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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전경을 음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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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전경을 음화하다
  • 한동운 음악칼럼니스트(목원대 외래교수)
  • 승인 2014.09.29 12: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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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노트 | 말러의 ‘가을에 고독한 자’



지독히 외롭고 절망적인 시(詩)
메조소프라노 음성에 비탄 가득


바이올린과 오보에의 선율이 나를 가을의 전경 속으로 이끈다. 가을의 첫 풍경, “푸르스름한 가을 안개 호수를 덮고, 서 있는 풀잎마다 맺힌 서리(Herbstnebel wallen blulich berm See; Vom Rief bezogen stehen alle Grser)”가 펼쳐진다.


10월 초, 아직 서리가 내리기에 이른 시기지만, 마른 풀잎과 낙엽을 덮을 그 날이 곧 오리라. 호른과 첼로로 이어지는 음악은 이전과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아름답게 핀 꽃 위에, 마치 화가가 비취 먼지를 뿌린 듯(Man meint, ein Knstler habe Staub von Jade ber die feinen Blten ausgestreut).” 이 아름다운 노랫말은 단순한 선율과 메조소프라노의 음색이 더해져 가을의 쓸쓸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가을바람이라고 해야 할지 잔잔한 물결이라고 해야 할지, 처음 등장했던 바이올린의 선율은 시의 2연으로 이끈다.


새로운 노랫말! 그렇지만 음악은 그리 새롭지 않다. 이미 앞에서 첫 풍경을 그려냈던 선율이기 때문이다. 시는 절망적이다. “달콤한 꽃향기 사라지고, 차가운 바람에 처지는 줄기. 이내 시들어버린 금빛 연꽃잎 물 위를 떠다니리(Der sße Duft der Blumen ist verflogen; Ein kalter Wind beugt ihre Stengel nieder. Bald werden die verwelkten, gold'nen Bltter, Der Lotosblten auf Wasser zieh‘n).” 가을 앞에서 죽어가는 만물을 작곡가는 반음으로 떨어지는 선율(A♭→G→G♭→F)로 담아낸다. 또다시 간주곡이 흐른다.


그러나 음악은 좀 더 동적이고, 바이올린의 반복인 선율은 신경질적으로 들린다. 어느덧 시는 4연 중 3연으로 진행된다. 음악 역시 전체의 중간 정도에 다다른다. 노랫말은 고독의 극치로 치닫고, 작곡가는 음을 통해 가사에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는다.


3연의 첫 소절 “내 마음 지쳤다(Mein Herz ist mde).” 반음으로 진행하는 선율이 더욱 슬프게 한다. “내 작은 등불은 지지직거리는 소리 내며 꺼졌고(Meine kleine Lampe Erlosch mit Knistern)”에서 제2 바이올린의 트레몰로는 등불이 켜지기 전 위태로운 상황을 눈앞에 보이듯 묘사한다. 유독 이 부분에서 플루트의 선율이 두드러진다. 밝고 투명한 플루트의 음색이 더욱 애절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행하는 선율을 통해 “내게 잠자리에 들라고 한다(es gemahnt mich an den Schlaf).” 심란한 마음만큼 박자의 변화 역시 변덕스럽게 느껴진다.


“나 그대에게 가리, 사랑하는 내 안식처로! 자, 내게 평화를 주오, 나는 위안이 필요하네!(Ich komm' zu dir, traute Ruhesttte! Ja, gib mir Ruh', ich hab' Erquickung not!).” 고독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조성의 변화로 나타나지만, 역부족이다. 고독한 자의 처절함은 낮은 음역으로 떨어지는 노래 선율에서 숨길 수 없이 드러낸다. Not!(도움이 필요한 궁지, 곤경의 의미)에서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낮은 음(B♭)이 나오는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고독의 끝이라고 할까!


마지막 4연의 시작은 곡의 첫 시작과 일치한다. 바이올린 선율의 흐름 위에 이번에는 바순과 오보에가 가을의 전경으로 이끈다. 4연의 첫 장면 “고독 속에서 나는 흐느끼네(Ich weine viel in meinen Einsamkeiten,).” 비로소 ‘고독(Einsamkeiten)’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작곡가는 고독을 강조하기 위해 길게 “Ein- - - - - sam - kei - - ten”을 지속한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 가을은 너무 길어(der Herbst in meinen Herzen whrt zu lange)”라고 외치는 메조소프라노의 음성에는 비탄이 가득하다. 곡은 이제 끝을 향해 나아간다. “사랑스러운 태양이여, 나에게 빛을 주고(Sonne der Liebe, willst du nie mehr scheinen).” 가사와 함께 태양의 햇살이 퍼지 듯 하프의 아르페지오 음형과 음향은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꿔 놓는다. 역시 고독한 자에게 사랑만큼 좋은 치료약이 없는 걸까? 사랑을 갈구하듯 “사랑”이라는 노랫말을 유독 길게 “Lie - - - - - - - -be” 노래한다. 그리고 미완의 노랫말, “내 고통의 눈물을 부드럽게 말려주지 않으련?(Um meine bitter'n Trnen mild aufzutrocknen?)”을 마지막으로 시인은 퇴장하고, 음악은 나를 또 다른 가을 풍경 속으로 이끌며 조용히 사라진다.


구스타프 말러의 <대지의 노래>(Das Lied von der Erde) 중 2악장 ‘가을에 고독한 자’(Der Einsame im Herbst)의 노랫말 전문(全文)과 음악에 대한 필자의 느낌이다. 가을이 고독의 계절이라고는 하지만 지독히도 외롭고 절망적인 시가 아닌가? 그뿐만 아니라 말러는 현악기의 선율과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관악기의 선율과 음색을 통해 가을의 전경을 음화(音畵)하였다. 마치 노랫말에서 미처 표현하지 못한 것을 채워주듯이.


가을이 깊어간다. 말이나 글로 음악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와 말러의 곡을 들으며 가을을 함께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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