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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가 백지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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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가 백지라면…
  • 권장미(배재대학교 일본학과)
  • 승인 2014.11.28 1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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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기고 | 잿빛으로 물드는 우리들

지난 여름방학동안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서 조금씩 타고 다녔다. 좁은 공간에 두어도 좋을 것 같다는 핑계로 새 물건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그 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스케이트화의 용도별 구분, 부속품, 자가 점검 방법, 주의사항, 심지어는 초급과정 강좌까지 모두 숙지하고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됐다. 안전장비까지 모두 갖추고 밖에 나가 스케이트를 타기까지 걸린 시간은 사실상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

무언가에 관심이 생기고 그것에 대해 알아가는 일은 이제 누구에게든 그다지 어렵지 않다. 밤늦게 드라마를 보다가도 주인공의 직업에 흥미를 느끼면 불과 몇 분 안에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전자기기를 이용해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관심분야의 강의도 들을 수 있다. 길거리에만 나가도 각종 예체능, 외국어, 요리, 말 잘하는 방법까지 배울 수 있는 학원이 즐비하다. 덕분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관심분야가 생기면 적어도 준전문가 수준은 된다. 정보가 부족하거나 환경이 열악해서 관심분야에 빠져들지 못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요즘 대학생들의 관심사는 매우 다채롭다. 문화적·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 탓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알록달록한 관심사들이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에 입학도 하기 전부터 관심과 목표는 오로지 취업뿐이고, 하나같이 공무원이나 대기업만 바라본다. 취업을 위한 코스의 정석은 이제 거의 패키지상품에 가깝다. 창의적인 인재를 원하고 스스로도 특별한 사람이기를 바라면서 짜인 틀에 끼워넣지 못해 안달이다. 모두 제각각 타고난 소질과 재능도 다르고 원하는 것도 다른데 숨도 못 쉴 틀 속에 우겨 들어가려니 생기를 잃어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분명 처음 입학할 때는 달랐다. 성적에 맞춰 원서를 넣기도 하지만 새로운 배움에 대한 설렘을 안고 왔다. 주입식 교육에 지쳐 있다가 생각하며 공부할 수 있는 산교육을 꿈꿨다. 그러나 막상 대학에 와보니, 자율성을 말하지만 그다지 자유롭지 않고 학문을 다루고 있지만 결국엔 취업학을 배우는 기분이다. 사회는 이론적으로 부족함이 없고 창의적인 사람을 원한다. 뛰어난 인재를 바라는 거야 당연하지만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창의성을 바라는 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린 적 없는 자유에 대한 책임을 강요받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사회에서 생기를 찾아 살아보겠다는 사람은 좋게 말해 낭만적인 사람이고 나쁘게 말해 현실감 없는 사람이 된다. 현실적인 삶을 부정적으로 보려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지나치게 획일화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점점 잿빛이 되어간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는 이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도무지 변할 기미는 보이지 않아 꿈과 낭만을 좇는 이들을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의 관심사는 점점 획일화되고 목표는 오로지 ‘나 사는 것’에만 함몰되어버렸다.

‘다 알아. 그래도 변하는 건 없을 거야….’

많은 대학생들이 이렇게 서글픈 마음을 안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현실 속에서 낭만을 그리워하고 낭만 속에서는 현실의 눈치를 본다. 견우와 직녀가 따로 없다. 모두의 재능과 관심사는 다양하고 끝이 없는데, 그것을 원하면서도 허락하지 않는 사회가 너무나 팍팍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탓하지 않으려 해도 쉽지가 않다. 현실도피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낭만 속에서만 살겠다는 것도 아니다. 사회라는 백지에 우리의 현실과 낭만이 함께 녹아들어 고운 빛을 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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