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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왜 수도 이전 카드 빼들었나[인터넷 소설 이하응 : 리멤버 1863] <11>김정희의 '길지'
  • 글 유태희 | 그림 조석희
  • 승인 2019.03.0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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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이 포도대장 이경하, 천하장안, 고산자 김정호와 함께 저녁 무렵 동리정사에 나타났다. 신재효를 비롯해 박상인, 진채선 등이 대문에서 맞이하자 연일 격무에 시달려 피곤함에 절은 흥선의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 사랑채에 들어 대원군이 앉자 모두 위아래로 나누어 앉았다.

대원군이 신재효를 바라보며 묻는다.

“오늘은 부초차 한잔할 수 있겠는가?”

“예 그러하옵니다. 몽산차와 용정차도 조금은 있습니다만…”

“허허허 그러한가? 그래도 가마솥에 치댄 부초차가 제일 아니던가?”

“예, 그럼 내오겠습니다.”

“자네들은 어떠한가? 이젠 술을 멀리하고 차를 마셔야겠네. 몸이 영 마음 같지 않네그려.”

이경하가 대원군에게 고개를 숙인 뒤 말한다.

“대원군 대감, 몸부터 돌보셔야지요. 대감의 두 어깨에 조선의 운명이 걸려있음을 잊으시면 아니 됩니다.”

“몸조리하고 있으니 곧 나아질 것이오.”

오경석도 한마디 거든다.

“정무가 너무 많아 큰일입니다.”

“어험, 고만들 하시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어디 오늘은 고산자 선생 이야기 좀 들어봅시다. 그동안 조선팔도를 누비며 지도 만드느라 애썼으니 경하할 일이 아니겠나. 이조에서 좀 살펴서 어려움이 없는지 살펴봐 주시게.”

가냘픈 몸의 김정호가 대원군의 말 한마디에 감읍하여 말한다.

“대원군께서 이렇게 직접 챙겨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래, 듣자 하니 전에 만들었던 청구도(靑丘圖)를 보완했다고 하니 이제 조선을 손바닥처럼 보게 되었네그려. 무장들이 눈여겨 봐야 할 걸세… 요즘은 두만강에서 아라사가 집적댄다는 치계(馳啓)가 자꾸 올라오니 걱정입니다그려.”

포도대장 이경하가 즉시 말을 받았다.

“그러하옵니다, 대원군 대감.”

“무장들이 국경과 해안 경계를 더 철저히 하려면 이 지도가 매우 유용할 것이오.”

옆에 있던 무장 신헌도 거들었다.

“소장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대원군이 몸을 고쳐 바로 앉더니 일장 연설을 시작한다.

“오백 년 전에는 내 조상이신 이성계 할아버님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지. 더 나은 세상을 말이야. 그럼 오백 년 후에 나는 어떻게 해야겠나? 세상을 다시 고쳐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그동안 세도정치로 조선을 이 지경으로 만든 안동김씨부터 처분할 생각이네… 수괴 김좌근은 철종 대왕의 업적을 기록하는 실록총재관으로 임직케 하고 아들들도 모두 외직으로 내칠 것이니 그리들 준비하시게. 이런 논의조차 궁 안에서 할 수 없는 이유를 자네들도 잘 알지 않는가. 그들의 수하가 여전히 조선 방방곡곡 없는 곳이 없다네.”

오경석이 말을 받았다.

“대원군 대감께서 인사에 대해 완급을 조절한 것은 제갈공명의 한 수와 같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리고 내 아버님이신 남연군의 이장문제도 잘 해결해주었어. 고산자 선생과 박상의, 자네들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구먼…”

김정호와 박상의가 머리 숙여 예를 갖춘다.

“황공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대원군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잠시 뜸을 들였다.

“마침 여기 고산자 선생이 있으니 천도에 대해 논의해 보는 게 어떻겠는가…”

오경석이 급히 말을 가로막는다.

“대원군 대감, 그건 아주 난감한 문제입니다.”

김병학도 난색을 표명했다.

“한양 천도 이야기는 진작부터 있었사온데 오늘은 어인 일입니까?”

“내가 고산자, 역매와 함께 상의했으나 일이 바빠 끝맺음을 하지 못했소. 이제 고산자 선생이 매듭을 지어야 하지 않겠소이까?”

김정호가 대원군에게 목례를 한 뒤 답한다.

“예, 지난밤에도 역매 선생과 논쟁을 벌인 바 있습니다만… 지금 한양은 그 힘이 다한 것으로 사료 됩니다.”

대원군이 놀라는 눈치로 고산자를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한양이 힘을 다했다…”

“그러하옵니다.”

“그래 조선팔도를 다녀보니 인재를 키우고 가난에서 벗어날 길지가 있던가?”

김정호가 얼른 대원군의 말을 받았다.

“예, 찾았습니다.”

대원군을 비롯해 참석한 모든 막료가 고산자 김정호를 바라보았다. 김정호는 대원군의 눈을 응시하며 말한다.

“조선은 아쉽게도 강은 천 리가 안 되고, 들도 백 리가 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천하를 호령할 큰 인재를 길러내지 못한 것입니다.”

대원군이 다급하게 물었다.

“그래, 길지는 어디인가?”

“앞으로는 수천 리 바다를 향해있고 뒤로는 백두의 힘이 미치는 곳이옵니다.”

“오호, 그래요.”

“인천도호부의 옥련(玉蓮)입니다. 땅의 기운이 바다를 향하고 있는 곳이지요.”

대원군이 슬며시 오경석을 바라보며 묻는다.

“그래, 좋던가요?”

“아시다시피 제가 풍수지리에 무에 아는 게 있겠습니까? 다만 외침이 있다면 바로 바다 옆인지라 그것이 염려되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박상의가 고산자를 거들고 나선다.

“조선 최고의 명당인 것은 사실이옵니다.”

“그래? 고산자 선생, 어떻소? 내 직접 선생의 입으로 들어야겠소만.”

대원군이 고산자를 바라보며 다시 묻는다.

김정호가 조금은 떨리는 음성으로 또박또박 말한다.

“예, 대감, 제가 보건대 그곳은 백두 힘이 미치는 곳이 분명합니다. 더구나 주변 옹암, 묵암, 망해, 동막, 척진, 한진, 함박 등의 읍들은 좌청룡과 우백호의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음…”

“그곳을 이 나라의 수도로 삼는다면 조선의 웅지를 바다로 향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도 서양의 나라들처럼 바다의 힘으로 일어날 것이옵니다.”

“어허, 우리도 양이(洋夷)처럼 바다로부터 일어난다?”

“그러하옵니다. 우리 조선은 들도 없지만 큰 강도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다행으로 조선은 삼면이 바다인지라 쓸모 있는 항구와 해안선을 살려낸다면 땅이 살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

박상의가 다시 고산자를 두둔하며 말한다.

“그렇습니다, 대원군 대감. 산천의 정기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이 받아야 하듯 옥련으로 천도하시어 큰 바다를 경영하소서.”

“으흠, 큰 바다에 큰 사람이라…”

김정호가 마침표를 찍는다.

“대원군 대감, 옥련은 나라의 수도가 되어야 하는 1한(韓), 2하(河), 3강(江), 4해(海)의 모든 조건을 갖춘 곳입니다.”

김정호가 설명을 마치자 대원군이 입을 다문 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알겠소이다. 논의들 하느라고 애들 많이 썼소이다… 어디 땅만이 문제겠소. 내일은 북한산에 오를 터이니 좌찬성과 우찬성, 관상감제조를 수행케 하고 이 문제를 조정에서 공론화할 것이니 그리 준비하시오.”

삽화=태도(太道) 조석희

다음날 대원군은 측근들과 북한산 형제봉에 올라 한양을 내려다보고 있다. 천하장안 등 무장들이 호위하고 포도대장 이경하, 관상감제조, 지관들이 동행했다. 따르던 무리는 뒤에 있고 대원군은 남쪽을 향해 서 있다. 장안을 내려다보던 대원군이 감격한 듯 입을 연다.

“보시오들, 조선 5백 년의 역사가 여기에 깃들어 있지 아니 한가 말이오. 고산자 선생은 한양의 풍수를 어찌 보시오?”

“예, 대감. 우리 조선의 모든 산맥은 민족 성산 백두산에서 발기해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면서 지맥을 형성했으니, 우리 땅의 원류를 백두대간이라 하옵니다. 한양을 보면… 주변 산세가 남쪽의 관악산이 경복궁을 불로 덮칠 기세라 주산인 북악산이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대신 그 뒤로 북한산의 힘찬 기상이 관악산의 기운을 막아 백악산을 보호하는 형국입니다. 하오나… 이 땅에서 너무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힘이 다했기 때문입니다.”

대원군이 옆에 서 있던 관상감 수장에게 묻는다.

“그래 관상감제조도 그리 생각하는가?”

관상감제조가 당황한 듯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대감… 그래서 삼각산을 진산으로, 백악산을 주산으로 삼아 경복궁 정전인 근정전을 자리 잡도록 한 것입니다.”

“어허, 그래서 어땠는가! 지금까지 한양을 버리고 몽진을 한 것이 몇 번이란 말인가. 아니 그런가? 내일 어전회의에서 이조판서가 한양의 땅 기운이 다 해 천도해야 한다고 주청 드릴 걸세. 그리하면 내 자네를 불러 의견을 물을 것이니 똑바로 대답하시게. 아시겠는가?”

대원군이 눈을 부릅뜨고 관상감제조를 쳐다보며 종용한다. 관상감제조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알겠다”고 대답한다.

“그럼, 됐소이다. 그만 먼저 내려들 가시구려. 나는 오랜만에 해 떨어지는 한양이나 보고 내려가리다.”

대원군의 말이 끝나자 모두 고개 숙여 예를 올리고 하산했다. 대원군 곁에는 천하장안과 무장들만 남았다.

대원군은 무리가 내려가자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채 얼마 동안 앉아 있었다. 바람이 불고 석양이 붉게 물들었다. 잠시 후 대원군이 일어나 다짐하듯 중얼거린다.

“한 나라의 고질병을 고치려면 말이지… 흐르는 물을 맑게 하려면 근원을 맑게 해야 하고, 그림자를 곧게 하려면 몸을 바르게 해야 하는 법. 내 그렇게 나아갈 것일세. 암, 그렇고말고. 내 반드시 그럴 것이야.”

대원군의 얼굴에 석양빛이 드리워졌다. 뒤에서 오경석, 이조판서 홍우선, 포도대장 이경하, 천하장안이 엎드려 예를 올렸다. 해가 서산마루를 넘어 인천 앞바다까지 붉게 물들이며 마지막 힘을 다하고 있다. 오경석이 무리 가운데 앞으로 나서며 말한다.

“대원군 대감, 그렇게 결단하셔서 조선을 구하겠다고 하시니 저희도 모두 피가 솟구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희도 신명을 바쳐 따르겠나이다.”

그러자 이경하를 비롯한 심복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청원했다.

“저희도 신명을 다해 따르겠습니다.”

“저희도 따르겠습니다.”

대원군이 뒤로 돌아 다가서서는 역매 오경석과 이경하의 손을 차례로 잡는다.

“모두가 그렇게 따라준다니 고맙고 고마운 일이네. 있는 힘을 다해 나를 돕고 성심을 다해 맡은 소임을 다 해주시게. 알겠는가?”

모두 한목소리로 대답한다.

“예.”

“오백 년 전 태조 대왕께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셨네. 더 밝은 세상을 말일세. 이제 오백 년이 지나 내가 다시 그 길을 가려 하네. 내가 앞장설 테니 그대들이 잘 따라와 주시게… 어두워야 밝은 빛이 귀한 줄 아는 법일세. 누구나 첫걸음이 어렵고 힘들 뿐,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하는 법 아니겠나. 유비에게 제갈공명과 관우, 장비가 있었듯 나도 든든한 인재들이 생겼으니 함께 해보세, 함께 말이야.”

대원군은 어전회의에서 측근인 이조판서를 시켜 한양 천도를 거론케 했다. 하지만 한양 천도는 비용도 만만찮거니와 국론의 분열로 때가 아님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문무백관이 모인 어전회의에서 그 힘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측근들인 오경석과 이경하를 불러 상의를 한 터이다.

창덕궁 대조전에 대왕대비가 발 뒤편에 앉아 있고 신료들이 좌우로 늘어서 있다. 대원군은 고종의 앞 편 의자에 앉아 있다. 대원군이 눈짓을 주자 승지가 어전회의의 시작을 아뢴다.

“대왕 대비마마 상소문부터 올리겠습니다. 행호군 이원조의 다음과 같은 상소가 있었사옵니다… 삼가 아룁니다. 우리 신민이 복이 없어 대행대왕께서 갑자기 승하하심에 몹시 애통함은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똑같습니다. 그런데 하늘과 조종조(祖宗祖)께서 우리나라를 잘 돌보시어 성상께서 왕위에 오르고 자전(慈殿)께서 함께 정사를 처결하심에 슬픔이 바뀌어 경하함은 팔도의 사람들이 모두 같은 마음입니다. 그러던 즈음 대왕대비께서 전교를 내리셨는데, 즉위하여 처음으로 내리시는 것인지라 팔도의 사람들이 모두 귀를 기울여 들었나이다. 선왕께서 뜻과 사업을 못다 이룬 것을 애통해하시고, 오늘날 풍속이 나빠진 것을 개탄하시면서 아름다운 말로 경계하고 위엄으로 독려하였는바, 밝기는 해와 별과 같고 엄하기는 도끼와 같았습니다. 조정 신료치고 그 누가 감히 마음을 바꾸고 생각을 고치지 않겠나이까. 신과 같이 어리석은 자도 충정이 더욱더 북받쳐 오릅니다.”

그때 대원군이 갑자기 큰기침 소리를 한다.

“으흠… 승지는 오늘 사무가 바쁘니 요점만 읽으시오.”

“예…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천하만사에는 큰 근본이 있고, 모든 일 가운데는 각각 요체가 되는 간절한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일러 하나의 근본이라고 하겠습니까. 전하의 한마음은 온갖 교화의 근본이요, ‘성실공평(誠實公平)’ 네 글자는 마음을 보존하고 사물에 대처하는 근본입니다. 무엇을 일러 네 가지 요체라고 하겠습니까. 학문에 부지런하고 덕성을 기르며, 세세한 즐거움을 멀리하고 큰 뜻을 세우는 것은 몸을 닦는 요체입니다. 재용(財用)을 절약하고 사치를 없애며, 뇌물을 막고 탐오(貪汚)를 징계하는 것은 백성을 돌보는 요체일 것입니다.”

대원군이 재차 승지의 상소문 낭독을 중단시킨다.

“어허, 더 간단히 하세요.”

“예…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원칙이 바로 서면 뭇 백성들이 흥기하고, 뭇 백성들이 흥기하면 요사스럽고 간특한 자들이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동자(董子)는 말하기를, ‘육예(六藝)의 과목이나 공자(孔子)의 학술에 포함되지 않는 것들을 모두 배척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선대왕들이 세상을 다스린 대법(大法)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천주학(天主學)이란 것이 있어서 바다 바깥 서양에서 건너와 점차로 우리 동방을 물들여 놓았습니다. 성스러운 임금들이 서로 이어 다스리면서 기어이 이들을 소탕하려고 하였는바, 신유년에 크게 토벌을 행하고, 기해년에 교서를 반포함으로써, 왕법을 분명하게 내보이고 백성들의 뜻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신이 사는 영남 지방은 당초에 천주학에 물든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 여러 차례 열성조께서 칭찬하는 말씀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근래에 들어와서 사악하고 괴기스러운 무리가 얼굴 모습을 바꾸고 사사로이 명호(名號)를 만들어 내세우고는, 그 가운데서 재주를 부려 환술(幻術)을 피우고 주기도문인가를 외워 귀신을 섬기는 방도를 취하여서, 어리석은 백성을 속여 서로 꾀이게 한단 말입니까. 그들의 속마음을 따져 보면 재물을 끌어모으려는 계책과 귀신을 가하여 소요(騷擾)를 일으키는 데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 속셈이 두렵습니다. 근래에 다행히도 조정에서 명령을 내려 체포하고 감영에서 조사하여 논계(論啓) 하기는 하였습니다. 하오나 그들의 무리가 매우 많아 아직 잡히지 않은 채 숨어 있는 자들이 많이 있나이다. 대개 그들의 이론은 많은 말을 허비하여 설파할 것도 못 됩니다마는, 바른 기운이 쇠해짐에 사악한 기운이 떠돌고, 유교(儒敎)를 어지럽히고 사학(邪學)이 고개를 추켜드는 법입니다. 원칙이 바로 서지 못하고 도의가 밝게 되지 못한 것이 어찌 나라의 수치이고, 선비들의 책임이 아니겠습니까. 각 감영에 관문을 보내 통호법(統戶法)을 엄하게 하여 잡된 무리가 각 마을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고 다시금 매달 초하루에 그동안 배운 것을 강독하게 하는 규정을 다시 시행하여 향교와 서원의 유생들이 효경(孝經)이나 소학(小學) 등의 책을 통독하게 하고, 이것으로 과거 시험에서 소홀히 하는 법을 없게 하소서. 또한 정조(正祖)대왕 때에 시행했던 옛 규례를 준행하게 하소서. 그러면 한 시대의 풍속을 격려하는 데에 있어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유념하여주소서.”

대원군이 대왕대비에게 목례를 하고 준엄한 목소리로 일갈한다.

“잘 알겠소이다. 상소문 중 근본이 있고 요체가 있다고 한 말은 마땅히 유념하겠소… 향약법을 시행하고 초하루에 강독하는 법을 다시 시행하며, 별도로 경학에 밝은 사람을 천거하게 하라는 등의 말은 모두가 바른 도리를 밝히고 사특한 학설을 종식하기에 충분하오. 크게 소견이 있는 말인바 조정 각 신료는 법에 맞게 조치하기 바랍니다. 다음은 상소는 무엇이오?”

“예. 다음은 의주부(義州府) 암행어사 이응하가 올린 서계(書啓)이옵니다.”

“읽으시오.”

“예… 의주 부윤 심이택은 그저 뇌물을 주고받는 것만 일삼고 순전히 재물을 거둬들이는 것만 힘썼습니다. 크고 작은 정령(政令)은 뇌물이 아니면 되는 것이 없고, 크고 작은 읍무(邑務)는 곳곳마다 병들지 않은 데가 없어 탐학한 짓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한 고을 경제가 모두 탕진됐나이다. 또한 임술년(1862)과 계해년(1863)에 의주부에서 쌀로 마련할 것을 돈으로 마련하면서 이익을 남겨 먹었고, 환곡(還穀)과 양향곡(糧餉穀)을 그대로 사적 유용했으며, 변진(邊鎭)의 군적(軍籍)까지 제멋대로 삭감(削減)하여 제 배만 채웠습니다. 나라의 경계 안에 있는 세 섬을 개방하고 물건을 팔아먹으면서 국경에서의 신용 문제를 아랑곳하지 않았으며, 장사치들에게서 뇌물을 받고 몰래 국경을 넘겨주고, 포삼(包蔘)에 대해 세금을 더 부과하여 강제로 받아먹었습니다. 매임(賣任)과 매과(賣科), 그리고 부민(富民)들로부터 재물을 강탈한 것이 도합 27만 3700냥(兩)에 달합니다. 탐학하고 법을 어긴 행위로 이보다 더 심한 것은 없으니, 그 죄상을 조사하게 하소서.”

대원군이 다시 일갈한다.

“병조와 형조에서 각각 맡아 소상히 조사하여 법대로 처리하되 매일같이 보고해주세요. 그다음 또 있습니까? 승지.”

“예. 인산첨사(麟山僉使) 김낙유(金洛裕)는 주진(主鎭)을 빙자하여 가로채고 강탈한 것이 2500여 냥이나 되며, 법을 무시한 허다한 행위는 이루 다 열거하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범한 바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으니, 그의 죄상도 조사하게 하소서.”

발 뒤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대왕대비가 입을 연다.

“아니 그런 자가 어찌 국방의 중책을 맡았소이까? 대원군 대감, 이런 일이 나라를 망치는 첫 번째가 아닙니까…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예, 대비마마.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하옵니다.”

“예. 제발 좀 그리해주세요.”

대원군이 신정왕후를 향해 목례하며 대답한다.

“예, 잘 알겠나이다.”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이 노파가 한마디 하겠소. 이제 임금의 생부인 대원군이 정사를 돌보매 정사가 안정되었으니, 나는 이제 수렴청정을 거두고자 하오이다. 여러 생각이 있을 수 있으나 논쟁은 마세요. 그러니 오늘 이후로는 모든 정사를 대원군이 처리하도록 해주세요.”

대원군이 얼른 허리를 숙이며 가로막고 나섰다.

“대왕 대비마마, 그것은 아니 되옵니다.”

“대원군도 아무 말씀 마시고 그리하세요. 두 번 다시 이 일은 논쟁하지 마세요.”

대원군이 다시 고개 숙여 거두어 달라고 간청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잠시 후 흥선대원군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대왕 대비마마, 너무 괘념치 마시고 의심이 나시거나 미심쩍으시면 언제든지 어전회의에 나오셔서 하교해 주십시오.”

듣고 있던 대왕대비가 고개를 살짝 끄덕거렸다. 대원군은 고개 숙여 대비에게 예를 표했다.

“대왕 대비마마 그럼, 회의를 진행하겠습니다. 이조판서, 이 자들을 추천한 자가 누굽니까?”

이조판서가 허리를 숙이며 앞으로 나섰다.

“김좌근 대감의 추천이 있었습니다.”

대원군이 다시 일갈한다.

“내가 초야에 있을 때, 나를 궁도령이라 놀리며 능멸했어도 나랏일을 하는 자라 참고 있었지만 이제 더는 안 되겠소이다. 새로이 주상께서 등극하시고 대왕 대비마마님의 성은이 바다와 같거늘 매관매직을 일삼고 백성들을 쥐어짜 여기저기서 민란이 일어나 나라를 어지럽게 하였으니 어찌 죄가 작다 하겠소.”

이조판서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이번 기회에 바로잡으소서.”

문무백관이 함께 소리쳤다.

“바로잡으소서.”

대원군이 다시 신료들을 향해 소리쳤다.

“좋소이다. 여기 계신 신료들도 이 점을 명심하여 백성들의 아비가 돼야 할 것이오… 으흠.”

대원군은 추상같은 목소리로 이어나갔다.

“그들을 다음과 같이 처분하겠소. 먼저 형조와 병조에서는 이들의 죄상을 낱낱이 살펴서 백서를 만들고 의주 부윤 심이택과 의주 책객(冊客) 권순, 인산첨사 김낙유를 목에 칼을 채워 한양으로 잡아 올리시오. 압송하여 한양으로 올릴 때 지나는 고을마다 백성들에게 죄를 설명하여 나라의 법이 살아있음을 보여주시오. 그래야만 백성들이 경각심을 가질 것이오.”

소임을 맡을 형조판서가 앞으로 나섰다.

“분부받아 거행하겠나이다.”

대원군이 회의 주재를 계속한다.

“승지, 다음은 무엇인가?”

“예, 함경도 함흥부(慶興府)에서 온 장계이온데 아라사인 5명이 두만강을 건너와 통상을 요구하는 문서(文書)를 제출하고 회답을 요구했다 하옵니다.”

대원군이 일갈한다.

“두만강이 조선 국경인데 거기를 어찌 건넜단 말이오? 국경을 지키는 자들과 내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일전에도 내 분명하게 국경을 지키는 자들에게 엄중하게 소임을 다 할 것을 지시했건만… 병조판서는 설명해보시오.”

병조판서가 화들짝 놀라 앞으로 나선다.

“병조판서 신 정기세 아룁니다. 상세히 알아보고 다시 보고를 드리겠습니다만… 지금 충청수군에서 올라온 장계에 의하면 오천포에서도 프랑스의 통상을 요구하는 문서를 받았다 하옵니다.”

대원군의 말이 준엄하다.

“지금 한가로이 정사를 처리할 때가 아니외다. 시시각각 세상이 변하고 있어요.”

대원군이 말을 멈추고 신료들을 한 사람씩 둘러보더니 지시한다.

“다음과 같이 하세요. 함경 감사·북병사를 감봉으로 처벌하고 다시 바다와 강과 육지에서 국경을 지키는 장군들에게 장계를 넣어 일체 접촉을 끊고 조정의 허락을 받으라 하시오. 그동안 세도정치가 조선을 빈껍데기로 만들었으니 온 백성이 합심해 새로운 조선을 만들어야 합니다. 중국을 보세요. 어떻게 황제가 궁궐을 버리고 도망갔는지, 어찌 북경이 저들의 손에 함락됐는지를 말이오. 어제는 거문도에서 영국이, 오늘은 오천포에서 프랑스가 대문을 열라고 합니다. 그냥 열어주면 됩니까? 아니잖소? 아마 껍데기도 안 베끼고 날로 먹으려 할게요. 먼저 문을 열 준비가 돼 있어야 할 것 아니겠소? 무작정 쇄국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세요. 일 천하고도 오백 년 동안 쇄국이었어요. 절대 비굴한 역사가 아니었습니다. 백성을 보호하고 백성을 살찌우며 백성을 잘살게 하는 것이 나라를 경영하는 자의 궁극입니다. 그런데 어찌 그것을 쇄국이라고 하십니까? 큰 나라에 맞서 국토를 지키는 것도 좋지만 전쟁을 못 막아 불쌍한 백성을 얼마나 죽음으로 내몰았습니까? 우리 체면을 지키고 백성을 지킬 수 있다면 응당히 그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문무백관 모두 옳다고 허리를 숙여 외쳤다.

“예, 옳으신 말씀입니다.”

대원군이 승지를 바라보자 다음 논의가 시작됐다.

“다음은 김정호의 청으로 올린 한양 천도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관상감제조의 보고가 남았습니다.”

“그리하세요.”

“관상감제조 아뢰옵나이다. 우리 조선의 모든 산맥은 민족 성산 백두산에서 발기해 지맥이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백두대간이 땅의 원류입니다. 하옵고 한양의 주변 산세는 남쪽의 관악산이 경복궁을 불로 덮칠 기세라 주산인 북악산이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힘찬 기상의 북한산이 백악산을 보호하면서 관악산 기운을 막아내는 형국을 살핀 것이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너무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이제 그 힘이 다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떨리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어렵게 진언을 드리는 것입니다.”

한양 천도에 관한 상소가 선왕조에서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신정왕후는 먼저 경복궁을 중건하고 싶었다. 이는 남편이던 익종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나라의 살림이 어려운지라 신료들이 하나같이 말릴 것을 염려해 흥선대원군과 상의해 꾀를 낸 것이다. 대원군이 조대비에게 올리는 일종의 선물인 셈이었다. 흥선대원군 역시 땅에 떨어진 왕실의 위엄을 회복하려면 경복궁 재건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대원군이 관상감제조의 보고에 처분을 내린다.

“땅의 기운이 다했다면 응당 천도를 논의하는 게 합당합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나라의 재정이 파탄지경이니… 왕조의 위엄을 살리기 위해 우선 경복궁을 손질해 고치는 일을 행해야 할듯합니다. 천도가 최선이겠으나 차선책으로 경복궁 중건에 중지를 모아주세요. 백성의 뜻을 하나로 모으려면 중심을 바로 세워야 하지 않겠소? 호조와 이조에서는 이점을 유념해 살펴주세요.”

저녁이 한참 지난 뒤에야 퇴청하는 대원군이 가마를 타려 한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가마가 바퀴가 달린 초헌이었다. 대원군이 호위를 맡은 장교를 쳐다보며 물었다.

“누가 가마를 이것으로 바꾸었는가?”

“예, 이조에서 내려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원군이 목소리를 높였다.

“뭣이라. 이조, 지금 이조라 했는가? 내가 호조(戶曹)·선혜청(宣惠廳)·병조(兵曹)·사영문(四營門)의 실제 가마꾼 가운데 부지런하고 착실한 자를 각 아문에서 1명씩 선발하라 하지 않았더냐. 더구나 초헌은 안 된다고 누누이 말했거늘, 누가 이리 했단 말이냐? 나라 전체가 구멍이 숭숭 뚫려 속 빈 강정이 되었거늘 절약하고 절약해도 모자랄 판에 이 무슨 짓인가? 어서 당장 사인교로 바꾸지 못할까. 지금 체면을 따질 때가 아니란 말일세. 내 오늘은 걸어서 퇴청하겠네.”

눈치를 살피며 쩔쩔매던 무관이 허리를 숙이며 재빠르게 대답했다.

“예, 대감마님. 바로 거행하겠나이다.”


고종이 즉위하고 지금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흥선대원군이 운현궁에서 오랜만에 부인과 마주 앉았다. 옆에서 늦은 저녁을 챙기는 부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 생각 저 생각이 떠오른다.

대부인 민씨도 그런 대원군의 시선을 느꼈다.

“아유, 나랏일에 얼마나 노고가 많으세요. 그래도 그렇지 이게 얼마 만이랍니까? 우리 영감님 얼굴도 잊겠어요.”

“그래요, 별일 없었습니까?”

“그럼요, 저야 뭐 집에서 서책이나 보면서 소일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수고가 많으시지요.”

“큰 아이는요?”

“예,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암, 그래야지요. 시절이 어렵고 힘듭니다. 이럴수록 사대부의 모범이 돼야 합니다.”

“예, 예, 잘 알겠습니다.”

“그래, 부인께서는 서책을 보신다면서요? 어떤 책입니까?”

“제가 궁금한 것이 아니고 읽고 있는 책이 궁금하시나요? 제가 대감에겐 천덕꾸러기군요.”

“허허, 무슨 말씀을요. 부인이 강짜를 다 부리고, 이거야 원, 허허허.”

“영감님, 저는 염려 마세요, 잘 먹고 잘하고 있으니까요.”

“듣던 중 반가운 일입니다. 한데 전번에 얼핏 들으니 천주학을 공부하신다 안 했소?”

“예, 그랬습니다. 유모 박 씨의 소개가 있었답니다. 소원을 기도하면 된다 하길래… 당신 꿈도 그래 이루어진 것 아니겠습니까?”

“어허, 그렇습니까. 부인 내 말 잘 들으시오… 천주학이 그리 좋으면 중국에서는 왜 그들을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했겠소. 항상 조심 또 조심하셔야 합니다.”

“영감, 우리 아들이 이 나라의 왕이 됐습니다. 그래서 천주님께 감사미사를 드렸어요. 그게 무슨 죄랍니까?”

마주 보고 담소하던 민씨 대부인이 입을 삐죽거리며 따지듯 묻자 대원군도 더는 나무랄 수 없다는 표정이다. 흥선은 다른 날과 달리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부인도 알다시피 세상의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지요. 사람 사는 세상에선 그중 하나를 선택하고 그것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합니다. 내 말뜻은 우리 조선에서는 천주학을 어떻게 볼 것이지… 판단이 완전하게 안 내려졌을 뿐이니 자중하라는 겁니다.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선대대왕들께서 이미 그것에 대해 죄를 물었다는 거예요.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 천주학이 인정받기 어렵다는 소립니다… 다만 세월이 흘렀고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니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겁니다… 모든 일엔 다 때가 있는 법 아니겠소?”

민씨 대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남편을 바라보자 다시 대원군이 입을 열었다.

“사실은 내일 한양에 와있다는 천주학 우두머리를 만나볼 생각이오… 부인은 우리 며느릿감이나 물색해보시는 게 어떻겠소?”

“예, 알겠습니다. 저도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어느 집안이 좋을지…”

“외척이 없으면 더 좋겠소이다. 안동김씨 세도정치를 생각하면 치가 다 떨립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맞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부인, 잘 부탁합니다.”

글 유태희 | 그림 조석희

“여보, 무슨 말씀이세요. 제 아들 일입니다.”

“아하, 그렇군요. 하하하.”

오랜만에 운현궁에서 웃음꽃이 피어났다.

<계속>

글 유태희 | 그림 조석희  naturec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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