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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성지순례를 찾아서[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40>마지막을 향하여

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두 바퀴가 달려 만나게 되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왔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 필자는 뉴올리언스에서 키웨스트까지 1800㎞를 여행하며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 하는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벨레사르호수 위에 새로 조성된 포르토마린 숙박업소 밀집 지역.

벨레사르호수가 내려다보이는 포르토마린의 아늑한 식당에서 주문한 소갈비 바비큐는 소금으로만 간을 했는데도 맛이 훌륭했다.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대표 맥주인 알코올 도수 6.5%의 ‘1906’을 곁들이니 부러울 게 없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라이딩을 끝낸 보상이리라. ‘1906’ 맥주의 특징은 옥수수가 첨가돼 고소한 맛이 나고 진노랑의 강렬한 빛깔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날 폰페라다에서 포르토마린까지 13시간 동안 122㎞를 달렸다. 최고 고도 1393m, 평균 고도 775m다.

마지막 날 출발에 앞서 멋진남님과 아들이 포르토마린 숙소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숙소로 잡은 사설 알베르게는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공동화장실이나 세면장이 비교적 깨끗했지만, 공용이라는 어색함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몸은 피곤한데 컴컴한 복도 끝 삐걱거리는 화장실에 다녀와야 한다는 갈등에 몇 차례 잠을 뒤척이다 오전 6시에 눈을 떴다. 드디어 산티아고 라이딩 마지막 날이다.

라이딩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 7시 30분쯤 포르토마린을 떠났다.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남은 거리는 대략 95㎞ 정도. 해발고도 410m에서 시작해 초반 15㎞ 구간에서 고도가 770m까지 올라간다. 초반 1~2시간이 가장 힘든 구간이다. 이후 코스는 오르막내리막을 반복하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선 해발 340m까지 내려간다.

산티아고 도보순례길은 포르토마린 마을에서 호수 쪽으로 내려가 폭이 좁은 다리를 건너 우측 소로를 따라간다. 우리는 숙소 앞 마을 도로에서 곧장 동쪽 방향으로 나가 LU-633 도로로 진입했다. 어차피 도보 길과 차도는 2~3㎞ 후에 다시 만나게 돼 있다.

포르토마린 외곽 언덕길을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부부라이더. 뒤에 멋진남님과 아들이 올라오고 있다. 그 뒤로 보이는 마을이 포르토마린이다.
부부라이더를 앞서나가는 아들과 멋진남님.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강력한 업힐이 시작됐다. 노년의 부부라이더는 초반부터 아예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현명한 방법이다. 생장에서 여기쯤 왔으면 누구나 녹초다. 체력이 저하된 상태에선 되도록 힘을 달래가며 가야 멀리 갈 수 있다. 멋진남님은 벌써부터 뒤로 처졌다.

차량통행이 거의 없는 한적한 도로가 이어졌다. 스페인국민들은 산티아고로 향하는 지방도를 아예 순례자에게 양보한 모양이다. 차량운전자는 순례자의 안전을 위해 주로 자동차전용도로를 이용한다.

토시보(Toxibó), 곤사르(Gonzar), 카스트로마이오르(Castromayor)를 거치는 동안 산속의 임야가 계속됐다. 이렇다 할 농경지도 없으니 농가나 민가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가끔 도로 옆으로 난 흙길을 걷는 순례자나 자전거 라이더만 눈에 잡혔다

출발에 앞서 나와 아들, 멋진남님은 마지막 안전 라이딩을 다짐했다. 멋진남님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입술이 부르트고 무릎 통증이 심해졌다. 남은 에너지겔을 모두 멋진남님에게 넘겨주고 힘든 구간은 차량으로 건너뛸 것을 제안했다.

멋진남님은 마지막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며 끝까지 페달링을 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되도록 이른 시간에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해 미사에 참석하려는 속마음도 드러냈다.

성지로 향하는 순례자들의 마음가짐은 멋진남님과 비슷할 것이다. 고난을 딛고 최선을 다해 성지에 도착한 뒤 절대자에게 머리를 숙여 기도하는 마음은 아기의 눈망울과 같다. 우리 같은 ‘일빵빵’ 무신론자와는 전혀 다른 세계관이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이정표.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에서 벅찬 감흥에 젖은 일부 순례자들은 내친김에 차량을 이용해 포르투갈로 넘어가 서쪽 땅끝마을 포구에서 마음껏 포효하거나 또 다른 성지 파티마(Fátima)로 향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아예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출발해 파티마를 거쳐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가톨릭 신자도 있다. 인구 7700여 명의 작은 마을 파티마는 연간 400만 명의 가톨릭 신도가 다녀갈 정도로 유명한 성지다.

‘파티마’
다정다감하고 포근한 이름이다. <계속>

김형규  tjkh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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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 JC 2018-09-18 22:16:22

    SANTIAGO ! ‘고지가 바로 저기인데’ 라는 시구절이 떠오르게 되네요. 1906은 어떤 맛이었을지 참 궁금함 !   삭제

    • 진교영 2018-09-11 13:20:56

      고난을 딛고 최선을 다해 성지에 도착한 뒤 절대자에게 머리를 숙여 기도하는 마음은 아기의 눈망울과 같다. 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모든것에 최선을 다하고 나서 하늘에 뜻에 맏긴다면 후회는 없을 것입니다.

      소갈비와 1906 먹고 싶네요

      마지막까지 화이팅 하세요 멋진남님 응원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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