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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 홍시가 주는 넉넉함 ... 가을 담은 서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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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 홍시가 주는 넉넉함 ... 가을 담은 서정시다!
  • 변상섭 기자
  • 승인 2023.10.22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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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영 작 '감나무'
김애영 작 감나무(1988)

늦가을 하늘은 쪽빛이다. 쪽빛 하늘을 벗 삼아 빨간 홍시 몇 개를 달고 있는 감나무는 내남없이 가슴 한 켠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고향의 이미지다.

거기에 단풍 옷이 야위어 늙어가는 듯이 보이는 민둥산이 더해지면 전통적 정서가 물씬 풍기는 서정시이자 한 폭의 산수화가 된다. 

서양화가 김애영(79)은 평생 산과 감을 그렸다. 색도 단색화에 가까울 정도로 절제했다. 감과 산, 하늘을 묘사한 색이 전부다.

`감나무(1988)`는 `김애영 예술`의 백미이자 정수다. 넉넉한 곡선의 동산을 배경으로 그려진 감나무는 전형적인 늦가을 풍경이다. 다 떨어지고 몇 안 남은 초록의 나뭇잎은 초겨울을 재촉하는 기습 추위 탓일 게다.

푸른 하늘과 빨간 홍시, 초록의 잎이 조화를 이루면서 화면에 양념처럼 리듬감을 준다. 평자들은 작가를 논할 때 감보다는 산을 더 많이 거론하는 면이 있다. 김애영의 작품속 산은 북한산이다. 작업식에서 바라본 북한산을 마치 습관처럼 화폭에 담았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는 감에 대한 얘기하고 싶다.

까치밥으로 남겨둔 홍시든, 주렁주렁 매달린 감이든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 아닌가. 풍성함과 포근함, 그리고 애틋한 정감이 동시에 느껴져 더욱 그렇다. 농익은 홍시, 손대면 터질 듯한 주홍빛의 투명한 홍시를 보면 신비감이 작동한다.

홍시의 말랑말랑한 촉감과 달달한 맛은 입안 가득 침을 고이게 한다. 뿐만 아니라 홍시와 얽힌 수많은 추억들이 스멀스멀 연상되어진다.

감나무와 홍시가 지닌 얘깃거리는 이뿐이 겠는가. 까치밥이라는 의식을 통해 미물까지 챙기는 조상들의 속 깊은 넉넉함도 담겨 있다. 이런 풍요와 여유로움은 가을에만 느낄 수 있는 서정이다.

 그리고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홍시는 어머니이자 고향이라는 강한 메시지도 담고 있다. 작가는 감에, 가을에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다. 빨갛게 익은 홍시를 매개로 민족과 전통, 한국인의 정서까지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파리 유학시절 고향과 가족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에 쩔쩔매다 사무쳐 탄생된 이미지가 감이고 산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시골집 동네 어귀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남긴 홍시, 일손이 달려 미처 수확하지 못한 홍시를 보면 고향을 생각하고 푸근하고 넉넉한 마음을 느껴진다.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겨울을 재촉하고 있으니 저마다 까치밥 홍시와 함께 간직하고 있던 흑백사진 같은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날 것이다. 그 추억을 음미하면서 가을을 보내는 것도 작은 행복이 아닐까 한다.  나라 안팎으로 온통 우울한 일들이 넘쳐나고 있으니 더욱 그럴것이다. 

작가는 이화여대 회화과와 대학원을 나온 후 파리 국립미술학교에서 10여년간 공부를 마치고 퇴임할때까지 줄곧 덕성여대에서 후학을 지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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