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순례자들과의 인사는 ‘마법의 에너지’
상태바
도보순례자들과의 인사는 ‘마법의 에너지’
  • 김형규
  • 승인 2018.05.01 09:30
  • 댓글 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21>‘부엔 카미노!’

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두 바퀴가 달려 만나게 되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왔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 필자는 뉴올리언스에서 키웨스트까지 1800㎞를 여행하며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 하는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생태하천의 모습을 잘 간직한 카리온 강.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카리온 산티아고 성당.

전날의 만족도에 힘입어 출발 시간을 더욱 앞당겼다. 서머타임 영향도 있지만, 스페인의 밤은 8시가 돼서도 태양이 저물지 않는다. 대신 오전 7시인데도 사위는 어스름했다.

수량이 풍부한 카리온강을 건너자 자연스레 순례길로 연결됐다. 차가 다니지 않는 아스팔트 순례길 위로 도보순례자들이 줄을 이었다. 카리온에 숙박한 순례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순례길은 마치 과거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던 국토순례를 방불케 했다.

5일째 목적지는 레온(León)이다. 카리온에서 대략 110㎞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역사 도시다. 전체 코스의 절반을 소화했으므로 이제부터는 자신과의 싸움이 될 것이다. 도보순례자들은 대략 15-20일을 걸어왔다. 피로감이 스멀스멀 전신에 퍼지고 무릎 통증에 주저앉고 싶을 것이다.

카리온의 민가와 상가. 지붕과 안테나, 간판 등이 70년대 우리 중소도시를 연상케 한다. 사진 오른쪽은 조형미가 살아있는 카리온 민가의 대문.
밤늦게 카리온에 도착한 청년 순례자들.

현명한 순례자라면 이쯤에서 하루 정도 완전히 쉬면서 재충전하는 여유를 갖는다. 더욱이 레온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따분하기 그지없다. 순례자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많지 않고 허허벌판만 이어져 일부 순례자들은 이 코스를 버스를 타고 건너뛴다.

카리온부터는 전국 각지에서 출발한 순례자들이 모여든다. 출발 시간만 맞추면 많은 도보순례자들과 교감을 나눌 수 있다. 어느덧 도보순례자를 발견하면 마음이 포근해진다. 400㎞의 길을 공유하면서 이심전심, 일심동체가 된 모양이다.

길이 어긋나 한동안 도보순례자들을 만나지 못하면 왠지 불안하고 허전하다. 순례 초기 동지들을 발견하면 낯설어 입안에서만 맴돌던 인사말 “부엔 카미노!(Buen Camino!)”가 이젠 자연스레 터져 나온다.

카리온 외곽 산티아고 순례길을 도보순례자들이 걷고 있다.
카리온 외곽 산티아고 순례길을 도보순례자들이 걷고 있다.

내가 내뱉는 “부엔 카미노!”발음은 늘 불만이다. 충청도의 느릿하면서도 한 음절씩 나눠 말하는 듯한 강한 억양과 된소리가 아무리 연습을 해도 개선되지 않는다. 나의 어눌한 인사에도 그들은 언제나 상냥스레 답례한다. 그들의 “Buen Camino!”는 속삭이듯 나지막하지만, 발음이 명료하다.

‘뭐가 문제냐’에서 ‘뭐’ 발음이 충청도식과 서울식이 확연히 다른 것과 유사하다. 미흡하나마 도보순례자들을 지나칠 때마다 반갑게 주고받는 “부엔 카미노”는 나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는 묘한 마력이 있다.

충청도식 촌스러운 발음에 다정한 화답  

지형을 이용한 농촌 건축물이 이채롭다.
"부엔 카미노!" 모녀 사이인 듯한 순례자들이다정하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아들도 처음엔 수줍음을 타다가 차츰 “부엔 카미노”에 적응해가고 있다. 멋진남님은 생소한 에스파냐어가 영 맞지 않는지 말 대신 손짓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허허벌판 라이딩은 산타마리아 데 베네비베레(Santa María de Benevivere)마을을 지나치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미니벨로 자전거가 다닐만한 산티아고순례길이 여기부터 포장도로에서 흙길로 바뀐 것이다.

구글맵을 열어 주변을 살폈다. 산티아고순례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120번 도로를 타고 서진하기로 했다. 다소 돌아가기는 하지만 자전거에 무리가 가는 비포장길보다는 낫다는 판단이 섰다.

도보순례자들이 120번 도로변 순례길을 걸어가고 있다.
도보순례자들이 120번 도로변 순례길을 걸어가고 있다.

남쪽으로 2㎞쯤 내려가자 120번도로와 만났다. 이도로를 따라 10㎞쯤 서쪽으로 이동한 뒤 세르바토스 데 라 쿠에사(Cervatos de la Cueza) 3거리에서 우측으로 120번도로를 놓치지 않고 따라갔다.

120번 도로를 따라 다시 북쪽으로 5㎞쯤 올라가다 보면 칼사디야 데 라 쿠에사(Calzadilla de la Cueza)에서 잠시 멀어졌던 산티아고 순례길과 다시 만난다. 여기부터 순례길은 한동안 120번 도로와 나란히 간다. 예상대로 차도와 도보순례길 모두 따분함의 연속이었다. 사진을 찍을 포인트도 많지 않았다. 대신 라이딩에만 전념해 예상보다 빠르게 전진할 수 있었다. <계속>

카리온-레온까지 자전거를 타고 간 궤적.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4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J 2018-05-01 23:00:22
자전거 순례길 궤적을 보여주시니 실감이 나네요, 이해도 쉽구요 ^^.

진교영 2018-05-01 12:00:19
"부엔 카미노"

순례자들이여 ~ 충전이 필요한 타이밍 ^^

조용만 2018-05-01 10:51:28
부엔 카미노..!

생생하게 잘 느끼고 갑니다

멋진 5월 여세요..^^

kusenb 2018-05-01 10:45:36
요즘 우리나라와 같이 평화로운 풍경이 보기 좋습니다 ㅎ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