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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에서의 유년과 죽음, 서글픈 윤동주의 삶16일 윤동주 시민 아카데미 개관, 이승하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 첫 강의
중앙대 이승하 교수가 16일 오전 10시 30분 윤동주 시민아카데미 1회차 '윤동주의 생애'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세종포스트 한지혜 기자] 윤동주 시인이 만주 용정 명동촌에서 나고 자란 학창시절, 일본 유학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스물 여덟해 윤동주의 생애가 필름처럼 지나갔다.

민족시인 윤동주의 삶과 문학세계를 조명하는 시민 아카데미 1회차 강의가 16일 오전 10시 30분 세종포스트빌딩 5층에서 열렸다.

이날 첫 강의는 중앙대학교 이승하 문예창작학과 교수가 맡았다. 윤동주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작곡가 안효은 선생, 서금택 세종시의회 의장, 세종예술인총연합회 임선빈 회장, 김복렬 전 세종시의원, 각계 문화예술계 관계자 등 시민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강연 주제는 ‘윤동주의 생애’다. 1917년 만주 용정 명동촌에서 태어나 1925년 고종사촌 송몽규와 함께 명동소학교에 입학해 학교를 다니고, 1934년 본격적으로 시를 발표하기까지. 동시 등 그의 초기 작품에 대한 해설도 곁들여졌다.

윤동주 시인의 생애 10문 10답

16일 오전 열린 윤동주 시민 아카데미에 참석한 시민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강의는 윤동주 시인 일가가 왜 만주에서 살게 됐는지, 윤동주 시인의 시 세계를 지배한 기독교적 속죄의식은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 그가 문학에 눈을 뜬 계기, 정지용 시인과의 관계, 창씨개명 여부, 유학생이었던 시인이 일본 형무소에 갇힌 이유를 답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승하 교수는 “윤동주 시인의 친조부모를 포함해 총 네 가족의 식솔 140여 명이 만주땅에 이주해 촌락을 만들었다”며 “문익환 목사의 부친 문재린 목사 등 4인이 함께 명동서숙이라는 교육 기관을 만들고, 간도 땅을 개간하며 교육으로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윤동주 시인은 모태신앙은 기독교다. 태어나서는 조부모와 부친, 자라면서는 명동서숙 교사로 파견 온 스승으로부터 기독교적 세계관을 견고히 했다. 이는 작품 ‘십자가’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윤동주 시인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은 바로 윤 시인보다 약 3개월 일찍 태어난 고종사촌 송몽규다. 그는 은진중학교 3학년 시절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숟가락’이라는 작품으로 등단했다.

이 교수는 “나름 글을 잘 쓴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중학생밖에 되지 않은 사촌형이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며 “이후 윤동주 시인이 본격적으로 시를 써 발표한 작품이 초기작인 ‘초 한 대’, ‘삶과 죽음’, ‘내일은 없다’ 등이다. 아직은 어색한 시편에 속한다”고 했다.

1935년 윤동주 시인은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에 편입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신사참배를 강요당하자 이에 항의해 자퇴하게 된다. 이후 다시 용정으로 돌아와 광명학원에 편입했다. 이 시기 연길에서 발행하던 잡지 ‘카톨릭 소년’에 동시를 다수 발표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추천해줄만한 시는 바로 윤동주의 동시”라며 “‘호주머니’ 같은 작품을 포함에 무려 30여 편이 실려있다”고 했다.

타지에서의 죽음, 유고시집 출판까지

윤 시인은 1938년 사촌형 송몽규와 함께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게 된다. 현재 윤동주 문학관이 있는 서울 종로에서 후배 정병욱과 함께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했다고 알려졌다. 

1942년에는 일본 유학길에 올라 도쿄 릿쿄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했다. 이후 교토 도시샤 대학 영문과로 학교를 옮겼다.

사촌형 송몽규는 중국, 일본 경찰들의 사상범 블랙리스트에 올라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았다. 그러다 1943년 7월 10일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됐는데, 4일 뒤인 7월 14일 윤동주 시인도 경찰에 붙잡혔다.

윤 시인은 1944년 교토 지방재판소에서 징역 2년 형을 받아 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됐다. 이듬해인 1945년 2월 16일 옥중 사망해 부친 윤영석과 당숙 윤영춘이 유골을 수습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다음달인 3월 6일 사촌형 송몽규도 옥사했다.

이 교수는 “윤동주 시인이 죽은 뒤 1947년 유고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됐다”며 “연희전문학교 후배였던 정병욱은 우리 문학사의 은인이기도 하다. 당시 윤 시인의 시집이 보관됐던 정병욱 생가는 문화재로 지정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윤동주 시인(왼쪽)과 후배 정병욱(오른쪽).

후배 정병욱은 윤동주 시인의 육필원고를 들고 윤 시인과 죽마고우였던 강처중을 찾아갔다. 이후 출판사 정음사에 시집 출판을 의뢰했다. 서문은 윤 시인이 존경했던 정지용 시인이 정성껏 썼다. 유고시집은 이렇게 세상의 빛을 보게됐다. 

이승하 교수는 “창씨개명을 요구받고 학교 출석에서 일본식 이름이 불리는 것에 대한 수치심과 괴로움이 ‘참회록’ 등의 작품에 잘 나타나있다”며 “윤동주 시인은 당시 시대적 상황을 뿌리치고 친일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 큰 여운을 남기는 시인”이라고 했다.

죽는 날까지 우리말, 민족성을 지키고자 했던 윤동주 시인이 중국에서 ‘조선족 애국 시인’이라는 이미지로 왜곡되고 있는 현실도 언급했다.

이 교수는 “중국에서는 이미 윤 시인을 중국 소수민족 시인으로, 조선족 애국 시인으로 칭송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전혀 윤동주 생가라고 볼 수 없는 곳을 생가라고 복원해 놓고 시비를 세우고 있는 현실 속에서 세종대왕의 도시 세종시에서 윤동주 시인을 널리 알리는 행사가 기획돼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조선족 아이들의 교과서에도, 일본 학생들이 배우는 책에도 윤동주 시인의 시가 수록돼있다”며 “특히 일본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시를 연구하는 문학 단체가 굉장히 많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이 땅에 사는 한 잊어서는 안될 위대한 시인이 바로 윤동주”라고 강조했다.

한편, 2회차 강의는 오는 23일 오전 10시 30분 세종포스트빌딩 5층에서 열린다. 강의 주제는 ‘윤동주의 동시와 사랑시’다. 

이어 오는 30일에는 윤동주와 정지용(이숭원 서울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9월 6일에는 윤동주의 시에 나타난 자아의 변화(이숭원 서울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4일에는 윤동주 시 깊이 읽기(권오만 전 서울시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강의가 열린다.

마지막 5주차에는 세계적 수준의 뮤지션 지노 박(ZINO PARK)의 ‘미니콘서트 윤동주’도 마련돼있다. 오는 10월 11일(목) 오후 7시 정부세종청사 대강당에서 음악회 ‘세종에서 음악으로 다시 태어난 윤동주’도 열린다.

시민 아카데미 신청 접수는 이메일(yibido@hanmail.net)로 하면 된다. 접수 시에는 신청자 이름, 휴대전화 번호를 기재하고 ‘윤동주 시민 아카데미 신청’이라고 쓰면 된다. 수강료는 무료다.

한지혜 기자  wisdom@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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