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올리언스 ‘포보이’와 대전 ‘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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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올리언스 ‘포보이’와 대전 ‘칼국수’
  • 김형규
  • 승인 2017.06.13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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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규의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 <3>서민음식에서 별미로
포보이 샌드위치로 유명한 파크웨이베이커리는 문을 열기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게 일상적인 풍경이다.

프렌치쿼터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서는 서너 시간 발품을 팔아야해 배가 든든해야 합니다. 뉴올리언스에는 독특한 음식이 많습니다. 럭셔리한 성찬보다는 서민을 위한 간편식이 많습니다. 먹을 것이 귀했던 옛날에도 보기 싫을 정도로 상에 올랐던 칼국수가 지금은 우리에게 별미로 다가오는 것처럼 이들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치킨 파파이스의 본고장이 뉴올리언스입니다. 독특한 향과 매콤함을 가미한 케이준소스로 미국시장에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먹는 미국브랜드의 치킨이나 버거는 미국현지의 맛과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상표로 미국에서 팔리는 라면이나 김치도 그쪽 입맛으로 변형됐습니다.

뉴올리언스 요리에는 루이지애나 소스라는 것이 많이 쓰이는데 이곳 역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다음 기회에 소개해드리지요.

가난한 노동자들의 샌드위치

100여년의 자취를 매장 내에 가득 기록한 파크웨이베이커리.
포보이 샌드위치 축제를 기념한 포스터.

프렌치쿼터로 가기 전 첫 현지식으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 뉴올리언스의 대표음식점 ‘파크웨이베이커리(Parkway Bakery)’에서 ‘포보이(Po’boy)’를 먹기로 했습니다.

파크웨이 베이커리는 1911년 독일의 제빵업자가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개업초기에는 전통 빵을 만들다가 1929년 가난한 노동자들의 배를 채워줄 ‘푸어보이(Poor Boy)’라는 샌드위치를 새 메뉴에 올렸습니다. 푸어보이는 당시 전차 안내원들이 파업을 할 때 즐겨먹었다고 합니다. 이후 뉴올리언스 사람들은 ‘푸어보이’를 ‘포보이’라 불렀습니다.

파크웨이베이커리 메뉴.

이후 파크웨이는 대형 공장 근로자들을 위한 급식으로 휴일 없이 24시간 풀가동하는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공장이 폐업하는 바람에 매출이 감소하고 1978년과 2005년 두 차례의 홍수로 잠시 문을 닫는 등 흥망성쇠를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파크웨이의 명성에 힘입어 뉴올리언스에서는 많은 버거 가게가 포보이를 판매합니다만 오리지널은 파크웨이뿐이라고 합니다. 파크웨이는 분점을 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100년이 넘는 전통…오바마도 찾아 

파크웨이베이커리 실내에는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과 가족, 식당 스태프들이 함께 기념촬영 한 사진이 걸려 있다.
파크웨이베이커리를 찾은 관광객들이 식당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전 11시에 문을 여는 파크웨이 베이커리에 오전 10시50분쯤 도착했는데 30여명의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확히 오전 11시가 되자 문이 열리고 손님들이 입장하기 시작합니다.

식당 본관 옆 확장된 야외식탁에 자리를 잡고 서로 돌려가며 맛을 보기로 하고 새우튀김 포보이, 소고기 포보이, 햄 포보이와 감자튀김 등을 주문했습니다.

새우에 입힌 밑간이 짭짤합니다. 강점은 해산물의 신선도가 뛰어나다는 점입니다. 현지인들은 이곳 포보이의 강점으로 빵을 손꼽았습니다. 파크웨이의 역사를 설명하는 홍보지에도 빵을 굽는 오븐에 많은 지면을 할애합니다만 처음 먹어보는 나로서는 비교 경험이 없으니 그러려니 해야죠.

비프포보이
새우포보이
감자튀김

현재 경영주는 1995년 파크웨이를 인수해서 좀 더 다양한 포보이 메뉴를 개발했다고 합니다. 2005년 급습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파크웨이도 180㎝나 물에 잠겨 영업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의 복구노력으로 그해 12월 다시 문을 열어 이재민들을 중심으로 영업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가족 중심 경영진은 100년 이상 된 파크웨이 역사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식당 벽면에는 파크웨이의 역사를 말해주는 많은 액자가 걸려있습니다. 그중에서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과 가족, 식당 직원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 눈에 띕니다. 손님들이 많아 여유롭게 찍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서민식당을 스스럼없이 찾는 오바마에 미국은 물론 세계인들이 찬사를 보내는 이유를 알만합니다.  

커다란 냅킨박스에는 재미난 문구가 쓰여 있다.

포보이는 체면이나 격식을 갖춰 먹는 음식이 아닙니다. 빵 사이에 들어간 새우와 양상추, 피클, 토마토가 워낙 푸짐해 입을 최대한 벌려 게걸스럽게 먹어야 합니다. 소스가 입술주변에 너저분하게 묻고 부스러기가 우수수 떨어집니다. 여기에 대비해 식탁엔 손수건 크기의 넉넉한 냅킨이 담긴 플라스틱 통이 놓여있습니다.

거기엔 ‘당신에게 냅킨이 필요 없다면 그것은 포보이가 아니다(It’s not a poor boy if you don’t need napkins)’란 문구가 새겨있습니다.

지게꾼들의 성찬 칼국수 

사골로 국물을 낸 신도칼국수.

과거 쌀이 부족했던 시절 우리도 값이 싼 밀가루로 칼국수나 수제비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밀가루만으론 배를 채우기 어려워 묵은 김치나 들판에 널린 호박, 감자 등을 함께 채 썰어 넣고 물을 넉넉하게 잡아 한 솥 끓였습니다. 밀가루음식에 신물이 나서인지 지금도 칼국수를 쳐다보지 않는 어르신이 많습니다.

1961년부터 문을 연 대전의 신도칼국수는 대전을 대표하는 분식집입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몇 해 되지 않았기에 나라 경제는 밑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여기저기 기웃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중에 몇몇 바지런한 남정네들은 대전역 앞에서 지게꾼 노릇을 했습니다.

신도칼국수 내부에는 식당의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시대별 쓰던 칼국수 그릇이 전시돼 있다.

기차역에서 내리는 승객들 중 무거운 짐을 진 아낙네가 있으면 반강제로 빼앗아 지게로 날라주곤 푼돈을 챙겼지요. 기차 시간이 뜸한 틈을 타 이들은 인근 식당으로 달려가 칼국수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습니다. 칼국수 한 대접이 그날 먹은 끼니의 전부였을 겁니다.

신도칼국수에는 개업 초기인 1960년대 30원하던 세숫대야 크기의 찌그러진 양푼이 벽에 걸려 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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