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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난에도 스포츠 강국 스페인
  • 김형규
  • 승인 2018.04.02 13:00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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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17>부엘타 아 에스파냐

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두 바퀴가 달려 만나게 되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왔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 필자는 뉴올리언스에서 키웨스트까지 1800㎞를 여행하며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 하는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산티아고길로 연결되는 라베 데 라스 칼사다스 마을 안길. 전봇대와 전깃줄이 이채롭다.

정리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허둥지둥 3일을 달려왔다. 길을 잃어 신경이 곤두서기도 했다. 하루 12시간이 넘는 페달링을 하면서 이렇게까지 강행군을 할 필요가 있나,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평정심을 찾기 위해 산티아고순례길에 올랐는데 심기만 건드린 건 아닌지 헛웃음이 나왔다.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4일째는 부르고스에서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Carrión de los Condes)까지만 가기로 했다. 거리는 대략 90㎞. 아침 일찍 출발하면 점심때쯤 도착할 수 있다. 여유 있게 오후에 휴식을 취하면서 뽀송뽀송하게 라이딩복을 세탁하고 잔여 일정을 점검하기로 했다.

일어나자마자 나는 빵으로 아침을 대신했고 아들과 멋진남님은 한국에서 가져온 컵라면을 먹었다. 칼칼한 국물이 그리웠을 것이다. 경험상 운동전에 라면은 좋지 않다. 소화가 잘되지 않을뿐더러 까칠한 국물이 역류해 목과 코를 자극한다.

오전 7시 30분 산티아고 루트에서 1㎞ 떨어진 비야비야 데 부르고스 마을을 출발했다.

이날은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비야비야 데 부르고스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타르다호스(Tardajos) 마을까지 120번 도로와 나란히 가다가 이후부터 남북으로 갈라진다.

120번 도로와 비포장 도보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비포장길로 가보기로 했다. 도보순례자와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다. 비포장길을 달릴 수 있는 자전거는 아니지만 노면 상황에 따라 타기와 끌기를 번갈아가면서 전진할 생각이었다. 일단 흙길에 들어선 뒤 아니다 싶으면 다시 도로로 나오면 된다.

예상은 대체로 빗나간다. 타르다호스의 이웃마을인 라베 데 라스 칼사다스(Rabé de las Calzadas)마을의 복잡한 골목을 빠져나가니 곧바로 도보순례길과 연결됐다. 아쉽게도 초반부터 미니벨로는 거의 탈 수 없는 거친 흙길이다.

아들과 나는 터벅터벅 도로가 나타날 때까지 자전거를 끌고 가야했다. 뒤에서 한 무리의 자전거순례자들이 달려왔다. 그들 자전거는 산악용이었다. 돌길도 미끄러지듯 타고 넘어갔다.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도보순례자길 노면이 거칠어 자전거를 끌고 갔다.
산악자전거로 내리막길을 달리는 자전거순례자.
내리막길을 자전거를 끌고 내려오는 모습이 처량하다.

자갈길을 걸어서 통과

도보순례길은 바다 같은 들판 사이로 끝없이 이어졌다. 다시 조급증이 도졌다. 이렇게 걷다가는 점심때쯤 도착하기로 한 계획이 어긋날 수밖에 없다. 아들을 독려해 발길을 재촉했다.

10㎞쯤 걸은 뒤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Hornillos del Camino)에 도착해서야 비포장 길을 벗어날 수 있었다. 카미노 길과 120번 도로는 아직 멀리 떨어져있지만 이제부터 포장도로로 가기로 했다.

지방도를 타고 북쪽으로 5㎞쯤 거슬러 올라가 비야누에바 데 아르가뇨(Villanueva de Argaño)에서 정겨운 120번 도로와 다시 만났다. 출발한 지 2시간 30분이 지난 뒤였다. 남은 거리는 70㎞정도. 걷는데 2시간 정도 소비했지만 아주 늦은 템포는 아니다. 지금부터 속도를 높이면 오후 서너 시쯤 도착할 수 있다.

120번 도로에 진입하자 스페인 라이더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120번 도로에 들어서자 지역 자전거동호인들이 눈에 자주 띈다. 많은 국민들이 자전거를 즐기는 나라답게 스페인은 세계 3대 도로 사이클 스테이지대회인 ‘부엘타 아 에스파냐’를 개최하고 있다. 나머지 두 개 대회는 ‘투르 드 프랑스’(1903년 시작)와 ‘지로 디탈리아’(1909년 시작)이다.

스페인 선수 가운데 업힐의 전설 알베르토 콘타도르가 자전거 팬들의 기억에 각인돼 있다. ‘부엘타 아 에스파냐’는 1935년 처음 개최된 뒤 1955년 이후 매년 열린다. 1999년부터 스페인 북부의 ‘알토 데 랑글리루’(Alto de L’Angliru) 코스가 포함됐다.

정상 높이가 1573m에다 13㎞에 걸쳐 경사도가 23%다. 처음엔 살인적인 경사로 선수들의 원성을 샀으나 지금은 부엘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로스 마추코스(Los Machucos) 일부 구간은 경사도가 30%에 달한다. 아마추어는 끌고 올라가는 코스다. 프로선수도 작은 체인링과 큰 스프라켓으로 교체해 탈 정도다. 우리나라 산악지형 도로의 평균 경사도는 10%정도다.

자전거 강국인 스페인답게 공공자전거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바르셀로나 공공자전거 주차장.
멜가르 데 페르나멘탈 마을에서 120번 도로와 헤어져 산티아고순례자길로 들어섰다.

산악코스로 유명한 ‘부엘타 아 에스파냐’ 대회

부엘타의 시작과 스페인내전 발발 시점(1936년)이 공교롭게 1년 차이다. 스페인내전의 후유증과 경제난에도 부엘타가 지속될 수 있었던 건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 독재정권의 후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프랑코 정권은 내전으로 분열된 국론을 스페인 전역을 달리는 부엘타 대회를 통해 통합하려 애썼다. 부엘타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프랑코가 죽은 뒤에도 인기가 시들지 않아 결과적으로는 메이저급 국제대회로 자리매김했다.

과거 우리나라 역전마라톤경주대회도 국민통합에 이용됐다. 88올림픽 역시 정치적인 속셈에서 출발했으나 결과적으로 국민의 국제적 눈높이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성공대회로 마감했다.
    

4일차 부르고스-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까지 달린 코스도. 120번 도로와 멀어진 코스는 산티아고순례자길로 달린 구간이다.

스페인은 최근 경기침체로 한국보다 국민소득이 떨어졌으나 여러 종목에서 스포츠 강국의 면모를 자랑한다. 세계최고의 프로축구클럽 바르셀로나가 속한 프리메라리가를 비롯해 라파엘 나달의 테니스, 골프와 F1, 농구 등에서 세계강국이다.

120번 도로를 타고 시토레스 델 파라모(Citores del Páramo), 올미요스 데 사사몬(Olmillos de Sasamón)을 거쳐 멜가르 데 페르나멘탈(Melgar de Fernamental)에 도착했다. 여기서 다시 120번 도로를 버리고 남쪽 산티아고길로 들어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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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 2018-04-13 20:18:50
왜 나는 마드리드나 바로셀로나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거의 보지 못했을까 . 일만 했나 -.-

이재규 2018-04-04 12:00:24
마을 분위기는 고적해 보이고 공공자전거는 정열적인것이 맘에 들어요.
대전 타슈보다 간결하고 좋아보여요

진교영 2018-04-02 16:19:08
임도에서 펑크났는데 정비도구도 연락할때도 없어 그냥 하염없이 끌고만가던 생각이 ~~~

경사도 23 30 헉
알베르또 콘타도르
프리메가리가
라파엘 나달
화려하네요~~

정렬의 나라

한입만 2018-04-02 14:59:38
"예상은 대체로 빗나간다."
좋다. 위 한 문장으로 이번회차는 '대박'이다. ^^

kusenb 2018-04-02 14:32:32
30% 업힐이라니...
걸어 올라가기도 아슬아슬한 경사군요..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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