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세종시가 미혼남녀 인연을 찾아 드립니다 흡연・마약 없는 세종시 학교, 건강 지수는 맑음 "고향사랑기부제 이벤트 참여하고 답례품 받아요" "고혈압·당뇨병 수치 내리고, 선물 받아요" 장애인 정보통신보조기기 구매 가격 80% 지원
실시간 댓글 요즘은 농촌의 실개천에도 모두 보를 설치하여 필요시 모아진 물을 농업용수로 활용합니다 그런데 생태계가 파과되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물은 인간생활의 필수요소 입니다 세종시 인구 40 만을 앞두고 있고 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날지 알 수가 없어요 인구 10만시대 기준으로 보면 정말 큰 문제이죠 다행히 노무현 전대통령께서 혜안을 가지고 보를 계획하셔서 도시발전의 기반이 마련되었네요 정말 탁월한 판단이 아닐수 없네요 세종시는 살기좋은 도시로 정평이나 있지만 자영업자의 무덤이라는 오명도 가지고 있어요 전국 최고의 상가 공실, 노잼도시라는 혹평 정말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떻게든 사람이 모이고 경제가 생동하는 활기찬 도시를 만들어야합니다 그것의 첫출발이 금강 개발이고 세종보 존치입니다 세종시의 유래에 대해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유용한 정보 많이 부탁드립니다 ~~ 국회나 대통령실 오면 외국 귀빈들도 많이 올텐데 세종시 경관 뭐 보여줄게 있나요? 금강변 풀밭보다 꽃과 나무나 우거지고 각종 놀이.편의시설이 갖춰진 잘 정비된 수변공간을 보여주는 것이 강한 인상을 주지 않을 까요 순전 제 생각입니다 ㅋㅋ 미국 서부 콜로라도 강에 대한 개발이 이루어 지지 않았다면 후버댐도.뉴딜정책도..루스벌트도.라스베이거스도.로스엔젤레스도..오늘날의 발전된 미국도 없었을 것입니다 콜로라도강 개발사업이 오늘의 위대한 미국을 있게한 장본인입니다 강을 어떻게 활용하는냐에 도시나 국가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직시햐야합니다 금강에서 유람선.요트.수상스키도 타고 싶다. 한강과 금강은 똑같은 강인데 한강에서는 모두 할 수 있고 금강에서는 하나도 할 수 없고 ㅠㅠ 중국 하나라 우왕은 지금도 중국인에게 역대 최고의 성군 입니다 이분의 치적으로 다른게 없어요 중국의 최대 강 황하의 치수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여 성공하고 오늘 날의 중국이 있게 만든 사람입니다 인류문명이 강에 시작 되었듯이 강을 어떻게 잘 활용하는지에 따라 국가나 도시의 운영이 좌우된다고 생각합니다 세종시도 금강을 잘 활용하여 도시 부흥을 이뤄 내야합니다 물론 최대한 친환경적인 개발을 해야겠지요 세종시장님은 부재중 .. 시내버스 무료화, 광역교통버스(M버스) 운행, 비단강 금빛프로젝트 다 어디 갔나요 정원박람회도 연기되고.... 당선될때만 해도 2년정도되면 금강주변이 상전벽해로 변할 줄 알고 기대감이 엄청 컸는데 달랑 노인분들 이용하는 파크 골프장 하나 생겼네요 시장님 의지가 부족하신가? 아님 공무원들이 문제인가요? 이분은 누구신데 세종시 탄생을 꿰뚫고 있나 ? 중앙지에나 실릴법한 묵직한 글을 쓰셨네 ㅎㅎ 대도시를 정면으로 관통하는 강은 한강과 금강뿐이다 한강은 그동안 르네상스.포로젝트,.지금은 썬셋 그레이트 프로젝트 등을 시행하면서 서울시 의 비약적 발전을 견인하고 있는데 세종의 금강 주변은 풀밭뿐이다 너무나 대비되고 야속하다 비단강 금빛프로젝트 말만하지 말고 적극 시행해라 시민들이 모두 박수 칠거다 논리적인 기고문 잘 읽었습니다 정말 한말씀도 틀린말이 없네요 세종보가 4대강 사업과 연관되어 도매금으로 넘어갔는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네요 보 설치의 뚜렸한 명분이 있었군요 반드시 존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강에는 십여개에 이르는 댐이 있지만 한강의 생태계는 아무문제 없이 건강합니다 한강주변 개발을 통해 서울이 세계적인 도시가 되었듯이 세종도 비단강을 개발하여 제2수도로 겁니야합니다 그럴려면 물이 풍부해야죠 풍광도 좋아 강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야합니다 그게 세종이 사는길 입니다 환경단체 반대 이해 못하는바는 아니지만 무조건적인 반대는 곤란합니다 환경도 중요하지만 오염이나 훠손을 과학으로 해결해야 한다는데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동식물도 보호해야하지만 세종시 수변상가 수백명의 자영업자들이 잠못이루며 시름시름 않고 있는데 이런 불쌍한 사람들은 눈에 안보이나요 환경단체 정말 너무합니다 우리상인들이 개구리나 두까비 만도 못한가요 ㅠㅠ 아주 좋은글 감사 합니다ㅡㅡㅡ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아내 초상화를 부처님으로 그리다니...! 아내 초상화를 부처님으로 그리다니...! 의뭉스런 조선판 포로노그라피 의뭉스런 조선판 포로노그라피 고단한 타국생활...냉기 감도는 듯 고단한 타국생활...냉기 감도는 듯 비상하는 불사조 ··· 찰나의 몸짓에 에너지 '뿜뿜' 비상하는 불사조 ··· 찰나의 몸짓에 에너지 '뿜뿜'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세종시교육청, 청룡의 해를 맞아 2024년 청렴달력 제작 배포 세종시교육청, 청룡의 해를 맞아 2024년 청렴달력 제작 배포 세종시 중등교사, 수업 나눔으로 성장의 열매 맺는다 세종시 중등교사, 수업 나눔으로 성장의 열매 맺는다 세종시교육청, '꿈을 꾸고 이루는 모두의 직업교육 축제' 호응도 높다 세종시교육청, '꿈을 꾸고 이루는 모두의 직업교육 축제' 호응도 높다 세계와 소통하는 '창(窓)...'2023 세종 국제청소년포럼' 세계와 소통하는 '창(窓)...'2023 세종 국제청소년포럼' 학교 방문 컨설팅으로 모두가 특별해지는 학생성장 지원 학교 방문 컨설팅으로 모두가 특별해지는 학생성장 지원
기사 (16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이순신 버금가는 또 다른 충무공, 김시민 진주대첩도-김시민장군 기념사업회충무공 김시민(1554∼1592) 장군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1578년(선조 11) 무과에 급제하여 군기시에 입사하였다. 1591년에 진주판관(종5품)이 되었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목사(정3품 수령) 이경(李璥)을 대신해 목사직을 이었다.1592년 10월 진주성 1차 전투에서 진주판관(종5품) 성수경(成守慶), 곤양군수 이광악(李光岳), 함창현감 강덕룡(姜德龍), 의령의병장 곽재우(郭再祐), 거창의병장 김면(金沔), 합천의병장 정인홍(鄭仁弘) 등 경상우도 관군과 의병을 연합하여 특별기고 |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 대표) | 2013-12-06 18:23 조선, 형제의 길을 갈라놓다 이성계의 부름 마다했던 ‘김사렴’ 조선의 1등 개국공신 오른 ‘김사형’충북 청원군 오창면 모정리에 있는 김사렴의 묘.고려 말 충신 안동김씨 김사렴(金士廉)의 충절은 후세에까지 귀감으로 통한다. 김사렴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문장에 능하였으며, 공민왕 초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안렴사(按廉使, 지방장관)에 이르렀다. 정몽주(鄭夢周), 이색(李穡,1328~1396)과 친교가 두터웠으며 함께 직간(直諫)으로 이름이 높았다.1365년(공민왕 14) 왕이 신돈(辛旽)을 총애하여 신돈에게 벽상삼한삼중대광 집현전 대학사를 더하고 공신의 호를 특별기고 |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 대표) | 2013-11-26 10:24 왜군도 감복한 임진란의 영웅‘변응정’ 세종시 전동면 청남리에 있는 변응정 장군 사당(신축 전후 모습)조선시대 충신 변응정(邊應井)은 정사년(1557년, 명종 12년) 10월에 태어났다. 공의 자(字)는 문숙(文淑)이다. 문예(文藝)가 일찍 성취하였으나 여러 차례 과거에 떨어지자 개연히 붓을 던져버리려는 마음을 가졌었는데, 중부(仲父)인 판서공(判書公) 변협(邊協)이 힘써 권면했다.공의 나이 29세에 무과에 응시하여 낙방하였는데, 그때에 북변(北邊)에 일이 많자 조정에서 궁시(弓矢)를 잡을 줄 안 사람은 모두 보내서 수자리를 살게 하였으므로 공 또한 함께 북방으로 가게 특별기고 |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 대표) | 2013-10-28 10:55 고종황제 어의(御醫) 배출한 한의학 명문가 1대 변석홍 이어 5대 변기운까지 가업계승112년 역사 간직한 충북 영동의 ‘제월당’충북 영동의 제월당 전경고종황제의 어의(御醫, 임금이나 왕족의 병을 치료하던 의원)로 유명한 죽천(竹川) 변석홍(邊錫弘, 1846~1926년)은 충북 영동군 양산면 가곡리 출신으로 고종황제의 어의(御醫)를 지낸 원주변씨 가문의 1대(代) 한의사다.그의 아들 죽암(竹巖) 변영목(邊永穆, 1878~1923년)은 부친의 가업을 이어 환자를 찾아다니며 치료하는 참여적인 한의사로 유명했으며, 침구학(鍼灸學, 침과 뜸의 기초 이론과 치료 방법을 연구하는 한의학 특별기고 |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 대표) | 2013-10-15 10:27 최영·이성계와 함께 천하를 호령했던‘변안렬’ 고려 말, 변절의 역사 속에서 빛난 충의(忠義)원주 변씨 시조 변안렬은 고려 말의 무신으로 자는 충가(忠可), 호는 대은(大隱)이며 본래 심양(瀋陽)사람으로 전해진다.변안렬 장군 묘역 전경원주 변씨 족보와 문헌에 의하면 중국 송나라 말에 고려 황주(黃州)에 귀화한 변요의 아들 변여(邊呂)가 태천백에 봉해졌다. 그의 현손(玄孫, 손자의 손자) 변순(邊順)은 서기 1268년(원종9) 사신 탈타아를 수행하여 원나라에 가서 심양의 장수로 있다가 심양후에 봉해졌으며 그의 아들 변양(邊諒)이 이를 계승하였다.대은 변안렬 장군 묘역변안렬(邊安烈 특별기고 |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 대표) | 2013-09-30 14:02 역사를 뛰어넘는 조정철과 홍윤애의 순애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제주도판 춘향전’지난 6월 제주시 애월읍 한 중산간마을 남쪽 농지 근처에서 조정철의 딸과 사위의 묘가 발견돼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양주조씨를 이야기하면서 제주목사 조정철(趙貞喆)과 관련된 순애보를 빠뜨릴 수 없다. 조정철(1751∼1831)의 자는 성경(成卿)·태성(台星), 호는 정헌(靜軒)이다. 1775년 별시문과(別試文科,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보던 과거)에 병과(丙科)로 급제했다. 그는 1777년 강용휘(姜龍輝) 등의 정조 시해음모사건에 연루되어 제주(濟州)로 유배된 인물이다.1810년 특별기고 |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 대표) | 2013-09-16 10:26 세종이 그때 조말생을 사형시켰다면… 조선 문벌 양주조씨, 그 번성의 기원조말생 초상양주조씨(楊州趙氏)의 근원지는 지금의 서울특별시 강북구 번동인데 선계(先系)는 실전되어 상고 할 길이 없다. 시조(始祖)인 조잠(趙岑)은 고려 때 양주호장(楊州戶長)을 지내고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왕명을 출납하던 중추원(中樞院)의 정2품 관직)를 증직 받은 판원사공(判院事公)인데 조지말(趙之末)의 후손으로 군우(君佑)의 손자 경질(景質)의 아들이라는 설(說)이 전해지고 있다. 양주조씨는 판원사공 1세조 조잠과 2세조 호판공 조인필(仁弼) 3세조 서운관정공(書雲觀正公) 조의(誼)로 3대 특별기고 |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 대표) | 2013-08-19 13:45 윤리경영의 선구자, 류일한 진주류씨 근대 인물로는 진천군 류지정의 손자인 류일한(柳一韓)이 유명하다. 류일한은 1894년 고종31년 경북 예천에서 출생했으며 1904년 10세 때 대한제국 순회공사 박정현을 따라 미국 유학길에 올라 25세 때 미시간대학을 졸업했다.그 1년 전부터 서재필박사와 교류, 독립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1926년 31세 때 귀국, 유한양행(柳韓洋行)을 설립해 은밀히 독립자금을 마련하는 한편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미 육군전략처 한국담당 고문으로 활약하면서 LA에 재미한국인 무장맹호군 창설을 주도했다. 1944년에는 국토수복작전(NAPK 특별기고 |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 대표) | 2013-07-22 00:00 숭례문 현판 글씨는 누가 썼을까 숭례문의 현판을 누가 썼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 이런저런 역사서를 보면 숭례문 현판을 쓴 주인공이 다르게 기술돼 있기 때문이다.이수광의 ‘지봉유설’과 ‘신증동국여지승람’,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양녕대군이 썼다고 되어 있으나 여러 이설이 존재한다. 추사 김정희의 ‘완당 전집’에는 조선 초기의 문신인 신장의 글씨라고 적혀 있으며,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숭례문이라는 이름은 삼봉 정도전이 지은 것이요, 그 액자는 세상에서 전하기를 양녕대군의 글씨라 한다"고 기록돼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잡지인 특별기고 |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 대표) | 2013-07-08 00:00 대표적 무인가문, 조선을 떠받치다 ▲ 대전시 서구 평촌동 산 18번지에 있는 류혁연의 묘진주류씨 1세조(중시조) 류인비(柳仁庇)는 문화류씨 시조 류차달(柳車達)의 10세손이다. 밀직사(密直使 : 왕명의 출납과 숙위와 군기에 관한 일을 맡아본 관청의 벼슬로 종2품)를 지낸 류순(柳淳)의 아들 7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고려에서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 : 제찬과 사명을 맡아보던 관청의 종2품 문형), 지춘추관사(知春秋館司 : 고려 조선 때 시정의 기록을 맡아본 춘추관의 벼슬)등을 거쳐, 정당문학(政堂文學 : 중서문하성의 종2품 재신)을 지내고 진산군(晋山君 특별기고 |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 대표) | 2013-06-24 00:00 최초의 순국선열, 현대사 정치거목 배출 이응로 화백·이시종 충북지사 등 유명인사 많아 ▲ 이한응 열사가 자신의 형님에게 보낸 유서의 전문.근대사 최초의 순국선열인 이한응(李漢應)은 대표적인 전의이씨 후손이다. 이한응은 1874년 10월 30일 용인 이동면 화산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경천(敬天), 호는 국은(菊隱)이다. 그는 1892년 육영공원을 졸업하고 한성부주사와 관립영어학교 교관을 거쳐 1901년 3월 영국, 벨기에 양국주차공사관의 3등 참서관으로 런던에 부임했다. 이후 이한응은 냉혹한 국제관계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청일전쟁(1894년)과 러일전쟁(1904년)은 일본 특별기고 |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 대표) | 2013-06-10 00:00 고려와 조선의 기둥 된 청백리 가문 문의·효정·문장공 후손, 3대 인맥 형성 ▲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수입리에 있는 평간공(平簡公) 이제신(李濟臣) 묘와 1621년 건립된 신도비전의 이씨는 18세손에 이르러 총 277개 파로 구분된다. 대사성공파에서는 110개 파, 문장공파에서는 22개 파, 전서공파에서는 145개 파(派)로 나누어진다. 대사성공파 중에서 도절제사공(都節制使公) 승간(承幹)의 5대손 중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찰사와 판서 그리고 좌참찬(左參贊, 의정부의 정2품)을 지낸 신암(新菴) 이준민의 후손들 중에 무과(武科)로 저명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됐다. 이 후 특별기고 |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 대표) | 2013-05-24 15:33 시조 이도, 왕건에게 이름을 하사받다 전의이씨의 시조 태사공 이도(李棹)는 전의 운주산 이성(李城)에서 출사해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남정할 때 헌책마수(獻策馬首)로 승전하는데 일조했다. 그 공으로 서기 936년 고려개국통합삼한익찬이등공신삼중대광태사전산후(高麗開國統合三韓翊贊二等功臣三重大匡太師全山候)에 사작되었다. 시호는 성절(聖節), 사명된 휘는 도(棹)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이도의 초명(初名)은 치(齒), 시호는 성절(聖節)로 기록돼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甄萱)을 정벌하러 5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여 금강(錦江)에 도착했을 때 강물이 범 특별기고 |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 대표) | 2013-05-13 14:00 1430년, 세종시 건설은 예언됐다? 독락정은 세종시의 대표적 문화유산이다. 옛 연기군 남면 나성리 금강변에 1430년 처음 건립된 독락정은 연기군 시절 ‘향토유적 제42호’로 지정되었고, 1988년 삼문 및 사당이 완공되어 전서공(典書公) 임난수의 충효정신을 기리고 있다. 지난 2007년부터는 이곳에서 임난수의 충효정신을 기리는 ‘독락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독락정은 임난수 장군의 둘째 아들 임목(林穆,1371~1448)이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임목은 이 정자에 대한 기문을 아들 뻘인 남수문에게 부탁했고, 남수문은 존경하는 임목을 위해 ‘독락정기(獨樂亭記)’를 지 특별기고 |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 대표) | 2013-04-15 16:58 임난수 장군의 충절 흐르는‘세종’ 임난수(林蘭秀 : 1342~1407.6.21)는 부안임씨가 자랑하는 인물이다. 그는 1342년(충혜왕 복위3)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임숙(林淑), 어머니는 유씨(劉氏)이다. 부인은 용성부원군 최유의 딸로 네 명의 아들을 두었다. 임난수는 고려 말기에 충남 공주(세종시 건설지역인 연기 남면)에 낙향하여 살던 충신이다. 임난수는 32세의 나이로 1374년(공민왕 23) 최영장군과 함께 탐라를 정벌하여 공을 세웠다. 당시 오른쪽 팔이 적에게 잘리자 잘린 팔을 화살통에 넣고 싸워 전승하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흥복도감(興福都監) 특별기고 |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 대표) | 2013-03-29 15:06 충청권 곳곳서 만날 수 있는‘뿌리의 흔적’ ▲ 신독재 김집 부인 기계유씨 묘표기계유씨는 조선 초기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기계유씨는 유의신을 파조로 하는 동정공파(同正公派), 월성군(月城君) 유승추(兪承樞) 계통인 월성군파(月城君派), 동정(同正) 유진적(兪晉迪) 계통인 장사랑공파(將士郞公派) 등 열다섯 파로 갈라져 있다. 전서공파의 파조(派祖)인 유효통(兪孝通, 자는 행원)은 태종8년 1408년에 식년(式年, 3년마다 보던 정기과거) 문과(文科, 대과)에 급제하여 세종 때 성균관의 대사성(大司成, 정3품 수장)과 집현전직제학(集賢殿直提學, 종3품 관직)을 지냈다. 특별기고 |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 대표) | 2013-03-15 16:16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