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초 한 지방지 보도에 따르면 어느 우편집배원의 택배 물품을 확인해보니 19개 중 13개나 예전 지번주소를 사용하고 있었다. 도로명주소가 법정주소로 된지 반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 정착되지 않은 채 효용성에 문제가 있다고 말들이 많은 모양이다.
과연 도로명주소 정책은 예산만 낭비한 불완전한 정책일까?
예전에 한 지인이 부업으로 각 신용사 카드를 배달하는 일을 한 적이 있다. 본인에게 전해야하기 때문에 직접 집이나 직장을 찾아가야 한다. 그런데 큰 건물이나 가게, 식당, 아파트는 간판이 있어서 적당히 주소를 보고 가면 별 어려움이 없지만, 일반주택은 정말 찾기 어렵다고 했다.
그 지인에 의하면 지도를 보고 지번을 따라 집을 찾는데, 같은 골목을 몇 번이나 돌기 일쑤라고 한다. 어렵게 한 집을 찾더라도 이웃한 지번을 찾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은 일이다. 예를 들어 36-24번지를 찾았으면 36-28은 상식적으로 24번지의 앞이나, 좌우에 있어야하는데 실제는 엉뚱한 곳에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약 28년 전인 1986년, 호주 시드니에 간 적이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처럼 도로명주소를 쓰고 있었다. 처음 낯선 곳에 도착했는데도, 지도책 한권만 있으면 그 넓은 도시의 구석구석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물론 훌륭한 도시계획과 쭉쭉 뻗어있는 도로망 구조 덕분이지만 여하튼 지도에서 동명과 도로명만 찾으면 가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지도책 하나만 들고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 다니며 관광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과연 우리나라 대도시에서 이런 모습이 가능했을까? 그때 ‘우리나라도 도로명주소를 도입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이런 배경과 이유 등으로 우리도 올해부터 도로명주소를 전면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직은 혼란스럽고 번거롭게 느끼겠지만 편리한 시책인 만큼 곧 정착을 하리라고 본다.
그런데 우리의 도로명주소에는 동명이 빠져있다. 단지 표기상에 필요할 경우 괄호(ㅇㅇ동)를 써서 뒤에 붙이라고 되어있다. 도로명주소만 봐서는 어느 지역에 사는 지 알 길이 없다. “대덕구 ㅇㅇㅇ로에 살아”라고 말하면 다시 “무슨 동인데?”라고 되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가뜩이나 도로명 자체가 낯선데 말이다.
예를 들어 보자. ‘유성구 문화원로’하면 유성문화원이 있는 길이라는 게 바로 떠오른다. 대부분의 도로가 이렇다면 동명이 굳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중구 서문로’라고 하면 도대체 ‘서문로’라는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으며 중구 어디에 있는지 알 도리가 없다.
우스갯소리지만 지방의원에 출마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렵사리 주소록을 확보해도 동명이 없으니 자신의 지역구 유권자인지를 쉽게 알 수가 없다. 서구의 경우 대전시의원 선거구만 6개인데 주소에는 ‘서구 ㅇㅇㅇ로’로 되어있을 테니 말이다. 출마하려면 자신의 선거구에 있는 도로명을 다 외워야할 판이다.
도로명주소가 기존의 지번주소보다 편리하다는 것은 더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그리고 점차 익숙해질 것이기 때문에 사용여부를 놓고 더 이상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지만 동명을 넣지 않은 것은 재고할 이유가 있어 보인다.
대부분 동명은 세 글자로 되어 있다. 현주소에 세 글자 더 넣는다고 무슨 문제가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지난 1996년 이후 17년 동안 400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해 어렵게 만든 도로명주소. 지금이라도 여기에 동명을 넣는다면 편리하고도 완벽한 법정주소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