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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의 심장[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19>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두 바퀴가 달려 만나게 되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왔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 필자는 뉴올리언스에서 키웨스트까지 1800㎞를 여행하며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 하는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프로미스타 노천식당에서 간식으로 먹은 스페인식 피자.

프로미스타에서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Carrión de los Condes•이하 카리온)까지 산티아고길은 P980번 왕복 2차선도로와 나란히 간다. 길은 거의 직선으로 쭉쭉 뻗어있다.

사방이 평평한 밀밭이니 도로를 건설하는데 우회할만한 걸림돌이 없다. 밀밭에 다가가 생육상태를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줄기가 짧다. 포털에서 검색해보니 밀의 키가 1m에 달한다는데 이곳은 절반 크기도 되지 않는다. 아마도 강풍에 강한 개량종인 듯하다.

한 쌍의 남녀 라이더 앞으로 양떼들이 도로를 횡단하고 있다.
도로를 횡단하는 양들을 언뜻 보면 뿔 없는 염소를 닮았다.

스페인의 곡창지대답게 프로미스타에서 카리온까지 가는 마을 이름을 보니 포블라시온 데 캄포스(Población de Campos), 레벵가 데 캄포스(Revenga de Campos), 비야르멘테로 데 캄포스(Villarmentero de Campos) 등 ‘평원’을 의미하는 단어가 따라붙는다.

한적한 농촌마을이라서 방목하는 양떼를 심심찮게 구경할 수 있다. 차량 통행이 흔치 않아 양떼가 한가로이 도로를 횡단하는 모습에서 목가적인 정취를 느낀다. 털을 깎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가까이서 보니 마치 뿔 없는 염소와 비슷하다.
 
평탄한 길이라서 자전거를 타는데 힘들지는 않지만 단조롭고 햇볕을 가릴만한 가로수 한그루 없다는 게 아쉽다.

오아시스 같은 소나무 그늘

비야르멘테로 데 캄포스 마을 외곽에 위치한 순례자를 위한 소나무 그늘 휴식장소.
아들이 소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비야르멘테로 데 캄포스 마을을 지나치자마자 마치 사막속의 오아시스처럼 나무그늘과 조우했다. 산티아고 순례자를 위한 휴식공간이었다. 수령이 꽤 돼 보이는 세 그루의 소나무 그늘 아래 음수대와 벤치, 식탁으로 쓸 만한 돌판이 놓여있었다.

이곳에서 카리온까지 거리는 8-9㎞정도. 잠시 숨을 돌리고 넉넉잡아 30분정도 라이딩하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카리온은 산티아고 순례길의 중간 지점에 자리잡아 산티아고의 심장이라고 불린다. 순례자들이 반드시 지나치는 요충지이자 역사 깊은 도시다.

메세타 지역의 스페인 밀. 줄기가 짧다.

이슬람계 무어인이 건설한 도시였으나 9세기 초 기독교도의 손에 넘어갔다. 당시에는 유대인과 기독교도가 함께 거주했다. 인구가 많고 재산이 넉넉했던 유대인들은 상대적으로 많은 세금을 냈지만 늘 기독교의 박해에 시달렸다. 1391년에 발생한 기독교도의 대대적인 박해를 견디다 못한 대다수 유대인이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카리온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30분. 부르고스를 출발한 지 8시간만이다. 달린 거리는 92㎞, 메세타 지역답게 평균고도는 해발 871m였다. 예정된 코스를 무난하게 달려온 덕분에 여유롭게 하루를 마감할 수 있다. 숙소를 잡아 빨래를 하고 샤워를 한 뒤 노천카페에서 생맥주를 음미하면서 카리온 거리를 천천히 스캔했다.

순례길은 여유를 깨닫는 과정

카리온 마을 이정표.
카리온 마을 입구에서 아들과 멋진남님.
카리온 마을 중심에 세운 순례자 동상.

나흘만에 순례라이딩의 정석을 찾은 듯했다. 만일 산티아고순례라이딩을 다시 도전한다면 8일이 아닌 11일 일정으로 올 것이다.

하루 80-90㎞ 이내로 달리고 중간에 하루 정도는 라이딩을 하지 않고 충전할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 정도 거리면 1일 6-7시간이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다. 점심식사 후 오후 3-4시 이전에 당일 라이딩을 끝내면 일정을 체크하고 지나온 코스를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고 주변을 좀 더 세심하게 관찰 할 수 있다.

리온 마을 식당의 영업시간 안내판. 한국순례자가 늘어나면서 한글메뉴도 서비스한다.
오랜만에 일찍 라이딩을 끝내고 한가롭게 생맥주로 목을 축이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한국사람에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는 하루평균 100㎞를 8일간 달리는 일정이 관행으로 굳어진 듯하다. 아마 전체 길이를 850㎞로 놓고 하루 100여㎞씩 달리는 것으로 뭉텅뭉텅 잘라 나눈 듯하다. 지극히 한국적인 발상이다.

일부 동호인들은 시간을 더 절약하기 위해 6-7일 만에 주파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허겁지겁 순례라이딩을 마치고 돌아 가봐야 남는 게 없다.

마을 중심에 세운 순례자 동상이 카리온의 뿌리깊은 산티아고 순례 역사를 증명했다. 오후 시간 마을은 활기가 넘쳤다. 한쪽에선 젊은이들의 흥겨운 춤과 노래소리가 들렸고 다른 한쪽 성당에선 마을사람들이 분주히 드나들었다. <계속>

김형규  tjkhk@daum.net

<저작권자 © 세종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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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5
  • J 2018-05-01 23:09:38

    인생에 잊지 못 할 라이딩 여랭 추억이 되셨을것 같네요, 부랍기만 하네요 ~~   삭제

    • 진교영 2018-04-16 20:40:02

      마냥 페달링만 하는 라이딩은 진짜 남는게없죠
      보고 느끼고 먹고 마시고 쉬고 그러면서 해야죠
      돈과 시간이 ^^;;   삭제

      • Kwak 2018-04-16 16:36:31

        850km의 순례길을 100km씩 나눠 달리는 것이지극적으로 한국적인 발상이라는데 저도 적극 공감이 되네요 조금 더 유연하고 여유로운 순례길이되시길 바래요^^   삭제

        • kusenb 2018-04-16 14:22:30

          풍경도 풍경이지만
          스페인식 피자 맛이 궁금하네요 ㅎ   삭제

          • 꽃길 걸어요 2018-04-16 13:56:16

            시선돌리는 곳곳 그림이네요. 허겁지겁 끝난 라이딩엔 남는게 없단말 공감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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