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가 대형 토목공사에 집착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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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가 대형 토목공사에 집착하는 까닭
  • 김형규
  • 승인 2018.09.03 12: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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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39>프랑코주의의 사생아

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두 바퀴가 달려 만나게 되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왔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 필자는 뉴올리언스에서 키웨스트까지 1800㎞를 여행하며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 하는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미뇨강(Río Miño) 다리에서 내려다 본 벨레사르 호수(Encoro de Belesar).

수량이 풍부한 미뇨강(Río Miño) 다리를 건너 포르토마린에 입성했다. 마을을 반 바퀴 돌아 강변에 위치한 사설 알베르게에 잠자리를 잡았다. 주변은 민간 알베르게와 모텔, 식당이 즐비해 많은 순례객이 수변 경관을 즐기며 식사와 휴식을 취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마을을 감싼 강물은 미뇨강 하류에 댐을 건설해 생긴 담수호다.

포르토마린은 주변이 해발 1000m 이상의 고산지대로 둘러싸인 고도 400m 안팎의 저지대 강촌(江村)이다. 로마 시대부터 내려오는 많은 유적에 병원이 운영돼 순례자들이 꼭 쉬어가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이다.

미뇨강 다리 끝에 보이는 계단이 회전교차로의 중심역할을 한다. 계단으로 올라가면 새로 조성된 포르토마린 마을로 이어진다.

평화스러웠던 이 마을은 스페인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 종신체제에서 풍파를 겪었다. 1950년대부터 댐 건설을 기획하더니 1963년 하류에 수력발전댐이 들어선 것이다.

자연스레 미뇨 강물이 담수 돼 벨레사르호수(Encoro de Belesar)가 만들어졌다. 2000㏊ 면적에 655h㎥(입방헥토미터‧1h㎥는 100만㎥)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규모다. 대청호와 비교하면 대략 3분의 1 크기다.

댐 건설로 포르토마린 전체가 물에 잠겼다. 로마 시대 건설된 다리와 일부 구조물도 함께 수장됐다. 수많은 주민이 실향민이 돼 마을을 떠났다. 비옥했던 농경지가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서슬 퍼런 독재체제에 보상비마저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지금의 포르토마린은 인근 고지대에 새로 조성된 마을이다.

댐 수몰지에서 포르토마린 신시가지로 이전 복원된 산 니콜라스 성당(우측)과 시청사.

벨레사르댐 인근 찬타다(Chantada) 출신으로 언론인이자 작가인 아폰소 에이레(Afonso Eiré‧1955~ )는 댐 건설이 프랑코주의(Franquismo)의 사생아라고 말한다.

벨레사르댐은 당시 스페인에서는 규모가 가장 큰 토목공사이자 유럽에서도 혁신적인 전력생산기술이 집약된 프로젝트였다. 비극적인 스페인 내전에서 정권을 잡은 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정적을 죽인 프랑코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통해 국내외 이미지 쇄신은 물론 정권의 건재함을 과시하려 했을 것이다.

에이레 기자는 풍요로웠던 찬타다가 1963년 댐 건설 이후 득보다 손실이 컸다고 주장한다. 강제수용된 지주들은 턱없이 낮은 토지보상가에도 독재정권에 대항할 수 없었다. 댐 건설에 강제노역으로 동원된 정치범들은 저임금과 인권유린에 희생을 강요당했고 수력발전의 전력공급도 기대치를 밑돌았다고 한다. 고용된 지역주민들은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었다.

포르토마린 벨레사르호수 식당에서 만찬을 즐기는 순례자들.

프랑코는 근대건축의 교본이라는 이탈리아 요절 건축가 주세페 테라니(1904-1943)의 ‘파시스트의 집’(카사 델 파쇼‧Casa del Fascio)에서 벨레사르댐의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솔리니와 파시스트의 절대 추종자였던 테라니는 1936년 이탈리아 코모 지역의 광장을 사이에 두고 대성당 맞은편에 ‘파시스트의 집’을 건립해 감히 가톨릭의 권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정육면체 큐빅을 바둑판처럼 2대1 비율로 4층까지 쌓아 올린, 당시에는 단순하지만 파격적인 외관의 이 건물은 빛을 받아들이는 중정과 파시스트의 슬로건을 함축시킨 상징물로 지금껏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프랑코는 대중연설의 달인인 무솔리니가 ‘파시스트의 집’ 발코니에서 열변을 토하는 모습에서 한발 더 나아가 벨레사르댐이라는 대역사를 통해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큰 그림’을 그렸던 건 아닐까.

포르토마린 벨레사르호수 식당에서 바깥 수변경관을 감상하는 멋진남님.
포르토마린 벨레사르호수 식당에서 주문한 빵과 소갈비 바비큐 요리.

벨레사르댐 등의 영향 때문인지 우리나라도 박정희 정권 시기에 수자원 개발에 대한 세계적인 바람에 편승해 1967년 한국수자원개발공사가 설립됐다. 이후 동양 최대 규모의 소양강댐(1973년)을 비롯해 안동댐(1976년), 대청댐(1980년), 충주댐(1985년)이 잇따라 건설됐다. 댐 건설의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대청호 등 인근 주민들은 당초 제시됐던 장밋빛 청사진이 이행되지 못하는 현실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수몰 위기에서도 포르토마린의 산 니콜라스 요새 성당(Iglesia Fortaleza de San Nicolas, San Xoán 성당이라고도 함)을 비롯한 몇몇 문화유산은 이전을 통해 원형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었다. 성당의 벽돌 하나하나를 현 시청사 옆의 안전지대로 옮겨 복원했다. 이 성당은 예루살렘의 성 요한 기사단이 12세기 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세웠다.

이전 과정에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성당의 방향이 어긋났다. 성당은 원래 제단이 동쪽이나 예루살렘을 향하고 파사드(정문)는 서쪽을 바라보는 게 정석이다. 지도상으로 보면 파사드가 서쪽 9시 방향에 약간 못 미치는 7~8시 방향을 향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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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senb 2018-09-03 18:03:23
역사는 반복되고 사람 사는 모습은 지구 반대편도 크게 다르지 않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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