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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타령’에 왜 이태백이 등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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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타령’에 왜 이태백이 등장할까?
  • 이길구
  • 승인 2018.12.30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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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구의 중국 한시기행] <11>이백의 ‘아미산월가송촉승안입중경(峨眉山月歌送蜀僧晏入中京)’

이백의 <아미산월가(峨眉山月歌)>는 전편에서 소개한 것 말고도 또 한 편의 시가 있는데 <아미산월가송촉승안입중경(峨眉山月歌送蜀僧晏入中京); 장안에 들어가는 촉 스님 안을 전송한 아미산 달 노래>라는 시이다. 간략하게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아재파동삼협시(我在巴東三峽時) 내가 파동(巴東)의 삼협(三峽)에 있을 적에
서간명월억아미(西看明月憶峨眉) 서편 밝은 달을 보며 아미산(峨眉山)을 생각했지.
월출아미조창해(月出峨眉照滄海) 달은 아미를 나와 창해를 비추며
여인만리장상수(與人萬里長相隨) 나와 함께 만 리를 오래 따라 왔었네.

황학루전월화백(黃鶴樓前月華白) 황학루(黃鶴樓) 앞에 달빛이 눈부시게 밝을 때
차중홀견아미객(此中忽見峨眉客) 그 속에서 홀연히 아미의 객을 만났건만
아미산월환송군(峨眉山月還送君) 아미의 달은 또다시 그대를 전송하니
풍흠서도장안백(風吹西到長安陌) 바람은 서편으로 불어 장안(長安) 길에 닿겠네.

장안대도횡구천(長安大道橫九天) 장안대로에 구천 하늘이 비꼈으니
아미산월조진천(峨眉山月照秦川) 아미의 달은 진천(秦川) 땅을 비추겠네.
황금사자승고좌(黃金獅子乘高座) 황금 사자로 된 높은 자리에 올라
백옥주미담중현(白玉麈尾談重玄) 백옥 주미 들고서 깊은 이치 말하겠지.

아사부운체오월(我似浮雲滯吳越) 나는 뜬 구름처럼 오월에 머무는데
송봉성주유단궐(君逢聖主游丹闕) 그대는 임금 뵈러 붉은 궁궐로 가네.
일진고명만제도(一振高名滿帝都) 높은 이름 한 번 떨쳐 도성에 날리고서
귀시환농아미월(歸時還弄峨眉月) 돌아와선 또다시 아미의 달을 벗하겠네.

아미산 그림. 아미산은 지난 1996년 낙산대불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이 시는 장강(長江)에서 장안(長安; 지금의 서안)으로 떠나는 스님을 배웅하며, 그곳의 모습을 그려보는 작품이다. 가보고 싶은 장안(長安)이나 인근의 진천(秦川)과 같은 지명과 함께 아미(峨眉)라는 단어가 여섯 번이나 등장한다. 고향의 아미산 달은 노래의 주제라기보다는 출세한 스님과의 인연(因緣)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사용된 점이 특이하다.

중경(中京)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던 시기로 보아 작자가 760년 원상(沅湘) 부근에 머물 때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중경(中京)은 ‘장안(長安)’을 가리킨다. 《당서(唐書)》 〈숙종본기(肅宗本紀)〉에 따르면, 지덕(至德) 2년(757) 12월 촉군(蜀郡)을 ‘남경(南京)’으로 하고, 봉상군(鳳翔郡)을 ‘서경(西京)’으로 삼고, 본래의 서경(西京; 長安)은 ‘중경(中京)’으로 하였다. 호삼성(胡三省)은 장안이 낙양(洛陽), 봉상(鳳翔), 촉군(蜀郡), 태원(太原)의 중간에 있었기 때문에 ‘중경(中京)’이라 했다고 하였다. 그 후 상원(上元) 2년 (761)에 장안은 다시 서경이 되었다.

아미산 입구의 아미산 음각화. 청나라 황제 강희제(康熙帝) 글씨이다.

시가 좀 길고 난해한 것이 많아 자세하게 내용을 알아본다.

파동삼협(巴東三峽)에서 ‘파동’은 지명으로 ‘산남서도(山南西道)의 귀주(歸州)를 천보(天寶) 원년(742)에 파동군(巴東郡)으로 바꾸었다’는 자료가 있다. 삼협(三峽)은 〈아미산월가1〉에서 자세히 소개했으니 생략한다. 창해(滄海)는 여기서는 ‘장강(長江) 일대의 넓은 강과 호수’를 통칭한다.

황학루(黃鶴樓)는 지금의 호북성 무한시(武漢市) 장강 남안 황학기(黃鶴磯)에 있는 누각인데 예전에 비의(費禕)가 신선이 되어 황학을 타고 날아가다가 이 누대에 내려서 쉬었다는 전설이 있다. 차중홀견아미객(此中忽見峨眉客)의 객(客)은 제목에 있는 ‘촉 출신의 승려 안(蜀僧晏)’을 가리킨다. 진천(秦川)은 ‘장안이 있는 섬서성(陝西省)’ 일대이다.

황금사자(黃金獅子)는 《법원주림(法苑珠林)》에 따르면, ‘구자왕(龜玆王)은 황금 사자로 된 자리를 만들고 대진(大秦)의 비단깔개를 얹어서, 구라마습(鳩摩羅什)으로 하여금 설법(說法)하게 하였다’고 한다.

백옥주미(白玉麈尾)는 ‘흰 옥의 손잡이가 달린 사슴 꼬리로 만든 먼지떨이’를 말한다. 위진(魏晉) 시대에 현리(玄理)를 논하는 청담가(淸談家)들이 이것을 들고 고아(高雅)함을 과시했다고 한다. 《세설신어》에 왕이보(王夷甫)가 늘 이것을 들고서 노자의 이치를 논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중현(重玄)은 《노자(老子)》에서의 ‘깊고도 깊은(玄之又玄)’ 경지를 말한다.

이백은 달을 소재로 한 시가 많다. 결국 그는 장강 동정호(洞庭湖)에서 술을 마시고 뱃놀이를 하다가 물에 비친 달을 잡기 위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설화의 주인공이 됐다.

이번에는 이백과 달에 대해 알아보자.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정월에 뜨는 저 달은/ 새 희망을 주는 달/ …/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시월에 뜨는 저 달은/ 문풍지를 마르는 달…’

노래 ‘달 타령’의 일부다. 달을 노래하면서 이태백을 등장시켰다는 것은 그가 쓴 시에 달이 얼마나 많이 등장했는가를 짐작 할 수 있다. 노래 가사처럼 이태백이 직접 달에 가서 놀지는 않았지만, 달과 함께 한평생 즐긴 것만은 사실이다. 그의 시에서 달과 술을 빼면 남은 것이 무엇일까.

‘이태백이 놀던 달아’라는 것은 아마도 그가 중국의 장강 동정호(洞庭湖)에서 술을 마시고 뱃놀이를 하다가 물에 비친 달을 잡기 위해 빠져 죽었다는 설화 때문에 생기지 않았을까. 그러나 실제로 그는 노년에 어렵게 생활하면서 방랑하다가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도 사람들은 낭만파인 이태백이 달을 잡으려다 호수에서 죽음을 맞이한 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러한 연유로 이태백처럼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을 ‘주(酒)태백’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이게 좋은 말인지 나쁜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대시인 이백은 밝은 달과 달그림자를 벗 삼아 술판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이백은 사흘에 두 번은 술을 마셨지만 혼자 밤낮을 이어 마신 날이 많았다고 한다. 달 아래서 홀로 술잔을 기울인 그에게 술은 마치 신비 의식을 거행하는 구도자(求道者)와 같았다. 밝은 달과 어둑하게 물든 달그림자, 그리고 낭만파 시인 이백, 그렇게 셋이서 벌이는 술판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 옛날 이런 멋진 술친구를 만들었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그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다.

이백이 노래하면 달이 이리저리 서성였고, 춤을 추면 달그림자가 어지러이 움직였다고 한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된 것이다. 석(三) 잔을 마시면 대도(大道)와 통하고, 한(一) 말을 마시면 자연(自然)과 하나가 된다고 한 호언(豪言)이 빛을 발한 것인가. 한번 술 먹으면 삼백 잔이라는 통 큰 사나이. 동서고금(東西古今) 이런 술 시인은 존재치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이태백을 존경한다. 남이 하지 못하는 행동을 한다는 것. 난 이런 사람을 좋아한다.

이태백이 달을 멋지게 노래한 시 하나를 감상해보자. 제목은 <고랑월행(古朗月行); 밝은 달을 노래함>이다.

소시불식월(小時不識月)  어렸을 때는 달을 알지 못해
호작백옥반(呼作白玉盤)  흰 옥쟁반이라 불렀다네.
우의요대경(又疑瑤臺鏡)  또 요대(瑤臺)의 거울이
비재청운단(飛在白雲端)  날아가 흰 구름 끝에 걸렸는가 하였네.

선인수양족(仙人垂兩足)  신선은 두 발을 늘어뜨리고
계수하단단(桂樹作團團)  계수나무는 둥글고 둥글구나.
백토도약성(白兔擣藥成)  흰 토끼가 약을 찧어서
문언여수찬(問言與誰餐)  누구에게 먹이려하냐고 물어도 보았었네.

섬여식원영(蟾蜍蝕圓影)  두꺼비가 둥근 달을 먹어 들어가서
대명야이잔(大明夜已殘)  크고 밝은 달이 밤에는 먹은 자취 남아있다네.
예석락구오(羿昔落九烏)  옛날에 후예(后羿)가 아홉 마리의 까마귀를 떨어뜨려
천인청차안(天人清且安)  하늘이 맑아지고 사람들이 편안해졌다네.

음정차윤혹(陰精此淪惑)  달의 정기(精氣)가 미혹되어 빠져버리면
거거부족관(去去不足觀)  갈수록 볼 것이 없을 것이네.
우래기여하(憂來其如何)  근심이 몰려오니 이를 어찌하나
처창최심간(悽愴摧心肝)  마음 깊은 곳 슬프고 애달프게 하네.

이 시는 16구이니 절구나 율시가 아닌 오언고시(五言古詩)로 악부(樂府)이며, 옛 제목을 빌려 지은 시로 잡곡가사(雜曲歌辭) 중 하나이다.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며 마음속 생각을 적은 것으로 보인다. 어린 시절 동심으로 상상한 달에 대한 기억이 재미있다. ‘낭월행(朗月行)’이란 제목으로 남긴 시 중 특히 기억되는 것은 포조(鮑照)와 장점(張漸)이라는 시인이다. ‘행(行)’은 ‘노래’를 말한다.

이백은 달과 인연이 깊다. 왼쪽 허리에 칼을 찬 것이 특이하다.

시를 분석해보자. 낭월(朗月)은 ‘맑고 밝은 달(朗은 밝을 낭)’이며 요대(瑤臺)는  ‘옥으로 만든 누대’라는 뜻으로, 서왕모(西王母)를 비롯한 선녀들이 거처하는 궁전이다. 단단(團團)은 ‘둥근 모양(團은 둥글 단)이다. 백토도약성(白兔擣藥成)은 전설에 달 속에는 하얀 옥토끼가 있어 계수나무 아래에서 약방아를 찧어 인간에 뿌려 준다는 것이다.

섬여식원영(蟾蜍蝕圓影)은 ‘두꺼비가 달을 먹고 있는 것을 표현’했는데 기막히다. 옛날에 예(羿)를 배신한 항아(姮娥)는 아름다운 모습을 잃고 두꺼비의 모습으로 변하여 달을 먹어 치우고 있어 달이 줄어들고 있다는 전설을 인용하였다. 선인수양족(仙人垂兩足)은 ‘달이 커지면 달에 사는 신선의 두 발이 보이기 시작 한다’는 뜻. 대명(大明)은 ‘크고 밝은 달’이다.

예석락구오(羿昔落九烏)는 ‘옛날 예(羿)가 아홉 개의 해(까마귀)를 활로 떨어뜨렸다는 것’으로 ‘후예(后羿)’, ‘이예(夷羿)’라고도 한다. 예(羿)는 요(堯)임금의 신하였는데 활을 잘 쏘았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요임금 때 하늘에 해가 열 개나 나타나서 곡식과 초목이 다 말라죽어 사람들이 굶주리게 되었다. 게다가 맹수와 긴 뱀까지 나타나 해를 끼쳤다. 요임금이 그에게 활로 아홉 개의 해를 떨어드리게 하고 맹수와 긴 뱀도 죽이게 하자 백성들이 모두 기뻐했다.

음정(陰精)은 ‘음기의 근원’이니 곧 ‘달의 정기(精氣)’이며, 윤혹(淪惑)은 ‘미혹되어 빠지다’는 뜻이다. 당 현종이 양귀비에 빠져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처창(悽愴)은 ‘처참한 모양’으로 ‘몹시 슬프고 애달픔’이며, 심간(心肝)은 ‘심장과 간장’ 즉, ‘깊은 마음속’이다.

필자가 2014년 추석에 그린 달 모습. 달을 보면서 인간의 얼굴을 형상화했다.

달은 이백이 가장 좋아하고 또 많이 읊조린 대상이었다. 티 없는 모습에 이끌려 자신의 외로움을 하소연하거나, 가을 정취를 돋우기 위해 동원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백과 달과의 개념을 이해 할 수 있는 좋은 시구이다. 옥토끼가 계수나무 밑에서 약을 찧고 있는 티 없이 맑은 유년의 달에 어느덧 그늘이 드리워진다. 두꺼비가 먹어 들어 이지러진 달이 유독 그의 근심을 자아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이지러진 달, 즉 ‘윤혹(淪惑)된 달’이라는 표현 속에는 이미 상징적 의미가 부여됐음을 알 수 있다. 유년 이후의 달은 못된 두꺼비에게 먹히는 개탄스러운 존재의 다른 이름이다. 앞서 예시한 작품들 속에 담긴 이백의 강한 정치 성향을 고려한다면, 달은 당대 군왕의 성총(聖聰)을 어지럽히며 파멸의 길을 자초하고 있는 양귀비(楊貴妃)요, 엄습해 오는 어두움은 다가올 안록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의 난에 대한 징조(徵兆)라는 것이 주석가(註釋家)들의 견해이다.

어휘의 중복을 피하고자 이 시에서는 달에 대한 별칭이 많이 사용되었다. 원문의 ‘원영(圓影)’, ‘대명(大明)’, ‘음정(陰精)’은 모두 달에 대한 애칭이다. 또 달에 대한 전설과 신화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데 달에는 신선도 있고 계수나무도 있다. 토끼가 절구질하여 신선이 되는 약을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이외에도 달에는 다리가 세 개인 두꺼비가 사는데 달이 기우는 것은 이 두꺼비가 달을 먹기 때문이란다.

필자 이길구는 한문학 박사다. 계룡산 자락에서 태어나 현재도 그곳에서 살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산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 계룡산과 실크로드에 대한 많은 저술을 출판한 바 있다. 현재는 한시(漢詩)에 관심을 두고 연구 활동과 저작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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