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 잔에 국화 향기, 그리고 무언·감동의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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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 잔에 국화 향기, 그리고 무언·감동의 경지
  • 이길구
  • 승인 2018.11.19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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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구의 중국 한시(漢詩)기행] <5>도연명(陶淵明)의 '음주(飮酒)' 제5수

수많은 중국 시인 중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시인은 누구일까? 흔히 시선(詩仙)의 이백, 시성(詩聖)의 두보를 꼽는다. 이와 함께 또 한 명의 위대한 이가 있으니 자연음유(自然吟遊) 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이다.

이백이 도가(道家)적인 삶은 살았고, 두보가 유가(儒家)적인 삶을 영위했다면 도연명은 평생 자연과 함께했다. 그래서 특정 분야에 관심이 있는 것보다 자연을 평생 사랑한 도연명에게 사람들은 더 친밀감을 느끼지 않을까.

도연명 인물도. 본명은 잠(潛) 호는 오류선생(五柳先生), 자가 연명(淵明)이다. 우리에게는 호인 오류선생보다 자인 연명으로 더 알려져 있다.

강서성 심양(潯陽)에서 태어난(365년) 그는 본명이 잠(潛), 호(號)는 오류선생(五柳先生), 자(字)는 연명(淵明)이다. 우리에게는 호인 오류선생보다 자인 연명으로 더 알려져 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집이 가난했기 때문에 도연명은 집안의 농사일을 거들며 학문을 익혔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웠던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시대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동진(東晉)의 끝 무렵 남조(南朝)의 송(宋, 당나라 뒤를 이은 송나라와는 별개 나라임) 초기에 해당한다.

농사만으로 생계가 어려웠던 그는 집안과 노모를 돌보기 위해 출사(出仕)했고, 여러 곳의 지방 하급 관리를 지냈다. 하지만 그의 관직 생활은 대부분 일 년을 넘기지 못했다. 그의 자유로운 성품이 관리 생활에 맞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당시 관리 사회의 혼탁함에 염증(厭症)을 느꼈기 때문이다.

당시 봉록(俸祿, 봉급)이래야 쌀 5말 정도였고 상관(上官)의 위세가 도를 넘자, 그는 미련 없이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오불능위오두미절요(吾不能爲五斗米折腰)-나는 쌀 5말에 허리를 굽힐 수 없노라!”라는 글을 성벽에 붙이고.

자연음유(自然吟遊) 시인 도연명. 대표작으로 도화원기(桃花源記)와 귀거래사(歸去來辭), 음주(飮酒) 등이 있다.

도연명 하면 누구나 알고 있는 시가 도화원기(桃花源記)와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한시에 관심이 있고 술을 좋아하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함을 즐기는 사람들은 이 시를 들어본 적이 있고 특정 구절을 애송(愛誦)하기도 하다.

그는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은거(隱居)에 대한 염원을 밝혔다. 작품 서문에서 “돌아가자! 전원이 황폐해지려고 하는데 어찌 아니 돌아갈 것인가(歸去來兮 田園將蕪 胡不歸)”라는 문구로 은둔을 선언한 것이다.
 
오늘 소개할 그의 시는 <귀거래사> <도화원기>도 아닌 <음주(飮酒)>라는 시이다. 이 시는 본래 총 20수로 된 연작시(連作詩)로 시문(詩文) 앞에는 간략한 서문(序文)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20수 전체를 한 번에 다 쓴 게 아니라 때때로 술을 마시며 즉흥적으로 쓴 것이기 때문에 내용이 독립적인 것이 특징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시가 다섯 번째 시이다.

특히 이 시의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이라는 구절(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따서 유연하게 남산을 바라본다)은 그의 전원생활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주는 유명한 문장이다.

자연을 노래하며 시문(詩文)을 읊조리는 문사(文士)들이면 곧잘 인용하는 구절이고, 전원생활을 표현하는 대명사처럼 된 문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필자도 이 시를 좋아해서 일기장에 적어놓고 암송한 적이 있다. 도연명의 <음주(飮酒)> 20수 중 제5수를 알아본다.

결려재인경(結廬在人境)    오두막 지어 사람들과 더불어 사니
이무거마훤(而無車馬喧)    수레 시끄럽게 찾아오는 사람 없네
문군하능이(問君何能爾)    묻노니 그대는 어찌 그렇게 살 수 있는가?
심원지자편(心遠地自偏)    마음이 벗어나니 땅도 저절로 한적해지네
채국동리하(采菊東籬下)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따서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유연하게 남산을 바라보노라.
산기일석가(山氣日夕佳)    산 기운은 해질녘에 더욱 아름답고
비조상여환(飛鳥相與還)    날던 새들도 무리 지어 돌아오네
차간유진의(此間有眞意)    이러한 가운데 참다운 뜻 있으니
욕변이망언(欲辯已忘言)    말하려다 도리어 말을 잊었네.

세묵지(洗墨池) 표지석. 도연명이 ‘붓을 씻은 연못’으로 중국 강서성 구강현 도연명 기념관에 있다.

시 내용을 간단히 알아보자. 결막(結廬)은 ‘오두막집(초가)을 짓다’라는 뜻이고(廬는 초가집), 인경(人境)은 ‘사람들이 사는 곳’, 즉 ‘이승’을 말한다. 산중에 농막을 짓고 은퇴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들 틈에 끼여 산다는 것이다.

무마거훤(無車馬喧)의 차마(車馬)는 ‘관리가 타는 수레’로 ‘벼슬을 사양했으니 관리가 수레를 타고 시끄럽게(喧) 찾아오는 일이 없다’라는 것이다. 문군(問君)은 직역으로 ‘그대에게 묻는다’는 뜻의 자문자답(自問自答)이고, 하능이(何能爾)는 ‘어떻게 그렇게(爾는 然) 할 수 있느냐?’이다.

심원지자편(心遠地自偏)은 ‘마음이 속세에서 멀리 떨어지니 저절로 한가해지다’이고, 채국동리하(采菊東籬下)는 ‘동쪽 울타리 밑에 피어 있는 국화꽃을 땀’이라는 내용이지만 ‘은자(隱者)의 생활’로 비유된다.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은 ‘한가로이 남산을 바라본다(세상의 야심이나 욕심이 없다)’로 여기서 남산(南山)은 곧 ‘여산(廬山)’이다. 상여환(相與還)은 ‘서로 짝을 지어 돌아온다는 것’이고, 망언(忘言)은 ‘말로는 표현할 도리가 없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은 직장 생활하다가 걸핏하면 “회사 그만두고 시골 가서 농사나 짓지”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젊었을 때 하는 일을 그만두고 시골에 가서 사는 사람은 드물다. 도연명 시인은 진심을 가지고 한적한 시골로 들어와 오두막을 짓고 은거했다.

자연과 더불어 살려고 산골로 들어감은 물론 자연의 원리에 순응하며 주어진 분수에 만족하며 살았다. 동쪽 울타리 아래 핀 국화를 따서 손에 들어도 보고 저 멀리 남산을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국화는 가을의 꽃으로 절개의 상징이 아니던가.

도연명의 채국도(彩菊圖). 도연명의 시 ‘음주(飮酒)’의 ‘채국동리하(采菊東籬下-동쪽 울타리 밑에 피어 있는 국화꽃을 땀)’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필자는 한적한 시골에 오래 살아서 이 시를 백분 다 이해할 수 있다. 고향도 시골이지만 고향 근처로 돌아와 10여 년째 살고 있다. 나 역시 공직생활 하다가 시골에 들어온지라 세상의 인심을 다 겪었다.

도연명도 세상의 인심을 잘 알고서 담담하게 자신의 홀로된 처지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보다는 변함없이 아름답게 다가오는 자연에 푹 빠져있다. 세상 모든 이치를 깨닫고서 무르익어 가는 가을의 참맛을 여유롭게 느끼며 감탄을 하는 것이다.

자 한번 상상해보자. 술을 마시고 취흥(醉興)이 일어나 울타리 아래의 활짝 핀 국화를 하나 꺾어 들고 그 향을 맡자. 그리고는 저 멀리 남산의 해지는 아름다운 모습을 유유히 바라보자. 또 무리 지어 돌아오는 새들의 멋진 모습을 보면서 무언의, 감동의 경지에 빠져보자. 이것이 ‘홀연망아(忽然忘我)’가 아닌가. 수많은 문사(文士)가 충분히 인용하고도 남을 만큼 아름다운 시이고, 자연 속을 빠진 시인의 모습이 그림을 보듯 눈에 선하게 그려지지 않는가.

도연명 기념관. 명성에 비하면 내용물이 허술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중국 강서성 구강현은 도연명의 고향이다. 이 지역 명산인 여산(廬山) 기슭에는 도연명을 기리는 사당과 묘소, 기념관이 있다. 시내 곳곳에는 도연명 인물상을 쉽게 볼 수 있다.

먼저 도연명 기념관을 찾았다. 명성보다 너무나 초라한 기념관 문턱을 넘자, ‘채국도(采菊圖-국화를 따다)’라는 대형 그림이 눈에 띈다. 그림 오른편 상단에는 앞서 소개한 ‘음주’ 제5수가 쓰여 있다. 이 시가 도연명을 대표하는 작품임을 증명한다.

기념관 옆에는 도연명의 사당인 도정절사(陶靖節祠)가 있다. ‘정절(靖節)’은 도연명이 죽은 후 그의 친구인 안연지(顔延之)가 개인적으로 준 시호(諡號)인데 후대인들이 즐겨 사용했다.

사당 안에는 2m가량의 도연명 소상(塑像)이 있고 여러 개의 편액(扁額)과 주련(柱聯)이 걸려있다. 그리고 그의 대표작인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 ‘귀거래사’ ‘도화원기’가 석각되어 있다. 사당 앞에 있는 정자 귀래정(歸來亭)은 '귀거래사'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이밖에도 그가 붓을 씻었다는 세묵지(洗墨池)가 있고 동리채국기지(東籬采菊基地-동쪽 울타리 국화를 따던 곳)까지 만들어 놓아 그의 생전의 주변을 상상 할 수 있다.

사당에서 왼쪽에는 도연명 묘소가 있다. 참배하고 술 한 잔을 올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가 술을 무척 좋아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도연명만큼 술을 좋아했던 사람도 드물다. 술을 먹어야만 시가 나왔다고 하니. 가히 짐작이 간다. 망우물(忘憂物-근심을 잊게 하는 물건), 배중물(杯中物-잔속의 물건) 등 술의 별칭을 만든 사람이 바로 도연명이 아닌가.

도연명 음주도(飮酒圖). 중국 양주팔괴(揚州八怪)의 한 명인 황신(黃愼)이 그렸다. 도연명이 선 채로 벌컥벌컥 술을 마시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술 이야기가 나왔으니 술을 노래한 시인 중 누가 최고일까? 중국을 대표하는 시인 중에는 이백(李白)은 ‘술의 신선(神仙)’, 소식(蘇軾)은 ‘술의 친구’, 육방옹(陸放翁)은 ‘술 미치광이’, 죽림칠현(竹林七賢)의 유령(劉伶)은 ‘술의 귀신’으로 불린다.

그럼 도연명은 술의 무엇에 해당할까. 답은 ‘술의 성인(聖人)’이다. 그는 술을 구구절절 칭송했는데 그가 남긴 약 130여 수의 시 중 절반 정도에는 술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도연명이 술의 성인(聖人)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는 논문이 있어 소개한다.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인문논총, vol.65, pp. 305-329. 송용준 참고>

도연명은 ‘술의 시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의 시에는 도처에 술이 언급되어 있고, 현실 생활에서도 술을 즐겨 마셨다. 그의 시 126수를 살펴보면 직접 술이 언급되어 있는 시가 51편에 달하고, 시의 본문 속에 술과 관련된 시어로 ‘주(酒)’가 31번, ‘상(觴)’이 14번, ‘료(醪)’가 4번, ‘배(杯)’가 5번, ‘음(飮)’이 8번, ‘취(醉)’가 7번, ‘휘(揮)’가 6번 등장하여 “도연명의 시는 각 편마다 술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이다. 또한 그가 현실 생활 속에서 술을 얼마나 좋아했는가를 살펴보면 그 자신이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서(序)>에서 팽택령(彭澤令)에 나가게 된 이유를 대해 “당시 시국이 아직 안정되지 못해 멀리 나가 벼슬하는 것을 꺼렸으나 팽택현은 집에서 불과 백 리 떨어져 있고, 봉급으로 받는 밭의 수확물로 족히 술을 담글 수 있겠기에 가겠다고 했다.”라고 하였다. 또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에서 “흥겹게 술을 마시고 시를 지어 자신의 뜻을 즐기니, 옛날 태평성대의 임금 무회씨(無懷氏)의 백성인가, 갈천씨(葛天氏)의 백성인가?”라고 했으며, 소통(蕭統)은 <도연명전(陶淵明傳)>에서 “천성적으로 술을 좋아했지만 살림살이가 가난해 늘 마시지는 못했다. 친구들이 그의 형편을 알아 간혹 술상을 차려놓고 부르면 가서 언제나 흥겹게 마시며 반드시 취하고자 했다. 취해서 물러갈 때에는 언제나 떠나고 머무름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아전들더러 공전(公田)에 모두 찰수수를 심게 하고 ‘내가 늘 술에 취할 수 있으면 족하다’”라고 말했다.

필자 이길구는 한문학 박사다. 계룡산 자락에서 태어나 현재도 그곳에서 살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산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 계룡산과 실크로드에 대한 많은 저술을 출판한 바 있다. 현재는 한시(漢詩)에 관심을 두고 연구 활동과 저작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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