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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부족은 선사시대 ‘금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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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부족은 선사시대 ‘금수저’
  • 김형규
  • 승인 2017.04.04 18:36
  •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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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1-3>7천년의 수수께끼 반구대암각화

 

숯불향이 식도를 타고 역류하는 걸 꾹꾹 눌러가면서 반구대암각화(국보제285호)를 향해 페달링을 합니다.


기와집에서 나와 터미널4거리에서 좌회전해 국도인 반구대로를 따라 경주방면(북쪽)으로 6㎞쯤 달리다보면 반구대 입구 표지판이 보입니다. 우회전 후 3㎞ 더 이동하면 놀라운 상상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울산은 2015년 현재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6116만 6000원으로 전국 1위입니다. 전국 평균 2944만 1000원보다 2배 이상 높고 2위 충남 4702만 4000원을 압도합니다. 울산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N0.1입니다. 산업도시답게 양질의 일자리와 맞벌이 가정이 많다는 이야기죠.


상상력을 조금만 동원한다면 지금으로부터 7000-3500년 전인 신석기-청동기시대에도 이 지역에 살았던 부족은 잡곡에 고래고기, 녹용, 멧돼지고기를 뜯으며 떵떵거리고 살았던 금수저 집단이었을 겁니다. 한 두 세대가 그랬던 것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렸던 거죠. 오늘날처럼 자식 교육걱정, 취업, 실직, 노후 걱정 없이 선조가 물려주신 반구대 암각화의 가르침을 교과서 삼아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즐겼던 겁니다.

 

 

반구대암각화가 가까워질수록 길이 좁아지더니 결국 마지막 500m는 걸어가야 합니다. 이럴 땐 자전거가 ‘짱’입니다요. 우측으론 태화강 지류인 대곡천이 계곡처럼 흐르고 좌측은 임야와 농지가 주를 이룹니다. 넓게 살펴보면 암각화 서쪽은 영축산(1082m), 신불산(1159m), 간월산(1069m) 등 소위 말하는 영남알프스가 펼쳐져 있고 남동쪽으론 태화강이 장생포-울산만 방향으로 굽이칩니다.


반구대암각화를 그렸던 인류는 영남 알프스를 병풍 삼아 평지와 임야에서 농사를 지으며 정착생활을 했을 겁니다. 가끔 야생에서 육식거리를 포획하고 대곡천의 맑은 지류에서 건져올리는 회귀어류 등으로 단백질을 보충했습니다.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대처하기에도 최적지였습니다.

경사가 날 때마다 피카소의 재능을 지닌 한 부족민은 폭이 좁은 계곡물을 첨벙첨벙 건너가 높이 3m, 폭 10m의 캔버스 같은 절벽에 감격의 순간을 새겼습니다.


바위화폭에 호랑이, 멧돼지, 곰, 사슴, 늑대, 여우, 거북, 개의 생태와 사냥하는 장면, 무당의 얼굴 등을 새겼지만 단연 눈길을 끄는 그림은 고래입니다. 학자들이 밝혀낸 고래만해도 긴수염고래, 흰긴수염고래, 범고래, 귀신고래, 향유고래 등 종류가 상당합니다. 배를 타고 고래를 잡는 그림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다고 합니다.

 

 

반구대에서 장생포까지는 직선거리로 대략 25㎞. 당시로서는 잰걸음으로 걸어도 대여섯 시간은 걸리는 짧지 않은 거리입니다. 그럼에도 고래에 집착한 이유는 실생활이나 삶의 활력소에 절대 유용했기 때문입니다. 사냥의 난이도나 위험성, 노획량 면에서 볼 때 육지의 야생동물사냥과 바다 고래잡이를 비교해보면 어느 쪽을 택할지 빤하죠. 아마도 고래사냥 나가는 전날 밤이면 부족민들은 설레는 마음에 잠을 설쳤을 겁니다.


적어도 4박5일 일정으로 족장의 지휘 아래 장정 10명 정도가 선발대를 조직해 반구대에서 태화강 물길을 따라 장생포로 이동한 뒤 이틀간에 걸쳐 배를 타고 작살을 이용해 고래사냥을 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상황이 물 반, 고래 반이면 선발대 중 한명이 되돌아가 아예 부족전체를 이끌고 장생포로 임시 이주했을 겁니다. 그리고 겨울이 엄습할 즈음 포획한 고기를 짊어지고 반구대로 되돌아와 고래잡이의 무용담을 암각화로 남겼겠지요.


고래는 멧돼지나 사슴처럼 노린내가 나지 않고 많은 고기와 기름, 뼈를 제공해 당시 부족에게는 최고의 식생활재료였을 겁니다.


선사시대 지구의 대다수 부족들은 하루를 뭘 먹고 때울지 걱정과 기근에 허덕였습니다. 나무열매나 따먹고, 메기 한 마리 잡아 다섯 토막으로 나누거나 어쩌다 사슴사냥 한번 성공에 ‘꺄오!’ 환호를 지르며 부족잔치를 벌였던 때였죠.

 

 

하지만 반구대 부족들은 조용히 분기별로 장생포로 출조를 나가 가볍게 고래 한 마리 잡아 배터지게 먹고 부속고기를 들고 돌아와 고래 기름으로 피부 관리하고 모닥불까지 지폈습니다. 열에 견디는 용기가 없던 시절이라 국물 있는 탕 요리는 하지 못했어도 꼬치구이는 해먹었을 거라 사료됩니다. 자연 드라이에이징으로 수개월간 저장해가면서 포식했겠지요.


반구대 부족에게도 로또라는 게 있습니다. 선조 대대로 전설로 전해오는 고래 로또. 집단 자살한 고래 떼를 해안가에서 발견하는 날입니다.


풍요로운 한해를 여미는 가을철이면 간월산의 무성한 억새 숲으로 주술에 이끌려온 듯 청춘남녀가 하나 둘 짝을 이룹니다. 억새 숲 덕에 반구대 부족은 대대손손 번성하며 태평성대를 누렸을 거라 상상해봅니다.

 

 

고래 덕에 울산은 수천 년에 걸쳐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 되고 그 흔적이 반구대암각화에 레시피처럼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7000년이 흐른 지금 장생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래의 고장-지금은 포경이 금지됐지만-으로 고래박물관과 고래문화마을이 조성됐고 매년 고래축제가 열립니다. 고래고기, 한우불고기에 중산층이 두텁고 한때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했던… 하~ 뭐지, 배가 살살 아픈 이유는.


현재 암각화는 망원경을 통해 보아도 중앙부의 멧돼지 그림을 제외하곤 흔적을 발견하기 쉽지 않습니다. 박물관의 탁본을 통해서만 선명한 형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65년 사연댐이 들어서면서 수십 년간 물에 갇히고 풍화작용에 의해 원형이 많이 훼손됐습니다. 물길을 돌리는 등의 보존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나오는 길에 울산암각화박물관을 꼭 들러보시기 바랍니다. 7-8분짜리 다큐동영상은 암각화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상상력을 멈추고 다시 언양읍으로 핸들을 돌립니다. 어느덧 오후 4시. 이른 저녁을 먹고 오후 6시33분발 SRT를 타고 돌아가려합니다.


이번엔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 이런 건 공무원이 잘 알지, 하고 무작정 언양읍사무소로 돌진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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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세종 2017-04-08 06:45:26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고향이 울산 장생포인데 저보다 더 알려주시네요 울산 참 살기좋은곳임은 분명한것 같습니다. 어쩌다 세종까지 와서 살게되었는데 많은 분들과 공유할수 있도록 안내 부탁드립니다. 자전거타실때 조심하시고요~~^^

변상섭 2017-03-23 00:01:34
건강한 모습 보여줘서 좋아요. 얼굴한번 봅시다.

차박사 2017-03-22 09:29:19
형규야 그동안 언론인 으로써 사명과 긍지를 갖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힘없는 사람들에편에 서서 매사 일한 모습 참보기좋았다 앞으로도 여행자주다니며 유익한 정도 또한 감동을 받을 많은 애기 들여주렴

구리구리 2017-03-22 00:50:42
넘 재미납니다. 옛날로 가보는 상상을 해 보았네요.
그 시대에도 금수저가.. 어쩌면 지금도
자연은 그대로 우리에게 옛날의 일들을 얘기해 주고 있네요..

정은혜 2017-03-21 21:42:22
와ㅡ반갑습니다 ㅡ^^
건강하신것도 확인되었고
기사를 읽어보니 꼭 가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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