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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 난 인생 때울 수 없나[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14>더불어 사는 교훈

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두 바퀴가 달려 만나게 되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왔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 필자는 뉴올리언스에서 키웨스트까지 1800㎞를 여행하며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 하는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빠른 속도로 우리를 앞서 지나간 스페인 젊은 라이더들이 환한 미소로 인사를 하고 있다.
스페인 젊은 라이더들이 빠른 속도로 우리를 앞서 지나가고 있다.

오전에 비포장도로를 달리느라 타이어의 피로도가 누적된 탓일까. 바람이 새기 시작한 타이어는 금세 힘없이 푹 꺼졌다. 이대로 타고 가다간 휠이 휘어져 자전거가 망가질 수 있다.

도로 갓길에서 펑크를 때우기는 위험하다. 주변을 둘러봐도 작업을 할 만한 마땅한 공터가 보이질 않았다. 일단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면서 살펴보기로 했다. 마음이 급해 500m쯤 뛰다 걷다를 반복하니 폐주유소가 나타났다. 120번 지방도로 옆으로 고속도로가 개설되면서 차량이 그쪽으로 몰리자 문을 닫은 모양이다.

타이어펑크를 수리하는 건 처음인데도 아들이 먼저 나섰다. 펑크 대처는 미세하게 새는 지점을 찾아 현장에서 때워 다시 끼우거나 예비 고무튜브로 교체하는 방법 등 두 가지가 있다. 동호인들은 주로 후자를 택한다. 동료들이 기다리는 시간을 줄여주기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아들이 펑크 난 튜브를 교체하고 있다.

숙련도에 따라 튜브교체시간은 천차만별이다. 자전거 타이어도 가장자리에 비드(Bead)라는 와이어 같은 게 있어 이 부분을 림 밖으로 밀어내야 튜브를 갈아 끼울 수 있다. 초보들은 대다수 여기서 애를 먹는다. 경험이 있는 내가 림에서 타이어를 벗겨내고 새 튜브로 바꾸는 걸 아들에게 맡겼다. 멋진남님도 두고 보질 못하고 아들이 휴대펌프로 공기 넣는 걸 번갈아가며 도왔다.

자전거동호인이라면 펑크가 났을 때 오히려 회원 간 정감과 의협심이 생긴다는 걸 잘 알 것이다. 펑크의 당사자가 상심하거나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동료들이 서로 나서서 타이어를 벗기고 때우고 공기를 넣어주고 펑크 난 튜브를 주먹만 하게 돌돌 말아서 챙겨주기까지 한다. 남의 불행을 두고 보지 않는 측은지심이다. 펑크 난 인생도 주변의 배려와 관심만 있으면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타이어 펑크에도 더불어 사는 교훈이

스페인의 옛 도시 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 도포표지판.
산토도밍고 마을 입구 회전교차로에 세워진 정의의 원형탑.
산토도밍고 건물 그늘에서 쉬고 있는 한국인 대학생 순례자들.

요즘은 펑크 걱정을 하지 않도록 자동차처럼 타이어 안에 튜브가 필요 없는 ‘튜블리스’ 타이어를 장착하기도 한다. 타이어 안에 튜브 대신 ‘실런트’라는 우유 같은 액체를 넣으면 타이어에 작은 구멍이 났을 때 실런트가 구멍을 막아준다.

튜블리스라 하더라도 펑크 부위가 크면 실런트가 막아주질 못한다는 걱정 때문에 예비 튜브를 여전히 갖고 다니는 라이더도 있다.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인간이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으면 소용없다.

튜브를 교체하느라 10분정도 지체됐다. 아직 오늘 목표지점의 절반도 가지 못했다는 조급함에 페달링에 힘이 들어갔다. 야트막한 오르막을 달리는데 관광유적지임을 알리는 갈색 도로 표지판이 나타났다. 스페인의 유서 깊은 도시 ‘Santo Domingo de la Calzada’(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이하 산토도밍고)다.

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의 오래된 건축물.
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의 오래된 건축물을 배경으로 아들과 멋진남님이 포즈를 취했다.
몽돌로 체스판 무늬의 바닥을 꾸민 광장.

산토도밍고 초입 회전교차로에 탑 모양의 원통형 석조물이 눈길을 끌었다. 스페인 카스티야(Castilla) 지방에선 대게 마을이나 도시마다 ‘Rollo de Justicia’라고 부르는 이 석조물이 있다고 한다. 우리말로 따지면 ‘정의의 원통형 돌’이나 ‘재판의 원주석’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이에 대한 설명은 많지 않고 스페인어로만 소개돼 정확한 뜻을 알 수 없으나 대략 우리나라 전통마을 입구에서 볼 수 있는 ‘천하대장군’ 쯤으로 이해하면 될 듯싶다. 중세시대 마을이나 성당의 경계 또는 ‘여기부턴 우리 마을이니 까불지 마라’ 정도의 자치권이 있음을 대내외에 알리는 상징석이다. 한때 자체적으로 재판을 해서 중범죄자는 효수까지 처한 마을도 있었다고 한다.
  
산토도밍고는 마을 전체가 유적지나 다름없다. 산티아고순례가 시작되면서 이 마을은 번성했다. 12세기에 건축돼 여러 차례 증축과 보수를 거친 대성당과 수도원의 웅장하고 정교한 건축기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대성당 건축만큼 놀라운 게 광장의 바닥이다. 손바닥만한 몽돌을 촘촘히 한 방향으로 포개어 카펫 크기만큼 덮고 주변에 같은 크기로 잇따라 엇대어 전체적으로 체스판 무늬를 이뤘다.

천재 가우디를 탄생시킨 스페인 건축물

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의 오래된 건축물.
산토도밍고 마을 카페에서 맥주 한잔으로 목을 축였다.
산토도밍고 마을 골목길의 정겨운 풍경.

큰 도시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에 가면 낡은 건축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장면을 볼 수 없다. 대다수 더 어렵고 돈이 더 들어가는 리모델링을 택한다. 원형을 최대한 지키려는 그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천재 건축가인 안토니 가우디의 등장은 오래전부터 유럽과 이슬람의 양식을 계승 발전시킨 스페인 건축술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산토도밍고는 대성당 인근 주택가에서도 전통미를 물씬 풍긴다. 발코니마다 가득한 꽃이 외부인의 눈을 즐겁게 하고 담벼락 빨랫줄에 허수아비처럼 내건 옷가지에 정감이 솟아난다. 뒷골목 모퉁이에 작은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따스한 햇살이 스며드는 중세풍의 마을에선 생맥주가 제격이다.

산토도밍고 마을을 나와 다시 120번 도로를 따라 도보순례자와 함께 산티아고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

산토도밍고를 빠져나오니 120번 도로와 비포장 순례자길이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뻗어있다. 오늘 목표거리의 절반을 달려왔다. 여기부터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 것이다. 사람이 힘들 땐 자신을 잊거나 버리고 싶어 한다. 반대로 행복하고 기쁠 땐 자기애가 솟구친다. 자기애의 대표적인 예가 ‘나르키소스’다. <계속>

김형규  tjk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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