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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스럽고 초라한 국가안보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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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스럽고 초라한 국가안보의 자화상
  • 정용길 교수(충남대 경영학부)
  • 승인 2014.11.03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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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전작권 환수 거부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끝난 후 흑인 노예들은 석방되어 자유를 찾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석방된 노예들 다수가 다시 주인에게 자발적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년 말에 전환하기로 합의되어 있던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이 시기도 정하지 못한 채 연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떠오른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군사능력이 갖춰지고, 한반도와 역내 안보환경이 일정한 조건에 충족되면 전작권을 전환한다는 것이다. 조건이 너무 포괄적이고 비현실적이어서 실질적으로 무기한 연기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나 하는 자괴감과 함께 현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절망만 느낄 뿐이다. 참으로 수치스럽고 초라한 우리 국가안보의 자화상이다.

군사 주권의 핵심인 전작권이 다른 나라에 맡겨진지 이미 6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국가의 생존과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환수를 해도 벌써 했어야 했다. 6·25가 터진 당시의 상황과 지금의 대한민국은 여러 분야에서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전쟁이 발발했을 때 자국민을 보호하고 영토를 수호하기 위해 자기 나라 군대를 지휘해야 한다. 국가 안보를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 의존하는 나라를 독립국가라 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전시에 우리나라 군대를 지휘할 권한을 찾아오지 못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찾아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라는 것을 우리 정부가 거부하는 것이다.

개인을 기준으로 하면 남을 위해 양보하고 희생하는 이타심은 최고의 가치다. 그러나 국제관계 속에서는 국익의 극대화가 최고의 가치이며 유일한 행동윤리다. 만일 한반도에서 남북 간에, 또는 우리가 다른 나라와 전쟁이 벌어졌을 때 전작권을 쥐고 있는 미국 장성은 철저하게 미국의 국익에 따라서 행동할 것이다.

최근 기밀이 해제된 문서에 의하면 2006년 9월의 시점에서 한국이 전작권을 환수할 능력이 충분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이 럼스펠트 미국 국방장관에게 보고한 것이고, 장관도 이에 동의한 내용이다(정욱식, 프레시안, 10. 26). 이미 8년 전에 미군은 한국이 독자적으로 전작권을 행사할 능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1인당 소득에 있어서 북한은 남한의 3.6%에 불과하며, 국방비도 북한에 비해 30배 이상 지출하고 있다. 한미연합사 체제를 통해 미국과 공동으로 방위체제를 구축하고 있으며, 남한에는 세계 최강의 미군이 3만 명 이상 주둔하고 있다. 북한이 생존을 위해 초보 단계의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으나 북한이 독자적으로 남한을 침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전작권 전환을 무기한 미룬 것은 뼈 속까지 사대주의와 노예근성에 젖은 현재의 집권층과 보수세력, 그리고 전·현직 군 장성 때문이다. 국가를 위해서는 목숨도 초개같이 버릴 것을 약속한 사람들이 군인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들이 앞장서 전작권 전환을 반대하는 것을 보면 이들은 군인으로서 충성심도 명예심도 없는 집단이다.

60여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스스로 국가안보를 책임지지 못하고 남의 나라에 얹혀 지내다 보니 이제는 자유를 주더라도 그 자유를 스스로 반납하는 노예의 삶이 슬프고 초라한 우리 국가안보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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