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70주년, ‘평화와 번영, 공존’으로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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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70주년, ‘평화와 번영, 공존’으로 가는길
  • 이계홍
  • 승인 2020.06.2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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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70주년 시리즈 5편] 더 이상 과거의 냉전 논리에 묶이지 말자 
6.25 기념 대신 민족 자주의 발언권 키워야
6.25전쟁의 상흔은 70년이 지난 지금에도 남아 있다. 앞으로 70년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발췌=전쟁기념관)

세종포스트는 지난 23일부터 6.25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최근 △6.25전쟁 70주년, 세종시의 어제와 오늘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 ‘개미고개’ 전투의 진실 △세종시에서 '전쟁의 상흔'을 찾다 △세종시 은고개 민간인 학살지, 숨겨진 역사 드러날까 △세종시 은고개 비극, 희생자 위로할 위령비 세웠다 등 특집 기획물을 연재했다. 

이는 6.25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되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반의 대비책을 강구하고, 미래 세대에게 평화와 번영, 화해와 협력이 가능하도록 토대를 마련하자는 데 있다. 단순히 전쟁의 참화와 그에 따른 증오와 저주를 되살리자는 데 있지 않다. 

6.25의 참화는 전국 어느 지역이라고 해서 인자하게 비껴가거나 외면되지 않았다. 고을마다, 집집마다 비극의 상흔이 탄환처럼 박혀서 고통과 아픔을 주었다. 그중 대전-청주권은 남북한군이 밀고 밀리는 종심이고, 그로 인한 대립이 격화돼 희생이 유독 많았던 곳이다. 

우리가 이 지점을 놓치지 않고 6.25를 호출하고, 치유하고 극복하기 위한 특집을 꾸몄다. 상처를 많이 받은 지역일수록 비극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고, 그에 대한 치유책을 강구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 ‘분단·침략·냉전·증오·저주’ 논리, 과거에 멈출 수 없다 

이제 과거에 멈출 수는 없다. 과거에 빠져들어 멈칫거리기에는 우리 삶이 곤고하고 숨이 가쁘다. 그런데 현실은 여전히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이념’을 증폭하고 분열상을 보이고 있다. 

되도 않는 좌우 이념 대립, 즉 좌우, 또는 보수 진보로 갈렸다. 좌우 이념이나 보수 진보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편을 갈라 증오하고 저주한다. 

사실 전쟁 발발일을 기념하는 나라는 세상에 우리나라 밖에 없다. 도대체 지구촌 어느 나라에서 전쟁발발일을 기념하는 나라가 있는가. 거기에는 다분히 정치적 계산이 내포되어 있다. 6·25 행위를 기억하여 북한을 증오하자는 정치적 목적이 있다. 

분단, 침략, 냉전, 증오, 저주의 논리를 내세운 것이다.  

당연히 비판되어야 한다. 널리 기억되고, 전쟁을 일으킨 북한 집단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일일까.  

세계는 냉전이 해체되었고, 우리는 민족 화해와 평화와 공존의 방향으로 물줄기를 틀고 있다. 전쟁의 참화를 뼈저리게 아는 이상 화해와 평화, 공존과 번영의 가치를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다. 

√ 6.25 기념 대신 ‘민족 자주의 발언권’ 키워야 

민족 자주의 발언권을 키우는 일만이 다시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맛보지 않는 지름길이다. (발췌=전쟁기념관)

갈등과 증오를 키우기 위해 존재하는 6.25 기념일은 이제 존재할 가치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민족 자주의 발언권을 키워야 한다. 

외세 의존이 얼마나 우리 민족에게 치욕을 안겨주었는가. 임진왜란, 정유재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을사늑약, 8.15분단, 그리고 6.25 전쟁…. 

이런 모든 비극은 우리 내부의 허약성과 분열상, 그리고 외세 의존에서 비롯되었다. 시대 모순을 타개할 힘이 없이 외세에 기생하면서 생긴 민족의 비극이다.

수백년간 이런 외세 의존, 사대근성은 우리의 머릿 속에 침잠되어 하나의 내재된 정서가 되었다. 이런 패배주의적, 허무주의적 태도는 일관되게 지금까지 관통되었다.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되었다. 

세계 경제대국 10위권의 반열에 올랐다면 가슴 펴고 살 때가 되었다. 인구도 남한 5300만,  북한 인구 2500만을 합하면 8000만의 단일 언어, 단일 민족의 대국이 되었다. 당당해져도 무방한 힘과 볼륨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뼛속깊이 스며든 외세 의존 세력이 있다. 외세의 등 뒤에 숨어서 정치적 이익을 취해온 세력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을사늑약 때도 있었지만 이들 세력은 8,15 분단 이후 더욱 강화되고 구조화되었다. 그만큼 달콤한 이익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민족’ ‘조국’ ‘자주’라는 단어에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거부하는 세력이다. 이들이 1세기 가깝게 권력과 자본, 인사권 등 기득권을 형성한 주체다. 독재권력을 뒷받침해온 중심세력이다.   

분단과 6.25는 반공적 국가질서를 강제시키고, 그 과정에서 남이나 북이나 독재정권이 들어선 빌미를 제공했다. 

이제는 이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네오콘, 늘 주변국의 희생이 강요된 상태에서 번영을 구가해온 일본의 탐욕성, 그리고 미일 양국의 비호 아래 부도덕한 정권을 유지하며 이익을 취해온 국내 수구기득권 세력, 중국의 팽창주의 등에 유의하고, 이것들을 극복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 한국의 지성사회와 시민사회가 청산 기제를 작동해야 한다. 

√ “어떤 외세도 피(민족)보다 우선할 수 없다” 

외세에 기생해 정치적 지평을 넓혀온 세력이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바른 길로 가면 된다. 그러나 그들이 그 길을 갈 것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는 부국강병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이미 우리의 국방기술과 무기 생산력은 세계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자주국방 태세를 갖출 기술력과 잘 훈련된 군사가 있다. 이를 토대로 외세를 타고 넘는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 

언제까지 패배주의적, 허무주의적 태도에 안주하고, 강대국의 품 안에서 눈치보며 살 것인가. 외세가 우리를 보호해줄 울타리라기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우리 곁에 와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때로는 위협하고, 때로는 분열시키고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둘째, 힘을 기른 가운데 평화의 담론을 세계에 호소해야 한다. 

외세에 의한 분단과 필연적으로 올 수밖애 없는 내전, 이를 극복하는 힘은 우리 스스로 가져야 한다. 전쟁이 남긴 분단구조의 극복, 종전 시점의 한미관계의 특수성 등으로부터 연유하는 불평등 관계의 평등 회복 등 현재적 과제를 해결하는 외교적 능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셋째, 6.25는 남북간에 종전, 평화, 화해, 공존, 번영의 담론으로서 실천적 전환을 내포한다. 6.25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당면한 현재적 과제에 대한 해답의 모색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냉엄한 국제질서와 내부의 분열책동을 일삼는 세력을 제어하는 힘을 기르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막연히 성숙한 국민지성이 제압할 것이라고 기대지 말고, 외세의 지원과 내부 부도덕한 자본의 협력으로 ‘깽판’을 치는 세력에 대해서는 과감히 법의 엄격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외세 타령, 내부 저항에 더 이상 방관하거나 체념해서는 안된다. “어떤 외세도 피(민족)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선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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