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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헤라클레스’ 테세우스[박한표의 그리스로마신화 읽기] <26-1>모노산달로스
박한표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 문학박사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연작은 첫 권이 2000년에 나오고 2007년 출간된 네 번째 권에 이르렀다. 제5권을 학수고대했는데, 심장마비로 2010년 세상을 떠난 후 유고 작으로 그해 10월에 출간되어 원래의 구상대로 완성됐다.

다섯 번째의 신화는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이다. 5권에 걸쳐 유창하게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풀어낸 그의 입담이 우리를 매혹시켰다. 생경한 번역서 읽기에 지친 우리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제5권의 이아손은 모노산달로스(Monosandalos), 즉 외짝 신발의 사나이다. 어쩌다 운명적으로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린 것이다. 아르고는 영웅 이아손이 타고 먼 북쪽 나라로 갔던 배 이름이다. 이아손이 북쪽 나라 콜키스에서 그 나라 공주 메데이아의 도움을 받아 황금빛 양의 털가죽, 황금모피를 찾아 가지고 돌아와 왕위를 되찾는 이야기다.

모노산달로스에서 모노(mono)는 하나라는 뜻이다. 산달로스(sandalos)는 가죽신이다. 슬리퍼와 비슷한 신발이름 샌들(sandle)이 여기서 유래했다. 필자는 여름에 샌들을 즐겨 신는다. 신고 벗기가 편하고, 통풍이 잘되어 발에 땀이 나지 않아서다.

신발은 인간 존재 자체다. 우리가 살아 온 삶의 흔적을 한 장의 종이에 기록하고 이를 이력서(履歷書)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력서라는 말의 한문을 풀어보면, ‘신발(履)’를 끌고 온 역사(歷)의 기록(書)’이다.

‘고무신 거꾸로 신는다’는 말이 있다. 사랑하는 상대가 변심한 경우에 쓰는 말이다. ‘그리운 사람의 신발 끄는 소리(예리성 曳履聲)가 들리면 버선발로 뛰어나간다’는 말도 있다. ‘신발 신을 틈 없이 달려 나가야만, 아니 자신의 온 존재를 벗어 놓은 채 달려 나가야만 완전하게 그리운 임의 품에 안길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사람들은 강가에 신발을 벗어 놓은 채 물 속으로 뛰어든다. 왜 그럴까? 신발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신발의 고무 밑창 하나가 우리와 대지 사이를 갈라놓는다. 대지는 인간이 장차 돌아가야 할 곳이다.

‘테세우스(Thésée)’ 크리스토프 샤르보넬(Christophe Chabonnel), 브론즈, 48×19×19㎝, 2015, ⓒGalerie BAYART(프랑스 파리)

인간은 죽어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리고도 잃어버린 줄 모르는 사람과 잃어버렸다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은 다르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잘 알아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일상에 매몰되어 살다보면 내 삶을 살 수 없다.

그래서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은 신표(信標)가 된다. 우리말에 ‘부절(符節)’이라는 것이 있다. 옛날 사신들이 몸에 지니고 다니던 돌이나 대나무 같은 것으로 만든 일종의 신분증 같은 것이다.

사신들이 가지고 다니던 부절은 온전한 것이 아니라 반으로 나눈 반쪽이었다. 나머지 반쪽은 임금이 보관하고 있었다. 이 두 개의 반쪽 부절을 딱 맞추어 딱 맞을 경우를 ‘부합(符合)’이라고 했다. 지금도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단어다. 예컨대 “개인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부합한다”고 말한다.

부합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맞춘 부절이 딱 맞듯이 두 가지 사물이 서로 꼭 들어맞음’이다. 영어로는 ‘인덴처(indenture)’, 즉 ‘두 통으로 만들어 각각 서명한 계약서’라는 뜻이다. 그리스 원어로는 ‘심볼론(symbolon)’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나그네가 한 집에서 오래 머물면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주인과 헤어질 때 접시나 은화 같은 것을 반으로 나눠 한쪽은 자신이 갖고 나머지 한 쪽은 주인에게 주어 간직하는 풍습이 있었다. 뒷날 주인 혹은 주인의 자손이 나그네 혹은 나그네의 자손을 찾아올 경우, 조각을 맞춰보고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이 반쪽이 바로 ‘심볼론’이다.

심볼론을 서로 맞추어보는 일을 ‘심발레인’이라는 동사로 불렀다. ‘상징’을 뜻하는 영어 단어 ‘심벌(symbol)’은 이 ‘심발레인’에서 유래한 말이다. ‘서로 맞추어보다’라는 뜻이다. ‘깨진 거울’이라는 뜻을 지닌 ‘파경(破鏡)’과 아주 비슷한 말이다.

옛날에 죽고 못 사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헤어질 때 한쪽씩 나누어 갖기 위해 거울을 깨뜨린 다음 이를 나누어 신표(信標)로 삼았던 모양이다. 나중에 맞추어 보기 위해, 살아있는 동안 안 되면 후손들에게라도 서로 맞추어보도록 거울을 두 쪽으로 가르는 ‘파경’을 했다. 지금은 이 파경이 ‘이혼’을 뜻하는 말로 잘못 쓰이고 있다.

깨진 거울처럼 신발 한 짝은 신표다. 신발을 한 짝만 신은 사람을 모노산달로스라고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외짝 신 사나이는 두 명이다. 이아손과 테세우스다. ‘리틀 헤라클레스’라고도 불리는 영웅 테세우스에 대해 알아보자.

박한표  webmaster@www.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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