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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속 ‘현자의 돌’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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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속 ‘현자의 돌’은 어디에?
  • 김형규
  • 승인 2018.02.26 10:08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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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12>희대의 사기꾼 연금술사

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두 바퀴가 달려 만나게 되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왔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 필자는 뉴올리언스에서 키웨스트까지 1800㎞를 여행하며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 하는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벤토사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120번 지방도로에서 멋진남님이 포즈를 취했다.
보순례길에서 찍은 자전거 타는 실루엣.

로그로뇨 시내를 벗어나 비포장 순례길에서 도보순례자와 잠시 동료애를 나눈 우리는 순환교차로에서 120번 신작로로 코스를 갈아탔다. 나바레테(Navarrete)마을로 가는 길이다.

금세 비포장 노면의 까칠함은 오간데 없이 비단길과 같은 포장도로의 안락함이 엉덩이에 전해졌다. 이후 산티아고 도보순례길은 120번 지방도로‧12번 고속도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잊혀질만하면 서로 교차하기를 반복했다.

역사로 따지면 산티아고로 연결되는 모든 길 가운데 도보순례길은 1189년 성지로 선포된 이후부터 다져진 코스이므로 800년 이상 된 문화유산이다. 지방도로나 고속도로는 산티아고순례가 활성화되고 마을이 형성되면서 유통수송망 확보 차원에서 후발주자로 건설된 것이다.

한적한 시골마을 도로인 120번 도로는 나바레테 마을을 외곽으로 돌아 다시 12번 고속도로와 회전교차로 구간을 만들었다. 비포장도보순례길-지방도로-고속도로는 서로 차량과 보행자의 통행을 위해 자주 회전교차구간으로 뒤엉켰다. 이 때문에 도보순례자는 가끔 차도를 건너야 하는 모험을 감수하고 자전거이용자는 지방도로와 고속도로가 만나는 회전교차로 구간에서 고속도로로 진입하지 않기 위해 잠시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위태로운 차도 옆 산티아고길

벤토사 마을 안내도.

대한민국산티아고순례자협회의 길안내에 따르면 나바레테를 지난 지점에 1986년 자전거여행을 하다 교통사고로 죽은 벨기에인의 비가 세워져 있다고 한다. 길이 어긋났는지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협회는 이 구간을 달릴 때 고속도로 확장으로 인한 노선변경으로 자전거여행자가 위험할 수 있다며 조심운행을 당부했다.

아무래도 수백 년에 걸쳐 형성된 관습적 길인 산티아고순례길과 나중에 개설된 고속도로 노선은 일부 구간에서 서로 배치됐을 것으로 보인다. 고속도로는 비용이 많이 투자돼 되도록 직선으로 뚫어야 하므로 일부 중첩되는 도보순례길을 밀어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나바레테를 벗어난 120번 지방도로는 2.5㎞를 달리다 다시 고속도로와의 교차로지점에서 비포장 순례길과 뒤엉켰다. 여기부터 자전거는 고속도로를 오른쪽에 두고 비포장길로 통과했다.

12번 고속도로(오른쪽) 옆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여행자.

산티아고 가는 길이 시대에 따라 다변화된 것처럼 순례자의 마음가짐도 세분화됐다. 중세시대에는 오직 죄 사함을 받기 위한 종교적 열망 하나로 목숨을 걸고 길을 걸었지만 지금은 영적 구원은 물론 나를 찾아서, 혹은 자아성찰이나 마음의 풍요, 제2의 삶을 위한 각오를 위해 이 길을 걷는다.

앞 장에서 살짝 터치했듯이 가톨릭 성지였던 산티아고길의 다양성을 타진한 작가가 파울로 코엘류이다.

1947년 브라질에서 태어난 코엘류는 청소년기에 작가가 되길 원했으나 부모의 반대로 정신적 갈등을 겪다가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굴곡 많은 성장기를 겪었다. 록밴드를 결성하고 연극계에 발을 들여놓는가하면 히피문화를 동경했다.

세계 각국을 여행하던 중 산티아고순례길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 ‘순례자’와 ‘연금술사’ 등 대표작을 발표했다. 코엘류 역시 연금술에 푹 빠져 ‘현자의 돌’을 찾든 등 관련 분야를 탐구했다.

영원한 욕망 황금‧불로장생

순례길 옆으로 광활하게 뻗은 포도밭.
순례길 옆 포도밭 앞에서 포즈를 취한 멋진남님.

연금술(鍊金術)의 역사는 고대 이슬람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은, 유황, 납 등 광물로 화학실험을 통해 황금을 만들거나 불로장생의 약을 추출하는 기술이나 마법을 가리킨다.

연금술사는 스스로 창조자의 대리인을 자청했다. 오늘날 사이비 교주가 신의 힘을 빌려 병을 치유해준다고 뻥치는 것과 비슷하지만 과학기술이 일천했던 당시에는 유황가루를 뿌려 불을 내고 납을 녹이는 기술만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중국의 진시황은 연금술을 통해 영생의 약을 구하려다 믿지 못해 부하를 시켜 불로초를 직접 구해오도록 명령한 것으로 보인다.

산티아고 목적지까지 593㎞가 남았음을 알려주는 표지목.
벤토사를 통과하는 순례자들을 위한 쉼터 표지판.

오래 전 우리나라에 방영됐던 애니메이션 ‘개구쟁이 스머프’의 악당 캐릭터 ‘가가멜’이 연금술사이다. 가가멜은 늘 스머프를 황금으로 둔갑시키는 마법의 약품을 만들기 위해 애쓰지만 실패한다.

복잡한 문자로 기록된 비법 문서로 스머프를 제압할 신비의 약물을 제조하려 한다. 끓는 용액과 갖가지 유리 비커 등 실험장비에 넣었던 재료를 기억해보면 개미뒷다리, 악어눈물 세 방울, 새의 뇌, 독사의 혀, 오만함‧질투 등 실소를 금치 못하는 기상천외한 생물‧광물‧인성(人性) 등이 나온다.

연금술사(마법사)는 사기꾼이자 협잡꾼으로 묘사되지만 코엘류는 약간 시선을 달리했다. 중세시대 순례의 대가로 받는 ‘사면’과 연관시킨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현실 속에서 연금술사의 ‘현자의 돌’을 찾을 것을 조심스레 제안한다.(이 때문에 코엘류는 지나친 신비주의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긴 하지만) 소설 ‘연금술사’의 주인공 산티아고가 현실에서 찾은 꿈은 피라미드의 보물이 아닌 언제나 출발지에서 느꼈던 마음의 안식처였다. 

120번 지방도로 옆으로 난 도보순례자길. 자전거는 도로, 보행자는 우측 코스로 간다.

연금술은 부를 축적하고 불로장생하려는 허황된 욕망에서 출발했지만 일부분 화학기술과 제약의 발전에 도움을 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요즘 연금술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엉터리 만병통치 건강식품이 시중에 판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속도로와 철조망으로 경계선을 친 비포장길을 3㎞쯤 달리자 다시 120번 지방도로로 연결되는 회전교차로가 나타났다. 여기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벤토사(Ventosa)마을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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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WS 2018-03-01 15:49:11
가가멜이 연금술사.....라고는 생각못해봤는데...ㅎㅎㅎ

요즘 제 삶이 연금술사를 필요로하긴하네요...

아님 작가님처럼 훌쩍 떠날수있는 여유라도...

OTL....

오늘도 잘보고 갑니다. ^^*

한입만 2018-02-26 18:31:38
연금술과 만병통치...
100년이 넘는 우리나라 신문들의 광고를 보면 지금까지 늘 지면을 차지하는 광고가 있어요.
'화장품, 정력제, 건강제'
인간의 욕망은 고금 동서가 같은듯요 - -;;;

조용만 2018-02-26 13:33:11
순례자의 길이 목적지로 가는 길이
결코 쉽지 않는 복잡한 길이네요
우리 인생길처럼..

다음편을 기대합니다..^^

메이비 2018-02-26 12:38:47
생생한 여행기 잘 읽고 갑니다..다음편 기대할게요
어려서 가가멜과 스머프 빼놓지않고 봤던기억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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