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스페셜 소설 이하응:리멤버 1863
운현궁에 천주쟁이가 드나든다는데…[인터넷 소설 이하응 : 리멤버 1863] <12>쇄국의 갈림길
  • 글 유태희 | 그림 조석희
  • 승인 2019.03.30 11:34
  • 댓글 0

그동안 안동김씨 세도정치로 인해 백성들의 살림살이는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대원군은 빈곤이 민란으로 전이되는 것을 우려했다. 왕실의 재산인 내탕금을 각도에 하달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다. 이를 논의하기 위해 오경석의 사랑채에 대원군의 측근인 이경하, 정기세, 천하장안 등이 모였다. 상석에는 포도대장 이경하가 앉았다. 잠시 후 집주인 오경석이 이경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대감, 모두 모였으니 시작하시지요.”

“그럽시다.”

이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게 누구 있느냐.”

오경석이 소리쳤다.

“저올시다. 박상의올시다.”

“어서 오시게.”

박상의가 안으로 들어서자 다들 일어나 맞는다. 박상의는 일개 관상쟁이지만 운현궁에 머무는 명실상부한 흥선대원근의 심복이다.

“대원위대감의 분부가 있었습니다.”

“그러시겠지요. 우리도 지금 막 회합을 시작하려던 참입니다. 자아 앉읍시다.”

이경하가 박상의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다시 앉았다. 집주인 오경석이 다시 입을 연다.

“모두가 맡은 소임에 바빠서 지금에야 얼굴을 보는군요.”

“모두 노고가 많습니다.”

대원군의 심복 중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무장 이경하가 인사치레한다.

말석에 앉은 천하장안의 맏형 천희연도 인사를 건넨다.

“무슨 말씀을요.”

우찬성 유사 정기세가 불쑥 끼어들며 입담 좋게 한마디 건넨다.

“그걸 어디 수고라 할 수 있습니까. 조선 사람이라면 당연히 할 일을요.”

“하하하 좋습니다.”

이경하가 받아쳤다.

“대원위대감께서 왕실의 내탕금을 풀어 팔도에 내리신 걸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 오늘 우리가 모인 것은 그 돈이 백성들에게 잘 돌아가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섭니다. 또 전번에 있었던 의주 부윤 심이택의 탐학을 일벌백계로 다스리지 않았습니까? 각 고을을 지날 때마다 백성들을 모이게 하여 죄목을 읽어주고 그동안 쌓였던 한을 풀 수 있도록 했는데… 과연 민심이 어떠한지요?”

주위를 한 번 살펴본 정기세가 다시 대답한다.

“백성들이 만세를 부르더이다.”

“아직 좋아하기는 이릅니다. 지금 중국에서는 천주교도들을 잡아들이고 있다지 않습니까? 조선에서도 효와 예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러시아도 연해주를 차지하고 이제는 남하 움직임을 보이는 실정입니다.”

“흠, 이렇게 합시다. 내탕금을 나눠주는 문제는… 천하장안이 보부상을 통해 팔도 백성의 소리를 모아주시게. 천주학 동향도 함께 말이지.”

한몫할 기회가 왔다는 듯 천희연이 신난 표정이다.

“암요,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장순규도 끼어든다.

“원래 그런 일은 저희가 해얍죠.”

“좋네.” 이경하가 박상의을 쳐다보며 말한다.

“그럼 오늘 이야기를 대원위대감께 전해주시게.”

“예, 그리고 대원위대감께서 양이 문제를 확실히 해야 한다는 당부가 있었습니다.”

이경하와 오경석은 대원군과 이미 논의를 거쳤던 터라 다른 이견이 없었다. 대신 정기세가 한마디 한다.

“대원위대감께서 누차 엄명이 있었소만 조선의 국경과 바다에서 통상요구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영국, 미국, 법국, 아라사, 덕국, 일본… 특히 함경도 국경에서는 아라사 코사크 기병들이 술에 취해 수백 명씩 나타나 행패를 부리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오경석이 정기세의 말을 자른다.

“아무리 그런들, 대원위대감이 섭정하는 한 개방은 결코 없습니다. 뭇사람들이 쇄국을 욕해도 우리 조선이 힘을 기르는 게 우선 아니겠습니까. 문부터 열었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으니까요.”

이경하도 거들고 나선다.

“그렇고말고요. 그동안 안동김씨가 분탕질해놔서 나라 곡간이 모두 비었습니다. 군졸들까지 굶고 있는 판이에요.”

“그렇습니다. 대원위대감께서는 부국을 이루기 전까지 잘 입고 잘 먹는 것은 안 되다고 하십니다. 오죽하면 점심도 거르며 일하시겠습니까.”

박상의가 열을 내며 말하자 오경석도 질세라 한마디 거든다.

“그래서 대원위대감 아니면 안 된다는 것 아니겠소.”

정기세도 의기투합한다.

“우리 모두 합심해서 대원위대감을 도와 조선을…”

“맞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대원위대감을 끝까지 따릅시다.”

“예, 마땅히 그래야지요…” 오경석이 마무리하자 천하장안은 끼어들지 못한 채 객쩍은 소리를 한다.

“그래도 가끔은 막걸리라도 한 잔씩 걸쳐야 술술 잘 돌아가는 법이지요.” 천하장안 막내둥이 하정일이었다.

“그 말도 대원위대감께 전하겠습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방안에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다.

***********************

대원군의 집에 천주쟁이들이 드나든다는 고변이 있자 대왕대비인 신정왕후가 저녁 무렵 흥선대원군을 처소로 물렀다. 내시가 대원군이 왔음을 고한다.

“대왕 대비마마, 흥선대원군 드셨사옵니다.”

“어서 모셔라.”

흥선대원군이 안으로 들어와 예를 갖추며 인사를 올린다.

“대왕 대비마마 황공하게도 조정 일이 지금에야 끝나 늦었습니다.”

“참 노고가 많으십니다. 다름 아니라 시기와 질투가 많아서인지 대감에 대한 변이 많아 의논차 모셨습니다.”

대원군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김좌근 일당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내사를 벌이던 참이다.

조대비가 매우 조심스럽게 흥선에게 묻는다.

“운현궁에 천주쟁이들이 드나든다는 고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대왕 대비마마. 집안 단속을 한다고는 했습니다만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그러세요. 성균관유생들이 그 문제를 들고 일어났습니다.”

“예, 걱정을 끼쳐드려 송구하옵니다.”

“선대 대왕들께서도 그랬지만 아무래도 천주교는 아니 되겠습니다. 윤리를 저버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대왕 대비마마.”

“그건 그렇고 대원위대감은 경복궁 문제로 골치가 아플 터인데 이 문제까지 들먹여서 면구합니다그려.”

“아닙니다, 곧 경복궁의 좋은 처소로 이사 가셔야지요.”

“아이고 그래야 하고 말고요… 말년에 대감께 큰 선물을 받습니다, 그려.”

“대왕 대비마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소신도 선왕들께서 많은 전답과 노비를 하사하시어 성은을 받은 바 있사옵니다. 조금이라도 보은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대왕대비가 말을 마치자 흥선대원군이 예를 올리고 떠났다. 신정왕후는 인사를 마치고 돌아서는 흥선대원군을 보면서 잠시 엉뚱한 생각에 빠졌다. ‘이 좋은 관계가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몸서리가 쳐지면서 무서워졌다.

***********************

측근들이 서양식 의자에 앉아 흥선대원군을 기다린다.

대원군이 아침 일찍 운현궁으로 오경석과 이경하, 정기세, 천하장안을 불러들였다. 청지기 이연식이 그들이 왔음을 고하자 곧 대원군이 노안당으로 들어왔다. 모두 일어나 맞는다.

대원군이 의자에 앉으며 말을 꺼낸다.

“바쁜 일이라 일찍 불렀네. 모두 앉으시게.”

일행이 모두 앉자 흥선대원군은 한 사람씩 눈을 마주치고는 용건을 말한다.

“전번에 부탁한 대로 조선팔도 백성의 소리를 듣고 싶네.”

천하장안의 맏형인 천희연이 제법 진지하게 어투로 말을 꺼낸다.

“예, 지금까지 조사를 해보니 보부상들이 가져온 이야기 중에 천주학을 들이고자 조상을 모신 위패를 불태우고 사당까지 허문 집안이 있다고 하옵니다.”

이어 둘째인 하정일이 보고한다. “충청도 지방은 그 문제로 집안싸움이 붙어 형제끼리 칼부림까지 벌어졌다 합니다.”

대원군이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찬다.

“저런 저런, 쯧쯧…”

경상도 지방의 보부상을 맡은 장순규가 말을 잇는다.

“경상도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여편네가 천주쟁이들과 어울린 뒤로 조상제사를 못 모시겠다고 하자 남편이 격분해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허 이러다가 조선이 절단이 나겠구나. 이를 어찌하면 좋겠나?”

대원군이 다시 혀를 차며 역매 오경석을 바라본다.

“그렇습니다. 중국도 지금 천주학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모두 잡아들이고 있답니다.”

“흠, 그렇습니까?”

“지금 성균관유생들이 들고 일어난 것도 천주학 때문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이번 기회에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 법대로 처리해야 합니다.”

무장 이경하였다.

듣고 있던 박상의도 한마디 얹는다.

“조선에서는 노비나 천민들이 대부분 천주쟁이가 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조상께 올리는 4대 봉사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양반 중 천주쟁이가 된 이는 없을 것입니다. 호남지방도 그렇지만 충청수군이 있는 오천포와 공주감영에서도 천주쟁이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합니다.”

포도대장 이경하의 목소리가 커졌다.

“오천포항에는 프랑스 배들이 몰려와 통상요구를 해대는데 대꾸가 없자 대포를 쏴대며 시위하고 있습니다. 강력히 대응해야 합니다.”

보고를 듣고 있던 흥선대원군은 고개를 끄덕일 뿐 말이 없다. 잠시 고민에 빠진 듯하더니 입을 연다.

“수고들 했네… 그럼, 모두 맡은 바 책임을 다해 대책을 마련하시게. 이제 역매와 나는 다른 문제를 숙의해야겠으니 먼저들 나가 일 보시게.”

모두 예를 올리고 나가자 오경석만 남게 되었다. 오경석이 대원군을 바라보자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역매, 우리 집안에 천주쟁이들이 드나든다는 고변이 있었다 하오.”

오경석이 놀라며 묻는다.

“아니 그게 사실입니까?”

“그렇소이다.”

“예?”

오경석이 놀라 되묻자 대원군이 천천히 입을 연다.

“아내가 나를 위해 생명을 구걸하고 자식들의 부귀영화를 위해 기도했다니 탓하기도 그렇고… 상감의 유모였던 박씨의 권유로 그리되었다 하오.”

오경석이 화급해졌다.

“대원위대감, 이거 큰일입니다. 이 일이 저쪽으로 흘러 들어가 꼬투리라도 잡히는 날에는… 절대 아니 될 일입니다.”

“글쎄… 나도 큰일이라 생각하오만…”

“대감 어른, 안동김씨 세력을 물리치기는 하였지만, 그 사람들이 심어놓은 사람들이 조선 곳곳에 수백 수천입니다. 그들이 이를 빌미로 사람을 유혹하고 군사를 모으면 반란이 일어납니다.”

대원군이 말없이 침묵에 빠져든다. 오경석도 그런 흥선을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아직은 완전히 권력을 장악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대왕대비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오경석이 긴 침묵 끝에 다시 입을 연다.

“어서 빨리 싹을 잘라내셔야 합니다.”

“흠…”

흥선이 가볍게 기침하더니 말한다.

“천주학 양이 접주가 북경에서 들어와 좌승지인 남종삼의 집에 있다는데 내가 한번 만나볼 요량이오. 역매도 같이 해주시오.”

“예, 그리 하겠습니다.”

“하나 더, 국혼을 서둘러야 정국안정에도 도움이 될 터… 하루빨리 주상의 배필을 찾아야겠소.”

“암요, 그러셔야죠. 꼭 그렇게 되어야 완전합니다.”

“딱 십 년만… 권불십년이라 하지 않습니까.”

“예, 무슨 말씀을?”

“상감께서 십 년 후면 성년이 되시니 나도 물러나야지요. 지금 허리띠 바짝 조여서 나라를 부강하게 하면 헤쳐나갈 수 있을 거외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왕권이 강화되지 않으면 백성들을 하나로 뭉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경복궁을 중건해야 합니다.”

오경석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지금 당장 필요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경석에게는 흥선의 집에 천주쟁이가 드나든다는 사실이 더 중대하게 다가왔다. 이 일이 안동김씨의 오판으로 이어질까 두려웠다.

대원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상감을 그렇게 가르치고 만들어야지요… 그건 그렇고, 역매는 성균관 직강인 최익현을 만나주시오. 앞으로 성균관유생들을 움직여 나라를 바로 이끌게 해야겠습니다.”

“최익현은 사람이 지나치게 올곧아서요…”

“그래서 그 사람이 제격이란 겁니다.”

“예?”

“조선이 부국강병 하려면 백성들을 배불리 먹이는 게 먼저 아니겠습니까? 그 뒤 나라를 살찌우고 군대를 키워야 비로소 서양 나라들과 통상할 힘이 생깁니다. 그러려면 조선 사람 누구든 신분에 상관없이 고루 인재를 기용해야 합니다.”

“그러는 사이 성리학이 무너질까 두렵습니다.”

“어찌 나쁜 점만 먼저 보시오. 좋은 점을 먼저 봐야 할 것이오.”

“알겠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조선의 풍습이 위태롭습니다.”

“지금은 성리학이 중요한 것이 아니외다. 양반이 물 마시고 이 쑤시는 것도 하루 이틀일 테고… 그쪽으로는 최익현과 성균관이 있으면 되오. 그래야 나라의 균형이 맞습니다.”

“사람들 말로는 너무 유약하다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만…”

“그런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모르고 하는 소리요. 최익현의 힘은 현실에 바탕을 두고 실천하는 데 있소. 백성들을 아우르는 힘이 거기서 나오는 겁니다. 이제는 백성들이 스스로 일어나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애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부국강병의 길이 열리지 않겠소.”

오경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흥선이 말을 잇는다.

“들은 이야기지만 법국을 보세요, 백성들이 모두 들고일어나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다고 합디다. 그러니 최익현을 앞세워 바른 마음을 가지고 역사와 대의를 세워야 할 것이오. 다른 한편으론 나라의 재정이 넉넉해지면 서서히 개방의 문을 열 것이오. 우리라고 못 할 바 없지 않겠소?”

“경복궁으로 나랏돈이 몰리는 것은 어찌하시겠습니까? 대감께서 말씀하신 포수 만 명을 키우는 일로 병조판서가 죽을 맛이랍니다.”

“부귀공명이 인생의 성공기준은 아니지 않소, 지금 오백 년을 지켜온 조선이 풍전등화인데 책상이나 지키고 헛기침만 하면 되겠습니까. 어려운 가운데 일을 찾다 보면 묘수가 생기지 않겠소?”

“우찬성 정기세도 비변사에 몇 번을 말했다 합니다.”

“그래요? 흠… 훈련비충당은 어떻게든 해보겠소이다.”

“예.”

“처음 몇 번만 잘 막아내면 견딜 수 있을 것이오.”

“그럼 군선 개발은 어쩌고요.”

“저들의 배가 철선이니 대포를 개발하면서 군함도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양이의 군함 공격을 막아내려면 대포가 필요할 테고 그러려면 대포만 취급하는 부대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병조판서의 얘기도 그렇고요.”

“이를 어쩐답니까… 일은 많고 사람은 없소이다. 좋은 사람들을 천거해주세요.”

“예, 그렇지 않아도 알아보고 있습니다. 한데 지금 장안에 괴상한 소문이 있습니다.”

“무슨?…”

“천주교 외국인 우두머리를 교인들 집에 숨겨놓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그래요?”

“지금 한양사람 중 반이 천주학을 믿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청나라는 지금 어떠하답디까?”

“청나라도 탄압이 극심하다고 합니다.”

“더 생각은 해봐야겠지만… 천주쟁이들에게 포교권을 줘 영국과 연합해 아라사를 막아줄 수 있겠냐고 제안을 해볼까 합니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친다는 말씀입니까?… 잘못하면 여우 잡자고 호랑이 불러들이는 격이 될까 심히 걱정됩니다.”

“내 생각을 더 해보리다. 과연 이이제이(以夷制夷)가 맞는지 말입니다.”

“예, 더 숙고하셔야 할듯합니다.”

***********************

삽화 = 태도(太道) 조석희

1864년 러시아가 남하하며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자 조선의 긴장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때 천주교 신자인 승지 남종삼이 흥선대원군에게 프랑스를 통해 러시아를 견제하자는 ‘이이제이’를 방책으로 제안했다. 대원군과 베르뇌 주교의 만남을 추진한 까닭이다. 대원군은 프랑스가 러시아를 막아준다면 신앙의 자유를 줄 수 있다는 언질을 남종삼에게 주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통상요구가 사그라들고, 운현궁에 천주학쟁이가 출입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흥선대원군은 정치적 상황이 역전될 것을 우려하여 천주교 탄압을 결심한다.

아니나 다를까 민씨대부인이 천주학을 믿는다는 소문이 나자 늦은 밤 김좌근의 집에서 회합이 열리고 있었다. 김좌근의 측근이었던 형조판서 서대순, 호조참판 정건조 등이 주요 참석자였다. 김좌근이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오늘 대감들을 부른 것은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기 때문이네.”

정건조가 묻는다.

“무슨 일 이오신지?”

서대순도 불안한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지금 때가 엄중합니다.”

김좌근이 목소리를 더욱 낮추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조선의 섭정 아내가 천주쟁이라면 그냥 지나칠 문제가 아니지 않겠소?”
 
서대순이 소스라치며 놀란다.

“아니, 어쩌다가…”

정건조가 냉큼 주의를 환기한다. “쉿! 그게 사실이라면…”

서대순이 김좌근 앞으로 바싹 다가앉는다.

“그래서 오늘 모이시라 한 것 아닙니까… 이미 성균관유생들에게 이 사실을 슬쩍 알렸소이다.”

서대순은 두려웠다. 아차 하면 목이 달아나고 삼족이 멸족당할 일이 아닌가.

“소문이 들불처럼 번지고 전국의 유생들이 난리를 치면… 대왕대비도 할 수 없이 흥선대원군을 물리칠 거란 말씀입니까?”

“그렇지, 그렇지… 형조판서는 여전히 머리 회전이 빠르다니까.”

서대순은 김좌근의 북돋우는 말이 싫지는 않았지만, 목이 서늘해지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이때 창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김좌근의 큰소리로 외쳤다.

“여봐라, 게 누가 없는 게냐.”

노복들이 뛰어나와 허리를 굽신거렸다. 잠시 후 청지기가 부복하며 엎드렸다.

“대감마님, 송구합니다, 갑자기 배탈이 나서 잠시 측간에 다녀왔습니다.”

“뭣이라, 측간? 아무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라 신신당부하지 않았더냐!”

“예, 대감마님.”

“에라 이 우라질 놈아!”

방안에서 숨죽이던 사람들이 모두 넋이 나간 표정이다. 오직 정건조만이 짐짓 여유 있는 말투로 김좌근에게 말한다.

“대감께서도 이제 나이가 드셨나 봅니다… 고양이나 바람 소리겠지요. 염려가 너무 크십니다.”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하지 못한 채 회합은 마무리됐다. 측근들이 하나둘 핑계를 대며 슬금슬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김좌근이 허탈한 마음으로 하늘만 쳐다본다.

***********************

포도대장 이경하가 아침 일찍 운현궁 영화루에서 흥선대원군을 기다리고 있다. 김좌근 일당의 동태를 보고하기 위해서다. 대원군이 들어서자 이경하가 일어서 맞는다.

“기침하셨습니까.”

“어서 오세요. 포도대장이 이른 아침부터 어쩐 일이오.”

“다름 아니라… 어제 김좌근을 기찰하는 포교의 보고를 받았습니다. 운현궁에 천주쟁이들이 드나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합니다.”

“흠… 그래, 누가 모였다고 하던가요?”

“예, 형조판서 서대순과 호조참판 정건조, 안동김씨 일가 몇 명이 더 있었다고 합니다.”

“알았네, 기다리고 있었는데 지금서 모였구먼. 그래, 대책은 있소이까?”

“예, 그것을 상의드리려고 일찍 왔습니다.”

“아 참, 식전이겠군. 조반이나 함께하며 이야기합시다.”

흥선은 밖에서 대기 중인 이연식을 불러 조반을 준비시켰다.

<계속>

글 유태희 | 그림 조석희  naturecure@hanmail.net

<저작권자 © 세종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