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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의회 학교명 제정, ‘갑질’의 결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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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의회 학교명 제정, ‘갑질’의 결정판
  • 김재중
  • 승인 2015.02.02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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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명 ‘종촌’, 의회 회의록 살펴보니…

세종시 1-3생활권 종촌동 주민들이 자신의 자녀들이 다닐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이름 결정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당장 3월 개교 예정인 종촌유치원, 종촌초등학교, 종촌중학교, 종촌고등학교 4개 학교 이름이 ‘부르기 어렵고, 촌스럽다’는 이유를 들어 명칭변경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은 시의회의 ‘갑질’ 때문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시민의 권력인 의회가 정작 시민의사를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물론 학교이름을 결정하는 권한은 시의회가 가지고 있다. 의회가 ‘시립학교 설치 조례’를 의결해야 학교이름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역할은 교육청이 맡는다. 학교구성원, 교육청 직원, 시민대표 등으로 구성된 ‘교명제정위원회’ 자문을 받아 조례를 발의하기 때문이다.

세종시교육청 교명제정위원회는 이번에 학교명 ‘종촌’과 ‘한울’을 두고 갑론을박 끝에, 이례적으로 표결까지 벌였다. 결과는 5대 4, ‘한울’의 우세였다. 그런데 교명제정위원이기도 한 A시의원이 의회에 가서 이 결정을 뒤집었다.

지난해 11월 27일에 열린 세종시의회 교육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그 과정이 자세히 드러나 있다. 회의록에 담긴 A시의원 발언내용을 요약해 보자.

“이런(학교 관계자나 교육청 관계자가 많은 교명제정위원회) 의사결정구조가 썩 좋지 않다. (중략…) 이 지역에서 나고 태어나신 분들이 고향에 들렀을 때 적어도 한 지명 정도는 남아 있어야 (중략 …) 그래서 행복청이 종촌동 이름을 살려준거다. 교명제정위원회만 이걸 ‘촌’자가 들어가 촌스럽다는 이유로 이름을 바꿔버리느냐. 그것도 교육청 직원이 안을 내서. 말이 되지 않는다.”

A시의원은 교명제정위원인 교육청 모 과장이 낸 ‘한울’이란 명칭에 대해 시종일관 불만을 토로한다. 교육청 직원이 ‘안’을 내는 것도 부적절하고, 교육청 직원과 학교 관계자가 많은 의사결정구조도 문제가 많다는 시각을 드러낸다.

답변자로 의회에 출석한 세종시교육청 B국장은 “(교명제정위원이) 학교관계자였다고 같이 뭉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육청 과장이) 위원으로 같이 참여했기 때문에, 위원으로 역할은 똑같이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A의원 지적에 반대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의원들은 정회를 선포하고 비공개 논의를 이어갔다.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회의록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비공개 논의에서 ‘한울’로 제안된 학교명을 ‘종촌’으로 변경키로 결정하고 최교진 세종교육감에게 양해를 구했다는 후문이다.

속개된 회의에서 C의원이 학교이름을 ‘종촌’으로 변경하는 수정발의안을 제안한다. 그리고 교육위원장이 재청과 이의 여부를 확인한 뒤 일사천리로 수정안을 의결했다. 여기까지가 의회 회의록에 담긴 학교명 ‘종촌’ 탄생의 과정이다.

이후 온라인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학교명 ‘종촌’에 대한 반대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아예 ‘종촌이란 동명까지 변경해야 한다’는 격앙된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가장 큰 문제는 이 같은 시민반발이 정책에 즉각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시의회와 시교육청 모두 ‘해결의 키’를 쥐고 있지만, 한번 엎질러진 물을 즉각 주워 담는 것이 쉬울 리 없다.

나름의 이유도 있다. 온라인커뮤니티 상의 시민반대 의견을 ‘시민의 객관적 의견’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익명을 요구한 교육청 관계자는 “시의회가 조례개정안을 발의해 처리하는 게 가장 빠른 해결책이지만, 온라인상의 의견개진을 ‘시민 다수의 의견’으로 받아들여 처리하기엔 무리가 있고, 정치적 부담감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은 방법은 교육청의 개정안 발의다. 그러나 의회가 나서는 것보다 복잡한 절차와 시간이 필요하다. 이 문제에 대해 최교진 세종교육감은 “3월 신설학교가 개교하고 나면, 교육공동체의 의견을 물어 학교운영위원회가 안을 마련하고 그에 따라 (개정안 발의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육감은 그 시점에 대해 “(서둘러도) 5월은 돼야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학교구성원들이 학교 이름에 대해 불만을 느낀다 하더라도 스스로 의견을 취합하고,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교명변경에 나설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른 한편으론 시의회가 불과 한나절 만에 뒤집을 수 있는 교명변경을, 시민 스스로 하려면 수개월 이상 소요된다는 의미다. 의회권력의 ‘갑질’이 시민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김재중 기자 jjkim@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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