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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출세-미인' 전형적인 유교 출세주의 이상향[이길구의 중국 한시(漢詩)기행] <12> 사마광(司馬光)의 '권학가(勸學歌)'

필자가 매주 소개하는 시는 대부분 《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란 책에서 뽑은 것이다. 이 책은 중국 당(唐)나라에서 널리 읽혔던 한시(漢詩) 가운데 310수(首)를 가려 뽑은 것으로, 청(淸)나라 손수(孫洙)가 편찬했다. 이 책은 시가(詩家)의 전문적인 시선집(詩選集)보다는 아동들의 시가학습(詩歌學習)을 위해 만든 것인데, 작가 77명의 310수가 수록돼 있다.

작가들은 당나라의 중요 시인들은 물론이고, 제왕(帝王)·사대부·승려·가녀(歌女)·무명씨(無名氏) 등이 광범위하게 포함돼 있다. 이 책은 당시(唐詩) 가운데 인구에 회자하는 작품만을 뽑았기 때문에 아동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널리 읽히게 되어 당시선집(唐詩選集) 중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후대에 미친 영향력도 크다.

《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 이 책은 중국 당(唐)나라에서 널리 읽혔던 한시(漢詩) 가운데 310수(首)를 가려 뽑은 것으로, 청(淸)나라 시대 손수(孫洙)가 편찬했다.

《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와 버금가는 시가집은 《고문진보(古文眞寶)》라는 책이다. 1275년경에 만들어진 책으로, 역시 한시를 배우는 초학자들의 필독서였다.

고문(古文, 고체의 시와 고아한 문체의 산문 작품을 가리키는 말) 가운데 보석 같은 훌륭한 작품을 가려서 모았으며, 〈전집(前集)〉과 〈후집(後集)〉 각 10권으로 이뤄져 있다. 전집은 시(詩) 217수를 10체로 분류하고, 후집은 문장(文章) 64편을 17체로 분류했다.

한(漢)나라에서 남송(南宋)에 이르기까지 발표된 고체시의 명작 209수를 오언고풍단편(五言古風短篇), 오언고풍장편(五言古風長篇) 등 10가지 시체로 분류하고, 권두에 <권학문(勸學文)>을 두어 학문을 권하는 시구 8수를 곁들였다.

《고문진보(古文眞寶)》. 1275년경에 만들어진 책으로, 한시를 배우는 초학자들의 필독서이다.

수록된 주요 작가를 살펴보면, 이백(李白)의 <촉도난(蜀道難)>과 <자야오가(子夜吳歌)> 등 39수, 두보(杜甫)의 <병거행(兵車行)>,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 등 34수, 소식(蘇軾)의 <적벽부(赤壁賦)>를 비롯한 16수, 도연명(陶淵明)의 <책자(責子)>를 비롯한 14수, 한유(韓愈)의 14수, 황정견(黃庭堅)의 9수, 백거이(白居易)의 7수가 실려 있다. 이 7명의 대가(大家)의 작품이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서두(序頭)의 <권학문>이 이색적인데 권학문이란 ‘배움을 권하는 글’이란 뜻이다. 오언·칠언·잡언(雜言, 글자 수가 일정하지 않음) 시나 각운(脚韻)을 맞추어 지은 산문 등 여러 가지 형식이 있다.

《순자(荀子)》 첫머리에 <권학> 편이 있는 것을 모방하여, 여기서도 이러한 글을 첫머리에 놓았다. 여기에는 당(唐)대 백거이(白居易)의 <권학문>, 송(宋)대 진종(眞宗)·인종(仁宗)의 <권학문>, 사마광(司馬光)의 <권학가>, 유영(柳永)·왕안석(王安石)·주희(朱熹)의 <권학문>등이 수록돼 있다.

이번에는 <권학문> 가운데 필자가 존경하는 《자치통감(資治通鑑)》의 저자이자, 역사가인 사마광(司馬光, 1019년~1086년)이 쓴 <권학가(勸學歌)>를 알아본다.

필자가 그린 사마광 초상화. 필자를 공부하면서 관련 인물을 노트에 그림으로 그렸다.

양자불교부지과(養子不敎父之過)
자식을 기르면서 가르치지 않음은 아버지의 허물이요.
훈도불엄사지타(訓導不嚴師之惰)
가르침을 엄하게 하지 않음은 스승의 나태함이다.
부교사엄양무외(父敎師嚴兩無外)
아비는 가르치고 스승은 엄하여 둘 다 도리에 벗어남이 없는데
학문무성자지죄(學問無成子之罪)
학문을 이루지 못함은 자식의 잘못이다.
난의포식거인륜(暖衣飽食居人倫)
따뜻하게 입고 배부르게 먹으며 사람 사이에 살며
시아소담여토괴(視我笑談如土塊)
나 같은 늙은이 보고 웃으며 이야기하면 흙덩이 같은 하찮은 사람이다.
반고불급하품류(攀高不及下品流)
높이 오르려다 미치지 못하여 하류의 무리들과 휩쓸리는 것은
초우현재무여대(稍遇賢才無與對)
어진 인재가 녹봉을 얻는 것과 더불어 비교할 수 없다.

면후생역구회(勉後生力救誨)
노력하라 후생들이여, 힘써 가르침을 구하고
투명사막자매(投明師莫自昧)
훌륭한 스승에게 의지하여 스스로 몽매함에 빠지지 말라!

일조운로과연등(一朝雲路果然登)
어느 날이고 출세 길에 확실히 나아가기만 하면,
성명아등호선배(姓名亞等呼先輩)
훌륭한 이와 이름을 나란히 하여 당장 선배라 불리게 되리라.
실중약미결친인(室中若未結親姻)
집안에서 만약 아직 혼인을 맺지 못하였다면
자유가인구필배(自有佳人救匹配)
자연히 아름다운 여인이 배필 되길 구하리라.
면전여등각조수(勉旃汝等各早修)
그대들은 힘써 노력하여 각자 어서 배움을 닦아
막대노래도자회(莫待老來徒自悔)
늙음이 오길 기다렸다가 헛되이 후회하지 않도록 하라.

사마광 권학시는 공부를 하여 출세를 하면 명성이 떨치어 미인(美人)도 찾아올 것이니 늙어 후회하기 전에 배움에 힘쓰라는 권고의 노래이다.

이 시는 아버지와 스승은 엄하게 가르치고, 배우는 자는 열심히 공부해 출세하고 이름을 떨치게 되면 미인(美人)도 찾아올 것이니 늙어 후회하기 전에 배움에 힘쓰라는 권고의 노래이다. 전형적인 유교 출세주의 이상향(理想鄕)이다.

내용을 분석해보면 이 시는 칠언고시의 형식을 빌린 가요체(歌謠体) 형식이다. 양무외(兩無外)의 양(兩)은 ‘부교(父敎)’와 ‘사엄(師嚴)’ 두 가지를 말하며, 무외(無外)는 ‘도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난의포식(暖衣飽食)은 ‘따뜻하게 입고 배부르게 먹다’는 뜻이다.

시아(視我)는 ‘나 같은 사람’, 즉 ‘작자와 같이 나이 먹은 사람’을 말하는데 ‘현자(賢者)의 좋은 말을 들어도 나이가 들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여토괴(如土塊)는 ‘흙덩어리와 같이 여긴다’는 것으로 ‘대수롭지 않다’는 뜻이다. 반고(攀高)는 ‘높은 곳에 오름’으로 출세를 말하며, 하품류(下品流)는 ‘하등의 무리에 낌’이다.

투명사(投明師)는 ‘훌륭한 스승에게 몸을 던짐’으로 ‘투(投)’는 ‘의탁하는 것’이며, 운로(雲路)는 ‘조정으로 가는 길’, 즉 ‘출셋길’을 뜻하며 아등(亞等)의 아(亞)는 ‘차(次)의 뜻’으로 ‘버금가는 사람’이며, 선배(先輩)는 ‘과거에 급제하고 아직 벼슬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실(室)은 ‘아내가 거처하는 곳’이며 친인(親姻)은 ‘혼인’이다. 필배(匹配)는 ‘부부’를 말하며 두 사람을 말할 때는 ‘필(匹)’이며, 한 사람을 말할 때는 ‘배(配)’라 한다. 전(旃)은 어조사이니 해석할 필요가 없다. 초(稍)는 ‘관리의 녹봉’을 말하며, 운로(雲路)는 ‘출세하여 높은 지위에 오름’을 가리킨다. 도(徒)는 ‘한 갓’으로 ‘공연히’를 뜻한다.

사마광 《자치통감》. 이 책은 춘추시대의 대국인 진나라가 한(韓)·위(魏)·조(趙)의 세 나라로 분열된 위열왕 23년(BC 403)부터 후주(後周)의 세종(世宗) 현덕(顯德) 6년(959)까지 1,362년간의 통사를 편년체로 기술한 역사서이다.

너무나 유명한 이 시의 저자인 사마광(司馬光)에 대해 알아보자.

사마광은 중국 북송의 유학자·역사가·정치가이다. 자는 ‘군실(君實)’이고 섬주 하현(陝州 夏縣, 지금의 산시성) 출신이다. 호는 ‘우수(迂叟)’이며 또는 ‘속수선생(涑水先生)’이라고 불렸다. 온국공(溫國公)의 작위를 하사받아 ‘사마온공(司馬溫公)’이라고도 한다. 신법(新法)과 구법(舊法)의 다툼에서 구법파의 영수(領袖)로서 왕안석(王安石)과 논쟁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사마광(司馬光)하면 《자치통감》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은 동주의 위열왕(威烈王)이 진(晋)나라의 삼경(三卿)을 제후로 봉하면서 춘추시대의 대국인 진나라가 한(韓), 위(魏), 조(趙)의 세 나라로 분열된 위열왕 23년(BC 403)부터 후주(後周)의 세종(世宗) 현덕(顯德) 6년(959)까지 1,362년간의 통사(通史)를 편년체(編年體)로 기술한 역사서이다. 그는 많은 학자의 협조를 받으면서 19년의 세월을 걸려 이 책을 완성했다.

그 자신이 스스로 “신(臣)의 정기(精氣)가 고갈되었나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기술 방법은 그해마다 역사적인 사건을 기술해 가는 편년체로, 전기(傳記)를 덧붙여 가는 기전체(紀傳體) 방식을 취하는 일반적인 정사(正史)와는 다르다. 이 방법을 택한 것은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을 중시하는 사마광의 역사관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읽히고 있는 《자치통감》은 송나라의 유민(遺民)이었던 호삼성(胡三省)의 주석(註釋)이 달린 형태로 나와 있다. 이 호삼성의 주는 지명에 관한 고증의 정확성은 물론이고 수준도 높다. 그 배후에는 이민족인 원나라의 지배에 대한 저항 정신이 깔려 있다고 할 것이다.

사마광하면 또 하나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는데 어렸을 때의 일화에서 유래된 ‘파옹구우(破甕求友)’라는 말이 있다. ‘항아리를 깨서 친구를 구한다’는 이 뜻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만큼 잘 알려져 있다.

사마광의 어렸을 때의 일화에서 유래된 ‘파옹구우(破甕求友)’ 관련 전시물. ‘항아리를 깨서 친구를 구한다’는 이 뜻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만큼 잘 알려져 있다.

이야기는 이렇다.

사마광이 7살 때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술래가 눈을 감고 주문을 외우는 동안 나머지 아이들은 흩어져서 몸을 숨겼다. 그중에 체구가 작은 한 아이가 마당 한쪽에 놓인 커다란 물 항아리를 발견하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가 빠지고 말았다.

항아리에 물이 담겨 있었고, 당황한 아이는 항아리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며 울음을 터트렸다. 친구들이 달려왔지만 그 아이를 구해낼 수는 없었다. 주변에 어른도 보이지 않았고 그 아이는 익사(溺死) 직전의 다급한 순간이었다.

그때 사마광이 어디선가 커다란 돌을 들고 와서 망설임 없이 물 항아리를 향해 내던졌다. 항아리는 보기 좋게 박살이 났고 그 덕분에 아이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물 항아리와 사람의 목숨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소중하냐고 묻는다면 누구나 사람의 목숨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상황에서 과연 우리도 망설임 없이 항아리를 깨뜨릴 수 있을까? 사마광이 깨뜨린 것은 물 항아리가 아니다. 그가 깨뜨린 것은 우리 머리에 잠재해 있던 고정관념(固定觀念)이란 항아리였던 것이다.

필자 이길구는 한문학 박사다. 계룡산 자락에서 태어나 현재도 그곳에서 살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산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 계룡산과 실크로드에 대한 많은 저술을 출판한 바 있다. 현재는 한시(漢詩)에 관심을 두고 연구 활동과 저작에 몰두하고 있다.

이길구  gg2009@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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