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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올리언스에서 키웨스트까지, 그 여정을 마치며[김형규의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 <마지막 회>역사는 진실을 찾는 미로
스페인 론다 헤밍웨이 기념탑.

헤밍웨이가 마지막에 머문 곳은 미국 아이다호 주 선밸리의 케첨(Ketchum)이라는 곳입니다. 이전에 선밸리에서 낚시 휴가를 즐긴 적이 있기에 쿠바에서 나오기 전 미리 집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생 황금기를 누렸던 쿠바의 핑카 비히아만큼 허전함을 달랠 수 없었죠.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 그에게 자연스레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해 자살한 아버지가 오버랩 됩니다.

게다가 나에게 조국 미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감에 사로잡힙니다. 정신적 고통속에서 헤밍웨이는 “FBI의 감시를 받고 있다”고 호소하지만 세간의 반응은 ‘완전 돌아버렸군’이었습니다.

나중에 종신 FBI국장이었던 존 에드거 후버(1895-1972)는 헤밍웨이에 대한 사찰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후버는 죽을 때까지 48년간 FBI국장으로 재직한 막강 거물입니다. 어떤 미국 대통령도 그를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CIA가 출범하기 전 수사와 정보수집기능까지 갖춘 FBI에서 미국 내 정‧관‧재계의 비리는 물론 국제적인 정보망을 독점하고 있으니 감히 어쩌질 못한 거죠. 후버는 공산주의자는 물론 진보적인 지식인들을 감시하고 스파이로 의심되는 인물을 색출하는데 앞장섰습니다.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힌 ‘마초’

미국 영화배우 오손 웰즈(1915-1985)도 투우를 좋아해 헤밍웨이와 함께 론다에 기념탑이 세워졌다. 1959년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헤밍웨이는 1차 세계대전에 이어 스페인내전에 중립적인 자세를 취한 미국의 정책과 달리 종군기자로 참전, 무정부주의자와 공산주의자가 득실한 공화국파에 가담합니다. 전쟁 기금을 모으기 위해 뉴욕에서 강연한 것이 문제가 되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1937)를 발표해 ‘빨갱이’로 낙인찍힙니다.

헤밍웨이는 공산주의자는 아닌 듯합니다. 공산주의 진영에게 일부 작품은 환영을 받지 못하고 본인도 손사래를 쳤으니까요. 다만 당시 전 세계에 불어 닥친 무정부주의에 관심을 보였던 건 사실인 듯합니다.

쿠바에 정착해 모든 것이 평온해질 무렵 1950년대 미국에 불어 닥친 반공 ‘매카시즘’은 헤밍웨이에게 많은 상처를 남깁니다.

헤밍웨이의 자살 전후 연대기를 요약하면 ▲1959년 2월 쿠바 카스트로 혁명 후 집권 ▲1960년 7월 헤밍웨이 쿠바에서 미국 케첨 이주 ▲1961년 4월 케네디 대통령 쿠바 피그만 침공 실패 ▲1961년 7월 헤밍웨이 자살 ▲헤밍웨이 사후 케네디 대통령, 쿠바에 남은 헤밍웨이 유품 환수 노력 ▲1963년 11월 케네디 대통령 피격 사망 등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하면 샤프한 이미지에 미국의 우주산업발전과 강력한 부국강병‧반공을 추진하다 불의의 암살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케네디는 대통령 취임 3개월 만에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무리하게 피그만 침공을 감행하다 대패합니다만 미국의 개입을 부인합니다.

미국의 의도는 간단합니다. 본토 턱밑에 자리 잡은 쿠바에 친미 괴뢰정부를 세우는 것입니다만 의도대로 되지 않은 거죠. 쿠바에 대한 미국의 무력과 경제봉쇄를 바라보는 헤밍웨이로서는 속이 타들어갔을 겁니다.

미국의 역사왜곡 심각

미국의 왜곡된 역사를 고발한 양심서.

미국의 사회학자 제임스 W. 로웬이 지은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휴머니스트 刊)은 미국이 잘못한 역사적 사건을 교과서에서 은폐‧미화시킨 사례를 고발한 양심서입니다.

이 가운데 쿠바 부분을 언급하면 ‘예전 교과서나 최근 교과서나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를 암살하려 한 우리의 다양한 시도를 다루지 않는다. 미국 상원에서 이루어진 증언에 따르면, 연방정부는 1965년까지 여덟 차례나 카스트로를 암살하려 했다. 쿠바 측 주장에 따르면, 1975년까지 카스트로는 스물네 차례나 암살을 모면했다.(생략) 피그만 침공이 실패한 뒤 케네디 대통령은 몽구스 작전을 시작했다.(생략) 케네디가 육군을 보내 쿠바를 침공할 계획을 세웠다가 쿠바미사일 위기로 실행하지 못했다. 몽구스 작전을 언급하는 교과서는 전혀 없다’고 기술합니다.

이 책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처음 발견하지 않았을 뿐더러 미국 교과서가 콜럼버스의 신대륙 항해 과정을 지나치게 극적‧신화적으로 조작했다는 점, 노략질이나 아메리카 원주민의 학살‧콜럼버스 이후 침략자들의 만행은 다루지 않는다고 비판합니다.

시각‧청각 중복 장애인인 헬렌 켈러에 대해서도 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로서만 기술할 뿐 사회주의운동가였다는 사실을 은폐한다고 꼬집습니다.

헤밍웨이-케네디-카스트로 삼각관계

지금은 거의 개장하지 않는 스페인 론다 투우장.
산 페르민 축제의 대표적 이벤트인 소몰이 축제 장면을 형상화한 스페인 팜플로나 시내 거리.

요즘 ‘인터넷 썰’을 보면 카스트로가 케네디의 무모한 도발을 보다 못해 역으로 케네디 암살을 사주했다거나, 모든 것이 탄로 날 것을 두려워한 미국정부가 케네디 암살범을 제거했고, 미국 정보기관이 헤밍웨이의 정신병을 치료한다는 구실로 전기충격을 가해 아예 심신을 망가뜨렸다는 얘기가 떠 돕니다.

헤밍웨이와 케네디는 서로 만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다만 매카시즘을 거치면서 정치적 야망을 실현한 케네디는 취임하자마자 쿠바 침공을 실행하고 그 과정에서 헤밍웨이가 걸림돌이 됐을 겁니다. 특별한 인연이 없는데도 케네디가 헤밍웨이 자살 이후 유품 반환에 나서주고 둘 다 죽은 이후 케네디도서관에 다수의 헤밍웨이 관련 유품이 소장된 건 무슨 이유인지….

헤밍웨이 관련 기록은 케네디도서관, 시카고 오크파크 생가, 플로리다 키웨스트 집, 쿠바 박물관, 스페인 기념물 등에 남아있습니다. 쿠바 쪽이 가치가 높고 케네디도서관은 소장에 주력한 듯합니다.

‘성찰’ 통해 흑역사 바로잡아야

에스파냐 론다에서 유명한 헤밍웨이 산책길.
헤밍웨이가 좋아한 론다 절경.

우리나라도 해방 이후 역사의 소용돌이에 수십 년째 매몰돼 있습니다. 가해자는 있는데 제대로 된 사과와 화해가 안 되는 거죠. 일제강점기 시기 일어난 위안부‧강제 징용 사건, 독도 영유권 문제, 영동 노근리 미군 학살 사건, 5.18민주화 항쟁 규명 등등.

제대로 된 사과와 합리적인 사후처리를 위해서는 정권에 따라 입장이 달라진다거나 피해사례를 과장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상대에게 반격의 빌미만 줄뿐 과거사 청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역사청산은 상대의 반성과 자각도 중요하지만 우리 자신의 성찰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끝>

조선 건국 이후 세계사 주요 연대기

 

 

김형규  tjhkki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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