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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정치의 전면에 나서다[인터넷 소설 이하응 : 리멤버 1863] <10>고종의 즉위식
  • 글 유태희 | 그림 조석희
  • 승인 2019.02.2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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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유태희(행복도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대표, 왼쪽), 그림 조석희(세종시사생회 회장)

1863년 12월 8일. 추존왕 문조의 아내이며 헌종의 어머니인 신정왕후의 명이 떨어졌다. 왕실 최고 어른인 조대비가 도승지에게 사왕(嗣王)인 고종을 본가에서 맞이하도록 전교한 것이다.

영의정 김좌근, 행도승지 민치상, 기사관 박해철·김병익이 대비전의 하교를 채여(彩輿)에 싣고 운현궁에 도착했다. 민치상이 사알(司謁)을 시켜 여쭙기를 “채여가 이미 당도하였으니 청컨대 마루에서 내려와 맞으소서”라고 하였다.

익종과 신정왕후의 아들로 입후(立後)한 익성군(翼成君) 이명복이 백형(伯兄) 이재면, 종형(從兄) 이재원과 함께 마루에서 내려와서는 국궁(鞠躬)하고 남향으로 섰다. 민치상이 앞으로 나아가 이름과 나이 묻기를 마쳤다. 그리고는 대왕대비의 교서를 대청 위의 상에 안치하자 익성군이 마루에 올라 무릎을 꿇었다.

민치상이 대왕대비의 교서를 읽어 아뢰길 마치자 익성군이 사배례(四拜禮)를 행했다. 무릎을 꿇고 있는 익성군에게 민치상이 염슬단좌(斂膝端坐)한 뒤 자전의 교서를 전하자 익성군이 다시 상 위에 안치했다. 이어 입궐할 채비를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대신들이 출발하기를 청하자 흥선군이 교지를 봉행하는 영의정 김좌근 앞에 나타났다. 이때 김좌근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읽기 쉽지 않을 정도로 표정도 묘했다. 비 그친 하늘의 석양처럼 이도 저도 아닌 표정이었다. 흥선군이 여유 만만하게 말을 건넨다.

“지체 높으신 분이 누추한 곳에 어인 행차이신지요?”

김좌근이 어쩔 줄 모른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는지 땅바닥만 쳐다본 채 연신 고개를 조아린다. 흥선군이 재차 묻는다.

“어떻습니까? 나 이하응이 오늘 주상의 자격으로 입궐하시는 익성군의 생부이며 조선 최초의 살아있는 대원군, 맞습니까?”

김좌근이 고개를 더 숙이며 예를 올린다.

“예 맞습니다, 대원군 대감… 오늘부터 제가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김좌근의 목소리가 가을바람 맞은 댓잎처럼 파르르 떨렸다.

철종에 이어 조선의 왕이 된 익성군이 복건(幅巾)에 청색 도포(道袍), 백사대(白絲帶), 흑피화(黑皮靴) 차림으로 가교(駕轎)에 올라 돈화문(敦化門)을 향해 나아갔다. 문무백관은 천담복(淺淡服)을 입고 돈화문 밖에 차례로 서 있었다. 익성군이 교(轎)에서 내려 대기하고 있던 여(輿)에 오르자 백관이 동협문(東挾門)에 배종했다. 인정문(仁政門) 밖에 이르자 여에서 내린 익성군이 동협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어 인정전(仁政殿) 뜰에 나아가 승전색(承傳色)에 청하여 숙배단자(肅拜單子)를 올리고 의주(儀註)대로 숙배했다. 익성군은 인정문을 걸어 나와 다시 여에 올랐고, 협양문(協陽門)에 이르자 다시 내려 선화문(宣化門)으로 걸어 들어갔다. 희정당(熙政堂) 앞뜰을 지나 철종을 모신 극유재(克綏齋)로 들어가서 머리를 풀고 옷깃을 왼쪽으로 한 뒤 북향하여 거애(擧哀)했다. 그러자 시원임 대신과 승지, 사관, 각신(閣臣), 종친(宗親), 의빈(儀賓)들이 함께 서럽게 울고 물러났다.

신정왕후 조대비는 승지에게서 대원군이 입궐했다는 소리를 듣고서야 눈을 떴다. 익성군으로 후사를 결정한 뒤 조카인 조성하의 도움으로 앞으로 있을 섭정에 대해 상의한 바 있지만, 구중궁궐에 틀어박혀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이러다간 안동김씨에게 권력을 되찾아올 수 없을 것 같아 고민됐지만, 마땅히 의논할 사람이 없었다. 친정 조카인 조성하는 똑똑하고 영민했으나 아직 젊은 탓에 온전히 믿음을 주기 탐탁지 않았다. 대비전 궁녀가 승지를 안내하고 다시 승지가 조대비에게 아뢨다.

“대왕 대비마마, 대원군께서 문후 여쭈옵니다.”

조대비가 그제 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서둘러 대답한다.

“어서 뫼시어라.”

기다리고 있던 흥선대원군이 방으로 들어와 예를 올렸다.

“어서 오세요, 대원군.”

“기쁘고 영광된 마음 가눌 수 없사옵니다, 대왕 대비마마. 진즉 인사를 여쭈었어야 했는데… 지금에야 찾아뵘을 용서하십시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귀한 아들 내주시어 익종대왕의 대통을 잇게 하셨으니 내가 오히려 영광돼지요.”

“아니옵니다, 대왕 대비마마의 바다와 같은 아량과 지혜로 오늘이 있었으니 대대손손까지 이 기쁨과 고마움을 전할 것이옵니다.”

“여하튼 서로가 고마운 일입니다. 그건 그렇고… 내 수렴청정을 하면 얼마나 하겠습니까. 임금의 생부가 이리 굳건히 살아있지 않습니까. 의례상 그럴 뿐이니 조금만 말미를 주세요.”

“아이고, 무슨 당치 않은 말씀입니까.”

대원군이 된 흥선은 최소한 여기까지 수를 읽고 있었다. 국내외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연신 자기를 불러 세울 터이고 곧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섭정에서 물러날 것으로 판단했다. 그때까지는 조대비를 떠받들며 기다리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조대비가 바로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내가 체면치레만 끝나면 곧 대원군께 자리를 내어주리라.”

“대왕 대비마마, 아니올시다. 제가 어찌 감히 나라의 정사를 논하리까.”

조대비도 어린 시절 궁궐에 돌아와 갖은 고초를 다 겪으며 오늘의 영광을 이룬 사람이다. 흥선이나 조카인 조성하의 도움도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이 자기의 판단과 선택으로 만들어낸 결과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보위에 오르지 못하고 요절한 남편의 한도 풀어주고 싶었다. 잠시 상념에 빠져 있을 찰나 대원군이 다시 아뢴다.

“대왕 대비마마의 넓고 깊은 지혜로 나라와 왕실을 반석 위에 올려놓으셔야 합니다.”

“무슨 말씀을… 여하튼 두고 봅시다. 다 때가 있지 않겠습니까… 승지는 게 있는가.”

“예, 대비마마.”

“익성군(翼成君)이 이제 입궁했으니… 이조(吏曹)에 일러 대원군(大院君)과 부대부인(府大夫人)의 봉작(封爵) 내리는 것을 오늘 중 거행하세요. 대원군께서 매번 대궐에 들어올 때마다 이에 합당한 위의(威儀)가 있어야 하지 않겠소? 삼영(三營)에 명해 각각 장교 한 명과 순뢰(巡牢) 5쌍씩 정하여 보내도록 하시오.”

“예 대비마마. 분부 받들겠습니다.”

그동안 마음고생 심했던 대원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중차대한 일은 시작도 하지 못했음을.

삽화=태도(太道) 조석희

대왕대비 신정왕후가 수렴청정(垂簾聽政)을 위해 중희당(重熙堂)에 자리하자 의식에 따라 고종이 관례(冠禮)를 위해 입시했다. 도승지 민치상, 좌승지 서승보, 예조판서 김병덕, 참판 정해상, 참의 조헌섭, 호조참의 이재원, 사용(司勇) 이재면이 차례로 나아가 부복했다. 국왕이 된 고종이 복건에 청포·녹사대를 갖추고 발 밖에 시립했다. 조대비는 즉시 신하들을 위무한다.

“연로한 대신들이 밤낮으로 수고하여 몸에 해가 될까 우려되오.”

원로대신인 정원용이 고개 숙여 예를 올린 뒤 천천히 입을 뗀다.

“대왕 대비마마, 애통한 가운데서도 오늘 전하께서 관례를 행하여 모두 기뻐하고 있사오니 염려치 마시옵소서.”

조대비가 발 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제법 여유롭게 다시 입을 연다.

“주상의 관례를 애초 내일 하기로 했었는데, 성복(成服)하고 등극(登極)하는 의절(儀節)이 연달아 겹쳐 오늘로 앞당긴 것이니 그리들 아시오.”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정원용이 정중히 대답한다.

“대왕 대비마마 과연 합당한 일이옵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관례에 비록 예를 다 갖추지는 못하더라도 삼가(三加)하는 축사(祝詞)를 써둔 것이 있으니 이제 이렇게 내리고자 하오.”

승지 민치상이 나선다.

“대왕 대비마마 송구하오나 관례에 예를 미처 갖추지 못하더라도 마땅히 빈찬(賓贊)하는 의절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누가 거행해야 하겠습니까?”

조대비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말한다.

“수상(首相)이 하라.”

“수상이 해야 한다면, 영상(領相)이 거행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정원용이 극구 사양한다.

조대비가 다시 단호하게 말한다.

“영부사(領府事)가 하는 것이 좋겠소이다.”

조대비가 영중추부사를 지목한 것이다. 정원용은 대왕대비에게 깊이 머리 숙여 예를 올린 뒤 앞으로 나가 머리를 빗고 망건(網巾)을 썼다. 사왕(嗣王)인 고종이 안으로 들어가 곤룡포(袞龍袍)를 입고 자리로 돌아오자 정원용이 익선관(翼善冠)을 씌워주고 조금 뒤로 물러서서 초가축(初加祝)을 읽었다. 사왕이 다시 안으로 들어가 강사포(絳紗袍)를 입고 돌아오자 정원용이 원유관(遠遊冠)을 씌워주고 재가축(再加祝)을 읽었다. 이번에도 사왕이 안으로 들어가 면복(冕服)을 입고 돌아오자 정원용이 면류관(冕旒冠)을 씌워주고 삼가축(三加祝)을 읽었다. 이어서 초가·재가·삼가 축사를 봉헌하니 사왕이 직접 받았다. 정원용은 다시 대비전에 예를 올리며 여쭙는다.

“대왕 대비마마, 마땅히 자성(慈聖)께 절하는 예(禮)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단배(單拜)로 행할까요?”

조대비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시오.”

고종은 대왕대비를 향해 배례(拜禮)한 뒤 면복을 입은 채 발 앞 오른편에 앉았다. 다시 정원용이 아뢴다.

“대왕 대비마마 삼가례(三加禮)를 만만(萬萬)하게 경축하옵니다. 우러러보니 용과 봉황의 자태요, 하늘의 해와 같은 모습이십니다. 전하는 바탕이 영수(英粹)하시고 행동거지가 단중(端重) 하면서도 온화하고 길하십니다. 장수하시고 강녕하시는 동안 온갖 복이 함께 올 것이니 종묘사직의 끝없는 경사이며 신민의 크나큰 다행일 것입니다.”

거룩한 축하의 찬사를 받자 대왕대비가 따뜻한 감사의 말로 화답한다.

“망극한 가운데 사왕이 관례를 무사히 행하였으니 나 또한 매우 기쁘고 다행스럽소.”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던 김좌근이 나선다.

“대왕 대비마마, 수렴하신 뒤 진하(陳賀) 받는 것은 경신과 갑오(1834)년에 이미 행한 예법이니 너무 괘념치 마시옵소서.”

“전례가 있었다니 참 다행한 일이오… 즉위식이 내일이니 준비에 만전에 만전을 기해 주기 바라오.”

문무백관이 조대비에게 예를 올린다.

“예, 대왕 대비마마.”

고종의 즉위식이 인정문(仁政門)에서 열렸다. 1863년 12월 13일이었다.

절차에 맞춰 대비전에서 대보(大寶)를 빈전(殯殿)에 받들어 올린 뒤 고종에 전해 인정문에서 즉위하도록 명하고 행했다. 고종은 손시(巽時)에 면복(冕服)을 갖춰 입고 자리에 나아가 북향하고 서서 향안(香案) 앞으로 나아가 사배례(四拜禮)를 행했다. 이어 영의정 김좌근이 찬궁(欑宮)에 나아가 대보를 받들어 사왕(嗣王)에게 전했다. 고종은 여(輿)를 타고 협양문(協陽門)을 나가 연영문(延英門)과 광범문(光範門)을 거쳐 인정문에 도착했다. 국왕이 인정문에 임어(臨御)해 즉위한 것이다. 종친과 문무백관은 ‘천세, 천세, 천천세’를 외쳤다.

고종이 등극해 백성들에게 내리는 교서를 발표할 때 흥선대원군은 감격에 겨웠다. 파락호를 자처하며 살아온 지난날을 생각하면 대성통곡하며 기쁨의 격한 감정을 쏟아냈을 법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무백관이 도열한 가운데 왕의 생부가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덕에 표정 변화 없이 속내를 드러내지 않을 수 있었다.
 
고종이 여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교서를 읽어 내려갔다.

“내가 등극한 첫날에 널리 교유(敎諭)하여 너희 팔방(八方)이 다 함께 듣게끔 하노라. 살리는 것을 좋아하시는 자성의 어진 마음으로 널리 포용하는 데 힘쓰고자 하므로, 백성들에게까지 따뜻한 어버이의 마음을 보이고자 한다. 이달 13일 새벽 이전의 잡범으로 사형수 이하를 모두 사면토록 하라. 관직에 있는 자들은 각기 자품(資品)을 하나씩 더해 주고, 자품이 더 오를 데 없는 자궁(資窮)은 다른 사람을 대신 올려 주도록 하라. 깊은 연못에 임하고 살얼음판 위를 밟는 것처럼 공경스럽게 왕업을 이어받고, 태산 반석과 같이 왕업을 다져야 할 것이다. 이제 하늘이 지혜와 복을 내리는 것이 자식을 낳은 것처럼 모두 처음에 달려 있으니, 너희 백성들은 너희 임금의 가르침과 행동에 이치가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교시하는 것이니, 잘 알리라 생각한다.”

고종이 교서를 승지에게 건네고 자리에서 내려와 여를 타고 광범문과 연영문을 거쳐 협양문으로 들어가 대내(大內)로 돌아갔다. 희정당에 이르러 대왕대비전에 진하(陳賀)했는데, 예법에 따라 예를 행하고 즉위식을 마쳤다.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 명복이 드디어 조선의 왕이 된 것이다.

오경석이 바라던 대원군의 통치가 시작됐다. 하기야 어찌 오경석 한 사람만의 바람이었을까. 고종의 즉위식이 끝나자 대왕대비 신정왕후가 교지를 내렸다.

“대원군, 정사를 총찰하게 함. 정무(世務)는 대원군이 총찰하고 조성하가 함께 도와 행하게 하라.”

내용은 간단명료했지만, 향후 정국을 명약관화하게 예고한 것이었다.

고종 즉위 후 대조전에서 어전회의가 처음 열렸다. 대원군이 대왕대비와 고종에게 예를 표하고 만무백관이 모인 가운데 회의를 주재했다. 대원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먼저 안으로는 사치를 금하고, 뇌물을 주고받는 관행을 근절시키고 이를 지키지 않는 탐관오리들을 엄중히 할 것이오. 문호를 열어 나라의 일꾼을 맞이하는 데 있어 양반과 상민을 나누지 않을 것이며 그동안 탐학의 온상이었던 비변사를 축소하고 의정부의 기능을 대폭 강화할 것이오.”

떨리는 목소리로 시작했지만, 그의 언성은 또렷하고 힘이 있었다. 신료들을 한 사람씩 번갈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공자를 앞세워 백성들을 겁박해 도적이나 다름없는 파렴치한 행동을 일삼는 서원을 모두 정리할 것이며 그 숫자도 몇 개에 한정해 유지할 것이오. 아울러서 밖으로는 여러 신료가 아는바 같이 청나라의 북경이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에 침탈된바 우리 조선도 그에 대한 대비가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오. 그 대비가 무엇인지 묻고 싶소. 각 부처의 소임에 따라 그 방책이 무엇인지 말씀들 해보시오.”

문무백관들은 뜻밖의 질문에 서로 얼굴만 바라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대원군이 다시 입을 연다.

“해결책은 결국 국력을 키우는 것 아니겠소? 마땅히 궁궐부터 하나라도 아끼는 내핍을 시작해야 하고 사대부들도 호의호식을 금해야 할 것이오. 바닥에 떨어진 왕권을 바로 세워 백성들을 어루만져 살피고 위로해야 할 것이외다. 나라가 위급하면 백성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우선 아니겠소이까? 민심을 움직이려면 당연하게도 여러분의 진심부터 내놔야 할 것이오. 요즘 하루가 멀다고 오랑캐들이 조선의 국경을 침탈하고 있소이다. 병조와 이조에서는 조선의 정해진 국법에 따라 엄중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오. 또 그런 사건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보고하는 연락체계를 점검하고 소임을 맡은 신료들은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주기 바랍니다.”

“예, 분부 받들겠습니다.”

문무백관이 흥선대원군에게 고개 숙여 예를 표한다.

“마지막으로 여러분들 중 이것에 대한 묘책이 있으면 조회가 끝난 뒤에도 말씀해주세요. 그 묘안이 채택된다면 중용해서 쓰겠소이다.”

<계속>

글 유태희 | 그림 조석희  naturec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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