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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자신감이 부른 혼란, 미로에 갇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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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자신감이 부른 혼란, 미로에 갇히다
  • 김형규
  • 승인 2018.01.22 10: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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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7>2일차 팜플로나-로그로뇨

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두 바퀴가 달려 만나게 되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왔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 필자는 뉴올리언스에서 키웨스트까지 1800㎞를 여행하며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 하는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팜플로나 나바라 대학 내에 세워진 시수르 메노르 이정표. 산티아고길은 시수르 메노르를 거친다.

팜플로나(Pamplona)의 밤은 즐거웠다. 걱정했던 피레네를 무사히 넘어 하루 90㎞ 가까운 거리를 라이딩하고 세탁은 물론 느긋한 저녁식사, 시내관광까지 마쳤다. 뉘엿뉘엿 기우는 따가운 석양이 무거운 눈꺼풀을 찌르고 들어와 와인을 더 마시고 잠을 청했다.

팜플로나를 출발해 123㎞를 달려 나제라(Nájera)까지 가는 게 이튿날 여정이다. 산티아고 자전거 일정 중 가장 긴 코스다. 피레네 산맥을 넘은 패기라면 충분히 극복할 것이란 자신감에 전의를 불태웠지만 몇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시수르 메노르로 가는 산티아고 보행자길.
시수르 메노르로 향하는 길에 만난 모자(母子)순례자. 엄마와 아들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왔다.

산티아고 자전거순례를 준비 중인 라이더가 있다면 팜플로나는 되도록 지나치거나 시내를 통과한 외곽에 숙소를 잡고 빠져나갈 길을 미리 답사해 둘 것을 권하고 싶다. 특히 팜플로나 외곽 시수르 메노르(Cizur Menor)지구를 지나칠 때에는 그물망 같은 도로 구조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돌이켜보면 전날 라이딩에서 팜플로나에 근접할수록 햇살이 강렬해지고 지대가 낮아져 기온이 급격히 올라갔다는 걸 감지했어야 했다. 낯선 목표지점에 거의 왔다는 설레임에 모든 감각이 무뎌진 것이다.

고마운 스페인 경찰

시수르 메노르의 복잡한 도로구조에서 길을 잘못 들어 푸엔테라레이나까지 동남쪽길(NA6000)로 한참 돌아갔다.

자연적인 악조건 이외에도 출발 전부터 비비꼬인 하루였다. 민박집에서 빵으로 아침을 때우는데 난데없이 경찰이 들이닥쳤다. 경찰과 몇 마디 주고받은 민박집 매니저가 ‘물건 주인을 찾고 있다’고 전해줬다.
‘헉!’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아침 식사 전 라이딩복을 입다가 렌터카 안 캐리어에 챙겨 뒀던 스포츠 스타킹이 떠올랐다. 스타킹을 착용하면 장거리 라이딩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에 민박 인근에 주차해둔 차를 열고 가방을 샅샅이 뒤져 한줌 크기의 스타킹을 찾아냈다. 목적을 달성한 기쁨에 캐리어를 길가에 그냥 두고 숙소로 돌아온 것이다. 길거리에 주인 없이 방치된 가방이 있다는 행인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인근을 샅샅이 수소문하던 중이었다.

경찰을 뒤따라 나가 “가방 색깔이 뭐냐”는 질문에 “블랙”이라 확인해주고 경찰차 안에 보관해뒀던 캐리어를 되찾았다.

푸엔테라레이나로 가는 길은 온통 밀밭이다.
멋진남님이 밀밭평원 사이로 난 길을 라이딩하고 있다.

라이딩 하룻만에 정신줄을 놓아버린 나 자신에 하얗게 놀라고, 짧은 시간에 우리를 찾은 스페인 경찰의 책임감과 기민함에 두 번 놀랐다.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액땜’이라 안도하고 출발하기 위해 민박을 나서는데 또다른 골칫거리가 길을 막았다. 렌터카 앞유리에 주차위반으로 보이는 딱지가 붙은 것이다.

주차 지점이 팜플로나 초입인지라 복잡한 시내를 벗어날 때까지는 차량의 길안내가 중요해 딱지문제가 선결돼야 했다. 차를 운전해야 하는 투어가이드도 난감해했다. 스페인어는 물론 현지 교통시스템을 잘 알지도 못했고 조력자도 없었다. 오전 9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소통 끊긴 하루… 스스로 해결해야

푸엔테 라 레이나로 가는 NA6000도로가 밀밭 사이로 길게 뻗어 있다.

일단 자전거팀이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이 길로 가라’는 말만 듣고 출발했는데 도무지 빠져나가는 길이 헷갈렸다. 간선도로를 횡단하는 포인트를 찾느라 헤매고 회전교차로에서도 허둥지둥 타이밍을 놓쳤다.

남서방향으로만 가면 된다는 믿음은 중첩된 격자형 도로망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스마트폰 구글맵은 자동차에게는 도움이 될지언정 자전거에는 오히려 선택의 갈등만 조장했다. 외곽도로라 보행자도 없었다.

이리 저리 오가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젊은 회사원을 불러세웠다. 그의 설명을 종합하면 “나라바대학 캠퍼스 너머에 산티아고길이 있다”는 것이다. 단서를 잡고 길을 재촉했지만 가다서기를 반복할 뿐 쉽사리 캠퍼스가 나타나지 않았다.

시내에서 한 시간을 오락가락한 끝에 대학캠퍼스를 가로질러 산티아고길을 만날 수 있었다.

멀리 돌아서갔지만 푸엔테 라 레이나 인근에 도달하자 산티아고길이 나타났다.

투어업체 관계자가 딱지 문제를 해결하고 우릴 쫓아오는지 궁금했지만 알 방도가 없었다. 나와 아들은 스마트폰용 데이터 심 칩을 구입해 서로 톡을 주고받을 수 있었지만 업체 관계자는 빈손으로 왔다.

서로 헤어지면 업체 관계자가 우릴 찾아오거나 우리가 찾아가기 전까지는 소통할 방법이 없었다. 무료 와이파이존에 있길 바라는 건 과대망상이었다. 복잡한 길안내와 식음료, 숙박 예약은 그의 담당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와 아들, 멋진남님의 협업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 달린 궤적과 고도표시도.
팜플로나 시내를 벗어나기 위해 헤맨 궤적.

나바라 대학 이후부터 산티아고길을 찾아 안도의 한숨을 쉬며 페달링에 힘을 줬다.  산티아고 보행자길은 편도1차선 도로변을 따라 이어졌다. 오전 10시가 넘은 시간이라 많지는 않지만 뒤늦게 길을 나선 도보순례자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미국 LA에서 온 엄마와 아들 순례자가 인상적이었다. 초등생 저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들은 “멋진 아이”라는 나의 칭찬에 수줍게 웃었다. 엄마와 어린 아들이 길을 나섰다는 것만으로 아름다운 그림이 아닐 수 없었다. 무사완주를 기원했다.

교외의 한적한 길이 이어지더니 주택단지가 나타났다. 시수르 메노르(Cizur Menor)였다. 팜플로나 시내에 이어 두 번째로 꼬인 지점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중간 거점인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표지판이 이끄는 ‘NA6000’번 도로를 선택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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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만 2018-01-22 14:20:43
때론 좌충우돌, 때론 울퉁불퉁...
이번 회는 사색보다는 몸으로 느끼는 산티아고길이네^^
어여 다음회를 기다리며...

- 소제목 <총 몇 일 중 몇 일째>에
총 몇 Km 중 몇 Km 구간이라고 써주시기를 바라면 욕심인가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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