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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子, 좌충우돌 산티아고순례를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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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子, 좌충우돌 산티아고순례를 시작하다
  • 김형규
  • 승인 2017.12.04 10:23
  •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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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1>프롤로그

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두 바퀴가 달려 만나게 되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왔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 필자는 뉴올리언스에 키웨스트까지 1800㎞를 여행하며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 좌충우돌 산티아고 순례를 시작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자전거로 통과해야할 산티아고 순례길(붉은 선). 오른쪽 출발지역이 프랑스 땅 ‘생장피에드포르’. 대체로 스페인의 북부지역 800㎞를 동서로 횡단한다.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1986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신비에 싸인 가이드 페트루스의 길안내를 받는다. 코엘료는 그와 길동무를 하면서 얻은 영적 교감을 ‘순례길’이란 책에 담는다. 한발 더 나아가 명저 ‘연금술사’에서 산티아고 순례의 감흥을 판타지소설처럼 풀어헤친다.

‘연금술사’에서 주인공인 양치기 청년 산티아고는 보물을 찾아 이집트 피라미드를 향해 가는 동안 집시노파, 살렘왕, 사기꾼, 크리스털 상인, 대상(隊商), 파티마, 연금술사와 조우하면서 자아의 신화를 찾는다.

영화 ‘마이 산티아고’에서 3명의 주인공은 혼자인 듯 혼자가 아닌 도보여행에 나선다.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병을 얻은 유명 코미디언, 어린 딸을 잃은 엄마, 당돌한 여기자는 각자의 길을 가다 좌절하지만 서로를 의지하고 격려하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한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는 산티아고순례길을 세계적으로 알려준 소설이다.

코엘료가 길을 나설 당시만 해도 연간 400명에 불과했던 순례자는 2013년 현재 전 세계에서 20만 명 이상이 각자의 사연과 각오를 품고 고행의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비서구권에서는 한국인이 가장 많다고 한다. 2013년 2700여명이 순례길에 나섰으니 요즘은 3000명은 족히 넘으리라.

무엇을 얻기 위해 단독으로, 또는 부부‧가족‧친구‧동료끼리 장장 40일간 800㎞(서울-부산 왕복거리)를 발바닥과 무릎이 짓물러터지도록 걷는 걸까. 그들은 순례를 마치고 돌아가 이전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나는 아들과 함께 자전거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달려간다. 무엇 때문에 거기에 가는지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용서와 화해, 성찰, 새 출발, 여행, 사색, 분노로부터의 해방…. 아무거나 둘러대도 맞는 것 같다.

자전거 덕에 40일 걸린다는 거리를 하루 평균 100㎞씩 달려 8일 만에 끝내려 한다. 20여년을 한 지붕에서 생활한 부자지간이지만 산티아고 길에선 각자 외롭고 낯선 레이스를 펼치게 될 것이다. 고단한 순례가 끝난 이후엔 코엘료나 페트루스, 양치기 산티아고의 실루엣을 조금이라도 담아오거나 최소한 깨달음의 실오라기라도 터득하길 바라면서.

여기에 소개되는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기는 여행안내서와는 거리가 멀 것이다 수상록처럼, 시처럼 써내려가려 한다. 다만 우리가 달려간 코스는 길을 잘못 든 구간까지 지피엑스(gpx) 파일로 고스란히 기록해뒀다. 필요한 분들에게 좋은 정보가 되길 기대한다.

20대의 산티아고, 50대의 산티아고

산티아고순례길의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대성당 야경. 현재 대규모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다.

환기가 필요한 시기였다. 신문사에 더 이상 몸담는 게 무의미했다. 출구전략을 모색하던 중 기회가 왔다. 아들의 군 제대는 내게 좋은 구실을 안겼다. 2월에 제대해 3월에 복학할 것으로 예상했던 아들은 말년 휴가를 나와 1년간 휴학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처음엔 아까운 시간 낭비라고 걱정했지만 금세 수긍이 갔다. 우리나라 시스템에선 전역하자마자 복학하고 직장인이 된다면 아들의 남은 인생은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가련한 청장년이 될 게 뻔하다. 책 읽고 공부하면서 틈새 경험을 쌓는 것이 손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가 지나 내년부터 타지에서 대학생활에 돌입하면 그것으로 부모와의 동거 인연도 끝이라는 헛헛함도 한몫했다.

“자전거 여행이나 다녀오자.”
나의 제안을 엉겁결에 받아들인 아들 덕에 덤덤하게 사표를 던졌다.
자전거 여행은 당초 미국 남부와 스페인 산티아고를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미국에 사는 형에게 남부 자전거 여행 계획을 털어놓자 코웃음을 쳤다. 루이지애나와 플로리다는 늪지대가 많아 앨리게이터를 비롯한 위험한 야생동물이 출몰하는 지역이다. 플로리다 유명 테마파크 내 호수에서 어린아이가 악어에 물려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미국여행은 자동차로 전환하고 자전거는 산티아고순례길에 올인하기로 했다.

산티아고순례길은 보행자코스를 따라 대부분 차도가 개설돼 자전거로 순례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항상 나란히 가는 것은 아니어서 길을 헤매기 일쑤다.

종교와 무관하게 인생을 성찰할 여정을 찾는다면 산티아고순례길이 최적일 것이다. 1000여 년 간 전 세계 순례자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고 우리나라에선 버킷리스트 우선순위로 꼽힌다. 지난해 정년을 하고 산티아고에 다녀온 지인의 경험담도 내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산티아고에서 모티브를 얻은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을 몇 해 전 둘러봤을 때 다른 답사와는 좀 더 묵직한 느낌을 받았다. 이 기회를 흘려버리면 산티아고 행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운명적인 기회가 아들에게는 조금 빨리, 나에게는 우연찮게 찾아온 것이다.

일단 집사람에게는 아들을 앞세웠다. “젊은 시절 산티아고에 다녀오면 인생에서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넌지시 건네자 두말 않고 승낙했다.

다음은 아비의 돌발제안을 반 강압적으로 접수한 아들의 흥미를 확대재생산해내는 일이다. 출국일이 다가올수록 수도(修道)나 고행길 같은 무미건조한 산티아고를 “내가 왜 가야 하나”라는 회의감이 들 게 뻔하다.

자전거와 친하지 않고 가톨릭신자도 아닌 20대 초반의 피 끓는 청춘이 굳이 산티아고까지 날아가 인생을 되돌아보고 전환기를 모색해야할 만큼 절실할 리 만무다. “안 갈래요”하고 판을 뒤집어도 딱히 되돌려 놓을만한 명분이 궁한 게 사실이다. 명색이 외국여행이라면 휘황찬란한 관광지에서 친구들과 멋진 추억과 낭만을 만끽하길 바랐을 터였다.

산티아고 행에 오르기 전 시내 외곽도로에서 아들과 함께 미니벨로 적응 연습을 몇 차례 가졌다.

절충안을 냈다. 스페인 여행을 3주 일정으로 잡고 그 가운데 산티아고 순례 기간 8일만 자전거를 타고 나머지는 렌터카로 투어하자고. 마침 국내 한 자전거투어 업체가 산티아고순례길 상품을 내놔 아들의 동의를 구했다.

업체의 상품은 13박 15일 일정으로 홍콩을 거쳐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로 가서 3일간 관광을 즐긴 다음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로 이동해 순례라이딩를 진행하는 스케줄이다.

나와 아들은 일주일을 더 머물면서 마드리드와 톨레도, 세비야, 지브롤터, 말라가, 그라나다를 여행하기로 했다. 자전거를 힘들게 타야 한다는 게 탐탁지 않은 눈치였지만 아들은 아비의 제안을 덥석 물고는 숙소와 렌터카까지 척척 예약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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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WS 2017-12-19 13:36:28
군제대하고 한달간의 준비과정을 마치고 20만원짜리 생활자전거를 타고서 전국일주를 다닌게
자전거와 인연이되어 지금은 자전거기름밥 먹고있는데...
옛생각나네요...
참 재미졌고 좋은경험이 되었는데...
벌써 15년전 이야기네요...

덩치 2017-12-11 10:32:44
산티아고와 돌로미테를 놓고
많은 고민중 올해는 '돌로미테'를 선택했지만 언젠가는 꼭 한번 다녀오리라는 그 곳 산티아고...
앞으로 계속 올라올 후기를 읽을 생각하니 마음이 설래입니다.
아들과 함께하였다니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암튼 무사히 완주하시고 아들과 함께한 시간이 평생 좋은 추억거리가 되었으리라 생각힙니다.

헤르메스 2017-12-08 07:56:13
아버지와 아들의 자전거 여행은 자전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모두들 바라는 꿈일 것입니다.
다음 편이 기대 됩니다.

JIn 2017-12-07 17:23:45
자전거로 돌아본 산티아고! 산티아고에 대한 많은 후기들을 접했지만 이번 글은 더 새로울 것 같습니다.
기대되네요~

HYUN 2017-12-07 11:28:40
아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인데
너무 부럽고 보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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