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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고 슬프기보다 감동적인 노란 리본의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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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고 슬프기보다 감동적인 노란 리본의 여운
  • 김형규
  • 승인 2018.06.04 14:5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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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26>생환·연대의 상징

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두 바퀴가 달려 만나게 되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왔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 필자는 뉴올리언스에서 키웨스트까지 1800㎞를 여행하며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 하는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아스토르가로 가는 길목에 세워진 순례길 이정표.
이정표에 누군가 붙인 세월호 리본에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노란 리본에는 유성펜으로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누가 머나먼 스페인까지 와서 다짐을 담은 문구와 함께 세월호 리본을 순례길 이정표에 붙였는지는 알 수 없다. 글씨체가 퇴색된 상태로 봐선 2~3년 된 듯했다.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든 세월호 참사에 부채 의식을 갖고 있다. 슬픔에 빠지거나 분노심을 표하거나 외면하는 척해도 밑바탕에는 끔찍한 참사의 ‘트라우마’가 깔려있다. 믿고 싶지 않은 재앙을 대하는 표현 방법이 틀릴 뿐이다.

지난 4월 세월호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문을 닫기 전 딸과 함께 경기도 안산을 찾았다. 분향소가 없어지기 전 꼭 한번 가야 할 것 같았다. 희생된 아이들과 한 살 차였던 딸도 원했다.

기도 안산교육지원청 옆 건물에 조성된 기억교실.

화랑유원지에 설치된 합동분향소의 제단 앞에 섰을 때 감당할 수 없는 너무 많은 희생자들의 영정에 다시 한번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안산교육지원청 옆에 마련된 ‘기억교실’에선 평소 활달했던 학교생활의 흔적이 그대로 재현돼 아이들이 잠시 체육 시간 동안 자리를 비운 줄 착각했다. 체육이 싫은 한 두 녀석은 책상 아래 어딘가 숨어 있지 않을까.

기억교실 2층 복도 끝에 걸린 노란 리본이 만발한 나무 그림을 보고 지난 수십 년간 기억이 하나둘 퍼즐처럼 떠올랐다. 1970년대 발간된 <노란 손수건>(샘터 刊)의 책표지 그림부터 올드 팝송 선율과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의 노란 리본, 전시상황에서 누군가의 생환을 염원하는 상징, 다운 증후군(Down Syndrome) 등등.

기억교실 2층 복도 정면에 보이는 노란 리본 나무 그림. ‘노란 손수건’ 책 표지를 연상케 한다.
희생된 학생들의 교실을 재현한 기억교실.

50대 이상 장년층이라면 1970년대 스테디셀러였던 <노란 손수건>의 감동을 기억할 것이다. 사실에 근거한 여러 이야기를 묶은 옴니버스 출판물이다.

<노란 손수건>은 죄를 짓고 감옥에 수감 됐다가 출소한 한 남성이 고향행 버스를 타고 가면서 털어놓는 책 속의 여러 이야기 중 하나의 제목이다.

고향에 있는 아내가 감옥에서 나온 자신을 받아준다면 마을 입구의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매달아달라고 편지를 보냈는데 아내는 남편이 혹시 발견하지 못할까 봐 마을의 모든 참나무에 수백 개의 노란 리본을 매달았다.

이 이야기를 테마로 만든 곡 ‘Tie a Yellow Ribbon the Old Oak Tree’는 토니 올랜도와 다운이 불러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리본’을 ‘손수건’으로 달리 해석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당시 사회 분위기상 우리나라에서 리본을 패용할 때는 부모상이나 국상 또는 현충일이었으므로 감동으로 마무리되는 책의 의도와는 동떨어졌을 거라는 생각이다.

미국에선 다운 증후군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노란 리본을 차량에 부착한다.

지난달, 스페인으로부터 끊임없이 독립을 요구하는 카탈루냐 자치정부의 킴 토라 수반이 세월호 리본과 같은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취임식에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영국의 유명 축구클럽인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 호셉 과르디올라는 경기중 노란색 리본을 달고 작전지시를 내려 궁금증을 자아냈다. 스페인 출신의 과르디올라 감독은 정치적 중립을 중시하는 영국축구협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카탈루냐 독립 투쟁 중 투옥된 정치인의 석방을 요구하는 의미로 노란 리본 달기를 고집했다.

노란 리본의 기원은 중세부터 시작됐다는 주장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확인 가능한 사건은 1979년 겨울 이란의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에 억류된 인질의 석방을 기원하기 위해 노란 리본이 등장했다.

홍콩에선 보통선거권과 민주화 요구의 상징으로 노란 리본을 달았다. 중국에서도 세월호처럼 크루즈 선박인 둥팡즈싱(東方之星)호가 2015년 6월 침몰해 442명이 숨졌다.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노란 리본이 사용됐다.

멋진남님과 아들이 아스토르가에 진입하기 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선 1998년 5월 인종폭동으로 인한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노란 리본을 달았고 말레이시아에선 언론자유의 상징으로, 뉴질랜드에선 자살에 대한 경각심으로 노란 리본이 등장했다. 이스라엘에선 2008년 하마스에 의해 포로가 된 이스라엘 군인 길라드 샬리트의 석방을 기원하는 상징으로 차량의 왼쪽 사이드미러에 노란 리본을 매달았다. 샬리트는 5년 만에 풀려났다.

특이하게 일본 정부가 수여하는 훈장 중에도 노란 리본이 있다. 1887년부터 시행된 노란 리본 훈장은 전문분야에서 활동하는 인사 가운데 근면성과 인내심이 출중해 국민적인 모범이 된 개인에게 수여된다고 한다.

아스토르가 시내로 들어가는 오래된 관문.

노란 리본은 인류의 생명존중과 무사 귀환의 상징이 됐다. 개인의 불행이라 하더라도 함께 하면 희망을 되살릴 수 있다는 연대의 의미가 함축돼 있다. 무엇보다 불행한 참사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경각심의 아이콘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노란 리본의 여운이 무겁고 슬프기보다 감동적인 건 나만의 느낌이 아닐 것이다. 어느덧 우리는 아스토르가의 입구에 당도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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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 2018-06-11 20:03:42
아 노란리본이 한국이 첨이 아니었군요, 자전거와 역사 기행이 잘 어울리는 내용 ! 근데 세월호를 해외에서까지 기억을 남기는 분들 대단합니다 ~~

진교영 2018-06-05 08:08:50
머나먼 타국땅에서도 세월호 노란리본을 ~ 아픔이 그 슬픔이 얼마나 큰지 가슴이 먹먹하네요
슬프고 감당하기도 힘든 일들에서 노란리본으로 잊지않고 같을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깊이 세겨지는거 같습니다

세계 여러 사건에서 노란리본이 있었다는걸 알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다음편 기다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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