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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지대서 만난 따뜻한 사람들[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28>해발 1600m 지옥의 코스

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두 바퀴가 달려 만나게 되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왔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 필자는 뉴올리언스에서 키웨스트까지 1800㎞를 여행하며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 하는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아들이 본격적인 고산지대가 시작되는 산타 콜롬바 데 소모사 마을을 지나가고 있다.
라바날 델 카미노 마을에 도착하기 전 다시 펑크가 났다. 이젠 아들도 펑크 대처에 익숙해졌다.

“동생, 나는 내 페이스에 맞춰 갈 테니 기다리지 말고 아들이랑 먼저 가시게나.”
멋진남님은 비장하게 말했다.
“힘드시면 지원 차량에 싣고 오세요.”
“가는 데까지 갈 테니 내 걱정하지 말고…”

레온에서 폰페라다까지 가기 위해서는 해발 1600m에 달하는 폰세바돈(Foncebadón)과 만하린(Manjarín)을 넘어야 한다. 출발지의 고도가 900여m 정도 되니까 표고 차가 700m나 된다.

아마추어 라이더에게 높이 700m 고개는 힘겨운 난관이다. 폰세바돈과 만하린 사이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유명한 상징인 철의 십자가(Cruz de Fierro)가 세워져 있다.

라바날 델 카미노 마을 안내판.
자전거 주의 도로표지판. 도로가 좁아도 차량은 자전거를 추월할 때 측면 거리를 1.5m 이상 벌려야 한다는 안내판이다. 우리나라는 이 같은 구체적인 안전거리가 명시돼 있지 않다.

동호인 사이에선 자전거를 잘 타는 기준을 업힐 능력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업힐을 잘한다는 건 페달링이 부드럽고 체력이 우수하다는 증거다. ‘투르 드 코리아’나 ‘투르 드 프랑스’ 등 거의 모든 자전거 스테이지 대회에선 업힐 최강자를 가리는 산악왕(KOM, King of The Mountain)을 별도로 뽑아 영예의 ‘빨간 땡땡이’ 저지를 입힌다.

폰세바돈은 이날 출발지로부터 90㎞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다. 표고 차 700m는 처음엔 완만한 경사를 보이다 70㎞ 지점부터 수직 상승한다. 70대를 바라보는 멋진남님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경사도다. 힘에 부쳐 지원 차량에 의지하기도 쉽지 않다. 지원 차량은 이미 우리가 가져온 자전거 케이스와 화물로 포화상태다.

스페인 현지 동호인의 배려로 타이어에 공기를 빵빵하게 채우고 출발한 멋진남님은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뒤처지기 시작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눈에 보이지 않는 완만한 업힐을 수 십㎞ 지나치는 동안 체력이 방전된 것이다.

“무리하지 말고 형님 체력이 맞게 천천히 올라오세요. 우리는 위에 올라가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걱정하지 말고 먼저 가.”
멋진남님은 손짓으로 우리를 밀어냈다.

폰세바돈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에 여성 라이더 2명이 자전거를 끌고 있다.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여성 라이더의 표정은 힘들지만 행복해 보인다.

한낮 뙤약볕 아래 산타 콜롬바 데 소모사(Santa Colomba de Somoza)와 산타 마리나 데 소모사(Santa Marina de Somoza), 라바날 델 카미노(Rabanal del Camino) 마을을 지나면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지대여서 그다지 덥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로 폭이 좁은 대신 차량통행이 거의 없고 제법 고산지대 나무가 울창해 그늘에 숨으면 시원했다.

도로 위쪽으로 난 보행자 순례길에는 순례자들이 힘겨운 발길을 옮겼다. 한동안 마을이 없고 주변엔 온통 척박한 산지만 보이는 이곳을 통과하기 위해선 음료와 음식물 등을 단단히 준비하지 않으면 자칫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폰세바돈 입구.
폰세바돈 언덕에서 운영되는 사설 알베르게.
폰세바돈 언덕에서 남쪽을 배경으로 찍은 전경.

비포장 도보순례길은 차도만큼 그늘이 많지 않았다. 가도 가도 변화가 없는 고산지대를 걷다 보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칠 만도 한데 그들은 자전거를 타고 불쑥 지나치는 우리를 언제나 미소로 맞이하고 놓아주었다.

앞서 여성 라이더 2명이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묵직한 패니어까지 장착한 자전거로 고산지대를 타고 올라가기에는 역부족일 터였다. 힘겨운 ‘끌바’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표정은 행복해 보였다. 단독군장으로 자전거를 탄 채 그들을 추월하는 게 왠지 미안했다.

스마트폰 고도 앱이 폰세바돈의 고도가 해발 1552.6m임을 알려주고 있다.

엿새 전 순례라이딩 첫날 피레네산맥을 넘으며 만났던 네덜란드 라이더가 떠올랐다. 자전거에 짐을 잔뜩 매단 그가 나에게 “짐은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나는 “차에 실었다. 황제 라이딩 중”이라고 답했었다.

남쪽 아래로 온 세상이 한눈에 들어오는 듯한 전망을 품은 폰세바돈에서 멋진남님을 기다리기로 했다. 스마트폰으로 고도를 계측해보니 1552m가 찍힌다. 멋진남님은 30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계속>

김형규  tjkhk@daum.net

<저작권자 © 세종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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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4
  • JC 2018-06-26 20:21:30

    업 힐 ! 진정한 라이딩 냄새가 물씬 풍기는 ^^. 수km라니. 참 대단 합니다. 100m 길이 오르막도 힘들어 못 가는데. -.-   삭제

    • kusenb 2018-06-25 11:47:02

      매번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삭제

      • KWAK 2018-06-20 17:10:42

        아,,멋진남님은 어디에 계신걸까요
        다음 편이 궁금하네요
        표고 차가 700m 이상이 라이딩에선 얼마의 차이인지 라이딩의 '라' 도 모르는 저에겐 실감이 나질 않지만 힘든 코스라는 건 느껴지네요
        라이딩 초보인 아드님도 대단하시네요 역시 젊은은 항상 옳은가봅니다!^^   삭제

        • 진교영 2018-06-18 14:59:15

          이번 여행기에서는 왠지 비장함이 옅보이네요
          하긴 업힐 끌바 이런단어는 단단한 각오가 없으면 쉽게 포기해버리는 빌미가 되죠.... 그동안 체력소모가 많으셨을텐데 고비를 잘 이겨내셨을거라 믿습니다 ..하루순례라이딩 마치고 맛있는음식과 시원한 맥주로 목좀 축이셔야 겠네요
          이번회차에서는 사진도 많이있고 해서 더욱 현장감있는 여행기를 읽은것 같아요
          항상 감사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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