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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 세종시 종촌동, 그 지명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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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 세종시 종촌동, 그 지명의 유래
  • 이충건
  • 승인 2015.02.10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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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촌’은 일제 식민지배의 잔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밀마루’ 한자 표기
‘세종=으뜸 도시’ 의미 ‘종촌’에 연결은 억지
시의회가 배척한 ‘한울’, 교회 이름에도 많아

‘한울.’ 내 친구의 이름에서, 내가 나온 학교에서,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내가 참여하는 모임 에서 흔히 듣던 순수 한글 단어다. 이 두 글자가 세종시에서 수난을 받고 있다. 1-3생활권 종촌동에 내년 3월 개교(원)하는 유치원 및 초·중·고의 교명을 세종시교육청 교명제정자문위원회가 ‘한울’로 정해 세종시의회에 허락을 구했지만, 의회가 이를 뒤집었기 때문.

세종시의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교육위원회는 교육공동체가 구성되지 않아 교육청이 의견수렴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던 만큼 법정동의 이름을 따 교명을 확정했다는 입장이다. 지금과 같은 시민 저항이 뜻밖이라는 반응도 읽힌다.

그렇다면 시의회가 확정한 ‘종촌(宗村)’이란 교명은 적합한 것일까? 시의회가 배척한 ‘한울’은 교명으로서 적합하지 않은 걸까?

조선총독부 1913년 문건에 첫 등장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이전까지 현재의 종촌동은 연기군 남면 종촌리와 고정리 일부, 공주시 장기면 제천리 일부였다.

문제가 되는 종촌리라는 지명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일제는 조선을 병합한 이후부터 지방에 대한 효율적 통제를 위한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총독부 권력과 식민지 민중이 격돌하던 중요한 ‘정치투쟁의 현장’이 지방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제는 행정구역 개편(부·군·면 통폐합)을 추진해 1914년 4월 1일자로 시행에 들어갔다. 충청남도 연기군은 지금의 소정면, 전의면, 전동면을 아우르는 전의군과 공주군에 속해 있던 금남면 일대와 남면 일부를 합해 출범했다.

각각 2004년과 2007년 조치원문화원(현 세종시문화원)이 발행한 <남면향토지(南面鄕土誌)>와 <연기군의 지명유래>에 따르면, 종촌리(宗村里)란 행정명은 일제가 수십 개 마을을 싸잡아 합치면서 지정됐다. 이들 사료에는 “일제 때 행정지역상 부락이 합쳐지면서 ‘종촌리’라고 불렀다”고 기록돼 있다.

연기군 시절의 종촌 1리는 도산, 도리미 등으로, 종촌 2리는 문마루, 밀마루 등으로, 종촌 3리는 화옥동, 옥동 등으로 각각 불렸다. 문헌에 ‘종촌’이란 지명이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일제가 이들 마을을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합치면서 대표 지명인 밀마루를 한자식으로 표기하면서 ‘종촌’이 등장했다는 게 정설이다. 실제 ‘종촌리’란 지명은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이 행정구역 개편을 앞두고 1913년 생산한 지적원도(국가기록원)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밀마루의 마루가 꼭대기를 뜻하는 순 우리말이고, 시대에 따라 밑마루, 문마루, 민마루 등이 혼용된 것으로 미루어 ‘산꼭대기 아랫마을’이란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마루’란 예쁜 이름이 세종시교육청 교명제정자문위원회에서 고려되지 않은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사쿠라 훈민정음>(2010.11, 이하 인물과사상사)의 저자 이윤옥에 따르면,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토박이 말 ‘마루’를 버리고 일본말 ‘정상(頂上)’을 가져다 썼지만, 일본의 1000미터가 넘는 산에는 대부분 ‘마루(丸)’가 붙어 있다는 것. 그런데 일본의 산에 붙은 마루는 바로 우리의 아름다운 한글 ‘마루’에서 유래됐다. 이는 일본의 산악인 다니유우지(谷有二)가 평생을 연구한 끝에 쓴 <일본산악전승의 수수께끼>(1983)에도 나와 있다.

명분 없는 시의회의 ‘한울’ 배척

그렇다면 시의회 교육위원들이 ‘한울’이란 교명을 배척한 근거는 정당한 것일까?

교육위원들은 ‘한울’이 특정종교에서 널리 쓰이는 말이어서 종교적 갈등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댔다. 세종시란 이름을 확정할 때도 ‘한울’이 거론됐는데 당시에도 같은 이유로 배제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실제 이춘희 시장은 회고록 <4000일의 약속>(2014.2, 제이알디자인)에서 도시의 이름이 ‘세종’으로 결정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당시 명칭제정위원회 위원들은 ‘한울’을 알파벳으로 표기할 때 프랑스, 스페인 등 특정언어권에서 H가 무음(無音)으로 발음이 안 된다는 점, 특정 종교를 연상시킬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대했다. 위원회는 세종대왕의 이름을 딴 ‘세종’에 ‘세상(世)의 으뜸(宗)인 도시’란 의미도 부여했다.

하지만 여기서 으뜸이란 뜻의 ‘종(宗)’을 종촌의 ‘종’과 연결시킨 시의원들의 주장은 억지라는 지적이다. 종촌에 ‘마을 중에 으뜸’이란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지만, 어디에도 역사적 근거는 없다. ‘세종’을 세상의 으뜸 도시라고 기분 좋게,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에 지나지 않아서다. 각종 사료를 보면, 종촌은 일제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밀마루’의 한자식 표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도 널리 쓰는 ‘한울’

한울이란 말은 언제부터 쓰였을까?

중세국어 전공자인 이광호 교수(공주대 국어교육과)에 따르면 ‘한울’은 중세국어에서는 그 쓰임새를 찾아볼 수 없는 조어(造語)다. 각각 독립적으로 쓰이던 두 단어가 현대국어에서 합쳐져 한 단어처럼 쓰이고 있다는 의미다. 여기서 ‘한’은 환하다, 크다, 우두머리(임금), 높음, 온전함, 하나, 많은, 바른, 넓은, 가운데 등 다양한 의미로 쓰였다. ‘울’은 울타리란 의미이고 ‘우리’의 준말로도 쓰인다. 두 단어가 합쳐져 ‘끝이 없는 넓이의 울타리’란 뜻으로 널리 쓰이게 됐다는 것이다.

‘한울’은 천도교 고유의 언어이기도 하다. 천도교에서 최고신에 대한 명칭을 ‘한울님’이라고 한다. 목판인쇄물에 ‘’ ‘늘’로 쓰이다 현대국어에서 ‘한울’이 됐다는 게 천도교 중앙총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한울이란 명칭이 세종시에서 배척됐다는 얘기에 “한울이 천도교의 고유 언어이긴 하지만 이미 일상화된 아름다운 한글로 널리 쓰이고 있다”며 “전국의 수많은 교회 이름에서도 ‘한울’이란 이름을 쉽게 찾아볼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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