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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뛰어넘는 조정철과 홍윤애의 순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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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뛰어넘는 조정철과 홍윤애의 순애보
  •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 대표)
  • 승인 2013.09.16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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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와 인연 깊은 양주조씨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제주도판 춘향전’


지난 6월 제주시 애월읍 한 중산간마을 남쪽 농지 근처에서 조정철의 딸과 사위의 묘가 발견돼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6월 제주시 애월읍 한 중산간마을 남쪽 농지 근처에서 조정철의 딸과 사위의 묘가 발견돼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양주조씨를 이야기하면서 제주목사 조정철(趙貞喆)과 관련된 순애보를 빠뜨릴 수 없다.

조정철(1751∼1831)의 자는 성경(成卿)·태성(台星), 호는 정헌(靜軒)이다. 1775년 별시문과(別試文科,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보던 과거)에 병과(丙科)로 급제했다. 그는 1777년 강용휘(姜龍輝) 등의 정조 시해음모사건에 연루되어 제주(濟州)로 유배된 인물이다.

1810년 풀려나 사간원의 정언(正言, 정6품), 동래부사(東萊府使, 정3품 수령)를 거쳐 1813년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 종2품 감사)가 됐다. 1816년 이조참의(吏曹參議, 정3품 차관보)가 되었고, 1831년 왕명을 출납하던 중추부의 정2품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자리에 올랐다. 저서로 정헌영해처감록(靜軒瀛海處坎錄)이 있다.

1777년 즉위한 지 얼마 안되는 정조를 시해하고 은전군을 추대하려는 역모사건이 발각되자 조정이 발칵 뒤집혔다. 당시 조정철은 27세의 장래가 촉망되던 준수한 선비였다. 그의 증조할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조태채, 할아버지는 통덕랑 조겸빈, 아버지는 이조참판 조영순이다. 그야말로 조선 명문가의 자손이었다. 그러나 그의 장인인 노론(老論) 시파(時派)의 거두 형조판서 홍지해와 함께 역모에 휘말리면서 제주로 유배를 떠난다. 사형을 면할 수 없는 대죄였지만 조태채의 손자인 점이 참작돼 겨우 극형을 면할 수 있었다.

조정철과 홍윤애의 신주
조정철과 홍윤애의 신주

그런데 제주 유배지에서 20살 아가씨 홍윤애(洪允愛)를 만나게 된다. 육지에서 지원해줄 가족이 없던 정헌(靜軒)의 처지가 궁지에 몰렸다는 걸 알게 된 홍윤애는 용기를 내어 의탁지 김윤재의 아낙을 찾아가 자기가 그분을 돌보아드리겠다고 자청했다. 홍윤애는 정헌의 의복과 식사를 수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머니가 시집 갈 때 쓰라고 생전에 마련해 두고 간 비단옷감을 팔아 붓과 종이, 서책을 구해 정헌에게 시와 글을 쓰도록 했다.

그러던 중 당파가 달라 오랜 견원지간인 김시구가 정조 5년(1781) 3월, 제주목사로 부임해 오게 된다. 그는 오자마자 판관(判官) 황윤채와 짜고 조정철을 제거하고자 했다. 조정철을 불러 갖은 형벌을 가하여 죄목을 만들고자 했으나 뜻대로 안되자 정헌의 거처를 출입하던 홍윤애를 잡아들인다. 동헌 마루 대들보에 거꾸로 매달린 홍윤애는 결국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조정철을 지아비로 맞은 지 2년을 못 채우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딸아이는 이제 겨우 백일도 지나지 않은 젖먹이였다.

정조가 죽고 새로운 임금이 등장하면서 조정철은 유배에서 풀리게 된다. 27살에 대역죄인이 된 뒤 약 30년이 흐른 뒤였다. 다시 관직에 오른 정헌은 제주 목사를 지원했다. 그는 부임 첫 날, 마중 나온 관리들의 영접을 뿌리치고 서둘러 어딘가로 갔는데 그곳은 남성 밖 (전농로) 냇가에 있던 홍윤애의 무덤이었다. 정헌은 홍윤애의 무덤을 단장하고 비를 세우며 비문(碑文)에 이렇게 썼다. 옥 같던 그대 얼굴 묻힌 지 몇 해던가 누가 그대의 원한을 하늘에 호소할 수 있으리 황천길은 먼데 누굴 의지해 돌아갔는가 진한 피 깊이 간직하고 죽고 나도 인연은 이어졌네 천고에 높은 이름 열문에 빛나리니 일문에 높은 절개 모두 어진 형제였네 아름다운 두 떨기 꽃 글로 짓기 어려운데 푸른 풀만 무덤에 우거져 있구나.지난 1997년 11월 9일 경상북도 상주에 있는 양주조씨 문중의 사당인 함녕재(咸寧齋)에서는 홍윤애를 조정철의 정식 부인으로 인정하고 사당에 봉안하는 의식이 거행됐다. 두 사람의 순애보가 186년 만에 복권된 셈이다.

제주도 애월읍 유수암리에 있는 홍윤애의 묘
제주도 애월읍 유수암리에 있는 홍윤애의 묘


또한 제주지역 한 신문사 취재팀은 지난 6월 조정철의 딸 양주조씨(1781~1863)와 사위 박수영(1783~1811)의 무덤을 확인했다. 제주시 애월읍 한 중산간마을 남쪽 농지 근처에서 발견된 무덤은 박씨 집안에서도 누구의 것인지 모른 채 관리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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