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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드러나는 흥선의 계책[인터넷 소설 이하응 : 리멤버 1863] <7>조두순과의 담판
  • 글 유태희·삽화 조석희
  • 승인 2019.01.24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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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은 이른 아침 창덕궁 단봉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창덕궁의 아침은 밤새 궁궐을 지켰던 군사들의 교대와 지방에서 궁궐로 진상하는 물품 행렬로 항상 번다하다. 이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궁궐 입구는 기율 엄격하기로 소문난 금위군이 삼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잠방이 차림의 흥선이 한쪽 바짓가랑이를 반이나 접어 올리고 슬금슬금 문 앞으로 걸어간다. 얼굴엔 숯검정이 여기저기 묻어있고, 한쪽 어깨에는 긴 대나무를 반으로 갈라 만든 굴뚝 쑤시개를 걸치고 한 손엔 징을 들었다.

금위군 병졸이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다가오는 흥선을 아래위로 째려본다. 간덩이가 여간 크지 않으면 딱 오줌 지릴 상황이다. 흥선이 이를 겁낼 리 만무하다. 오히려 금위병이 자신을 알아차릴까가 더 걱정이다. 가끔 종친부 일을 왕에게 보고하러 왕래가 있던 터여서다.

“누구냐?”

금위병의 추궁에 답하는 흥선의 목소리가 잔뜩 겁에 질린 듯하다. 역시 광대놀음으로 다진 흥선의 연기는 조선 최고였다.

“예이, 대비전에 굴뚝이 막혔다는 연통이 와서…”

“뭐라 대비전? 우리는 들은 얘기가 없다.”

“방이 춥다고 빨리 뚫어 달라는 뎁쇼.”

“어허 이 사람이 모르는 일이라는 데도.”

“나리 한 번만 봐 주십쇼. 빨리 들라는 대비전의 엄명이…”

“내 알 바 아니래도.”

장검을 등에 차고 병사들을 지켜보던 금군 장교가 무슨 일인지 확인하려는지 앞으로 나섰다. 그 역시 흥선을 아래위로 훑어본 뒤 거들먹거리며 금위군 병사에게 말한다.

“너는 대비전 나인들에게 가서 사실을 알아보거라.”

군관은 흥선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디서 봤더라’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러자 흥선은 군관 바로 앞에서 똥 마려운 듯 발을 동동 구른다. 발정 난 염소 신음까지 낸다. 시선을 끌수록 의심을 덜 사는 법이다. 흥선의 연기가 잘 통했는지 군관이 낯빛에서 의심을 지운 채 귀찮다는 듯 말한다.

“대비전 굴뚝이 막히면 별감이나 상궁들이 공조에 연락해서 조치할 일 아닌가. 왜 밖에서 사람을 불러 부르길.”

“공조에서도 몇 번 손을 보았습죠. 그런데도 안 되니까 저를 부르신 게 아니겠습니까. 제가 굴뚝 쑤시는 일 하나만은 한양 제일입죠.”

군관이 윽박지르듯 물어본다.

“그래… 그렇다면 구들에 불이 안 드는 이유가 무엇이냐.”

“제가 아무리 한양 최고의 구들장이라도 일단은 눈으로 봐야 합죠. 예…”

“으흠…”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후렁이, 부넘기, 구들개자리, 방고래, 고래개자리를 거쳐 구새(굴뚝)로 빠져나가는 데… 그걸 다 봐야 할 일이 생긴 듯싶습니다. 그래서 이놈을 부르신 게지요. 예…”

삽화=太道 조석희

흥선이 구들의 구조를 일장 연설하고 있는 바로 그때다. 입시하던 조대비의 친정 조카 조성하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 다가왔다.

조성하가 무거운 목소리로 묻는다.

“군관, 무슨 일인가?”

“예, 이 사람이 대비 전에 간다기에 검문 중입니다.”

“구들장이 아닌가? 공조에서 몇 번이나 사람을 보냈지만 고치지 못했다고 들었네만. 대비마마께서 고뿔까지 걸리셨다네. 바삐 들여보내 대비마마의 근심을 덜어드려야 하지 않겠나. 대비마마께서 잘못되시면 내 이 책임을 자네에게 물어도 되겠는가.”

군관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더니 흥선을 재촉한다.

“어서 들어가거라. 어서.”

흥선은 들고 있던 징을 ‘꽝’ 치면서 어깨를 들썩거리더니 “뚫어”하고 외친다. 그러더니 엉덩이를 촐랑대며 조성하의 뒤를 따라 단봉문을 넘어선다.

창덕궁 자경전, 조대비 앞에 조성하와 구들장이 흥선이 나란히 앉아 있다.
조대비가 기가 막힌 표정으로 흥선을 쳐다본다.

“어허, 이게 누구십니까? 종친께서 어찌 이런…”

“글쎄올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기기묘묘하기 짝이 없소이다 그려.”

“이놈이 지은 죄가 많아서 그만…”

조대비가 상궁을 부른다.

“대비마마 부르셨나이까?”

“여기 아이들을 모두 물리고 일체 사람을 들이지 말라.”

“예에.”

상궁이 예를 올리고 나가자 조대비가 안색을 바꾼다.

“아이고, 어서 오세요. 이거 인사가 늦었습니다.”

흥선도 그제 서야 정식으로 예를 갖추고자 한다.

“대비마마, 기체강령 하시옵니까?”

조대비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종친께서도 아시겠지만, 지금 주상께서 한시가 바쁩니다.”

“주상께서 그렇게 위중하십니까?”

조대비가 목소리를 낮춰 대답한다.

“그렇다마다요. 진주민란 이후 부쩍 더 힘들어하신답니다.”

“대비마마… 만약에 말입니다. 주상께서 자리를 보전하시게 되면 며칠이고 그 자리에서 떠나시면 아니 됩니다.”

조대비가 흥선에게 바짝 다가서 되묻는다.

“왜 그렇습니까?”

흥선이 신중하게 말을 잇는다.

“그들은 분명… 대비마마께서 침전 밖으로 나오시기를 기다렸다가 대비마마를 겁박해 자기들 입맛대로 용상을 고르려 할 것입니다.”

“으흠…”

“그러니 주상께서 졸하시면 제일 먼저 승지를 시켜 어보를 챙기셔야 합니다. 이후 신료들을 불러 모아 어전회의를 주재하셔야 합니다. 그 절차의 처음은 대비마마께서 신료들의 생각을 물으시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요?”

“그러면 다시 그들이 대비마마의 의향을 물을 것이고 그때 대비마마께서 일사천리로 발표하시면 되옵니다.”

“한데 그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대비마마, 그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계책이 있습니다.”

“그래요, 그게 뭡니까?”

“……”

흥선이 잠시 뜸을 들인 뒤 말한다.

“좌의정 조두순은 제가 먼저 만나 회유하고 홍순복과 정원용도 만나 다짐을 받겠습니다.”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되겠습니까? 조두순도 내내 저쪽 아닙니까?”

“대비마마, 그 일은 제게 맡기시옵소서. 제가 오늘 저녁 만나서 담판을 짓겠습니다.”

조대비가 불안하다는 듯 말한다.

“아무래도… 성하를 데리고 가는 게 낫지 않겠어요?”

“대비마마, 상황이 바뀌면 전략도 바뀌는 법입니다.”

“상황이 바뀌면 전략도 바뀐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그놈들이 세력을 가졌다 하나 명분을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조정 회의에서 조두순에게 먼저 물으시면 모두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흥선의 이야기를 듣는 조대비는 묘한 흥분을 느꼈다. 인고의 세월이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두려웠다. 가장 어려운 이 시기를 천하의 파락호라는 흥선과 함께 넘어야 한다니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하전이 사약만 받지 않았더라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하는 생각에 미칠 찰나 흥선이 다시 입을 연다.

“대비마마,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육십 년이 지났습니다. 대비마마, 지금의 조선이 보이시지 않습니까? 조선이 넘어지게 생겼습니다. 조선이…”

그날 밤 거사의 흐름을 되짚으며 골몰했던 흥선은 늦게야 잠이 들었다. 흥선을 암살하려는 자객들이 운현궁으로 침입한 것은 깊은 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다른 자객들과는 달랐다. 장검이 아닌 단도를 차고 봇짐을 지고 있었다.

그들은 흥선을 암살하기 위해 운현궁으로 침입해 집을 통째로 날려버릴 심산이었다. 그런데 순찰을 돌던 박상의와 천하장안이 천만다행으로 폭약을 여기저기 장치하던 이들을 발견해 격투가 벌어졌다. 그들 중 한 명은 쓰러지고 한 명은 도망갔다. 사안의 중대성을 직감한 기인 박상하는 예사 사주쟁이가 아니었다. 박상의가 다급하게 일꾼들에게 소리쳤다.

“어서 빨리 대감 어른을 모시고 피하거라. 그리고 자네들은 다니면서 이런 심지들을 전부 끊어내게. 어서! 빨리!”

운현궁이 발칵 뒤집혔다. 천하장안을 비롯해 운현궁의 일꾼들이 모두 칼을 들고 폭약을 찾아 심지를 끊어내느라 난리 북새통이었다. 흥선이 사랑채에서 나와 대청을 거의 빠져나올 무렵 제거하지 못한 폭약 하나가 터졌다. 일하던 일꾼 몇이 죽어 나자빠지고 몇몇은 무너진 서까래와 추녀 끝에서 떨어진 기왓장에 다쳤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될 무렵 난장판이 된 운현궁에 봉두난발 한 흥선이 돌아왔다.

흥선이 여기저기를 살피더니 일꾼들에게 소리친다.

“사람부터 살려라! 에잇, 나쁜 놈들… 내 가만두지 않을 테다. 내 이놈들을…”

흥선은 하늘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그 난리를 겪고도 저녁 식사를 마치자마자 흥선은 좌의정 조두순의 집으로 향했다. 늙은 나귀를 타고 조두순이 나타난 것은 저녁 시간이 다 되고 나서였다. 흥선이 대문 앞에 이르자 집사가 부복하고 달려가 흥선이 왔음을 아뢴다.

“대감 어른 계시오이까.”

“흠, 무슨 일인가?”

“대감 어른, 종친부 유사당상 흥선군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 행색은 멀쩡하던가?”

“예, 그러하옵니다.”

“그래? 멀쩡하다…” 조두순이 혼잣말을 되뇌었다.

흥선은 조두순의 집 정자에서 의연한 자세로 기다리고 있다. 조두순이 인기척을 내고 다가섰다.

“어험.”

조두순의 기침 소리가 들리자 흥선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좌의정 조두순을 응시한다. 조두순은 그때 흥선의 번뜩이는 눈빛을 보지 못했다.

흥선이 너스레를 떨며 조두순을 맞이한다.

“아이고, 좌의정 대감…”

흥선이 가까이 다가가 재차 고개를 깊이 숙이며 존경심을 표시한다.

조두순이 누구던가. 고개를 들 때와 숙일 때를 아는 사람이며, 지금까지 숱한 사화에서도 살아남은 노련한 정치인이다. 흥선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조두순 앞에 부복한다.

“대감 어른, 정원이 참 아름답습니다. 대감 어른의 인품을 빼닮지 않았습니까?”

조두순에겐 익숙한 아부다. 그가 피식 웃는다. 그러면서도 흥선이 불쑥 찾아온 이유가 궁금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임금의 목숨이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다. 안동김씨 쪽은 물론 조대비 쪽에서도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앞에 앉은 흥선도 평소와는 다르지 않은가. 조두순이 시침을 뚝 떼고 입을 연다.

“흠, 종친께서 어인 행차이신지…”

점잖은 말투지만 흥선에게 ‘빨리 용건이나 말하라’는 신호다. 흥선은 다시 뜸 들인다.

“아이고, 대감 어른, 아랫사람에게 어찌 하대하지 않으시고요.”

“허허, 무슨 말씀을.”

“대감 어른의 음덕이 아니었다면 어찌 저 같은 파락호가 이렇게 밥 안 굶고 살겠습니까.”

“허허, 내 한 게 무에 있다고… 그건 그렇고, 어쩐 일로…”

“따지고 보면, 제가 어디 못 올 데를 왔습니까? 지나가다가 대감 어른께 잠시 인사나 여쭙고 가려 했습죠.”

“오늘 조정에서 들으니 종친 집에서 사달이 났다고 하던데… 몸은 괜찮습니까?”

“아이고, 별일 아니었습니다. 대감 어른께서 저를 걱정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그려.”

쓸데없는 말만 지껄이는 흥선이 짜증스럽다는 듯 조두순이 눈살을 약간 찌푸린다.

“자자, 그건 그렇고. 종친께서 무슨 일이신지…”

흥선은 직감했다. 조두순을 편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흥선이 바짝 다가서서는 정색하고 말한다.

“그럼,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대감 어른께서는 삼대에 걸쳐 임금을 보필하셨지요. 승지, 대사성, 이조참판, 황해도 관찰사… 공조판서,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평안도 관찰사… 예문관대제학, 병조판서, 이조판서, 우의정을 하시고 지금 좌의정에 오르셨습니다.”

조두순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허허, 어떻게 내 이력을 나보다 더 자세히 꿰고 계시오.”

“대감 어른을 존경하고 우러러보면서 항상 배움을 얻고자 했을 뿐입니다.”

“허허, 이거 오랜만에 들어보는 달콤한 말이구려. 그 안에 독을 숨긴 건 아닌지 모르겠소이다.”

“대감 어른, 제가 어찌 독을 숨겼겠습니까… 달이 맑고 흐리고 둥글고 이지러짐이 있듯이 우리네 인생도 기쁨과 슬픔, 이별과 만남의 연속 아니겠습니까… 달이 기울면 다시 차고, 다시 기우는 게 자연의 도리 아닙니까?”

“무슨 말씀을 하고 싶은 겝니까?”

“지금 하옥 대감께서 세 번째 영의정을…”

조두순은 흥선의 말꼬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심경이 복잡했다. 천하의 파락호 흥선이 물러날 때만 기다리는 자신에게 일인지하 만인지상을 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흥선이 고삐를 바짝 당긴다.

“대감 어른께서 곧 춘추 칠십이 되시지 않습니까…”

조두순이 흥선에게 눈을 흘기며 재촉한다.

“그래, 하고 싶은 말씀이 뭐요? 빙빙 돌리지 말고 본론으로 들어가 봅시다.”

“권불십년이라 했지만 지금 몇 년입니까. 곧 칠십 년입니다.”

“그래서 역모라도 하시렵니까.”

“지금 주상께서 위중하신 걸 대소신료가 모두 알고 있지요. 내일 일이 어찌 될지 모를 긴박한 상황 아닙니까? 새 시대가 다가오는데… 준비하셔야죠. 대감 어른께서 영의정에 오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순리죠, 그게 순리입니다. 새 시대를 만드실 분은 대감 어른뿐입니다. 그리하시면 온 세상이 대감을 칭송할 겁니다. 암요, 그렇고 말고요.”

“어허, 이 사람이… 지금 누굴 회유하려고…”

흥선은 조두순을 막다른 골목에 몰았다고 확신했다.

“회유라니요? 어찌 제가 대감 어른을 감히 회유할 수 있겠습니까. 순리를 말씀드릴 뿐입니다. 대감 어른이야말로 삼대에 걸친 만고의 충신 아닙니까? 대감 어른께서 이대로 물러나시면 이 나라 조선은 어찌 되겠습니까?”

조두순이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흥선이 틈을 주지 않는다.

“대감 어른,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주상께서 승하하시면 어차피 대왕대비께서 어보를 거두실 것 아닙니까? 왕실의 예법대로 결정은 대왕대비께서 하셔야죠. 대감 어른께서 한마디만 거드시면 깨끗하게 마무리되는 겁니다… 아주 깨끗이요. 새 시대가 열리면 누가 이 나라를 이끌어가겠습니까? 대감 어른께서 앞장서 주셔야죠. 태평성대를 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암요, 그렇고 말고요.”

조두순의 입에서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흠… 태평성대라…”

<계속>

글 유태희·삽화 조석희  naturec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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