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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최대 격전지 ‘개미고개’ 전투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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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최대 격전지 ‘개미고개’ 전투의 진실
  • 정은진 기자
  • 승인 2020.06.23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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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70주년 시리즈 1편] 옛 연기군 전의면 개미고개, 금강 방어선의 상징적 지명
희생자 상흔 고스란히 남아... 미군과 달리 한국군 참여 기록과 재조명은 전무
개미고개 공원 전경

[세종포스트 정은진 기자] 지나간 역사를 되짚는 일은 현재를 직시하는 지표가 된다. 

6.25전쟁의 상처가 아문 상흔으로 남아있는 현재. 공교롭게도 최근 북한과의 관계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선 '제2의 6.25전쟁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란 불안감과 우려도 커지고 있다.

남북관계 정상화와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간 지정학적 관계 재정립은 그래서 절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3년간 셀 수 없는 사상자와 한 나라를 피로 물들인 붉은 흔적은 미래를 재조망하는 시작점이다. 연기군(지금의 세종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기군의 최대 격전지, 전동면 개미고개는 그 흉터를 고스란이 안고 있다. 

개미고개는 현재 세종시 전동면 청람리에 위치하며, 북한국의 진격을 나흘 동안 지연시킨 6.25 전쟁사 최고 격전지 중 하나로 손꼽힌다. 

산이 개미허리처럼 생긴 형태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차령산맥의 지맥이 고려산과 증산, 작성산, 금성산, 장고개 등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있다. 이곳은 쥐라기 시대 대규모 지각변동에 의해 형성된 지대로, 여러 번의 변성작용에 의해 굴곡진 형태를 띄어 전쟁시기 전술을 전개하기에 용이했던 곳으로 해석된다. 

개미고개를 알리는 비석과 공원, 개미고개 지형
개미고개의 지형은 굴곡진 형태의 고개고 안개가 잘 형성되어 전쟁 당시 전술을 펼치기 용이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6.25 전쟁 전, 개미고개의 역사

개미고개는 현재 전동면 미곡리와 청람리를 잇는 길을 칭하지만, 본래의 개미고개는 면 수구동에서 전의 주유소에 이르는 곳을 지칭했다고 한다.  

전의면 수구동 일대 개미고개는 고려조 몽골군 침략 당시 왕을 위태롭게 보던 이들의 피난길로 이용된 역사를 비롯, 조선시대에는 충청 내륙지방의 조곡을 운반하던 길로도 사용됐다. 

1920년대 초반 일본인들은 이곳에 경부선 철도를 개통하기 위해 작업 차량 수송로 격인 신작로로 현 개미고개를 개척했다. 폭 5m 가량의 사거리로 개미고개 도로를 만들어 대전과 천안, 청주를 잇는 주요 간선도로 역할을 부여했다.

개미고개 전투의 비통함을 형상화해서 만든 조각상

금강의 방어선, ’개미고개 전투’의 전말

1950년 6.25전쟁 당시 개미고개를 중심으로 북한군 2개 사단과 미군이 벌인 전투가 ‘개미고개 전투’다.

전쟁 발발 이후 사흘만에 서울이 점령되고, 북한군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남하했다. 북한군이 남침하자 정부는 대전으로 후퇴하고 국제연합(UN)의 신속한 파병에도 경기 오산과 천안이 차례로 함락됐다. 미군은 대전을 지키기 위해 금강을 방어선으로 삼았다.  

그 해 7월 7일, 미군 제24사단 제21연대는 사단장인 윌리엄 딘 소장의 '조치원 부근의 진지 점령 명령'을 통해 7월 8일 개미고개 좌우에 진지를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스미스 1대대장은 개미고개 부근의 '두집메(현 동교리 산21번지)'의 초가집을 지휘소로 썼다.  

전투 준비를 하며 오얏고지(현 베어트리 파크 언덕)와 운주산 능선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전의면 일대 주민들에게 피난을 피력하기도 했다. 

종군기자에 의해 기록된 개미고개 전투 당시 사진

7월 9일 아침 미군 제24사단 제21연대 3대대는 박격포로 적 전차 5대를 불태우는 전과를 올렸으나, 7월 10일 오전 북한군의 반격을 맞이했다. 미군은 M24 전차를 사용, 전의 부근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북한군은 후퇴 후 다시 7월 11일 전차를 앞세우고 안개를 이용, 미군 진지가 있는 개미고개를 공격했다. 12시간에 걸친 전투 끝에 제24사단 제21연대 미군 667명 중 517명이 희생되는 결과를 낳게된다.

개미고개 전투 끝에 미군 제24사단은 205명의 보충병을 받아 조치원 방어에 나섰으나 북한군의 거센 공세를 받았다. 북한군이 개미고개를 넘어 오봉산으로 이동하고 7월 12일 새벽 조치원으로 진격하자, 그날 저녁 금강을 건너 철수했다.  

개미고개 전투는 미군 제24사단 제21연대의 인력과 장비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으나, 북한군의 남하를 4일간 지연시키는 효과를 거둔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개미고개에 세워져있는 위령탑
개미고개 공원에는 6.25당시 전사자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과 함께 이름을 적어놓았다. 전쟁 당시 촬영된 사진들도 볼 수 있다. 

개미고개 전투 이후 70년, 남겨진 숙제는

전쟁의 상흔이 잊혀가던 2005년 5월. 이기봉 연기군수와 박대순 조각가는 개미고개 전투를 기념하는 기념비와 위령비를 세웠다.  

미군 전사자의 미수습된 유해 36구를 2009년~2015년까지 수습하고 미군에 전달해 언론의 재조명을 받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발굴 당시 인민군의 무기 창고로 쓰였던 성곡 폐터널에는 참호 흔적과 탄피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곳엔 위령비를 비롯해 설명문,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긴 벽과 전쟁을 형상화한 조각들이 설치되어 있으며,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로 지정되어 2006년부터 매년 7월 11일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제 또한 열리고 있다.

추모제에는 생존한 미군 용사들이 참여하고 시민들은 이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하는 등 추모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2015년 12월 민선 2기에는 무궁화 공원과 가로수 길이 조성돼 6.25전쟁으로 산화한 미국 군인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여기서 역사기록의 안타까운 현실을 목도했다. 

미국은 '미국의 전쟁희생자 기록'과 '희생자들에 대한 영웅화' 작업을 충실히 이행한 데 반해, 한국군의 경우 그렇지 못했다. 

한국군은 개미고개 전투에 참여해 전사했다는 유추 기록만 있을 뿐 명단과 관련 기록이 상세히 되어있지 않다. 관련 조사도 미비한 상황이다.

실제 희생자 이름을 적어놓은 공원의 벽면엔 희생된 한국군의 이름이 전무한 상태다. 전쟁을 겪었던 마을 주민들의 증언으로나마 조명되고 있을 뿐이다. 지속적으로 자국군의 희생을 기리는 미국과 대조를 이룬다.  

정부는 지난 1월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화합을 도모하는 사업추진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켰으나 움직임은 여전히 미비하다. 6.25전쟁 당시 세종시 주요 전투와 희생을 기억할 사업 발굴이란 숙제가 부각되는 현재다.  

개미고개 공원 어귀의 비석에는 개미고개 역사를 기리는 시가 쓰여있다. 

 

보라 이 평화로운 산과 들, 지난날 침략의 불길 솟아올랐던 끔찍했던 죽음의 고갯마루

이름도 모르는 곳에 자유를 위해 이역만리에서 달려와 평화를 위해 숱한 생명 버려가며 버틴 이 능선

어디 자유가 거저 얻어지는 것인가. 평화 또한 절로 찾아오는 것인가

아니다 많은 장병이 생명 불살랐기에 오늘 이땅에 빛으로 남았느니

<중략>

우리는 자유롭고 평화로울 때마다 이들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 박경석 시인 <자유 평화의 빛> 중에서

 

숱한 생명이 산화된지 70년이 지난 땅 위에서 비교적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는 우리. 이들의 희생을 기리고 기억하는 것을 넘어 실체를 알아가는 노력이 필요한 2020년이다.  

지나간 역사를 되짚는 일을 통해 실체를 직시하는 지표를 만들고, 이를 토대로 탄탄한 미래를 세우는 것. 자유롭고 평화로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다. 

[참고문헌]

 

『전동면지』(전동향토지발간추진위원회, 2011) 전쟁기념관(https://www.warmemo.or.kr)『한국지명총람』-충남편(국토지리정보원, 1980)『향토사료』1(조치원문화원, 1985)『전동면지』(전동면지발간위원회, 1996)『한국지명유래집』-충청편(국토지리정보원, 2010)『한국지질도』-유성도폭(자원개발연구소, 1974)『정밀토양도』-연기군(농업진흥청 농업기술연구소, 1978)『1:25,000 지형도』-전의(국립지리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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