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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드네 버리고 아버지도 잃은 테세우스[박한표의 그리스로마신화 읽기] <26-6> 아리아드네의 실
박한표 대전문화재단 공동대표 | 문학박사

테세우스를 비롯한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태운 배가 마침내 크레타섬에 도착했다. 크레타의 미노스 왕에게는 아리아드네와 파이드라라는 딸이 있었다. 그중 아리아드네가 늠름하고 아름다운 청년 테세우스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녀는 테세우스에게 괴물을 죽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라비린토스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그녀는 미궁을 설계한 다이달로스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했다.

다이달로스도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테세우스를 돕고 싶었다. 비록 자신이 아테네에서 추방된 신세이지만 테세우스는 자신과 동향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리아드네에게 실타래 하나를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실을 미궁 입구에 묶고 서서히 풀면서 안으로 들어가라고 하세요. 괴물을 죽인 다음에는 실을 따라 다시 나오면 됩니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에게 실타래를 건네주면서 말했다. “아무 조건은 없어요. 나를 아테네로 데려가 아내로 삼겠다고 약속만 해주세요.”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 카소니 캄파나의 장인(Maître des Cassoni Campana, 16세기 초 프랑스 출신 이탈리아 화가로 추정). 캔버스에 유채, 155×69㎝, 1510~1520년경 프티팔레미술관(프랑스 아비뇽).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무사히 라비린토스를 빠져나왔다. 일행의 선두에 선 테세우스는 실을 풀면서 미궁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미궁 깊숙한 곳에서 미노타우로스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 무시무시한 모습에 모두 겁을 먹고 뒷걸음치는 가운데 테세우스는 혼자서 용감하게 괴물을 주먹으로 쳐서 쓰러뜨렸다. 테세우스는 다시 일행의 선두에 서서 실을 따라 왔던 길로 되돌아나왔다. 바로 여기서 ‘아리아드네의 실’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그것은 ‘어려운 문제를 푸는 열쇠’라는 뜻이다.

테세우스는 약속한 대로 아리아드네를 데리고 아테네로 향했다. 크레타 군사들은 나중에 테세우스가 탈출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를 추격할 수 없었다. 테세우스가 출항하기 전 미리 크레타의 모든 함선 밑에 구멍을 뚫어놓았기 때문이다.

야속하게도 아리아드네는 아테네로 갈 운명이 아니었다. 그녀가 테세우스와 헤어진 곳은 식수를 조달하기 위해 잠시 들른 낙소스섬이었다. 왜 그가 아리아드네와 헤어졌는지는 불분명하다.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가 그녀를 납치했다거나, 테세우스에게서 강제로 빼앗았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가장 잘 알려진 설에 따르면, 테세우스는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아리아드네를 스스로 버렸다.

그는 잠든 아리아드네를 낙소스섬에 버려두고 떠났다. 얼마 후 디오니소스가 낙소스섬에 들렀다. 그는 깊은 슬픔에 젖어 있는 아리아드네를 발견하고는 아내로 삼았다고 한다.

‘낙소스섬에서 잠든 아리아드네’ 존 밴덜린(John Vanderlyn), 캔버스에 유채, 175×224㎝, 1808~1812년, 펜실베이니아 순수미술아카데미(미국).

아테네의 아이게우스 왕이 아들의 귀국을 이제나저제나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동안 테세우스는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아테나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살아서 돌아가면 배의 검은 돛을 흰 돛으로 바꿔 달겠다고 한 아버지와의 약속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테세우스의 배는 검은 돛을 그대로 단 채 항구로 향하고 있었다. 바닷가의 절벽에서 검은 돛을 단 배를 본 아이게우스는 아들이 죽은 줄로만 알고 절망한 나머지 절벽 아래 바다에 몸을 던져버렸다. 이후 그 바다는 아이게우스의 바다, 즉 ‘에게해’라고 불리게 되었다.

아테네의 항구에 상륙한 테세우스는 무사 귀환의 기쁨을 누릴 틈도 없이 아버지의 장례부터 치러야 했다. <계속>

박한표  webmaster@www.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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