도시가 형성되고 위치에 따라 전략적 요충지가 된다. 폰페라다와 비슷한 강원도 양구의 ‘펀치볼’(Punch Bowl : 파티용 음료 그릇처럼 생긴 분지라는 의미)은 전략적‧군사적 요충지여서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로 알려져 있다.

폰페라다는 로마 시대부터 광산업으로 흥한 데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동남쪽에서 올라오는 순례자들이 집결하는 지역이다. 비교적 수량이 풍부한 실강(Río Sil)과 보에사강(Río Boeza)도 도시에 자양분을 공급한다.

템플기사단의 성벽에 자리 잡은 노천카페.
성안으로 들어가는 관문.

12세기 초 예루살렘과 순례자 보호의 임무를 띠고 출범한 템플기사단의 위세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자 1178년 스페인 레온 왕국의 페르난도 2세도 실강과 보에사강을 건너는 산티아고 순례자를 보호하기 위해 폰페라다를 템플기사단에게 위임했다.

템플기사단의 성은 실강변 바로 동쪽에 자리 잡아 경계와 방어를 하기에 적지였다. 산악지대를 통과하느라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순례자들에게 템플기사단이 든든하게 지켜주는 폰페라다는 고향 같은 안식처였을 것이다.

프랑스처럼 폰페라다의 템플기사단도 1311년 해체되고 재산이 몰수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의 템플기사단원들은 수백 명이 누명을 쓰고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했다. 그들에게 씌워진 죄명 가운데 ‘바포메트’(Baphomet)는 치욕적이었다.

음란한 산양의 모양을 한, 악마의 대명사 바포메트는 이슬람의 마호메트(무함마드)와 발음이 비슷하다. 기독교도는 물론 무슬림도 경계하는 용어로 순수하게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던 템플기사단원으로서는 황당한 죄명이 아닐 수 없었다.

반면 포르투갈의 템플기사단은 종전 후 일찌감치 진로를 틀어 ‘그리스도기사단’으로 개명했다. 항해 왕 엔히크 왕자를 도와 신대륙 발견에 앞장서는 등 국운 융성에 기여해 지금도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폰페라다를 벗어나 산티아고 순례길은 LE-713도로와 함께 간다.
아들과 멋진남님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해발 1300m대의 고갯길을 오르고 있다.

템플기사단의 엇갈린 운명은 임진왜란 당시 공을 세우고도 억울하게 옥사한 김덕령(1567-1596)을 비롯한 여러 의병을 떠올린다. 김덕령은 나라가 풍전등화에 처했을 때 농민을 모아 호남과 남해지역에서 왜군을 물리치는 전공을 세워 선조로부터 장군의 군호를 받았다.

어려울 때마다 나라의 부름을 받아 관군을 지원하던 중 의병장을 가장한 반란군 이몽학과 내통했다는 모함을 받고 투옥됐다. 몇몇 탄원에도 불구하고 모진 고문 끝에 서른을 바라보는 아까운 나이에 옥사하고 만다. 함께 모함을 받았던 홍의장군 곽재우(1552-1617)는 다행히 풀려났지만 모든 관직을 물리치고 초야에 묻혀 살았다.

수풀이 우거진 카카벨로스(Cacabelos) 마을의 쿠아강(Río Cúa).
카카벨로스를 벗어난 도보순례자들이 마을 외곽 보도를 걷고 있다.
순례자 쉼터로 활용되는 카카벨로스의 공립 알베르게.

승병으로 궐기한 서산대사(1520-1604)와 사명대사(1544-1610)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불심으로 되돌아가거나 탁월한 외교수완으로 나랏일을 도와 억불정책으로 일관한 조선 사회에 불교의 위상을 강화하는데 기여했다.

이들은 동시대에 평범하게 태어나 대의를 위해 삶을 불태웠건만 마지막 가는 길은 엇갈렸다. 멀지 않은 역사를 더듬어보더라도 사화, 이데올로기,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누구는 허망하게 죽임을 당하고 누구는 구사일생 살아남아 초야에 스스로를 가둬버렸다. 

부역으로 간신히 살아남았거나 모함이나 모반까지 획책해 영달을 누린 자도 있었다. 역사는 억울하게 죽은 민초들의 생사여탈을 한낱 운이나 운명으로 떠넘겨 묻어 버리면 안 된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코스도=폰페라다-포르토마린까지 달린 궤적과 고도표.

이튿날 폰페라다의 아침은 쾌청했다. 간밤에 비가 살짝 내린 뒤 개였는지 티끌 하나 없는 하늘이었다. 오전 7시 역사의 명암이 혼재된 폰페라다를 뒤로 하고 서쪽 하늘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오늘 목적지는 포르토마린(Puertomarín)이다. 어느덧 산티아고 순례라이딩은 종반전에 접어들었다. <계속>

김형규  tjkhk@daum.net

<저작권자 © 세종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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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 C 2018-07-24 09:13:54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는 반복성이 있고 또 동질성도 있다고 봅니다. 다만, 새로운 역사는 기존과 다른 새로운 모험과 열정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진리도 있지요. 전쟁 역사가 참 그런거 같습니다.   삭제

    • 진교영 2018-07-19 18:49:40

      공수래공수거 ~
      언제쯤 알게될런지 ~
      흥미진진 여행기 입니다.
      감사합니다
      무더위에 폭포수같은 시원함을 드립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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