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修身)을 근본으로 치인(治人)을 실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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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修身)을 근본으로 치인(治人)을 실현하라
  • 이길구
  • 승인 2018.11.26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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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구의 중국 한시(漢詩)기행] <6>주희(朱熹)의 '권학시(勸學詩)'

이번에 소개할 시는 주희(朱熹, 11230-1200)의 ‘권학시(勸學詩)’ 두 수(首)이다. 주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주자(朱子)를 말한다. 흔히 그를 말하기를 유학(儒學)의 아버지이자, 성리학의 종주(宗主)라 한다.

그는 아버지 주송(朱松)의 부임지였던 복건성(福建省) 우계(尤溪)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원회(元晦), 또는 중회(仲晦)이고, 호는 회암(晦庵)이다. 다섯 살에 《효경》을 배웠으며, 사색을 즐겨 하늘 저 끝에 무엇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끝없이 품었다고 한다. 이런 소년 시절의 사고(思考)가 후에 이(理)와 기(氣), 불학(佛學)을 종합 집대성한 성리학(性理學)을 완성했다.

필자가 그린 주자의 초상화. 왼편에는 그가 쓴 책과 내용을 적었다.

한마디로 그의 학설은 “공경(恭敬)을 기본으로 근본을 확립하고, 이치(理致)를 연구하여 자신의 입장에 대입하여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사상과 저술, 교육론은 조정과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공자(孔子)와 맹자(孟子) 다음으로 숭배되었고, 학풍은 후세 학자들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의 주변 국가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우리나라 조선 사회에서 그의 학설이 성리학, 주자학, 정주학이라는 이름으로 통치의 근본으로 자리 잡았다.

여산 아래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 당(唐)나라 때(940년) 이발(李渤)이 이곳에 은거하며 하얀 사슴(白鹿)을 길렀다고 해서 유래됐다.

그의 흔적을 찾기 위해 여산에서 내려와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으로 향했다. 이 서원은 하남성(河南省) 등봉(登封)의 숭양서원(崇陽書院),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의 악록서원(岳麓書院), 하남성(河南省) 상구(商丘)의 응천서원(應天書院)과 함께 중국 4대 서원의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당(唐) 시대(940년) 이발(李渤)이 형인 이섭(李涉)과 함께 이곳에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하면서 하얀 사슴(白鹿)을 길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슴이 예사롭지 않아 멀리 시내로 나가 서적과 문방사우(文房四友)를 구해 왔으므로 사람들이 이발(李渤)을 ‘백록선생(白鹿先生)’, 그 거처를 ‘백록동(白鹿洞)’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5대(代) 10국(國) 때에는 학교를 설립하여 여산국학(廬山國學)이라 하였으며, 남송의 주희(朱熹)가 남강군(南康軍)의 지사(知事)가 되었을 때 재흥시켜서 스스로 백록동서원 원장이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삼강오륜(三綱五倫)과 중용(中庸)을 학생에게 강의하는 동시에 천하의 학자를 초청하는 등 유교(儒敎)의 이상 실현에 힘썼다. 따라서 이 백록동서원은 점차 유명해져 천하제일의 학교로 되었다.

백록동서원내 주자상. 유학(儒學)의 아버지이자, 성리학의 종주(宗主)로 불린다.

서원에 도착하니 입구가 한산하다. 매표소에 가서 왜 이렇게 설렁하냐고 물으니 대답이 걸작이다. “한국인 관광객이 안 오면 조용하다”는 것이다. 중국인하고 한국인하고 주자를 대하는 근본적인 시각을 말해준다.

중국에서는 주자를 역대 유명한 학자 중 한 명으로 여기고 있으나, 한국의 유학에서는 공자 다음가는 성인으로 추앙한다. 그래서 서원, 향교, 유학에 관련 있는 분들이 이곳을 자주 찾는다고 한다.

백록동서원은 우리의 일반서원과 다를 것이 없다. 그냥 시골의 조용한 서원이나 향교와 비슷했다. 주로 주자와 백록동서원과의 인연을 소개했고 나머지는 중국 유학의 전승자들을 일일이 소개하는 것들이다.

주자가 쓴 여러 가지 글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 흔하게 봤던 시가 눈에 확 들어온다. 바로 권학(勸學)의 뜻을 가진 ‘우성(偶成-뜻하지 않게 지어진 시)’이란 시이다. (참고로 한시에서는 ‘우성’이라는 제목의 시가 많이 있는데 이것은 제목을 정하고 쓴 것이 아니라 불현듯 갑자기 쓴 시를 말한다.)

소년이노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
미각지당춘초몽(未覺池塘春草夢)
계전오엽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잠시라도 시간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연못가의 봄풀은 아직 꿈을 깨지도 못하는데,
댓돌 앞의 오동나무 잎은 이미 가을 소리를 전하는구나!

주자가 쓴 시 ‘우성(偶成-뜻하지 않게 지어진 시)’. 학문을 열심히 하라는 내용이다. 여산아래 백록동서원에 전시되어 있다.

필자가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이 시를 인용하면서 하루라도 젊었을 때 더 열심히 공부하라는 소리 자주 하였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는 이 시를 누구 지었는지 잘 몰랐는데 주희(朱熹)가 작자라고 하니 아이러니하다. 성리학의 대가이며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완벽하게 주해(註解)한 그가 아니던가. 그런 그가 아주 평범한 시를 남겼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이는 그가 얼마만큼 학문을 좋아했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우성(偶成)’이란 이 글은 학문을 열심히 익히라는 권고의 시구로서 배움에도 때가 있으니 젊은 시절 부지런히 공부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시는 네 구가 각각 독립된 명구로 되어 세월의 덧없음과 시간을 아껴 학문에 임할 것을 젊은이들에게 권장하고 있다. 이런 글을 학문을(學) 권하는(勸) 글(文)이라 해서 ‘권학문(勸學文)’라고 하는데 《주문공문집(朱文公文集)》에 실려 있다.

시 내용에 특별히 난해한 것은 없다. 일촌(一寸)은 ‘한 치 길이’로 ‘아주 짧음’을 말하고, 광음(光陰)은 본래의 뜻은 ‘빛과 그늘, 해와 달’인데 ‘세월’, ‘때’를 가리킨다. 지당(池塘)은 ‘연못’이며 오엽(梧葉)은 ‘오동나무의 잎’이다. 이 시 말고 또 한편의 주자가 쓴 권학문이 《고문진보(古文眞寶)》에 실려 있다.

물위금일불학이유내일(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
물위금년불학이유내년(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
일월서의불아연(日月逝矣不我延)
오호노의시수지건(嗚呼老矣是誰之愆)

오늘 배우지 않고 내일 있다 하지 말고
금년에 배우지 않고 내년 있다 하지 마라.
세월 흘러가 나를 연장해주지 아니하나니
아! 늙었구나, 이것이 누구의 잘못인가.

주자 백록동 교조(敎條). 성현(聖賢)이 사람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방법으로 오교(五敎)의 조목(條目)과 위학(爲學)의 차례를 제시하였다.

백록동서원 내 명륜당에는 주자가 만들었다는 학규(學規)인 ‘백록동 교조(敎條)’가 지금도 전하고 있다. 교조는 오륜(五倫), 오교(五敎), 수신(修身), 처사(處事), 접물(接物)에 대한 요령을 정해놓은 것이다. 학창시절 귀가 따갑도록 들었고 도덕이나 윤리 시간에 약방에 감초처럼 들었던 내용이다. 꼭 알아야 하는 내용이니 한번 정리해본다.

○ 오교지목(五敎之目): 다섯 가지 교육의 목적.

父子有親(부자유친): 아버지와 아들은 친절한 마음이 있어야 하고,
君臣有義(군신유의): 임금과 신하는 정의로움이 있어야 하고,
夫婦有別(부부유별): 남편과 아내는 분별이 있어야 하고,
長幼有序(장유유서): 어른과 어린이는 차례(질서)가 있어야 하며,
朋友有信(붕우유신): 친구와 친구 사이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 위학지서(爲學之序): 공부(학문)하는 순서.

博學之(박학지): 많은 것을 널리(폭넓게) 배우고,
審問之(심문지): 의심이 일어나면 꼭(자세히) 묻고,
愼思之(신사지): 깊이깊이(조용히) 생각해 보고,
明辨之(명변지): 분명하게 구별(분별)을 하고,
篤行之(독행지): 철저(열과 성실)히 실천(행동)한다.

○ 수신지요(修身之要): 수신하는데 중요한 교훈.

言忠信(언충신): 말은 진실하고, 믿음이 있어야 하고,
行篤敬(행독경): 행동은 철저하면서도 신중하게,
懲忿窒欲(징분질욕): 북받치는 분은 절제하고 욕심은 버려야 하며,
遷善改過(천선개과): 선행은 따르고, 허물(과실)은 고쳐야 한다.

○ 처사지요(處事之要): 일을 처리하는데 중요한 교훈.

正其義(정기의): 그 일의 정당성을 살피고,
不謀其利(불모기리): 그 이권에 생각을 두지 말며,
明其道(명기도): 옳은 길(도의)만 택해가고(앞세우고),
不計其功(불계기공): 그 공로를 계산하지 말아야 한다.

○ 접물지요(接物之要): 상대를 대(접견)하는 중요한 교훈.

己所不欲(기소불욕): 자기(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勿施於人(물시어인): 남에게도 시키지 말 것이며,
行有不得(행유부득): 노력하여도(하다가) 이루지 못한 일은,
反求諸己(반구저기):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아라(살펴야 한다.)

백록상(白鹿像) 앞에서 필자. 서원 가장 높이 위치한 사현대(思賢臺) 아래에 있다.

이 백록동 이념은 주자가 서원 건립을 통해 전개했던 도학(道學)의 이념을 밝히고 서원교육의 기본과 과제를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백록동규는 도학의 방법과 그 구현을 위한 제도로 볼 수 있다. 아울러 학문의 근본으로 오륜이라는 것이 철저한 실천적 성격을 의미하는 동시에, 서원에서 제시한 학문 방법이 명륜(明倫)을 중심개념으로 소학(小學)에 기초함을 보여준다.

그는 배우는 순서, 곧 학문하는 순서(爲學之序)로 중용(中庸)에서 언급한 박학(博學), 심문(審問), 신사(愼思), 명변(明辯), 독행(篤行)을 제시하면서 이것들을 궁리(窮理)의 요령(要領)으로 여겼다.

수신지요(修身之要-수신하는데 중요한 교훈)로는, 말은 진실 되며 믿음이 있어야 하고, 행동은 철저하며 신중하게, 북받치는 분은 절제하고 욕심은 버려야 하며, 선행은 따르고, 허물(과실)은 고쳐야 한다고 했다.

처사지요(處事之要-일을 처리하는데 중요한 교훈)로는, 그 일의 정당성을 살피고, 그 이권에 생각을 두지 말며, 옳은 길(도의)만 택하며(앞세우고), 그 공로를 계산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으며, 접물지요(接物之要-상대를 대(접견)하는 중요한 교훈)로는 자기(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 것이며, 노력하여도(하다가) 이루지 못한 일은,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라(살펴야 한다)고 역설했다.

결국, 주자는 백운동 학규를 통해 성현이 사람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것으로 오교(五敎)의 조목(條目)과 위학(爲學)의 차례를 제시하였다. 또 그는 옛 성현의 ‘사람을 가르치는 학문을 하는(敎人爲學)’ 뜻이 ‘의리(義理)를 궁구하여 수신(修身)하며 그다음에 미루어 남에게까지 미치게 하는 것’이라 하여 수신을 근본으로 치인(治人)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 같은 근본이념이 오늘날의 유학이자, 성리학이며, 주자학의 요체(要諦)라고 말할 수 있다.

경북 영주시 순흥면의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 중국 백록동서원을 본떠 만들었는데 지금은 소수서원(紹修書院)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한편 한국 서원의 효시(嚆矢)가 되는 경북 영주시 순흥면의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 바로 이 백록동서원을 본떠 만든 것이다.

1542년 (조선조 중종37년)에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지역 출신으로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安珦)을 제사하기 위하여 사당을 세웠다가 중종 38년(1543)에 유생들을 교육하면서 ‘백운동서원’이라 하였다.

이후 명종5년(1550) 풍기군수 이황(退溪)의 요청에 의해 ‘소수서원(紹修書院)’이란 사액을 받고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전국적으로 193개 서원이 설립되어 공자를 비롯한 동방 18현 등의 제사와 사설 교육기관으로 조선조를 이끌어가는 인재배출과 사림 형성의 몫을 톡톡히 하였다.

필자 이길구는 한문학 박사다. 계룡산 자락에서 태어나 현재도 그곳에서 살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산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 계룡산과 실크로드에 대한 많은 저술을 출판한 바 있다. 현재는 한시(漢詩)에 관심을 두고 연구 활동과 저작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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