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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세이돈의 아들 테세우스, 아테네의 왕이 되다[박한표의 그리스로마신화 읽기] <26-7>히폴리테스의 죽음
박한표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 문학박사

아이게우스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테세우스는 아테네의 번영과 국가 통합에 크게 공헌했다. 아테네의 영역을 코린토스의 이스트모스까지 넓힌 것도 그다.

거기서 그는 헤라클레스가 제우스를 위해 올림피아 경기를 창설한 것처럼,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위해 코린토스에서 이스트미아 제전을 개혁해 새롭게 개최했다.

이스트미아 경기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제우스가 임신한 자신의 연인 세멜레가 헤라의 질투 때문에 불타 죽자 아직 핏덩이였던 디오니소스를 허벅지에 넣어 키웠다. 달이 차서 디오니소스가 태어나자 제우스는 어린 그를 그의 이모인 이노에게 맡겼다.

그녀는 남편 아타마스와의 사이에 두 아들이 있었지만, 디오니소스를 친아들처럼 키웠다. 헤라는 그것이 또 못마땅해서 이노 부부를 광인으로 만들었다. 이노는 막내아들을 펄펄 끓는 가마솥에 던져 넣었다. 남편 아타마스는 큰아들이 사슴으로 보여 창으로 찔러 죽였다.

이후 제정신을 차린 이노는 막내아들의 시신을 안고 바닷물에 몸을 던졌다. 이노는 바다의 요정으로, 아들은 곤경에 처한 선원들을 도와주는 항해의 신이 됐다.

얼마 후 돌고래 한 마리가 막내아들의 시신을 코린토스 지협까지 가져다주었다. 당시 코린토스의 왕이었던 시시포스는 그의 시신을 거두어 소나무 옆에 제단을 만들고 묻어준 다음 이노의 아들을 기리기 위해 이스트미아 경기를 창설했다.

테세우스는 이스티미아 경기를 자신의 실제 아버지 포세이돈 신을 위한 경기로 바꾸었다. 정치가로서 능력을 한껏 발휘한 것이다.

#아마존족 정벌

‘부상 당한 아마존족’ 프란츠 폰 슈투크, 캔버스에 유채, 64.8×76.2㎝, 1903년, 반고흐미술관(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아테나 왕이 된 후에도 테세우스의 모험심은 꺾일 줄 몰랐다. 가장 유명한 것이 아르고 호의 모험과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이지만 테세우스가 눈에 띄는 활약을 한 것 같지는 않다. 참가자 명단에는 있지만, 활동상에 대해서는 눈에 띄는 기록이 없어서다. 테세우스는 오히려 그 이후 벌어진 아마존족 정벌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아마존족은 흑해 남쪽 해안에 있는 여인 왕국이다.

그들은 활쏘기에 방해가 된다고 왼쪽 유방을 절개할 정도로 타고난 여전사였다. 아마존족은 헤라클레스가 한 번 휘젓고 간 후여서 세력이 많이 약화한 상태였다. 테세우스는 아마존족을 공격하여 여왕 안티오페(히폴리테라는 이야기도 있음)를 인질로 잡아 부인으로 삼았다.

곧이어 아마존족이 아테나를 공격 왔지만, 테세우스는 여전사들을 쉽게 물리쳤다. 그런데 인질로 잡아 온 안티오페는 얼마 살지 못했다. 그녀는 테세우스에게 히폴리토스라는 아들을 하나 낳아주더니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히폴리토스와 파이드라

‘파이드라’ 알렉상드르 카바넬, 캔버스에 유채, 194×286㎝, 1880년. 파브르미술관(프랑스 몽펠리에)

시간이 흘러 히폴리토스는 결혼 적령기의 청년이 되었지만, 명상에 잠기거나 사냥하러 다니는 일만 즐겼다. 그는 처녀 신 아르테미스를 숭배하면서도 사랑과 아름다움의 신 아프로디테는 경시했다.

분노한 아프로디테는 엄중한 벌을 내리기로 한다. 그 무렵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의 동생 파이드라와 재혼한 상태였다. 아프로디테는 파이드라에게 의붓아들 히폴리토스를 향한 미칠듯한 사랑의 감정을 심어주었다.

테세우스가 파이드라와 재혼할 당시 크레카의 왕은 미노스의 아들 데우칼리온이었다. 그는 테세우스가 자신의 여동생 아리아드네를 버린 적이 있지만, 그와 매제가 되는 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순전히 정치적 계산에서였다.

파이드라는 금지된 사랑 때문에 괴로움으로 몸부림쳤다. 자신의 의붓아들을 사랑하여 그에 대한 욕망을 품고, 애가 닳아 점점 여위어 갔다. 파이드라의 유모가 안타까운 마음에 은밀하게 히폴리토스를 찾아가 파이드라의 애타는 마음을 전했다.

히폴리토스는 깜짝 놀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유모의 말을 막았다. 파이드라는 유모의 말을 듣고 절망했다. 그녀는 남편 테세우스가 집을 비운 사이 다음과 같은 유서 한 장을 남기고 자살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절망으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당신이 없는 사이 히폴리토스가 제 방으로 들어와 저를 욕보였습니다. 나는 수치심을 참을 수 없어 먼저 저세상으로 떠납니다.”

‘히폴리토스의 죽음’ 페테르 파울 루벤스, 동판에 유채, 51×65.1㎝, 1611~1613년경, 피츠윌리엄박물관(영국 케임브리지)

델포이로 떠났던 테세우스가 돌아와 아내가 남긴 유서를 읽었다. 그는 당장 히폴리토스를 다른 나라로 추방했다. 아들이 아무리 결백을 주장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실제 아버지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히폴리토스를 죽여 달라고 기도했다.

히폴리토스는 다른 나라로 떠나기 위해 마차를 타고 해안을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다에서 황소 한 마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말들이 황소를 보고 놀라 요동을 치자 마차가 뒤집혔다. 히폴리토스는 고삐에 목이 엉겨 질질 끌려가다가 길가 바위에 치여 결국 목숨을 잃었다.

테세우스가 아르테미스 여신으로부터 진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 히폴리토스의 비극은 아프로디테의 분노 때문에 일어났다. 히폴리토스가 자신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박한표  webmaster@www.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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