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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부귀영화 헛되고 허되도다[이길구의 중국 漢詩 기행] <3>백거이(白居易)의 ‘香爐峰下草堂初成’

여산 안에는 여러 개의 공원이 있는데 그 중 백미(白眉)는 백거이(白居易, 772-846)를 감동시킨 꽃길인 화경(花徑)이 그것이다.

백거이는 이백(李白), 두보(杜甫), 한유(韓愈)와 더불어 이두한백(李杜韓白)으로 불리는 당나라 때의 대문장가로 여산에 많은 흔적을 남겼다. 815년에 강주(江州, 현재의 구강) 사마(司馬)로 좌천되어 온 그는 여산을 특히 좋아하였는데 어느 해 늦봄 이 산속의 대림사(大林寺)에 왔다가 작은 오솔길을 발견했다.

길을 따라가 보니 복사꽃이 만발하여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졌고, 선경(仙境)에 감동한 나머지 즉석에서 <대림사도화(大林寺桃花)>라는 시를 지었다. 그리고는 돌 위에 “화경(花徑: 꽃길)”이라는 두 글자를 새겼다고 전해진다.

여산 화경공원. 백거이가 대림사에 왔다가 복사꽃이 만발한 것을 보고 감탄하여 화경(花徑)이라 손수 써서 바위에 새겨 두었다.

후에 사람들이 백거이를 그리며 이곳을 ‘백사마화경(白司馬花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930년 “화경(花徑)” 석각이 발견되었고, 고증학자들이 백거이의 친필이라고 밝혔으며 공원으로 조성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백거이의 초당도 공원 안에 함께 복원되어 여산에 온 여행객들은 누구나 들르는 명소이다.

백거이(白居易, 樂天)는 30세 무렵에 장한가(長恨歌)를 지어 유명해졌는데, 원화(元和) 10년(815년) 재상 무원형(武元衡)이 암살된 사건이 벌어지자, 배후를 밝히라는 상소를 올렸다가 월권행위라 하여 강주(江州, 江西省 九江市)의 사마(司馬)로 좌천당했다. 사마란 벼슬은 ‘자사를 보좌하는 직책’으로 특별히 정해진 일이 없는 한직이었다.

815년 7월에 강주에 온 그는 818년 겨울에 충주자사(忠州刺史)로 갈 때까지 4년 동안 여산의 구석구석을 유람했고, 여산에 은거한 문인 학자 승려들을 만나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여산의 빼어남을 표현한 “광려의 빼어난 경치는 천하의 으뜸(匡廬奇秀甲天下)”이란 말은 후세에 여산을 소개할 때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명구이다.

그는 여산의 향로봉 아래에 초가집을 짓고 많은 문학작품을 남겼다. 초가집을 지으면서 쓴 시가 바로 오늘 소개할 <향로봉(香爐峰) 아래 초가집을 막 짓고>라는 시이다.

여산 화경공원안의 백거이의 동상과 초당.

일고수족유용기(日高睡足猶慵起)
소각중금불파한(小閣重衾不怕寒)
유애사종의침청(遺愛寺鐘欹枕聽)
향로봉설발렴간(香爐峰雪撥簾看)
광려편시도명지(匡廬便是逃名地)
사마잉위송로관(司馬仍爲送老官)
심태신녕시귀처(心泰身寧是歸處)
고향하독재장안(故鄕何獨在長安)

해 높이 뜨고 잠 실컷 잤건만 일어나기 싫은 것은
작은 집에 겹이불 덮어 추위가 두렵지 않기 때문이네.
유애사 종소리를 베개 베고서 듣고
향로봉 잔설 주렴 걷고 바라보네.
여산은 속세 명리 피해 살기 좋은 곳이고
사마 직책은 노후의 벼슬로 제격이네.
마음 편하고 몸 편안하면 그곳이 돌아갈 곳이니
고향이 유독 장안이여야만 하겠는가?

이 시는 백거이 나이 46세로 여산 향로봉 아래 초당을 지을 때, 자신의 심경을 읊은 시이다. 좌천 초기에 느꼈던 분하고 서글픈 감정은 눈 녹듯 사라졌다. 봉우리 아래 초가집을 지어 비록 춥고 누추한 곳이지만 해가 중천에 떠오를 때까지 늦잠을 자는 모습이 한가롭다. 사찰의 종소리를 듣고 향로봉의 잔설을 완상(玩賞)하는 여유로움이 있다.

시의 후반은 세상 부귀(富貴)의 헛됨을 노래한 것이다. 여산은 원래 은둔자 광속(匡俗)이 살았던 곳이기에 자신도 그렇게 해보고 싶고, 사마라는 낮은 직책은 노후의 삶을 보내기에 딱 알맞다는 것이다.

시의 내용을 분석해보자. 먼저 향로봉(香爐峰)은 ‘여산 북쪽 봉우리’이며, 중금(重衾)은 ‘솜을 넣지 않고 겉과 안을 맞대어 여민 겹이불’을 말한다. 유애사(遺愛寺)는 향로봉 아래에 있던 사찰이며 함련(頷聯)의 ‘듣다’와 ‘보다’의 청(聽)과 간(看)은 무의식적인 행동이고, 또한 ‘듣다’ ‘보다’의 뜻인 문(聞)과 견(見)은 의식적 행동이다.

광려(匡廬)는 ‘은자가 살던 여산(廬山)’을 가리키는데 전설에 따르면 은주(殷周) 시절에 은둔자(隱遁者) 광속의 일곱 형제가 여산에 초당을 짓고 살았다고 전한다. 사마(司馬)는 ‘주(州)의 장관을 보좌하는 직책’이며 송로(送老)는 ‘여생을 보냄’을 뜻한다.

여기서 한시(漢詩)에 대해 기본적인 법칙을 간단히 알아본다. 한시는 1구의 자수(字數)에 따라 5언(言)·7언(言)의 구별이 있는데, 1구 5자인 경우는 기(起)·승(承)·전(轉)·결(結)의 네 구로 된 오언절구(五言絶句), 7자인 경우 칠언절구(七言絶句)라 하며 여덟 구로 된 시를 오언율시(五言律詩), 칠언율시(七言律詩)라고 한다. 형식에 얽매이는 것은 근체시(近體詩)라 하고, 자유로운 형식을 고체시(古體詩)라 한다.

율시는 절구보다 형식이 매우 까다로운데 대우(對偶)·성운(聲韻)·자수(字數)·구수(句數)가 모두 엄격한 규율에 맞아야 한다. 이 형식에 대해서는 나중에 천천히 예를 들어가면서 살펴보고자 한다.

율시의 편법은 기승전결(起承轉結)의 넷으로 나누어지는데 1·2구를 기(起), 3·4구를 승(承), 5·6구를 전(轉), 7·8구를 결(結)이라 한다. 일반적으로는 수련(首聯)·함련(頷聯)·경련(頸聯)·미련(尾聯)이라 한다.

압운(押韻)은 시의 짝수가 되는 구절에 같은 음운(音韻)의 글자를 쓰는 것을 말한다. 압운법(法)은 제2구·제4구·제6구·제8구의 끝 자에 운(韻)을 달아야 한다. 형식은 운자를 평성(平聲)과 측성(仄聲)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평기식과 측기식이 있는데 위의 시의 운자(韻字)는 평성인 한(寒)-간(看)-관(官)-안(安)이므로 평기식이다.

율시의 대우(對偶)는 시구(詩句)가 서로 대조적인 내용을 써서 서로 대응되도록 하는 것이다. 함련과 경련은 반드시 대구(對句)를 써야 한다. 즉, 함련의 3구와 4구, 경련의 5구와 6구는 반드시 서로 내용상에 대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위의 시의 대구(詩句)는 함련(頷聯, 承)과 경련(頸聯, 轉)에서 유애사(遺愛寺)와 향로봉(香爐峰), 종(鐘)과 설(雪), 기침청(欹枕聽)과 발렴간(撥簾看), 광려(匡廬)와 사마(司馬), 편시(便是)과 잉위(仍爲), 도명지(逃名地)와 송노관(送老官)이 대구를 이루고 있다. 한시의 이론에 대해서는 종종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상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참고로 간송미술관에는 겸재 정선(鄭敾)이 그린 여산초당도(廬山草堂圖)가 있다. 보물 제1953호로 지정된 이 작품은 여산에 초가집을 짓고 은거한 백거이(白居易)의 고사를 그린 작품이다.

정선의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 중 규모와 표현에 있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힌다. 주로 수묵을 즐겨 사용한 정선의 화법과 달리 짙은 채색화로 제작했다는 점에서 희소성이 높아 보물로 지정됐다고 한다.

여산의 백거이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앞서 말한 <대림사도화(大林寺桃花)>라는 시이다. 대림사(大林寺)는 여산 대림봉에 있던 절로 삼론종(三論宗)의 지개(智鍇)가 창건(創建)한 절로 알려졌는데 지금은 존재치 않는다. 한번 음미해보자.

인간사월방비진(人間四月芳菲盡)
산사도화시성개(山寺桃花始盛開)
장한춘귀무멱처(長恨春歸無覓處)
부지전입차중래(不知轉入此中來)

인간 세상 사월이라 꽃이 모두 졌는데
산사의 복숭아꽃 이제 피어 한창이네
한 번 가버린 봄 찾지 못해 애탔는데 
어느새 이곳에 와 있는 줄은 몰랐네.

백거이의 초당 내 암각 한 대림사도화(大林寺桃花)의 시

내용을 풀이해보면 사월(四月)은 음력 4월이므로 양력으로는 5월 중하순이다. 방비(芳菲)는 ‘향기 날 방’, ‘풀 이름 비’로 ‘향기로운 풀’이며 장한(長恨)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원한(怨恨)’이란 뜻인데 여기서는 ‘못내 아쉽다. 무척이나 안타깝다’로 이해하면 된다. 멱(觅)은 ‘찾다, 구하여 찾다’의 의미이다.

이 시를 읽으면 산과 산 아래의 세계를 잘 이해시켜 준다. 평지에는 어느새 봄꽃이 떨어졌는데 산 위로 가면 아직 꽃이 한창인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산사(山寺)에 가면 이 시를 더 잘 이해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봄이 너무 짧아 예전처럼 이런 정취를 느끼기가 힘들다. 꽃이 피면 무조건 꽃구경을 해야지 차일피일 미루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다. 비바람이라도 몰아치면 순식간에 꽃잎은 떨어져 나간다. 마치 인생이 나이가 들면 후다닥 바람처럼 가듯이.

필자 이길구는 한문학 박사다. 계룡산 자락에서 태어나 현재도 그곳에서 살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산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 계룡산과 실크로드에 대한 많은 저술을 출판한 바 있다. 현재는 한시(漢詩)에 관심을 두고 연구 활동과 저작에 몰두하고 있다

이길구  gg2009@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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