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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뭉스런 조선판 포로노그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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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뭉스런 조선판 포로노그라피
  • 변상섭 기자
  • 승인 2024.05.05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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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신윤복 作 사지장춘(四時長春)
신윤복 作 사시장춘.

추녀 끝에 흐드러지게 핀 앵두꽃, 계곡의 폭포를 보면 영락없는 춘경(春景)이다. 그러나 자세하게 뜯어보면 은근히 춘정(春情)이 느껴지는 자극적인 그림이다. 대놓고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림 곳곳에서 농밀한 춘의가 풍긴다.  의뭉스럽게 표현한 19금 그림이다. 

혜원 신윤복의 ‘사시장춘’(四時長春.19세기)이란 작품이다. 

우선 댓돌 위에 놓인 신발이 눈길을 끈다.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분홍 비단신은 가지런한데 남자의 검은 신은 한 짝이 흐트러져 있다. 무엇이 그리 급했던지 후다닥 벗고 들어간 모양새다. 더울 법한 날씨에 장지문이 굳게 닫혀 있는 것도 이상스럽다.

술 쟁반을 받쳐 들고 있는 계집종의 엉거주춤한 자세도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기만 하다. 주안상을 가져왔다고 주인 마님을 불러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모습이다. 연분홍 댕기와 짝을 이룬 얼굴에 살짝 띤 홍조도 춘정을 암시하는 복선처럼 여겨진다. 정황으로 봐도 신발 주인공들의 춘정이 마당까지 전해지는 듯하다.

‘있을 건 다 있고 될 일은 다 돼 있다’는 해곡 최순우 선생의 헌사 또한 걸작이다. 있을 건 뭐고 될 일은 무엇인가. 장황한 수식어나 설명이 없어도 미루어 짐작하면 누구나 다 알 일이다. 의뭉스런 표현, 그것만으로도 낯 붉히면서 궁색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더 이상의 설명은 군더더기고 사족이다. 격조를 잃지 않으면서 남녀의 농밀한 운우지정을 에둘러 표현한 혜원의 천재성에 감탄사를 절로 나게 한다.

혜원의 사시장춘은 과부가 봄을 탄다는 ‘이부탐춘(嫠婦耽春)’과 정사를 나누다 들켜 급히 이불로 알몸을 가린 선비의 난처한 상황을 그린 ‘기방무사’와 더불어 조선시대 ‘에로티시즘의 압권’, ‘춘화도의 대명사’로 꼽힌다. 그러나 어느것 하나 노골적인 표현은 없이 암시하듯 나타냈다. 

화제 또한 걸작이다. 봄,여름 가을 겨울이 모두 봄날이라니. 사랑 놀음이 그런다는 얘긴가 보다. 화제를 입춘방을 붙이는 기둥에 살짝 가려 쓴 아이디어도 기발하다. 넉사자(四)를 나뭇가지로 가린걸 보면 그래도 마음 한편에 불편한 구석이 있었던 모양이다. 

포르노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춘화다. 그러나 ‘우리 옛 그림 속 춘화’는 즉흥적이고 노골적인 포르노와는 격과 느낌의 뉘앙스가 천지차이다. 그래서 그림보는 맛이 더 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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