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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평화의 상징 ‘파티마’[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41>나의 사랑 나의 누이 파티마

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두 바퀴가 달려 만나게 되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왔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 필자는 뉴올리언스에서 키웨스트까지 1800㎞를 여행하며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 하는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곤사르 마을 도로변에서 영업 중인 순례자쉼터.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식사를 제공한다.

포르토마린을 출발한 지 40여분쯤 됐을 때 대여섯 채의 민가가 둥지를 튼 작은 마을 곤사르(Gonzar)에 도착했다.

길가에 순례자를 위한 쉼터(Descanso del Peregrino) 간판을 내걸고 단품요리를 파는 마당 깊은 식당이 눈길을 끌었다. 이 시간쯤이면 아침을 거른 순례자들에게는 구세주와 같은 곳이다. 16개의 요리를 사진과 함께 큼지막한 입간판으로 내건 친절함에 그냥 지나치기 무안했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에 다가갈수록 순례자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가장 많이 다니는 프랑스 생장 발(發) 산티아고길을 비롯해, 마드리드 발, 북부 발, 남부 발 등 사방에서 떠난 순례자들이 하나 둘 이 길로 모인다. 물론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파티마-포르투를 거쳐 올라오는 순례자들도 있다. 포르투갈길은 파티마와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라는 두 곳의 성지를 한 번에 경험하려는 가톨릭신자가 많이 이용한다.

곤사르마을 인근 LU-633도로변에 많은 순례자들이 길을 걷고 있다.

‘파티마’하면 여러 연관어가 떠오른다. 묘한 것은 시공간이 다르지만 어느 강력한 영혼이 인연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는 듯하다.

파울로 코엘료의 대표작 <연금술사>의 주인공 산티아고의 연인 이름이 ‘파티마’다. ‘파티마의 성모’라 일컫는 기적이 나타난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 이름 또한 ‘파티마’다. 이슬람교의 최후 예언자 무함마드의 딸이 ‘파티마’라는데 생각이 미치면 뭔가 범상치 않다는 걸 감지하게 된다.

‘파티마의 성모’는 파티마 마을에서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매월 13일 모두 여섯 차례 3명의 어린 목동 앞에 성모마리아가 나타나 예언을 했다는 기적을 일컫는다. 이를 기념해 포르투갈 정부는 파티마에 대성당을 건축해 관광자원화했다.

곤사르마을을 지나 오르막길로 접어들면서 안개가 짙어졌다.

착시나 자연현상 논란에도 불구하고 교황청이 공식 인정하면서 파티마는 가톨릭의 주요 성지가 됐다. 파티마라는 마을이름은 무어인의 공주 ‘파티마’가 백작과 사랑에 빠져 가톨릭으로 개종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전설까지 내려온단다.

이슬람권에서 파티마(615~633)는 가장 존경받는 여성이다. 무함마드(570-632)의 딸이자 시아파 원조인 4대 정통 칼리파 ‘알리’의 부인이다. 이란에선 파티마의 출생일을 어머니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무함마드는 아들과 딸을 여럿 두었지만 생전에 살아남은 혈육은 파티마가 유일했다고 한다. 무함마드의 아들이 어려서 죽었기 때문에 후계자 선정을 둘러싸고 지금껏 시아파와 수니파로 갈라져 원수처럼 싸우고 있다. 909년부터 1171년까지 이집트와 북아프리카를 지배한 파티마왕조도 파티마와 알리의 후손임을 자처한다.

소설 <연금술사>에서 주인공 산티아고가 파티마를 만난 건 운명적인 설정이다. 마치 대하소설 <토지>에서 신분이 하늘과 땅 차이인 서희와 길상이 백년가약을 맺는 것처럼. 산티아고와 파티마의 만남, 서희와 길상의 결혼은 픽션에도 불구하고 기막힌 필연이다.

안개가 자욱한 도로를 달리는 아들.

산티아고는 신부가 돼주길 바라는 아버지를 설득해 긴 여행길에 오른다. 산티아고가 무슬림 지역 이집트의 사막 오아시스에서 파티마를 만나도록 유도한 건 작가의 ‘빅 픽처’다. 파티마를 처음 만난 순간 <연금술사>에 묘사된 일부분을 보자.

‘그녀의 검은 눈동자와 침묵해야 할지 미소 지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그녀의 입술을 보는 순간, 그는 지상의 모든 존재들이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만물의 언어’의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난해한 부분과 맞닥뜨렸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성모마리아와 파티마라는 영적 존재와 달리 그들 앞에 나타난 세속의 신분은 미천하다. 산티아고의 직업, 파티마 마을의 아이들, 심지어 젊은 시절의 무함마드 역시 목동이 생업이었다. 
‘파티마’, 나눔과 평화의 상징이다. <계속>

마지막 날 포르토마린에서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 달린 코스도.

김형규  tjk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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