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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散策), 목적지 없는 자유로운 방황[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23>바호 운하

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두 바퀴가 달려 만나게 되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왔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 필자는 뉴올리언스에서 키웨스트까지 1800㎞를 여행하며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 하는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칼사다 델 코토에서 분산되는 코스. 파란색이 120번 도로를 쫓아간 자전거 궤적, 초록색 방향이 산티아고순례길 본선, 붉은색 방향이 대체순례길이다.

칼사다 델 코토 마을 입구에서 120번 도로 좌측으로 나란히 가던 산티아고 순례길은 도로 우측으로 노선을 바꾼다. 여기부터 선택의 기로에 선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231번 고속도로를 따라 직진하는 본선 코스와 칼사다 델 코토 마을을 통과해 북서방면으로 우회하는 대체순례길로 나뉜다. 순례길 명칭도 본선은 ‘Camino de Santiago Francés’(프랑스에서 출발한 길이라는 뜻)이고, 대체순례길은 ‘Camino de Santiago Francés Alternativo’이다. ‘Alternativo’는 영어의 ‘Alternative’로 보면 된다.

최근 완공된 바호 운하(Bajo Canal) 1~2단계 구간.
최근 완공된 바호 운하(Bajo Canal) 1~2단계 구간.

본선 순례길은 차가 겨우 다니는 소도로가 함께 개설됐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소도로 옆으로 난 도보순례길에는 순례자를 위해 가로수를 심어놓았다.

대체순례길은 흙길이라서 도로용 자전거는 타기 곤란하다. 우리는 본선 순례길로 들어서길 고민했다. 누군가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귀띔만 해줬어도 들어갔을 텐데 중간에 포장도로가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 안전하게 120번 도로를 따라 우회하기로 했다. 고르달리사 델 피노(Gordaliza del Pino)와 바예시요(Vallecillo)를 거쳐 20㎞를 달려가면 레온으로 곧장 북진하는 601번 도로와 만날 수 있다.

차도와 흙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가끔 자전거가 애물단지로 보인다. 낯선 곳에서 도로용 자전거는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많은 갈림길에 직면하고 그때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도보순례길은 이정표나 앞사람, 오솔길만 따라가면 되니 고민이 덜하다. 언젠가 꼭 산티아고가 아니더라도 순례길 같은 먼 길을 걷게 된다면 빠듯하게 시간을 정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산책(散策)하듯 걷고 싶다. ‘散策’의 ‘散’은 ‘분산(分散)’ ‘해산(解散)’ ‘한산(閑散)’ ‘산문(散文)’ 등의 단어로 활용된다. 목표의식이나 집중력 없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풀어헤친 상태에서 걷는 기분은 어떠할까.      

산문(散文)을 쓰듯 걷고 싶은 날을 기다리며

레온 근처 식당에서 먹은 토르티야와 감자튀김.
아들이 수량이 많은 레온 근처 에슬라강(Río Esla)에서 포즈를 취했다.

고르달리사 델 피노를 지나자 최근 완공된 듯한 바호(Bajo) 운하가 나타났다. 지난 18회에서 ‘18~19세기 스페인판 4대강 사업’이란 제목으로 ‘카스티야 운하’를 언급한 적이 있는데 바호 운하(명칭은 ‘Canal Bajo de los Payuelos’인데 간편하게 ‘바호 운하’로 부르자)는 생김새가 많이 다르다.

요약하자면 카스티야 운하는 곡물 유통을 위해 엄청난 시간과 자본을 들여 수로를 팠는데 증기기관차의 등장으로 사업을 중단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바호 운하는 카스티야 운하와 비교해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다.

2단계에 걸쳐 사업을 추진한 바호 운하는 물류 기능이 아닌 관개농업용으로 보인다. 스페인은 서쪽으로 갈수록 강(江)의 수량이 점차 많아진다. 땅이 척박한 곳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수로를 건설한 것이다.

레온 근처 폐농가. 스페인도 농촌의 공가 현상이 심한 모양이다.
스페인의 유서 깊은 도시 레온 입구.

우리나라 농촌의 농수로쯤으로 보면 되는데 공법이 다르다. 우리나라 농수로는 측면 벽이 직각으로 건설돼 수로에 빠진 고라니 등 야생동물이 탈출하지 못해 저체온증으로 죽는 경우가 많다. 바호 수로는 사진에서 보듯 측면을 완만하게 경사를 줘 동물이 쉽게 드나들 수 있다.

2단계 바호 운하에서 조금 더 전진하자 1단계 바호 운하가 다시 우리 앞을 가로지르고 곧바로 601번 도로가 나타났다. 여기부터 레온까지는 대략 30㎞ 거리. 점심시간을 놓쳐 601번 도로변 마타야나 데 발마드리갈(Matallana de Valmadrigal) 마을 식당에서 스페인 국민들의 주식인 토르티야와 빵, 감자튀김, 치킨, 콜라를 주문해 먹었다.

커플인 듯한 자전거 순례자들이 걸어서 레온에 입성하고 있다.

아쉽게도 이 식당에선 인증스탬프를 찍지 못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주변의 각종 업소는 순례자를 위한 고유인증 스탬프를 만들어 서비스하고 있다. 다양한 문양의 스탬프를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한데 순례길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업소는 스탬프를 써먹을 일이 없다. <계속>

김형규  tjkh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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