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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연맹 학살사건, 세종시 ‘은고개’에 서린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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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연맹 학살사건, 세종시 ‘은고개’에 서린 아픔
  • 이주은 기자
  • 승인 2020.06.25 0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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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70주년 시리즈 3편]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 한 많은 세월로 보낸 70년
이장 권유로 가입한 연기주민, 이유 없이 총살행
유족회, "학살 명단이라도 알려 달라" 간절한 요구
은고개 국제보도연맹사건 지역을 나타내는 지도. 현재는 기반 공사가 한창인 6-3생활권 산울리다. (발췌=비성골 유해발굴 조사보고서)

[세종포스트 이주은 기자] “사격 훈련하니깐 나오지 마라더라고... 나오면 큰일 난다고... 그리고 총성이 울렸지.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지만 무서워서 나서기 겁났어. 마을 사람들은 귀신 나온다고 못 가게 했어.”

1950년 6월 25일. 우리는 6.25전쟁 만을 기억하지만, 하나 더 기억해야 할 역사적 사건이 있다. 

6.25 발발 직후인 7월 초 연기 지역 주민들이 이유 없이 학살당한 ‘은고개 국민보도연맹 학살 사건’이다.

군경에 의한 집단 학살로 연기군 주민만 200여 명 이상이 아무 이유 없이 학살당한 이 사건은 좌익 활동을 한 전력이 있는 사람들을 전향시키려는 목적에서 창설된 국민보도연맹을 가입한 민간인을 색출, 학살한 사건이다.

당시 이승만 정권에서는 국민보도연맹이 6·25전쟁 발발 후 북한군에 협조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군과 경찰을 동원해 학살했지만, 당시 주민들은 국민보도연맹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죽어갔다고 전해진다.

한문수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세종유족회장은 “아버지가 은고개 사건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어려서 기억은 안 나지만, 어머니가 나를 둘러업고 조치원경찰서에 2번 면회 후 아버지는 트럭으로 끌려가 총살을 당했다고 한다”며 “이장이 좋은 거라고 가입하라고 해서 뭔지도 모르고 가입했는데 마을 사람 여럿이 죽었다. 그때 아버지 나이가 39세였다”고 회고했다.

한문수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세종유족회장이 6.25를 맞아 오래된 이야기를 회상하며 은고개 사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외할아버지가 한 회장에게 전해준 그 날의 기억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다.

논에서 일을 하다 경찰서에 잠시 가자는 말에 주민들이 함께 올라탄 덤프트럭. 그 후 숲 사이에서 총성이 울렸고 덤프트럭에 올라탄 주민들은 마을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더 슬픈 건 총성이 울려 퍼지고 남은 가족들이다.

“은고개 사건 당시 나는 2살이었고 두 살 터울의 형이 있었다. 어머니는 27살에 남편을 잃었다”는 한 회장은 “이복 누나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고 가출했는데 월북 후 평양에 산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전했다.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굴레로 평생을 살아왔다는 한 회장은 최근에서야 이 사건을 공론화하고 있지,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까운 지인에게도 일체 함구했다고 한다.

“어머니 또한 평생 입을 다무셨다가 돌아가시기 전 60세가 넘으시니 아버님 이야기를 꺼내시더라고요. 평생 말 한번 시원하게 못 하고 한 많은 세월을 보내신 어머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한국전쟁 전·후 많은 민간인이 이유 없이 국가 공권력에 죽임을 당했지만, 구제 방법이 없었다.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기본법’이 제정되고서야 민간인에 대한 유해발굴 조사가 시작됐다.

연기군 은고개 사건은 현재 공사 중인 6-3생활권에 속하는 비성골 일대(연기군 산울리)로, 세종시 아름동과 도담동에서도 지근거리에 있다. 

아픈 역사와 진실은 지난 2018년 ‘한국전쟁 민간인 집단희생지 유해발굴 조사 보고서’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면서 점점 알려지기 시작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유해와 성씨가 새겨진 고무신, M1 소총 탄피와 탄두 등 학살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70년 전의 아픔과 마주하게 됐다. 발굴된 유해는 현재 세종시 전동면 ‘세종 추모의 집’에 안치돼 있다.

세종시 전동면 '세종 추모의 집' (사진=박종록 기자)
세종시 전동면 '세종 추모의 집' (사진=박종록 기자)

지난 2017년 9월에는 세종국제고 학생들이 모금을 통해 ‘위령비’도 세웠다. 유가족들은 “정부가 나서서 하지 못 하는 일을 오히려 학생들이 기억해줘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어 “은고개 사건이 70년이 지나 이제 피해자들도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많고, 나이가 많아 스스로 이 사건을 진상을 규명하기 힘들다”며 “개인이 나설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진실을 밝혀주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 이들에게 가장 간절한 건 ‘은고개 사건의 희생자 명단 공개’다.

수감 또는 희생을 당했다는 명단이 없으니 정확한 사인을 알 수도 없고 억울한 죽음을 달랠 길이 없다고 강조했다. 사망 신고조차 정확히 처리되지 않았다고 한다.

유가족들은 “평생 드러내기 싫어 마음속에 묻어두기만 한 진실이지만, 이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용기를 내고 있다”며 “개인이 역사를 밝히기는 쉽지 않기에 정부가 정확한 진상규명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충남본청에 서류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70년 전의 일을 일일이 다 조사하고 찾아서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힘에 부친다”고 덧붙였다.

올해로 5번의 위령제를 지낸 ‘은고개 사건’. 현재 세종시 주민과 연관된 사람은 158명까지 늘었다. 현재까지는 아름동 오가낭뜰 공원에서 위령제를 치렀지만, 산울리(6-3생활권) 주거단지가 형성되면 새로운 기념관(LH 계획)에서 위령제를 치를 수 있게 된다.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 슬프지만, 우리 지역 주민들의 억울한 죽음이 바로잡히길 바란다”는 유가족들의 호소. 

유해 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나란히 줄 선 고무신이 그날의 비명을 대신하는 듯하다.

70년 가까이 땅속에 묻혔던 진실. 이제는 하나씩 그 진실과 마주해야 함은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당면과제다.

지난 2018년 은고개 지역에서 발굴된 고무신 모습. 연구진은 이 씨, 송 씨 등 이름이 새겨진 고무신도 있다고 전했다. (발췌=비성골 유해발굴 조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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