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달 풍경 사진에 담듯 그려낸 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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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 달 풍경 사진에 담듯 그려낸 명시
  • 이길구
  • 승인 2018.12.22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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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구의 중국 한시(漢詩)기행] <10> 이백(李白)의 ‘아미산월가(峨眉山月歌)’

필자는 한문학을 전공하였지만, 중국어는 잘 모른다. 종종 친구들이 만나면 “한문을 많이 아니까, 중국어 배우기가 쉽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많이 한다. 이럴 때 필자는 난감하다.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어책을 이해하는 것은 좀 수월할지 몰라도, 말하기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한자 좀 안다고 뇌리(腦裏)에 있으면 한자를 모르는 사람보다 더 불리하다.

매번 중국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중국인을 만나면 회화가 잘되지 않는다. 그냥 간단한 의사소통만 할 뿐이다. 얼마 전에도 맘먹고 아주 오랜 기간 중국여행을 다녀왔다. 가기 전에 나름 중국어를 공부했지만 역시 언어는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더 노력할 수밖에.

아미산 전경. 마치 신선이 사는 것 같다.

이번에 소개하는 시는 이백(李白)의 <아미산월가(峨眉山月歌)>이다. 아미산은 중국의 대표적 불교 명산이다. 봄에는 두견화(杜鵑花), 여름에는 피서지(避暑地), 가을에는 단풍(丹楓), 겨울에는 설경(雪景)이 유명하다.

내가 본 아미산은 산 아래에는 비가, 중턱에는 안개가, 위에는 사람이, 또 그 위에는 불탑이 있었다. 하늘과 손을 내밀면 잡힐 듯했다. 세상을 살면서 또 다른 세상을 만났다. 역대 이백(李白) 등 대(大)시인이 이곳에 와서 왜 시를 남겼는지 알 것 같다.
 
그가 쓴 <아미산월가(峨眉山月歌)>를 불러 보자.

아미산월반윤추(峨眉山月半輪秋) 아미산의 반달이 가을밤에
영입평강강수류(影入平羌江水流) 그림자 평강강에 어리어 흘러가네
야발청계향삼협(夜發淸溪向三峽) 밤에 청계를 떠나 삼협으로 향하노니
사군불견하투주(思君不見下渝州) 그대 그리며 못 본 채 유주로 가네.

이 시는 시인이 26세에 처음으로 고향인 촉나라 땅을 떠나며 지은 작품이다. 고유명사 5개 12자(아미산, 평강강, 청계, 삼협, 유주)를 빼놓고 나머지 16자만으로 작시(作詩)한 것으로 유명하다. 제한된 스물여덟 글자 안에 다섯 지역에 이르는 긴 여정을 응축(凝縮)시키면서도, 그 연결이 매끄러워 만고(萬古)의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아미산은 불교 명산으로 봄에는 두견화, 여름에는 피서지,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이 유명하다.

내용을 간단히 분석해보자.

아미산(峨眉山)은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 서남쪽 아미산시(峨眉山市)에 있는 산으로 높이가 3099m에 달한다. 산 모양이 ‘아미’, 즉 ‘미인의 눈썹’과 비슷해서 이런 이름이 붙였다. 이 산이 대아·중아·소아(大峨·中峨·小峨)의 세 봉우리로 형성되어 있어 ‘삼아(三峨)’라고도 불린다. 반륜(半輪)은 ‘둥근 형상의 반쪽’, 즉 ‘반달’을 말한다.

평강강(平羌江)은 아미산 동북을 흐르는 강으로 지금의 청의강(靑衣江)이다. 이 강은 사천성 노산현(蘆山縣)에서 발원하여 민강(岷江)으로 흘러든다. 청계(淸溪)는 평강강 하류의 마을, 즉 사천성 건위현(犍爲縣)에 있던 ‘청계역(淸溪驛)’을 가리킨다.

삼협(三峽)은 ‘높은 산 사이 물이 흐르는 세 골짜기’로, 호북성 파동현(湖北省 巴東縣)의 서릉협(西陵峽), 귀향협(歸鄕峽), 무협(巫峽)을 말한다. 양편 기슭 7백 리에 걸쳐 산이 겹쳐 있어 하늘과 해를 가리므로, 한낮이 아니면 해를 볼 수 없다고 한다. 참고로 기주(夔州)부터 귀주(貴州)에 이르는 장강(長江)에 수많은 협곡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장강삼협(長江三峽)이다.

군(君)은 ‘그대’인데, 달을 가리키는 2인칭 대명사로서 보통 ‘아미산에 사는 이백의 친구’를 지칭한다. 유주(渝州)는 지금의 ‘중경시(重慶市)’로 주(周)나라 때 파자국(巴子國), 진한(秦漢)대에는 파군(巴郡)이 있던 곳이다.

이 시는 시인이 아미산에 올랐다가 산중의 ‘가을 반달’을 읊은 작품이다. 작자는 이 산의 멋진 반달이 평강 강물에 비쳐 함께 흘러간 모습을 보았다. 그는 또 이날 밤에 청계 마을을 지나 삼협으로 떠난다. 하지만 삼협은 한낮이 아니면 해를 볼 수 없는 곳이라, 산에 막혀 아미산에 떴던 그달을 볼 수 없음을 짐작하고 있다.

작자는 ‘아미산-평강강-청계-삼협-유주’와 같이 촉 땅을 떠난 순서대로 노래하고 있다. 가을밤 달의 풍경을 사진에 담듯 그려낸 명작이다. 이곳 지방인 성도는 예로부터 ‘하늘이 내린 풍요의 땅’이란 뜻으로 ‘천부지국(天府之國)’이 아닌가. 이백의 방랑자 기질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장강 유역을 떠돌던 그의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볼 수 있다. 그가 유주로 내려가는 목적도 친구와 함께 달을 보면서 술이나 마셔보자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중국의 명산을 표시한 것이다. 녹색은 오악(五嶽)을, 살구색이 불교 명산이다.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 아미산에 대해 좀 더 알아본다. 아미산은 불교의 산으로 중국 4대 불교 명산으로 꼽힌다. 당나라 때까지는 도교 사원이 많았으나 불교가 성행하면서 불교 사찰이 많아졌다. 산서성(山西省)의 오대산(五台山), 절강성(浙江省)의 보타산(普陀山), 안휘성(安徽省)의 구화산(九华山)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불교 명산이 되었다. (위 지도 참고)

참고로 오대산은 문수보살(文殊菩薩), 보타산은 관음보살(觀音菩薩), 구화산은 지장보살(地藏菩薩), 아미산은 보현보살(普賢菩薩)의 도량(道場;불교에서 불도(佛道)를 닦기 위해서 설정한 일정한 구역)라고 한다. 아미산 곳곳의 절에서 흰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을 모신 보현전(普賢殿)을 어김없이 만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미산 정상 금정사의 사면십방보현좌상(四面十方普賢座像). 높이가 48m에 달한다.

아미산 산중에 있는 복호사(伏虎寺)는 도교 사원으로 창건되었다가 불교 사찰로 변했으며 보국사(報國寺), 만년사(萬年寺), 금정사(金頂寺), 우심사(牛心寺) 등의 절이 많이 있다. 특히 정상의 금정사에는 높이 48m, 무게 660톤에 이르는 사면십방보현좌상(四面十方普賢座像)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미산에는 4개의 볼거리와 4개의 뛰어난 경관이 있다고 자랑한다. 안내판에 적혀 있는 내용을 읽어 보니 대략 이런 내용이다.

1.보국사(報國寺): 아미산 등산의 기점이며 최대의 사찰이다. 명(明) 시대에 건립되고 강희제(康熙帝)가 ‘천하명산(天下名山)’이라는 명패를 하사(下賜)했다.
2.청음각(淸音閣): 아미산의 중부에 있으며 푸른색의 물이 흘러내리고 이곳 큰 바위가 ‘소의 심장 같다’고 하여 ‘우심석(牛心石’)이라 부른다.
3.만년사(萬年寺): 진(晉) 시대 건립된 것으로 절 안의 무량전에 어른 키의 청동으로 만든 코끼리를 탄 보현좌상이 있다. ‘백수지’라는 연못이 절 왼쪽에 있고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4.금정(金頂): 아미산의 정상에 있으며 아래를 내려다보면, 바다 같은 구름이 파도가 치는 것과 같고 붉은색으로 변할 땐 장관을 이루고 달빛에 비취는 절경도 그만이다. 신등(神燈)이라 불리는 불빛이 밝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기현상(奇現象)도 있다.

아미산 정상에서 필자. 구름 위에 서 있는 기분이다.

필자는 지도를 살펴보고 산 전체를 살펴볼 여건이 못 되어 맨 아래 보국사를 살피고 만년사를 들렀다가 금정에 오르기로 했다. 보국사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대충대충 구경하고 금정에 서둘러 오르기 위해 셔틀버스를 탔다. 산 아래에서 산 중간까지 가는 데 1시간이나 걸린다. 42km라니 멀기만 하다. 굽이 굽은 길을 얼마나 돌았는지 멀미가 날 정도이다. 산이 얼마나 큰지 짐작이 안 된다.

산세는 그리 험하지 않으나 아열대 식물들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다. 중간 길가에 수만 년 된 화석(化石)이라는 큰 검은 돌이 여기저기 보인다. 버스 종점인 뇌동평(雷洞坪)에서 금정 정상으로 오르는 산길로 접어드니 상점들이 한 줄로 줄지어 있다. 옷을 빌려주는 곳도 있고 가마꾼들도 보인다. 20여 분 걸어서 올라가니 접인전(接引殿)이다. 이곳에서 다시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는 상상을 초월한다. 101명이 동시에 탈 수 있는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10분 후 도착한 한 곳은 아미산 정상인 금정이다.

정상에 오니 비가 언제 왔냐는 듯이 화창하다. 구름과 안개에 덮여 있어 경이(驚異)로운 풍광이 연출된다. 산 정상에 서면 발밑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볼 수 있고, 오후에는 ‘불광(佛光)’이라 불리는 신비로운 무지개 현상이 출몰한다는 곳이다. 또한, 사천 분지와 티베트 고원의 경계쯤에 위치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1년 중 200일 이상 안개에 휩싸여 몽환(夢幻)적인 풍경이 연출되는 곳이기도 하다.

아미산 일출. 태산(泰山), 황산(黃山), 구화산(九華山)과 함께 4대 경관을 자랑한다.

하지만 안개가 너무 짙어 먼 곳은 도저히 볼 수 없다. 만불정(萬佛頂)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은 온 산하(山下)가 바다 같은 구름뿐이다. 이것을 일러 ‘장관(壯觀)’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저녁 낙조(落照) 때는 붉은 구름으로 변한다 하니 일몰이 기대되는 곳이다. 일출 역시 태산(泰山), 황산(黃山), 구화산(九華山)과 함께 4대 경관으로 자랑한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 일출과 일몰 다 기대할 수 없다. 서둘러 하산해야 한다. 다음에 꼭 다시 와서 일출과 일몰을 감상하고 싶다.

그리고 이번에 보지 못한 불광(佛光; 오후 2, 3시경이 넘으면서 금정사의 바위 위에서 내려다보면 오채색(五彩色)의 구름들을 볼 수 있고 또한 그림자가 주인을 떠나지 않듯이 그 속에 자신의 모습도 보인다는 것)과 성등(星燈; 어떤 때는 불빛이 밝다가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다음에는 꼭 체험했으면 한다. 다른 곳에서 결코 볼 수 없는 아미산의 진기한 풍경이기 때문이다.

필자 이길구는 한문학 박사다. 계룡산 자락에서 태어나 현재도 그곳에서 살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산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 계룡산과 실크로드에 대한 많은 저술을 출판한 바 있다. 현재는 한시(漢詩)에 관심을 두고 연구 활동과 저작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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