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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가 생일잔칫집의 불청객 흥선[인터넷 소설 이하응 : 리멤버 1863] <3>김병기의 음모

늦은 밤 안국동 흥선군의 집에서 민씨 부인의 지청구 소리가 들린다.
“아유 이게 웬일이래, 아니 어디서 똥 벼락을 맞았소? 아니, 아닌 밤중에 웬 똥 벼락을 갖다 주오? 나보고 어쩌라고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주려면 돈벼락을 주시든지… 대체 왜 그래요, 네?”

민씨 부인이 옷을 벗겨 담아 나오다가 화를 못 참고 냅다 함지박을 집어 던지자 와당탕 소리가 요란하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잠시 후 사랑채에선 옷을 갈아입는 흥선에게 하인 이연식이 문밖에서 아뢴다.
“대감마님 박선달이 오셨습니다.”
흥선은 겨우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대답한다.
“일 없다.”
이연식 옆에 관상쟁이 박상의가 서 있었다.
“대감 어른 박상의입니다.”
두 번씩 마다할 수 없었는지 신음처럼 내뱉는다.
“들어오라 하게.”
박상의가 장지문을 열고 냉큼 들어와 머리를 조아리며 예를 갖춘다.
“어떠십니까, 대감 어른.”
“괜찮네, 상처가 깊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시게.”
“대감 어른… 걱정돼서 그렇지요. 어찌 그리 마음을 안 주십니까?”
흥선은 뼈가 빠져나가는 고통 속에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자 한해가 넘도록 식객 노릇을 한 박상의가 서운하다는 듯 탄식 조로 묻는다.
“대감 어른, 어찌 그러십니까. 한솥밥을 먹으니 한 식구 아닙니까. 제가 식객으로 밥을 먹은 지 한해가 넘었습니다.”
그러면서 박상의는 흥선에게 바짝 다가가 재빠르게 어깨를 살핀다. 흥선은 못 이기는 척 깊은 신음을 내며 다친 어깨를 맡긴다.
“뼈를 다치지 않아 참 다행입니다. 칼끝이 뼈를 비켜 갔습니다. 제가 고약을 만들어 붙이겠습니다.”

박상의는 흥선의 상체를 부축해서 천천히 자리에 눕힌다. 안절부절못하던 민씨 부인이 방으로 들어와 옆에 앉는다.
“선달님 고맙습니다. 이렇게 도움을 받습니다그려. 다친 데는 어떻습니까?”
박상의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상처가 그리 깊지는 않습니다.”
민씨 부인은 천장을 보고 탄식한다.
“어휴, 속 터져.”
하며 흥선이 덮은 이불을 고쳐주고는 혀를 찬다.
“어이구, 이놈의 세상…”
 
며칠 후 영의정에 세 번째 오른 김좌근의 아흔아홉 칸 집에서 생일잔치가 열렸다. 허름한 차림의 흥선군이 대문 안으로 들어선다. 큰 마당에 몇 개의 차일(遮日)을 치고, 중앙에는 멍석을 깔고, 한편에는 높이가 낮은 무대를 꾸며 기생들이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며 흥을 돋운다. 그 앞 양옆에 몇 줄로 전국의 고관대작들과 행세나 하는 사람들이 개다리소반을 앞에 놓고 산해진미가 올려진 음식을 먹고 있다. 무대 반대편엔 생일상을 크게 받은 김좌근과 측근 수뇌들이 앉아 떠들며 즐기고 있다.

이런 잔치에 빠질 흥선군이 아니었다. 소식을 들어 이미 알고 있는지라 흥선은 가까스로 일어나 아픈 몸을 이끌고 점심 무렵에 나타났다. 한양의 이름난 예인들이 한창 영의정 김좌근의 만수무강을 비는 장고춤을 끝낼 무렵이었다. 마당에 들어선 흥선이 허리를 딱 반으로 접고는 종종걸음으로 김좌근 앞에 바싹 엎드린다. 그리고는 유들거리는 목소리로 크게 외치며 절한다.
 
“조선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영상대감어른, 생신을 감축드립니다.”
김좌근이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다.
“아이고, 이거 종친부 유사당상 아니신가. 어서 오시오.”
김좌근 옆에 앉은 측근들은 모두 고개를 돌리는데 그중 호조판서 심의면이 놀리듯 혓바닥을 뱀처럼 나불거린다.
“아니, 뉘신가 했더니, 한양의 궁도령님이 아닙니까. 한데 경복궁이나 잘 지킬 것이지 떨어진 신짝을 질질 끌며 무엇 때문에 부르지도 않은 생일 집을 찾아다니시오.”
그러자 흥선이 넉살 좋게 받아친다.
“아이고 왜 그러시나, 좀 봐주시오. 내가 말이지 술이 고파요. 술이 당겨서 그러니 오늘은 제발 모른 척 넘어 가십시다.”
그 순간 흥선의 얼굴은 살짝 비굴한 모습으로 바뀌며 계면쩍은 듯하였다. 그러나 호조판서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듣자 하니 요즈음은 기생집에서도 안 받아주고, 객줏집에서도 귀싸대기를 맞으면서 술을 마신다는데…”
“아따 판서님, 술 마시면 모두 신선이 되는데 그까짓 거 뭐가 대수겠소.”
옆에서 듣기가 민망했던지 영의정 김좌근이 한마디 거든다.
“자자, 여기 손님을 모시고 가서 술상 봐 드려라, 뭣들 하는 게냐.”
흥선이 얼른 말을 받는다.
“고맙소이다, 영상 어른. 백세 천세 만만세올시다.”
음악과 춤이 잔칫집의 흥을 다시 끌어올릴 때쯤이다. 마당을 응시하며 잔치를 이끌던 청지기가 김좌근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하자 느긋하게 일어난 김좌근이 사랑방으로 향한다.

김좌근이 사랑방에 문을 열고 들어가자 관상가 박상의, 창학교 동리정사 신재효가 일어나 맞이하는 게 아닌가. 두 사람은 김좌근이 아랫목에 앉자 예를 갖춘 후 부복(俯伏)한다. 김좌근이 편히 앉으라고 신재효에게 인사를 건넨다.
“자네가 생일잔치 맡아서 차리느라 고생했네.”
신재효를 향하여 턱을 끄덕이고는 노고를 위로한다. 신재효는 머리를 연신 조아린다.
“별말씀을요, 비용은 나중에 올리겠습니다.”
“암, 그러시게. 내 후하게 쳐줌세그려.”
김좌근은 크게 웃으며 관상가 박상의를 쳐다본다. 관상가 박상의가 흥선군의 안국동 집 식객인지 전혀 모르는 눈치다. 하기야 변복을 하고 드나들었으니 알 턱이 없다. 박상의도 잠시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숙인다.
“자네 소문은 일찌감치 들었네. 진즉에 만나려고 했는데 워낙 국사가 분주하다 보니…”
“영상대감어른, 이렇게 뵙는 것만으로 광영(光榮)이올시다.”
 

삽화=태도(太道) 조석희

이때 마당의 연회장에서 와장창 부서지는 소리와 비명이 들린다. 사랑방에 있던 김좌근이 마당으로 향한 장지문을 열어 밖을 살핀다. 흥선군이 음식을 나르던 기생의 치마를 들쳐 엉덩이를 만지자 퍼뜩 놀란 기생이 비명을 지르며 흥선의 귀싸대기를 후려쳤다. 흥선이 뒤로 나자빠지자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폭소를 터뜨렸다. 김좌근이 마치 버러지를 보는 듯 흥선을 향해 혀를 차더니 낮은 목소리로 관상가 박상의에게 묻는다.
 
“저자의 관상은 어떠한가.”
박상의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한다.
“저자는 아주 치졸하고 옹색한 사람입니다. 조상 덕에 입에 풀칠이나 하는 용렬한 관상입죠.”
“으흠, 그래…. 다시 잘 보시게, 진정 그러한가?”
김좌근이 재차 관상을 보라고 권하였다. 박상의는 흥선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단호한 어투로 대답한다.
“예에,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김좌근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동안 잔치마당은 흥선군의 돌출행동으로 분위기가 어지간히 난장판이 되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던지 김좌근의 심복인 호조판서가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며 한마디 한다.
“여러분 생일잔치가 이렇게 썰렁해서 되겠습니까. 더구나 영상대감의 생일잔치가 이렇게 끝난다면 이 또한 만인이 원하는 것은 아닐 거외다. 그런 점에서 여러분들이 동의해주신다면 우리 종친부 유사당상께 복숭아밭을 보여드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장안의 젖과 꿀이 흐른다는 그 밭을 오매불망 보고 싶다 하지 않소이까?”
그러자 모두가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쳐대며 좋다고 난리를 친다. 다들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호조판서가 소리친다.
“여봐라 기생점고를 할 터이니 풍악을 준비하고 기생들은 줄을 맞추어 서 보아라.”
그러자 어느 기생은 히죽거리고, 어느 기생은 얼굴을 붉히고, 또 어느 기생은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한 채 하나둘 줄을 맞추어 선다.
“이제 기생들은 고쟁이를 벗고 다리를 벌리고 있거라. 흥선군께서 복숭아밭을 시찰하실 터이니…”
술 취한 사람들이 모두 손뼉을 치고 환호하기 시작한다. 의기양양해진 호조판서가 다시 외친다.
“흥선군 나리, 어서 오시오. 어떤 복숭아밭에서 가장 달콤한 맛이 나는지 알려 주시구려.”
잔칫집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된다. 배를 잡고 뒹구는 자, 입이 찢어지게 웃으며 눈물을 흘리는 자들도 있다. 흥선군은 그저 무심한 듯 아무 말 없이 쳐다보고만 서 있다. 마치 혼이 빠져나간 허수아비 같다.
“자, 왜 그러십니까. 시찰을 시작하셔야지요. 어서요.”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다시 흥선을 향한다. 흥미진진한 눈초리로 흥선을 바라보며 손뼉을 쳐댄다. 늙은 기생들과 악공들도 웃고 난리를 떨어댄다. 흥선군은 멋쩍게 씩 웃더니 손바닥에 침을 뱉고는 몸을 양쪽으로 흔들어댄다.
“좋소. 정 그렇다면 솜씨를 한번 보여주리다.”
두루마기를 호기롭게 벗고는 일렬로 선 기생들 다리 밑으로 들어가 하늘을 보는 자세로 굼벵이처럼 꿈틀댄다. 그러더니 ‘야호’ 소리를 질러대면서 미친 듯이 눈알을 굴려댄다. 구경꾼들이 박수하며 환호성을 지른다. 이때 김좌근이 나타나 소리친다.
“고만하시게, 이게 무슨 짓인가. 백성들이 보면 뭐라고 하겠는가. 흥선군도 이제 그만하시오, 대체 왕의 인척이라는 사람이 이러면 안 되지요.”
 
흥선이 벌떡 일어나 호박 훔치다 들킨 사람처럼 주섬주섬 두루마기를 입는다. 김좌근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명령한다.
“여봐라, 어디 나비 장단 춤이나 한 번 구경하자꾸나.”
악공들이 제정신을 차리자 다시 궁궐에서나 연주되는 아악이 시작된다. 눈부신 미모의 소리꾼 진채선이 한편에서 등장한다. 곱디고운 몸짓으로 나비가 살아있는 듯 호접지몽(胡蝶之夢)의 춤을 추며 노래를 시작한다. 김좌근과 흥선이 춤추며 노래하는 진채선을 넋 놓고 바라보는데 마치 등불을 켜 놓은 듯 그녀 주변이 환하다.
구경하던 흥선이 흥을 이기지 못해 앞으로 나아간다. 진채선과 어울려 춤을 추기 시작하니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부러운 눈초리다. 누가 꽃이고 누가 나비인 줄 모를 정도의 춤사위다. 흥이 무르익자 모두가 엉키어 춤판을 벌인다.

김좌근의 생일 전날 저녁부터 시작한 잔치는 이튿날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끝났다. 전날 저녁부터 아침까지는 지방의 벼슬아치나 그들이 보낸 아전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전국의 축하객들이 싸 들고 온 선물꾸러미를 집사와 청지기가 광에 넣었는데 두 개의 큰 광이 모자라 뒷마루에 쌓아 놓았다. 성대한 잔치가 끝나자 하인들은 멍석을 둘둘 말아 치웠고 빗자루로 먼지가 일어나지 않도록 물을 뿌리며 마당을 쓸었다.
 
김좌근의 측근들은 육간대청에 다과상을 받아놓고 모여 앉아 정국을 논하기 시작했다. 안동김씨의 수장인 김좌근이 점잖고 무거운 말투로 치하한다.
“모두 고맙소이다. 멀리서 어려운 걸음 하신 종친들과 나를 도와 국정을 이끄는 호조참판, 모두 모두 고맙소.”
지긋한 눈으로 아들들을 바라보며 “너희들도 수고했다”고 치하하자 일동은 모두 반절(半折)로 예를 갖추었다.
이때 호조참판이 무리를 대표해 요설(饒舌)을 한다.
“영상 어른 부끄럽습니다. 다음엔 더 성대하게 치르겠습니다.”
일동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시늉을 한다.
“지금 굶어 죽는 백성들이 고을마다 넘쳐나는데 국록을 먹는 사람들이 어쩌려고 이러십니까. 하늘이 무서운 줄 아세요.”
김좌근이 이어서 말한다.
“모두 아시겠지만, 경원군 이하전을 비롯해 종친들을 대부분 내쳤으나 아직 안심해서는 아니 되오.”
김좌근이 뒷전에 앉아있는 아들 김병기를 바라보며 말한다.
“너는 종친들과 그 측근들의 기찰을 잘 행하고 있으렷다.”
“예에 아버님. 지금 종친들은 물론이고 요주의 인물들도 잘 살피고 있습니다.”
김좌근이 미심쩍은 듯 재차 당부한다.
“아차 하면 우리 모두 피바람이 몰아치는 벌판에 내팽개쳐진다는 걸 명심하거라.”
호조참판이 한마디 거든다.
“여차하면 모두 죽여 후환을 없애야 합니다.”
한 일가(一家)에서 의문을 제기한다.
 
“으흠, 이제 남은 종친 중 쓸 만한 자들은 다 없앤 듯한데… 흥선군은 어떻습니까. 허허실실 반계를 쓰는 것은 아니겠는지요.”
“그러게 잘 살피라는 것 아닙니까?”
“아버님, 여차하면 목을 따버리겠습니다.”
“하기야, 그런 자도 왕손이랍디까?”
흥선을 과소평가하자 좌중이 서로를 쳐다보며 웃는다.
“그래 됐소이다. 오늘은 나도 피곤하구려.”
이틀간 이어진 생일잔치에 지쳤는지 상을 찌푸리며 김좌근이 회의를 마무리하려 한다. 무리가 모두 엎드리며 절한다.
“예에 영상 어른,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우리가 눈 뜨고 당할 정도는 아니지요.”
“그러시게… 내가 이제 늙었나 보네. 세월이 호랑이보다 더 무섭네그려.”
 
안동김씨 일가와 핵심측근들이 회의를 마치고 돌아가자 김좌근의 아들 김병기는 혼자 남아 생각을 고르다가 흥선군의 암살을 마침내 결심한다.
“어두운 싹은 미리부터 잘라 내야 해.”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문중(門中) 일을 보는 집사를 시켜 금위영 장교로 있는 심복을 부르게 한다. 한 식경이 지나 두 사람이 김병기의 처소로 들어와 예를 올린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얼마 전부터 준비시켜놓은 암살자들이었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오늘은 전에 이야기한 대로 큰일을 끝내야겠다.”
그중에서 건장하고 날렵하게 생긴 장교가 “예에”하고 응답하자 김병기가 재차 당부한다.
“오늘의 큰일이 나라를 안심시키는 일임을 명심들 하시게. 실수 없도록 각별하게 유의해야 할걸세.”
“예 염려 마십시오. 분부하신 대로 한 치의 실수도 없이 해치우겠습니다.”
김병기가 속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엇인가를 꺼내 그들 앞에 던진다. 은 스무 냥이다. 암살자 중 나이가 많은 듯한 자가 받아 주머니에 챙겨 넣는다. 그러자 김병기가 작은 병을 내밀었다.
“독약일세. 칼날에 조금만 바르게. 스치기만 해도 즉사할 것이니.”
“예, 나으리.”
암살자들이 엎드려 절하고는 병을 받아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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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유태희는 대학로문화발전위원회 기획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행복도시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창작공동체 '이도의 날개' 대표로 활동하는 문화예술기획자다. 세종포스트와 함께하는 음악회 '세종에서 음악으로 다시 태어난 윤동주'의 총예술감독을 맡기도 했다.


유태희  naturec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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