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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적 설움 맞선 몸부림, 60만 동포 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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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적 설움 맞선 몸부림, 60만 동포 울리다
  • 세종포스트
  • 승인 2014.09.19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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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 리뷰 | ‘60만번의 트라이’

조선학교 럭비부 전국대회 도전기
일본 이례적 개봉 이어 한국 상륙
“재일조선인 정체성 알릴 영화”


2010년 일본 전국고등학교 럭비대회 준결승전. 오사카 조선고급학교 선수들이 60만 재일동포를 울렸다. 1학년 때부터 오사카 조고 럭비부 역사상 제일 약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3학년 선수들이 후배들을 이끌고 개교 이후 처음 4강에 오른 것이다. 조선학교라는 이유만으로 1994년까지 출전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오사카 조고 럭비부가 전국 800여 팀 사이에서 이뤄낸 3위라는 성과는 냉랭한 북일 관계로 인해 차가운 시선을 받고 있던 당시 재일동포들에게 큰 힘을 주었다.

조선학교를 다룬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으로 일본에서 개봉한 <60만번의 트라이>가 지난 18일 한국에서 개봉했다. 일본에서 통신원으로 활동하던 한국인 박사유 감독과 재일동포 3세 박돈사 감독이 함께 만든 영화다. 재일동포 학생들의 성공을 다룬 감동 드라마에 그치지 않고 일본 사회의 차별 속에서 살아가는 조선적 재일동포의 현실까지 아우른다. 조선적은 분단 전 조선을 국적으로 해 일본은 물론, 남한과 북한 어디의 국적도 취득하지 않은 재일동포를 가리킨다. 5만 명에 이르는 조선적 재일동포는 일본에서 차별대우를 받는 것은 물론 한국으로부터도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들이 다니는 조선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60만번의 트라이>는 박사유 감독이 2007년 오사카 조고가 운동장 사용을 놓고 시와 갈등을 겪는 것을 취재하는 것으로 시작한 영화다. 그는 2002년 재일동포 관련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일본에 갔다가 눌러 앉은 뒤 한 방송사의 통신원으로 일하던 중이었다. 박사유 감독은 2008년 당시 항암치료 차 거주하고 있던 교토 우토로 마을에서 그곳을 촬영하던 박돈사 감독을 처음 만났고 1년 뒤 다시 만나 공동 연출을 제안했다.

영화는 2010년 1월 5일 열린 전국대회 준결승 시합으로 시작해 박사유 감독이 오사카 조고를 취재하기 시작한 계기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박사유 감독을 대신해 배우 문정희가 1인칭 시점의 내레이션을 맡았다. 박 감독은 암과 싸우면서도 선수들의 학교생활과 원정시합, 합숙훈련 등을 카메라에 담았다. 야수처럼 운동장을 누비던 아이들도 다른 조선학교의 또래 여학생 앞에선 순한 양이 된다.

‘무국적’의 설움을 드러내는 장면도 있다. 한 학생은 호주 선수 앞에서 한국 선수가 “너는 일본인이고 내가 진짜 한국인”이라고 말했던 걸 떠올리며 속상해 한다. 조선적이어서 한국 입국이 쉽지 않은 아이들은 북한에서 환대를 받고서 눈물을 흘린다. 오사카 조고에 대한 차별은 현재진행형이다. 오사카 대표로 출전해 전국대회 3위라는 성과를 거뒀지만 오사카부는 정부 지침에 따라 오사카 조고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고교 무상화 정책 대상에서 이 학교를 제외시켰다.

두 감독은 2013년 2월 럭비부 주장 김관태 등의 성인식을 끝으로 촬영을 마쳤으나 한동안 영화를 완성하지 못했다. 박사유 감독이 지속적인 항암치료와 3년에 걸친 제작으로 엄청난 빚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포 사회에 은혜를 갚고 싶다”는 그의 바람을 영화 <우리학교>(2006)의 김명준 감독이 한국의 독립영화 제작·배급사에 알려 영화가 완성될 수 있었다.

<60만번의 트라이>는 조선적 재일동포뿐 아니라 60만에 이르는 재일동포 그리고 일본 사회에 ‘일본 속 한국인’의 정체성을 알리는 영화다. 일본의 탄압 속에 점점 사라지고 있는 조선학교가 그 중심에 있다.
“재일동포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종종 조국에 대한 귀속 의식으로 환원하는 논의가 있지만 그건 표층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지역사회와 학교를 통해 재일사회에 뿌리 내림으로써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조선학교 생활을 통해 축적된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자각이 바로 그들의 정체성인 것입니다.”(박사유 감독)

한국일보 =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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