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만난 한국의 정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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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만난 한국의 정취
  • 김형규
  • 승인 2018.03.05 10:54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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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13>세계문화는 돌고 돈다

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두 바퀴가 달려 만나게 되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왔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 필자는 뉴올리언스에서 키웨스트까지 1800㎞를 여행하며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 하는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벤토사 마을을 지나치면 다음 이어지는 마을이 알레손(Alesón)이다. N-120a도로로 가면 부르고스, LR-340도로로 빠지면 알레손이라는 도로표지판. 쪽빛 하늘이 눈을 맑게 한다.
라리오하 지방의 ‘San Millán de la Cogolla’(산 밀란 데 라 코고야)에 있는 2개의 수도원 유적을 가리키는 갈색표지판.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벤토사 마을은 우리가 달리는 도로에서 1㎞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일단 점심은 나헤라(Nájera)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벤토사를 지나쳤다.

전날의 뜨거운 날씨와는 달리 화창한 날씨가 계속됐다. 요즘은 볼 수 없는 과거 우리나라의 가을 날씨를 연상케 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그야말로 쪽빛이었다. 지평선까지 선명하게 시야가 잡히는 걸로 봐선 이곳 사람들은 미세먼지 걱정은 하지 않을 듯했다.

알레손(Alesón)마을도 외곽도로를 타면서 눈요기만 했다. 갈 길이 바쁘기 때문이다. 오늘도 12시간은 달려야 한다.

이 지역은 날씨도 좋지만 우리나라의 도로변 시골처럼 마을이 연달아 나타나 마음에 든다. 마을이 많다는 건 농업이 성하고 살기에 좋다는 뜻이다. 낯선 여행자들에게 마을은 안식처다.

나헤라(Nájera) 시내를 통과하는 나헤리야 강(Río Najerilla) 다리를 건너는 도보 순례자들.
나헤리야 강변 카페에서 스페인식 샌드위치로 요기를 했다.

나헤라로 진입하기 직전 ‘San Millán de la Cogolla’(산 밀란 데 라 코고야)라는 갈색표지판이 나타났다. 스페인어를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색깔로 의미를 짐작하는 수밖에 없다. 관광지 아니면 문화유적지다. 관광유적지를 의미하는 갈색도로표지판은 세계 공통이다.

산 밀란(472-573?)은 스페인의 수호성인인 성(聖) 밀란이다. 카스티야어로 각각 ‘아래’와 ‘위’를 뜻하는 유소(Yuso)와 수소(Suso)라는 2개의 수도원 유적으로 구성됐다.

수소 수도원은 6세기 중반 성 밀란이 세웠고 16세기 초 아래에 새 수도원을 지어 유소 수도원이라 이름 붙였다. 이 수도원은 6세기 이후 그리스도교 수도원의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스페인어의 모체인 카스티야어로 쓰인 최초의 문헌이 나온 곳이다.

나헤라 마을에 들어서자 하천이 마을을 가로질렀다. 나헤리야 강(Río Najerilla)이다. 스페인에선 강이 많지 않다. 땅이 메마른 대신 바람과 햇살이 좋아 풍력발전과 포도농사, 목축이 잘되는 모양이다. 부족한 물은 관개시설 확보차원에서 인공 수로(Canal)를 곳곳에 뚫었다.

나헤리야 강변 카페에서 스페인식 샌드위치로 점심을 대신했다. 운동을 하면서 코스요리는 부담스러워 샌드위치로 대신하는데 하루 한두 끼는 빵을 먹으니 입안이 까칠하다. 우리에겐 역시 쌀밥이 최고다.

천고마비 하늘 스페인

식사 후 카페 앞에서 산티아고 순례자들을 위한 모형물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멋진남님.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마친 도보순례자가 길을 떠나고 있다. 무릎보호대를 하고 있다.

나헤라 마을 안길에서 나와 다시 120번 도로와 만나 서진을 시작했다. 도로변에 펼쳐지는 마을 풍경이 눈에 익숙했다. 황색 토담과 ‘삐걱’ 소리가 들릴 것 같은 나무 대문, 손때 묻은 쇠 문고리, 기와지붕이 우리나라 과거 농촌풍경과 흡사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아니지만 마드리드보다 약간 북쪽에 위치한 바야돌리드(Valladolid)에 들렀을 때 세계적인 문호 ‘돈키호테’의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1547-1616)가 살았던 집(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거실과 침실에 있던 각종 가구와 옹기, 질그릇은 옛날 우리나라 것과 상당히 유사했다. 특히 침상과 거실바닥에 놓인 멍석이 눈길을 끌었다. 짚으로 만든 우리 멍석보다 섬세해 식물섬유로 짠 카펫에 가까웠다.

멍석을 만든 재료가 무엇인지 박물관 직원에게 여러 방법으로 물었지만 언어소통이 되지 않았다. 마침 이탈리아 관광객이 중간에 나서 소통한 결과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사용했던 삼(대마)으로 만든 카펫이었다.

나헤라마을을 빠져나가는 외곽도로. 앞쪽 붉은색 바위절벽이 이채롭다.
스페인의 시골마을은 목조대문과 둥근 쇠 문고리, 황토색 벽, 기와지붕 등 과거 우리 시골풍경과 비슷하다.

세르반테스도 ‘멍석’에서 살았다?

과거 마당이 있는 집에 살았던 우리 국민이라면 멍석 한 두 개쯤은 갖고 있었다. 멍석은 곡식이나 고추를 말릴 때 마당에 깔았던 생활도구였다. 세르반테스 박물관의 멍석은 우리나라 돗자리 또는 화문석과 쓰임새가 같은데 두께가 더 두텁다.

요즘은 골풀로 만든 돗자리는 찾아보기 힘들고 대나무 재료나 천, 은박지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돗자리 중 으뜸은 왕골로 만든 강화도 화문석이다. 일본 생활문화에선 속을 짚으로 채운 다다미가 대표적이다. 세르반테스 집의 돗자리는 두께에서 보면 다다미에 가깝지만 테두리 마감이나 재료가 달라 보인다.

스페인 중북부에 있는 역사도시 바야돌리드(Valladolid)에 있는 세르반테스 박물관. 우리나라의 옹기와 고가구가 비슷하다. 특히 우리나라 짚으로 짠 멍석과 유사한 카펫이 눈길을 끈다.

스페인은 고대 로마와 무슬림의 오랜 통치를 받았다. 이슬람을 통해 중국의 문물도 상당히 유입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과도 해상으로 교역이 진행되던 시기였다. (1543년 포르투갈인 일본 표착 조총기술 전수)  
 
극동아시아인 한국의 생활문화정서를 유럽 서단의 이베리아반도에서 느낄 수 있다는 건 정복의 영향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실크로드와 항로개척을 통해 문물을 교류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헤라를 벗어난 120번 도로는 12번 고속도로와 한동안 평행을 이루며 직선으로 뻗어나갔다. 고속도로에 비해 차량이 많지 않아 자전거 타기에는 최적이었다. 가끔 마주쳐 지나가는 스페인 라이더들이 우리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어 격려해줬다.

한국인 자전거 순례자를 응원해주는 스페인 라이더.
스페인 젊은 자전거 순례자들이 우리를 뒤따라오고 있다.

뒤에서 왁자지껄 소리가 들렸다. 한 무리의 자전거팀이 완만한 도로 업힐 구간에서 열심히 우리를 쫓아왔다. 스페인 20대 젊은이들로 보였다.

못하는 영어라도 몇 마디 던지고 싶었으나 그들이 반갑게 인사를 던진 뒤 순식간에 우리를 앞질러나갔다.
‘아, 한 살만 젊었어도…’
씁쓸하게 청춘예찬에 빠져보는데 갑자기 엉덩이 감각이 이상하다.
‘에구, 며칠 잘 견디나 싶더니…’
펑크가 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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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2018-03-12 00:11:52
순례길 따라 여행하는 사람들은 순례자의 맘을 조금은 알 수 있을듯 ~~~ 풍경은 덤으로

JIN 2018-03-11 15:26:16
순례자의 길 그 이상을 보고 오셨군요.

kusenb 2018-03-05 16:50:45
지구 반대편에서 만난 정겨운 풍경이네요

조용만 2018-03-05 14:54:55
산티아고 순례길의 쪽빛하늘과
어릴때 우리 시골의 흡사한 모습이
머리속에 잘 그려지네요

kwak 2018-03-05 11:42:16
스페인의 천고마비 하늘을 사진에서도 느낄 수 있어서 좋네요
십여년 전 스페인에서 몇 일 묵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날이 참 좋았었는데,,덕분에 저도 회상에 젖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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