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조화의 원리 담은 시(詩), 그 자체가 당나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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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조화의 원리 담은 시(詩), 그 자체가 당나라 역사
  • 이길구
  • 승인 2018.12.10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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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구의 중국 한시(漢詩)기행] <8> 두보(杜甫)의 ‘강촌(江村)’

이번에는 이백(李白,701~762)과 더불어 중국의 최고 시인으로 알려진 두보(杜甫,712-770)에 대해 알아보자. 그는 당나라 시인으로 자는 자미(子美), 호는 ‘두릉(杜陵)’ 또는 ‘소릉(少陵)’이다. 장안(長安)의 남쪽 근교에 있는 두릉 땅에 그의 선조가 살았기 때문이다.

두보의 많은 시 가운데 대표작 한두 편을 고르는 일은 쉽지 않다. 이백과 두보는 회자(膾炙)하는 시가 워낙 많아서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이 많다.

그의 시는 대략 1600여 수(首)가 전하는데, 〈춘망(春望)〉 〈월야(月夜)〉 〈곡강(曲江〉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 〈강촌삼수(江村三首)〉 및 장편의 〈북정(北征)〉 등이 널리 알려진 시편들이다. 특히 〈북정〉은 두보 시 가운데서도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꼽히는데, 나라와 군주에 대한 충성, 가족에 대한 애정을 노래한 것으로 비장미가 넘친다.

두보초당 입구. 초당은 사천성 성도(成都) 서쪽 외곽에 있는 완화계(浣花溪)의 기슭, 백화담(百花潭) 북쪽에 위치한다.

필자와 두보의 인연은 2년 전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를 여행하면서부터다. 이곳에서 두보초당을 처음 만났다. 학창시절 이백과 두보는 약방에 감초(甘草)처럼 많은 이야기가 나오지만, 실제로 그가 어디에서 살았고 무엇에 뜻을 두었는지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성도에 들렀다가 두보초당에 들른 것이다. 당시 필자는 이곳 초당에서 두보의 많은 업적에 큰 충격을 받고 한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초당 내 서점에서 그에 관한 서적을 다량 구입하여 국제우편으로 배송하였고 한시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니 필자가 한시 공부에 전념하게 된 동기는 두보초당을 관람한 이후부터인 것이다.

두보초당은 당시 그가 살았던 초가집을 재현해놓은 곳이다. 두보는 760년 친지와 벗들의 도움으로 초당을 지었다. 초당은 성도(成都) 서쪽 외곽에 있는 완화계(浣花溪)의 기슭, 백화담(百花潭) 북쪽에 위치한다. 그곳은 주위 환경이 깨끗하고 속세와 무관한 환경을 지니고 있어 시인이 살기에는 최적인 곳이다.

이 시기에 두보의 시들을 보면 오랜 혼란을 겪은 후에 비로소 안정을 찾은 내면이 드러난다. 집은 비록 누추했지만 오랜 여정에 지친 두보와 가족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안식처이다.

두보자화상. 우국애민(憂國愛民)에 대한 고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때 두보는 시를 쓰면서 초당(草堂) 주변의 자연을 찬미하고 자연 속에서 사는 일상의 즐거움을 노래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오늘 소개할 <강촌(江村)>이라는 시이다. 이 시는 칠언율시다. 본래 칠언율시는 초당(初唐) 궁정 시인들의 화려하고 수식적인 면모를 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두보의 <강마을>, 즉 <강촌>은 지극히 일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칠언율시의 제재와 내용을 변화시키고 확장하는데 크게 기여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이 시는 우리나라 국어와 고전 교과서에 실리는 명작(名作)이다. 두보의 대표 시중 하나인 <강촌(江村)>이라는 시를 음미해본다.

청강일곡포촌류(淸江一曲抱村流)
장하강촌사사유(長夏江村事事幽)
자거자래당상연(自去自來堂上燕)
상친상근수중구(相親相近水中鷗)
노처화지위기국(老妻畫紙爲棋局)
치자고침작조구(稚子敲針作釣鉤)
다병소수유약물(多病所須唯藥物)
미구차외갱하구(微軀此外更何求)

맑은 강물 한 구비 마을을 안고 흐르니,
긴 여름 이 강촌이 일마다 한가롭구나.
멋대로 왔다 멋대로 가기는 마루 위의 제비요,
서로 친하고 가깝기는 물에 노는 갈매기라.
아내는 종이에 장기판을 그리고,
아들은 바늘 두드려 낚시를 만드네.
숱한 내 병에 오직 약만이 소용되나니,
하찮은 이 몸 이밖에 또 뭘 바라랴.

붉은 담장이 둘러선 꽃길의 끝에는 초당영벽(影壁)이 조성되고 청나라 후반에 벽에 청자를 박은 ‘초당’이라는 두 글자가 유난히 눈에 띈다.

간단히 어구(語句)를 살펴본다. 강촌(江村)은 ‘강가의 마을’로 ‘완화계(浣花溪)’의 별칭이다. 일곡(一曲)은 ‘한 굽이’로 곧 ‘강물이 굽이치는 곳’이다. 당상(堂上)은 ‘마루 위’인데, 다른 판본(板本)은 ‘당상(堂上)’이 아니고 ‘양상(梁上)’으로 된 곳도 있다. 이 경우 ‘마루 위의 제비’가 아니라, ‘들보 위의 제비’가 된다. 양상의 뜻은 ‘들보 위’로 ‘칸과 칸 사이의 두 기둥머리를 건너지른 나무’를 뜻한다. 참고로 양상군자(梁上君子)라는 성어가 있는데 ‘도둑’의 다른 이름이다.

기국(棋局)은 ‘바둑판, 장기판’, 치자(稚子)는 ‘어린아이’, 고침(釣鉤)은 ‘낚싯바늘’, 약물(藥物)은 ‘약재(藥材)가 되는 물건’이다. ‘다병소수유약물(多病所須唯藥物)’에 대해, 일부 판본은 ‘단유고인공록미(但有故人供祿米)’로 되어 있는데 이 경우 ‘다만 벗이 봉록으로 받은 쌀을 보내 준다면’으로 해석된다. 미구(微軀)는 ‘미약한 몸’으로 ‘자기’의 겸칭으로 사용된다.

이 시를 작성한 시기는 긴 여름(長夏)이라고 하여 음력 6월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성도 초당에 안착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은 두보는 집 주변 강마을의 한가함을 그린 것이다. 강마을에는 한가롭게 제비와 갈매기가 오가고 아내는 무료함에 종이 위에 바둑판을 그리고, 아이들은 바늘로 낚싯바늘을 만든다. 지극히 소탈한 일상적인 풍경이다. 시인의 시선(視線)이 강마을에서 집안 풍경으로, 그리고 자신의 내심으로 옮겨짐을 볼 수 있다.

두보초당은 당시 그가 살았던 초가집을 재현해놓은 곳이다. 두보는 760년 친지들과 벗들의 도움으로 초당을 지었다.

시에 대해 더 알아보자. 이 시는 4연(聯)으로 이루어진 칠언율시의 정형시이며, 선경후정(先景後情)의 구조로 시상(詩想)을 전개한 서정시이다. 첫째 연(聯)은 강촌 여름날의 안정된 생활상을 서정적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다음 2, 3연을 자연스레 유도한다.

제3구(句)와 제5구는 마을(村)과 관계있고, 제4구와 제6구는 강(江)과 관계되며, 제2연과 3연은 완벽한 대구(對句)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 연은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을 살고자 하는 시인의 자족적인 심사를 드러냄으로써 시상을 마무리했다.

두보는 이백(李白)과 더불어 이두(李杜)라고 일컬어지는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서 ‘시성(詩聖)’이라 칭송되나, 그의 생애는 고향을 상실한 채 병약한 몸으로 평생을 방랑하며 가난과 맞서던 불우한 삶이었다. 그러나 이 시를 집필할 무렵 모처럼 사천성(四川省)의 성도(成都)에 정착하여 안온하게 생활하며 이전부터 앓았던 폐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49세였으며, 그로부터 약 4년 동안은 시(詩)에도 드러나 있듯이 ‘늙은 아내는 종이에 바둑판을 그리고, 어린 아들은 낚싯바늘을 만드는’ 한가하고 자적(自適)하는 나날을 보냈다.

두보의 시풍은 우수(憂愁)를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제재를 많이 취했으며, 시율(詩律)의 구속을 싫어한 이백과는 달리 엄격한 규칙을 지켜 표현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중국의 고전 시 중 가장 율격(律格)이 엄격하다는 율시가 그에 의해 본격적인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두보초당 시사당(詩史堂). 그가 쓴 시는 문학을 넘어 역사에도 큰 보탬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시의 운(韻)자는 ‘우(尤)’이며, 압운은 류(流)·유(幽)·구(鷗)·구(鉤)·구(求)이다. 평측(平仄)은 차례로 ‘평평측측측평평(平平仄仄仄平平), 평측평평측측평(平仄平平仄仄平), 측측측평평측측(仄仄仄平平仄仄), 평평평측측평평(平平平仄仄平平), 측평측측평평측(仄平仄仄平平仄), 측측평평측측평(仄仄平平仄仄平), 평측측평평측측(平仄仄平平仄仄), 평평측측측평평(平平仄仄仄平平)’으로 7언율시 평기식이다.

한시는 평기식과 측기식이 있는데 첫째 연 두 번째 글자가 평성이냐, 측성이냐에 따라 구분된다. 이 시의 강(江)자가 해당하는 데, 강(江)자가 평성이라 평기식이다. 운자는 평기식에서 대표 운인 ‘우(尤)’자 인데, 여기에 해당하는 다섯 글자를 뽑아 사용한 것이다.

한시를 지으면서 엄격한 규율이 있는데 이를 ‘고선준칙(考選準則)’이라 한다. 대략 10가지가 있는데 이를 설명하기가 매우 힘들다. 우선 가장 기본 적인 것 ‘압운(押韻)의 3대 원칙’만 알아보자.

제일 먼저 압운은 평성운(平聲韻)으로 하는 원칙이다. 측성(仄聲)운은 배제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우구(偶句)에 압운하는 원칙이다. 즉 짝수 구, 압운인데 칠언은 수구(首句)에도 압운한다. 참고로 아래 표가 7언율시 평기식 수구입운시(首句入韻詩)의 평측배열이다. (○은 평성, 은 측성, ◎은 운자) 이것만 이해하면 기본적인 한시를 지을 수 있다.

압운은 ①오언 절구는 2·4구의 끝 자(또는 1.2.4구의 끝 자), 칠언 절구는 1·2·4구의 끝 자이며 ②오언 율시는 2, 4, 6, 8구의 끝 자, 칠언 율시는 1, 2, 4, 6, 8구의 끝 자이다. 세 번째로 ‘일운도저(一韻到底)의 원칙’이다. 즉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운(韻)을 쓰는 것’으로 동일 운목(韻目)에 속하는 자(字)로 압운하는 것이다.

위 시 <강촌(江村)>에서 운(韻)자는 ‘우(尤)’이며 압운은 류(流)·유(幽)·구(鷗)·구(鉤)·구(求)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따로 운목표(韻目表)가 있는데 이것을 참고하면 된다. 이런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가지고 한시를 지으면 되는데 더 구체적인 원칙은 다음에 설명하기로 한다.

필자가 두보의 시를 말하면서 한시에 대한 이론을 간략히 설명한 것은 지금 정례화된 한시 중, 특히 7언율시를 그가 일정한 형식의 전통을 확립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를 시의 성인인 ‘시성(詩聖)’이라고도 하고, 그가 쓴 시가 당나라 역사(歷史)라 하여 ‘시사(詩史)’라고도 한다.

참고로 중국의 당시 시(詩) 정신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음풍농월(吟風弄月)이 아니라, 형식 면에서는 질서와 조화의 추구이고, 내용 면에서는 현실사회의 개선이었다. 두보의 시가 위대한 것은 형식과 내용 속에 흐르는 질서와 조화의 원리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필자 이길구는 한문학 박사다. 계룡산 자락에서 태어나 현재도 그곳에서 살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산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 계룡산과 실크로드에 대한 많은 저술을 출판한 바 있다. 현재는 한시(漢詩)에 관심을 두고 연구 활동과 저작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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